Cape Breton Island Day4,음식점, The Neck of the Woods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Halifax SouthEnd 근처의 삼지창 카페(Trident)에서 포스팅 중이다. 헌 책방을 겸하는 이 카페에는 오랜 책 향기와 묵은 먼지 냄새가 난다. 아내는 너무 올드 스타일이라고 맘에 안든다고 했지만 난 이 곳이 좋다. 전형적인 그리고 지극히 단순한 나에게는 이런 전형적인 곳이 좋다. 이런 곳이야 말로 글을 쓸 만하지 않은가.

서론이 길었다.



1.

 루이스 버그 요새를 다 본 우리에게 남은 일정은 없었다. 이제는 짐 싸서 집으로 가야하는 일만 남았지. 여행의 마지막은 언제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안도감과 좀 더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찾아온다. 판데믹으로 태반이 비어버린 루이스 버그 요새에서 하릴없이 일찍 나온 우리에게는 아직 반나절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 끝에 우리는 캐나다 친구가 소개해준 음식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차를 몰고 꽤나 먼 거리를 호수를 끼고 도달한 곳은, 음식점이 있을 것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좀 외진 곳이었다. 하긴, 그 캐나다 친구도 며칠을 트레일에서 보내다가 내려오는 길에 이곳을 찾았다고 하니까, 이 곳이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라는 느낌은 나만 받은 것이 아닐 것이다. 주변에 가장 가까운 집이라곤 최소 몇 킬로는 가야할 것이다. 음식점 자체도 숲 속에 들어 있어, 길 가에는 작은 간판만 하나 덩그러니 서 있기에 좀 빠른 속도로 달리는 중이었으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이지. 마치, '이세계 식당'이 현실에 등장한 것 같은 이 곳. 바로 The Neck of the Woods가 이 여행을 마무리할 장소가 되었다.

  간판을 따라 들어간 길에는 분명히 식당이 아니고 작은 오두막집이 분명했을 건물에 컨테이너처럼 보이는 가건물이 두개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누군가가 아직도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트레일러가 트럭에 붙은 채로 세워져 있었다. 만약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그런 공사현장 같은 광경에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야외에 놓여있는 피크닉 테이블에는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적어도 세 팀정도 있었고, 가건물 뒤로 펼쳐진 언덕아래로는 포도와 다른 작물이 자라는 작은 농원이 멋진 초원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다른 사람을 믿고 음식을 주문해 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 하면, 우리는 좋은 제비를 뽑은 것이었다. 



2.

 건물 안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15분 가량을 기다려 음식을 받은 우리는 그 농원 앞에 놓은 나무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종이 보따리를 펼쳤다. 그러자 푸짐한 음식 용기들이 풍성한 향기와 함께 튀어나왔다.

 먼저 아내가 주문한 것을 정리하면, 


 Beef Melt - Pulled beef brisket, espresso bbq sauce, caramelized onions, cheddar & mozzarella on grilled bread. comes with choice of side: salad, soup or potato chips. 아내는 soup을 주문했었다.

 기본적으로 할리팩스, 아니 내가 방문했던 캐나다의 도시들 - 몬트리얼, 퀘벡, 토론토에서의 샌드위치는 일반적인 한국의 샌드위치 보다는 한 등급 높았다고 생각한다. - 물론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샌드위치 전문점과 계란과 양배추와 설탕과 딸기쨈으로 무장한 한국형 아침 토스트는 논외로 한다. 그건 같은 '체급'의 메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아내가 한 입 먹은 뒤 동기란 토끼눈을 하고 나에게 내밀어준 이 소고기 샌드위치는 지금껏 내가 먹었던 그 모든 샌드위치 중에서도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맛있었다. 빵의 바삭함. 체다와 모쩌렐라의 녹은 정도와 배합 비율. 고기와 야채와의 밸런스. 고기의 간과 분량. 소스와의 조화. 그리고 곁들여 나온 스프와의 상성 등등...이 모든 점에서 이 아이템은 평균을 웃돌았다. 게다가 이게 16$이라니. 이것을 먹기 위해 차를 몰고 6시간을 동북쪽으로 달려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나는 이 샌드위치를 최소 일주일에 한번은 먹으러 올 터이었다.

 아내가 북미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메뉴를 주문했다고 한다면, 나는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메뉴를 주문했었다.


  Fried Chicken - Half a fresh chicken, butter milk marinated, dredged in secret spice blend, fried 2 pieces. Served with coleslaw, chili garlic honey & 2 milk buns.

  지금껏 먹어본 캐나다 치킨들은 우리내 관점에서 본다면 기준 미달..이라고 할 만 했다. 아, 닭날개 요리만 빼고. 최소한 선방은 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KFC 마저도 크기만 크지, 짜고, 느끼하고... 그런데 여기는 달랐다.

반 마리를 박력있게 두 조각으로 튀켜냈음에도 불구하고 간은 고루고루, 살은 부드럽게 죽죽 찢어졌다. 반죽도 옛날 통닭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양념 때문인지 샛노란 튀김옷은 아니었다. 코울슬로와의 조합도 좋았고, 빵과 같이 먹어도 괜찮았다. 양념의 배합에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가격도 겨우 19$. 이런 외진 곳에 있으니 이런 가격이 나오겠지만 어떻게 이런 외진 곳에서 이런 음식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닌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떠들고 즐기면서 예상치 못했던 풍성하고 수준 높은 피크닉을 즐겼다. 



3.

 배가 부르니 다시 모험을 떠날 의지가 솟았다. 우리는 그 캐나다 친구가 헤매였다는 근처의 트레일로 향했다.



 해안가에 펼쳐진 그 외진 트레일은, 멋진 경치와 고요함에 즐거히 걸을 수 있는 곳이기는 했지만 돌 투성이의 길과 사람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은 막막함, 그리고 내리쬐는 태양과 모기의 협공으로 인해 식후의 산책길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체력단련 코스에 가까웠다고 할까. 지역 관리인이 쓰라고 제공한 나무 지팡이가 아니었으면 더욱 힘든 길이 되었을 터였다. 이런 저런 트레일에 단련이 되어 있는 우리도 여기는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 트레일의 끝에는 사람이 줄어들어 점점 고스트 타운으로 변해가는 마을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걸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와 아내는 발길을 돌렸다. 정말 마을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산악 자전거에 작은 식량 상자와 물을 싣고 트레일을 걸어가는 중년의 남자가 있기에 물어보았더니, 정말 그 마을이 있다고 한다. 그는 원래 몬트리얼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 마을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지 정말 궁금했다. 다음번에 루이스 버그 요새를 온다면, 꼭 그 마을에 들려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또 와야 하는 구나.

 트레일에서 빠져 나온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이제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우리의 여행도 저물고 있었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아내가 루이스버그 마을 입구에, 언젠가 Netflix에서 봤던 영화에서 봤던 등대가 있다고 한다. 그 영화에 루이스 버그 요새도 나왔다고 하는데 도대체 아내는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아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뭐, 아내 입장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기관총과 철조망이 미친 영향 등을 알고 있는 내가 더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등대 근처에 도착한 우리는 영화에서 나왔다는 등대의 각도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해는 점점 떨어지고, 하늘은 황금빛, 보라빛, 주황빛을 토해내면서 점점 바래져갔다. 그리고 저 너머 바다에서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무말 없이 한참 등대를 바라보는 동안, 사람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었다. 한참을 말 없이, 여행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행복과 아픔을 갈무리하고 있자니 어느덧 주변이 컴컴해졌고, 등대가 외눈박이 거인처럼 한줄기 빛을 사방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주변도 공원인지, 관리인인 듯한 사람의 픽업트럭이 진입로를 잠그기 위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와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여행도 이렇게 끝났구나. 그 관리인이 그 막내림을 알리는 듯 했다. 

 우리는 조용히 차를 몰아 숙소로 돌아왔고, 내일 아침 일찍 집으로 향하기 위해 냉장고를 털어 남은 식재료로 저녁을 하고,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 여행이 그 해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집으로 돌아온 뒤 망할 코비드는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국경이 닫히고 주 경계가 닫히고 나중에는 식당과 학교와 주변의 음식점까지 모두 문을 닫아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줄 알았으면 그 여행에서 나는 좀 더 아내와 이야기하고 많은 것을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모두 그때가 지난 뒤의 이야기인 것이지. 


Cape Breton Island Day4,Fortress of Louisbourg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Kejimkujic의 물방울 모양 숙소에 앉아, 이른 아침의 새 소리와 햇살 속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얼마만의 여유인가 싶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나는 만두 만 만든 것 같다. 내 맘대로 여행하고 돌아다니고 싶어 이 나라까지 왔는데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자식도 없는데 아들 딸 둘 씩 '모시고' 와서 잘 살기 위해 고생하는 다른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1.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니 아내가 일어나 있었다. 우리는 씻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루이스 버그 요새(Fortress of Louisbourg)를 향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그 요새에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까지는 차로 10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갈대가 우거진 해안도로를 달려 요새 벽으로 다가가니, 영국식 요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첨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첨탑이 있으면 대포 맞기 딱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매표소를 지나 요새 성벽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통째로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이전에는 논이나 밭이 있었을 듯한 넓은 부지에 관광객 주차장이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 차를 세우고 요새의 중앙부로 향했다.

  요새 중앙부에는 아까 본 첨탑을 머리에 얹은 긴 사각형 형태의 건물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안에 대성당이 있었기에, 그런 탑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건물에 다가가자 주변에 있던 안내 가이드가 다가와 먼저 프랑스어로 인사를 했다. 우리가 영어로 인사를 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이 건물과 요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전 근대식의 영국식 요새와 달리 프랑스 식민지 주민이 만든 이 루이스버그 요새는 그때까지도 중세 '성'의 개념에 따라 지어져 있었다. 중앙의 군사 및 행정 시설 - 아까 본 대성당 건물에는 일반 병사 및 장교 막사, 그리고 행정관의 개인 저택까지 들어 있었다고 한다. - 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었고, 마을과 작은 항구, 두 곳의 전초  방어시설까지 에워싼 상당히 긴 돌 벽이 요새 주변을 원형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인근 농부는 물론, 요새에서 운용하는 군함의 선원들과 제빵사, 대장장이, 직공, 상인들도 같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나와 아내는 조금 시간이 지나서 '그 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중앙 막사의 연병장에는 당시 프랑스 군인의 복장을 한 병사 한 명이 머스킷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멋진 풍경이지만, 못내 아쉬었던 점은 망할 코비드 덕에 그가 현대식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고증이 맞지 않으니 도무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지. 더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이전에는 소대 규모로 늘어서 있던 경비 병력이 단 한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당연히, 같이 사진도 못 찍었다.

 연변장 반대편에는 요새의 가축을 관리하던 작은 목초지가 있었다. 유제품과 고기를 제공하는 소, 돼지, 닭에서부터 장교들이 탑승했던 군마에 이르기까지 요새의 모든 가축을 이 공간에서 관리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망할 코비드 때문에 텅텅 비어 있었다.

  중앙 건물의 실내는 예상 외로 잘 꾸며져 있었다. 병사들의 막사에는 마치 방금까지도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생활감이 뚜렷한 물품들이 잘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요새가 처음부터 이렇게 관리 된 것은 아니었다. 막사 내에 정리되어 있던 자료에 따르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이 요새는 그냥 '방치'되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세상의 수 많은 다른 불쌍한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이유로 - 예를 땅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근대화 과정에서, 두 차례의 대전을 겪을 때 마다 - 여기저기 뜯겨나갔다. 성벽의 일부는 인근 주민의 주택이 되고, 바뀐 주인의 저택이 되고, 다른 벙커의 주춧돌이 되었고, 특히 이 곳은 인근에서 발전했던 석탄 광산의 건축 자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금만 더 상했으면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부서져 버릴 뻔한 이 요새가 되살아난 된 이유는 이 곳의 주요 산업인 탄광산업이 쇠락 하면서 부터였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주민들을 위해 캐나다 정부는 대규모의 공공사업을 시작했고, 도로, 통신, 상하수도 사업과 많은 예산이 루이스버그 요새의 재건화 사업에 투입되었다. 광산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은 학자들의 지휘 하에서  모래와 진흙에 묻혔던 요새를 다듬어 내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머무를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고, 요새를 복원할 자재를 수송하고 인력을 제공하면서 요새와 함께 살아나기 시작했다. 즉, 루이스 버그의 주민들은 이 요새를 되 살림으로써, 힘들었던 경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요새와 주민들의 관계는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보였다. 요새에 관광객이 넘치면, 마을에 생기가 돌고, 요새에 관광객이 없어지면 주민들은 힘들어지는 것이지. 그러니 이 텅빈 포대를 보면서 허탈한 웃음만 날리는 관광 가이드들의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간다. 그나마 나라도 와서 오늘은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공허한 대포 끝이 향한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배치된 병사도 없고 구경하는 사람도 없는 성벽의 대포는 너무 쓸쓸해 보였다. 가끔 눈에 띄는 포병 - 아마도 마을 주민이 연기하고 있는 것이겠지. - 은 어렵게 이곳을 찾아온 사람에게 뭔가 볼 거리는 제공해야겠지만 거리는 두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운지 우리가 다가갈 때 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자세를 잡고 친근하게 눈으로 웃어 주었다. 그 미소를 가린 마스크 만큼 이 사람의 마음도 답답해 보이지만 그 눈에서 나는 환대가 뭔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행정, 군사 지구를 떠나 마을에 들어서자 더 많은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일반 가정주부로 분장하고 있는 남자 분도 있었고, 
- 그런데 왜 아줌마 역할을 남자가 하고 있는 것일까. 성 정체성이 비교적 자유로운 이곳이니 일부러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저분이 자발적으로 그 역할을 맡은 것일까. 나로써는 알 수가 없지만, 그의 수다는 일반적인 아줌마의 그것과 비등한 수준이었다.

당시 유명했던 이 곳의 석재를 프랑스 및 유럽으로 판매하는 상인도 있었다. 영국에 대한 반감이 높은 당시 상인의 입장에 과몰입 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핏속에 흐르는 '아카디언 - 프랑스 식민지 주민'의 의기가 분출한 것인지 우리가 할리팩스에서 왔다고 하니 '내가 사는 시대에는 그런 동네는 존재하지도 않았지 암암' 하는 대사를 하면서 이 곳이 동부 식민지의 원조라는 투로 자랑을 했다. 

 다른 방에는 아무리 봐도 자기 아버지 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상인의 귀여운 두 딸이 거실에서 피아노의 조상 하프시코드(Harpsichord)를 치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악기의 소리는 참, 신기했다. 음악이 울리는 순간 순식간에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내 주변이 바로크 시대로 변한 듯 했다.  

 온 마을이, 마치 흑사병이라도 돈 것처럼, 원래 주민이 있어야 하는 곳에는 빈자리가 보였고 그들은 모두 약간 슬픈 얼굴로 마스크를 쓰고 우리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관광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그들은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고, 각각의 개인기를 보여주었고, 역사적인 아픔과 비꼼이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즐거웠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의 아픔과 다른 사람들의 빈자리가 좀 더 잘 다가왔었다. 

 언젠가 용인 민속촌을 방문했었을 때, 내가 찾아갔던 그 시절에는 그 유명했던 거지와 포졸과 주민들과 온갖 캐릭터들이 '재현'되지 않았었다. 그냥 건물이 있었고 관광객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좀 더 진지하고, 학구적(?)으로 민속촌을 대할 수 있었지만 요즘 민속촌의 그 생동감 넘치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실제 그 안에 사는 것 같은 경험은 할 수가 없었다. 

 이 날, 루이스 버그 요새에서 본 것이 바로 그 '이전' 민속촌의 모습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것보다 더 쇠락해 버린 민속촌이겠지. 여기저기 보이는, 원래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던 곳이 비어 있었으니 빈 자리가 말이다.

 루이스버그 거리를 걸으면서 이미 그꼈던 것이지만, 이 요새 또한 다음에 꼭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텅빈 곳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병사들이 연병장을 누비고, 주민들이 왁자지껄 장을 열고 축제를 벌이고 물건과 음식을 파는 그 모습 또한 매우 보고 싶기 때문이다.

PS. 이미 1년이나 지난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아직 그 요새와 마을은 비어버린 상태라고 들었다. 언제 쯤이면 다시 그곳을 찾아갈 수 있을까.

Cape Breton Island Day4,Louisbourg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2021년 하고도 6월 11일 아침, 지난 여름에 갔었던 '이 여행'은 이제 까마득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흘러간 지난 일 년은 힘들었고 피곤했고 불확실했다. 망할 코로나 덕분에 아직도 세상은 많은 면에서 불확실하나, 이제는 나아지는 중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하다. 느리더라도 명확하게 어디인지 모르지만 어디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 끝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에는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은 것이 모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 지 갈팡질팡하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 와중이기에, 아직 마무리 짓지 않은 일들을 마무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은 망각의 늪에 빠뜨리기 싫은 것들을 어딘가 잘 챙겨 두는 것도 중요하다. 누가 그랬던가, '아무리 선명한 기억도 시간의 힘은 좀처럼 당해내지 못한다.'고. 그러니 여기에 써 두어야 한다.  
 


1.

 그레이엄 벨 박물관을 떠나서 나와 아내는 섬의 동쪽으로 향했다. Novascotia 여행 포스터에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바이올린, 'The Big Fiddle'을 보기 위해 잠깐 Sydney에 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곳에서는 두 시간도 머물지 않았기에 이제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아니, 내가 그 날을 기억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Sydney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이 곳에 처음 와보는 나는 어느 회전 교차로에서 실수를 했고,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는 짜증을 잔뜩 섞어 싫은 소리를 했다.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에서 피곤하기도 했던 나는 그 상황에 여유롭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뒤의 시간은 기분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때 내가 뭐라고 그녀에게 이야기 했는지, 그녀가 어떻게 이야기 했는지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 속 밑 바닥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것은 그날 우리는 싸웠고, 그래서 그 뒤의 여정이 즐겁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짤막한 부고 기사처럼 간결하고 감정 없는 문체로 쓰여진 기억의 증명. 하지만 그 부고의 뒤 어느 곳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명 씨가 죽어 있는 것처럼, 그 날 하루는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사그라져 버렸다. 사냥 당한 뒤 나무에 매달려 발목에 칼 집이 난 사슴 마냥, 조용히 피를 흘리며 그렇게, 그 하루는 바래져 갔다. 그리고 서글프게도 박제조차 남기지 못했다.

 Sydney에서 차를 몰고 나온 우리는 곧 도착할 목적지에 대해 짧막 하게 해야 하는  '상의'를 하고, NSLC에 들려 맥주와 위스키를 사고, 잡화점에서 먹거리를 구매 한 뒤, 그날 머물 숙소 - Point of View Suites 였던가- 에 제 시간 맞춰 체크인 했다. 이미 감정이 상한 우리는 서로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잘 다려진 바삭바삭한 시트에 몸을 둘둘 말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그날 밤, 달빛이 창을 뚫고 방을 온통 밝힐 정도로 탐스럽고 아름다웠지만,  나는 억지로 그 빛에 등을 돌리고 얼굴을 베개에 박고 잠을 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멋적더라도 그녀에게 같이 달이나 보면서 맥주나 마시자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조용히 잠이나 자자는 말이 돌아올 지라도, 그 때는 그랬어야 했다.



2.

 다음 날 아침, 이상하게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동쪽으로 난 창 밖으로 해가 오르고 있는지 바다와 하늘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몇 몇 어선들이 일찌감치 바다로 나가는 것이 보였고 저 멀리 등대는 그 뒤에서 아직까지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산책이 하고 싶어졌었다. 그래서 조용히 작은 가방에 물과 카메라를 넣고 바깥으로 나섰다.

 이 마을, 루이스 버그(Louis Bourg)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으로 성수기에는 온 거리가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라고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에는 나 뿐이다. 아무리 이른 아침이라 해도, 이 한적함은 정상이 아니다. 나는 마치 영화 '나는 전설이다.' 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 했다.

 
 거리에 문을 연 상점은 거의 없었고, 곳곳에 임대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한 중국 레스토랑은 문에 나무 판자로 못 질이 되어 있었고, 주차장의 깨진 아스팔트 사이로 잡초들이 비죽비죽 올라오고 있었다. 야외 미니 카트 경기장에는 펜스로 사용했던 듯한 타이어가 나 뒹굴고 있었고, 그 흔한 카페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한 때 관광객들이 줄을 섰을 듯한 푸드트럭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트럭 앞쪽에 커다랗게 놓인 간판에는 'Closed'라는 차가운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고 앞 쪽의 창문에는 Covid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및 기타 권장 사항이 인쇄된 쌀쌀맞은 공문이 마치 차압 딱지마냥 붙어 있었다.  

 동부 캐나다 각지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았던 이 마을도 이번 코로나 사태의 여파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할리팩스를 통해 들어오던 장거리 관광객과 크루즈 유람객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부터 정부의 거리 두기 시책까지, '루이스버그' 요새의 많은 장소와 이벤트 들은 하나 둘 숙소 시행 혹은 취소 되었다. 그 결과, 관광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던 마을 사람들은 졸지에 굶어 죽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체크인할 때 숙소에서 만난 직원이 전하기를, 레스토랑 한 곳과 카페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요식업 사업장이 문을 잠정적 혹은 영구적으로 닫았다고 했다. 기념품 가게, 소극장, 야외 유원지는 전부 문을 닫았으며 그 와중에 푸드트럭 한 곳도 사업을 접었다. 걷기도 좋고, 정리도 잘 되어 있고, 소박한 동부 캐나다 양식의 건물도 군데 군데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인 이곳이, 지금은 어느 산간의 폐광촌처럼 변하고 있었다.
 
 그런 이 곳 사람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멀리 마을 저편으로 펼쳐진 바다는 해가 오름에 따라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참 좋은 날씨인데. 정말 지랄 맞도록 좋은 날씨라서 좀 심술이 나더라. 아내와 투닥거리고 말 한마디 못 붙이고 나온 내 심정도 모르고, 대출에 학비에 임대 보증금까지 까먹다가 결국은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된 마을 주민들의 심정도 모르고 야속하게 황금과 에메랄드 빛을 뿜어 올리는 그 아름다운 바다가 야속하더라.

 아무리 돌아다녀도 눈 인사 나눌 사람도, 따뜻한 커피도 마주하지 못한 나는 결국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면서 나는, 이 미친 시간이 전부 지나면 다시 이 곳을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삭막했던 이 장소에 사람의 생기가 돌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그때는 나 혼자가 아닌 아내와 같이 거리를 걸어봐야겠다. 적어도 그러면 이 거리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나 더 있는 샘이니 좀 덜 삭막하겠지.

Cape Breton Island Day3, Alexander Graham Bell National Historic Site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배낭을 다 싸 놓고 마지막으로 타 들어가고 있는 장작 소리를 들으면서, 쿠션이 꺼지다 못해 바닥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낡은 소파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리는 비가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다. 초가을의 비가 오두막의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정겹긴 하지만 양철 지붕은 녹이 잘 슬어서 날씨가 궂은 숲 속 오두막에는 어울리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런 곳에 있으면서도 효율과 효과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보다. 




1.

 Alexander Graham Bell의 박물관이 Capebreton섬에 있다는 사실을 갈게 된 것은 사실 상당히 최근의 일이었다. 몇 주전에 나의 친애하는 친구이자 영어 튜터인 Allan과 아침 산책을 하던 중, 마지막 여름 휴가로 Capebreton섬에 '또' 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 섬에 간다면 가봐야 할 곳이 3곳이 있다. Highlands National Park, Alexander Graham Bell National Historic Site, 그리고 마지막으로 Fortress of Louisbourg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까지 국립 공원만 줄기차게 찾아갔던 나에게 그가 알려준 새로운 장소들은 매우 흥미로운 정보였다.나는 그 때, 이번 여행에는 다른 두 곳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연유로 이번 휴가 여행의 3일차 오후, 나와 그녀는 Alexander Graham Bell National Historic Site이 위치한 베덕(Baddeck)이란 곳으로 향했다.

 나는 베덕(Baddeck)이란 곳을 지금껏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Capebreton 섬의 남부, 호수인지 바다인지 약간은 헷갈리는 거대한 물 옆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이유로 섬을 나고 들 때마다 멀리서 나마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곳의 이름 같은 건 알지 못했고 들려본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하지만 이날, 이상할 정도로 맑아진 날씨 아래서 들린 이 동네는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작고 앙증맞은 가게와 집들, 그리고 상점들이 넓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서 들어서 있었다. 그 거리에는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주민들과 소수의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에너지가 넘치는(?)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들은 길가에 세워진 검은색 햄버거 푸드트럭 앞에 줄 지어 서 있었다. 드문 드문 관광객도 보이긴 했지만, 이름도 올리기 싫은 그 질병으로 인해, 외지에서 놀러 온 듯한 사람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이 파란 색의 폭스바겐 레트로 캠핑카를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나는 바다 건너 온 외부인 친구를 만난 기분으로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 차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색이 바래진 곳도, 코팅이 벗겨진 곳도 없었고 타이어 캡부터 실내의 커튼과 목조 장식, 자동차 좌석의 가죽시트에 이르기 까지 모두 '순정'부품을 사용한 듯 했다. 무엇 하나 어색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언젠가 쿠바에 갔을 때 어울리지도 않은 부품으로 여기저기 메워 놓은 듯한 올드카들을 봤을 때 나는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그렇게 차를 막 대하는 쿠바 사람들에게 화가 날 정도였다. 그에 반해, 오늘 이 차를 보고 나는 너무 행복했다. 아직 세상에는 온정과 정의(???)라는 것이 남아 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할 수만 있다면 상점 안에 들어가서 바깥에 세워 놓은 차 안쪽을 구경하게 해주신다면 물건 두 개는 사 드리겠다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다.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안쪽을 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랬다면 내 뺨의 개기름이 잘 닦아 놓은 유리창에 묻겠지. 그런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 하고 있던 나의 귀를 그녀가 잡아 당겼다. 이제 좀 가자고.



2.

 Alexander Graham Bell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전화를 발명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일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가진 상식도 그 정도 수준일 것이다. 캐나다에 온 뒤에야, 그가 캐나다 사람들에게 상당히 사랑 받는 '미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사실 상당히 놀라운 일인데 왜냐하면 많은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의 '위인'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즐겨보는 BBC의 드라마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Kim's convenience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머독의 미스테리이다. 그 머독의 미스테리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구미권의 다양한 위인들이 등장하는데, 미국의 위인들에 대한 극중의 평가는 박하기 짝이 없다. 특히, 록펠러와 에디슨, 헨리 포드는 돈만 밝히고 쓸데없는 경쟁심에 자존심만 강한 속물 비슷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레이엄 벨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았다. 분명 미국국적의 발명가인데 지나치게 편파적일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이 날 이곳을 들린 뒤에야 나는 그 이유를 아주 약간은 알 수가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그레이엄벨은 가족과 자신의 병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전화기를 비롯한 다른 많은, 우리가 몰랐던 것들을 그곳에서 발명했다. 그러다가 만년에는 바로 여기, 케이프브레튼의 베덕으로 이주해서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캐나다에 이주해서 살던 시기에 그는 자신이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사회와 캐나다를 위해 많은 연구를 했고, 주변 사람들을 도왔다.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않고 말이다. 바로 이점이 그와 에디슨을 위시한 여타 미국의 발명가들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이타적이었고 물욕이 없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세운 전화회사의 거의 대부분의 주식을 자신의 아내에게 양도했다. 위 사진이 바로 그 벨 전화회사의 주식 소유권에 대한 문서 - 혹은 그 복사본 - 이다. 어떤 놈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의 한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전기를 발견한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 이지만 돈을 번 사람은 전기 미터기를 만든 사람이라고.' 그 말과 이 양도증서를 놓고 생각하면, 그 당시 벨이 했던 여러가지 행동이 얼마나 탈 자본주의적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전화기의 발명 이후에도 끊임 없이 새로운 것들을 발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위 스케치는 빛의 파장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 설계이다. 실제 몇번의 실험도 했다고 했으나 기후와 다른 환경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 빛의 특징상 실용화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레이엄 벨 자신은 사실 전화기 보다 이 연구에 더욱 많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외에도 그는  이 곳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발명을 시도 했었다. 양젓의 생산량 촉진에 대한 연구, 실용적인 저울이나 생활 용구에 대한 발명 등등. 


그리고 이 물건은 바로 축음기. 사실 축음기의 원리는 알고 보면 무척 간단하다. 그 간단한 생각을 하는 것, 그리고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그냥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면 대륙이 나오는 간단한 것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지.

 그의 수많은 연구와 발명 중 무엇보다 내가 알지 못했고 또한 재미있었던 것은 그가 비행기와 수상정에 대한 연구에 심취해 있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었다는 점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동력 비행을 성공한 이후에도, 수많은 발명가들과 과학자들은 보다 많은 무게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늘에 띄우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했었다. 그레이엄 벨도 그들 중 한 명 이었으며, 그는 당시 캐나다의 석학들과 합심하여 대형 비행기에 대한 이런 저런 실험을 바로 이곳 '베덕'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많은 물체 중 그가 최초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모듈형식으로 조립하여 크기와 형태를 조정할 수 있는 '삼각연' 이었다. 그는 수많은 연들을 가벼운 결합 장치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하늘을 나는 대형 물체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다. 당시 재료의 한계로 인해 그의 첫번째 발상은 결국 실제로 하늘을 날지는 못했지만 보다 가볍고 튼튼한 소재가 발명된 현재에는 그의 이론이 구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디까지나, 문과 전공의 꿈 같은 소리이지만 말이다.

 연을 이용한 비행체의 연구에서 방향을 전환한 그는 이윽고 이미 발명된 동력 비행기의 개선과 개량에 돌입했다. 그리하여 캐나다 정부의 지원 하에서 쌍엽기 형태의 캐나다산 비행기를 여타 과학자들과 합심하여 발명해 냈었다. 그가 연구한 비행기들은 상업적, 군사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연구 결과에 만족한 캐나다 정부는 그에게 다른 프로젝트를 의뢰한다.

 그레이엄 벨이 자신의 생애를 마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연구했던 것은 바로 비행기 동력을 이용해서 물위를 나는 듯 달리는 수상정이었다. 복잡한 해안선과 많은 호수로 이루어진 캐나다는 물위를 효과적으로 누빌 수 있는 선박이 국토 방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 수상정에 대한 연구를 그레이엄벨과 다른 항공, 선박 공학자들에게 의뢰 했었다. 베덕에 위치한 바로 그 큰 호수위에서 수많은 실험이 진행되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나 벨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가 원하는 속도의 수상정은 실현되지 못했다. 엔진의 무게에 비해 동력은 충분히 강하지 못했으며, 속도를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구현하기에는 당시의 재료가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냉전 시대를 전후하여 그의 연구 성과는 빛을 발하게 된다. 보다 가볍고 내구성이 있는 소재로 선체를 만들 수 있게 되고, 로켓 방식을 이용한 강력하지만 가벼운 내연기관의 구현으로 이론적으로만 존재했던 그의 수상정은 마침내 실제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잠시나마 캐나다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수상정을 보유했던 국가가 된다.

 다른 나라 사람이 와서 이렇게 까지 도와주고 생을 마쳤으니 어찌 캐나다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한 개인의 박물관에서 그 사람의 흠을 잡지는 않을 것이기에 편파적인 면이 있겠지만, 객관이 언제나 주관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진실이 언제나 허구보다 우월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이 곳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어서 기쁠 뿐이고, 내가 존경하던 한 사람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되어서 즐거울 뿐이다. 그 새로운 점이 그의 성과물 - 전화기와 비행기 - 에 대한 나의 이해도를 높일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하 더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순수한 결과에 나는 만족했다. 그리고 그 점에서, 나의 박물관 방문은, 그리고 이 박물관의 존재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3.

 관람을 끝마치고 나왔더니 흐렸던 하늘이 개어 있었다. 그때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보석빛 영롱한 호수가 그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여정을 잠시 미루고 호수가의 식당과 작은 항구들, 요트 사이를 부서지는 햇볕 아래서 거닐었다. 

  내 눈을 확 잡아 끌었던 이 작은 배. 언젠가 늙으면 이런 배에 몸을 싣고 가고 싶은 곳으로 맘대로 가 보는 것이 한창 대항해시대를 할 때의 꿈이었건만, 지금은 요트 가격은 얼마나 할지, 이 나라 저 나라 가려면 비자는 어떻게 해야할지, 무엇보다 내가 배를 몰려면 어떤 면허를 따야할지 하는 제한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게 된다. 국경이 생기고 제도가 발전하면서 사람은 보다 오래 살게 되었을 지언정 먼 옛날 인류가 누렸던 자유는 이제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그때가 얼마나 고달픈지 모르기에, 그 시대가 부럽다. 아니, 그 시대 정신이 부럽다. 지금은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많은 걱정과 고려를 해야 한다. 이 작은 귀퉁이에서 더 작은 가게를 하나 여는 데에도 너무 많은 것들을 해야 한다.

그러니 돈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굳어져 가는 것' 이다.

...예쁜 동네의 요트 한 척에 별 생각을 다하고 간다.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 근처 여관에 풀썩 들려서 하룻밤 자고 싶었지만 이미 잡아 놓은 곳이 있는지라, 나는 그렇게 온갖 푸념을 마음속으로 풀어놓은 요트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Cape Breton Island Day1~3, Highlands National Park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나는 지금 나의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를 차로 달려야 올 수 있는 이름 모를 숲 가운데의 오두막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그 집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글을 쓰기가 힘들다. 만두를 만들 수도 있고 장부를 정리할 수 도 있지만 '글'을 쓸 수는 없다. 왜 그런지 짐작 가는 이유는 있지만 글자로 옮기기 싫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도 해도 굳이 들추어 내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1.

 주변의 캐나다 사람들이 각자의 long weekend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면 나와 그녀도 어디로 갈 곳을 물색한다. 나에게 이곳 - Halifax는 아직 낯선 공간이지만 점점 일상으로 변해가는 시간과 공간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나는 일상을 감내하는 - 혹은 즐기는 - 삶에 다가간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언제나 어느 곳에 있는 무엇을 찾아 떠나려 한다. But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서울을 떠나 이 곳에 왔던 것처럼 그녀는 이제는 이 곳을 떠나 그 어느 곳을 언제나 갈구한다. 대단하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그 몹쓸 병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를, 심지어는 이 지역마저도 떠날 수 없다. 다행히 Atlantic bubble이라는 하는 제도 덕분 Novascotia에 살고 있는 우리는 New Brunswick과 PEI까지는 14일의 가택 연금을 각오하지 않아도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그럼 무엇 하는가. 대서양에 면한 그 세 지역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어설픈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애매하게 비슷하다. 등대와 또 등대, 랍스터와 또 랍스터. 빨간머리 앤을 한 번 더 만나러 가는 것도 좋긴 하지만 이번에는 익숙한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다 소중한 연휴를 어설프게 써버리는 것도 사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5일간의 연휴의 반은 익숙한 곳에, 나머지 반은 새로운 곳에 할여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여름 연휴의 첫 목적지는 아니나 다를까 Cape Breton Island의 Highlands National Park였다. 



2.

 내 주변의 많은 캐나다 사람 중에는 단 한번도 이 곳에 못 가본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여기 벌써 너댓 번은 온 듯 하다. 하지만 이 섬에는, 더 좁혀서 이 국립 공원에는 아직도 내가 한 발도 딛지 못한 길과 숲과 호수와 시내가 수두룩하다. 그 광활함, 그 넉넉함, 그 때문에 자생하는 곳곳에 숨겨진 미지의 볼거리가 바로 북미의 자연이 가진 매력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이 곳에서 우리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간을 찾아서 떠났다.

 그리하여 3시간 반 가량을 달려 도착한 국립 공원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경험'은 바로 공사로 인한 정체였다.


 삼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도 Cabot trail의 어딘가 에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국립 공원 도로 보수공사를 한창 성수기인 여름 한나절에 급한 기색도 없이 여유롭게 하는 캐나다 사람들을 보며, 나는 화가 나기 보다는 '아 여기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라고 오히려 기뻐했었다. 그때는 그만큼 지쳐있었다. 그래서 그 유유자적한 공사 현장을 보며 내가 마치 그들 중 한 명이었던 것처럼 행복했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삼년 동안 수많은 waiting에 치이다 보니 한국과 캐나다를 반반 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지난 기간 힘들고 흔들리는 시간을 살아온 우리는 이제 그때 마냥 행복하게 이 공사 현장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정지 표지판을 들고 있는 공사장 인부는 나의 작은 차를 비롯한 다른 여덟 대의 차를 장장 25분 동안이나 붙잡아 두면서도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나 업무에 충실한 태도 따위는 손톱 만큼도 없었다. 끊임없이 하품을 했고 줄담배를 피웠다. 혹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도 했다. 어떻게 담배를 피우다 말고 하품을 하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내 옆 창문으로 펼쳐진 해안 도로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 시간을 아름다운 순간으로 바꾸어 주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창문을 때리는 궂은 날씨는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흰색을 더욱 선명하게 대비 시켜 주었다. 저 먼 바다를 달려온 바람에 업힌 바다는 호쿠사이의 그림처럼  무시무시한 박력을 뽐 내었고, 나는 운전대 위에 머리를 놓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창문 밖 그 광경을 바라봤다. 파도 또 파도, 하얗게 무너지는 거품과 또 거품, 바람과 구름 그리고 그 틈새로 가끔 쏟아지는 황금 빛의 햇살. High Land의 다이나믹한 기후는 야영을 하는 사람들에게 앞날을 짐작할 수 없게 하는 저주 임과 동시에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크나큰 축복이기도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드디어 stop 사인이 slow로 바뀌었다. 천천히,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와 그녀는 첫날 우리가 머무를 캠핑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아 정말 다시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공원에서 나가게 되는 2일 뒤에도 이 공사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여기에서 또 와서 저 망할 sign이 바뀌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우. 



3.

 캠핑장에 도착하고 텐트를 치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하루를 자동차 속과 공사장 광경으로 마무리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와 그녀는 캠핑장 근처에 있는 짧은 트레일을 오르기로 했다. 산도 낮아 보였고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 꼭대기에서 마주한 광경은 나의 상상을 크게 넘어섰다.


 때 마침 맑게 갠 날씨로 푸른 색이 선명한 하늘 아래 짙은 숲과 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숲 중간 중간에 흩어진 호수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고, 사람 손을 탄 것이라고는 딱 두 가지, 숲 사이로 뻗은 도로와 전신주 뿐이었다. 그 도로마저도, 차들이 지나지 않을 때에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부끄럽고 가늘게 숲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아, 사람 손을 탄 게 하나 더 있었네. 바로 내가 '캐나다 국립 공원 의자'라고 부르는 그 의자가 이 산 꼭대기에도 놓여 있었다.


 무릇 트레일을 걷다가 저 의자가 보이면 꼭 가서 앉아봐야 한다. 크게 잘못되지 않은 이상, 그 의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언제나 볼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나는 저 의자에 앉아, 그녀는 저 의자 앞에 놓인 작은 벤치에 앉아 말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연애시절에는 서로 이야기 한다고 바빴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따로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듯 하다. 부부란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해가 저물고, 우리는 별 다른 말도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조용히 캠핑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4.

 다음날 아침, 날씨가 갠 듯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트레일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아침 산책 삼아서 캠핑장 근처의 해변 길을 걸었다.

 이 길의 독특한 점은, 호수와 바다가 아주 가는 해안을 사이에 두고 병존한다는 것이었다. 홍수가 나면 호수가 넘쳐 바다로 흘러 들어갈 정도였고, 파도가 심하면 바닷물이 호수로 밀려 들어갈 것 같았다. 처음에는 둘 다 바닷물이 아닌가 싶어 손가락으로 육지에 가까운 쪽 물을 찍어 먹어보기도 했다. 아니다. 짠 맛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민물.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침 산책을 끝내고 간단하게 식사를 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미답지를 찾아 떠났다. 두번째 날 우리가 가보고자 했던 곳은 Meat Cove. 케이프브레튼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북 단에 위치한 곳이다. 내가 가입한 페이스북의 Novascotia Camping Life 그룹에서도 종종 그 이름을 듣곤 했었기에 이번 기회에 가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북으로 북으로 차를 몰아 갈 수록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섬에서도 비교적 지대가 높은 북쪽은 오가던 구름이 산에 걸려 비를 뿌리곤 한다 던데 아마도 그 때문인 듯 했다. 그래도 왔으니 끝까지 가봐야 하잖겠는가.

 그렇게 도달한 Meatcove는 그 험한 산 사이로 꼬불꼬불 펼쳐진 좁은 비 포장 도로를 상당히 달려야 도달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섬이 끝나는 곳에 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뭐 랄까 어부들이 떠나버린 빈 해안 마을의 '잔해'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해안으로 뻗어있는 작은 길 사이사이로 숙박업을 목적으로 지은 듯한 작은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지만 하나같이 불이 꺼져 있었고 인적은 드물었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이는 집들, 예를 들어 드라이브 웨이에 차가 서 있고 뜰에 아이들의 장난감이 떨어져 있는 집들이 간혹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버려진 곳일까, 개척 중인 곳일까. 그 도로의 끝에는 사설 캠핑장 하나가 크게 서 있었고 캠핑장 입구 맞은 편에 큰 매점이 하나 서 있었다. 캠핑장 안에는 이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야영을 감행하고 있는 남녀 한 쌍이 텐트 옆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본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도 불행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묵묵히, 비를 맞으며 냉정하고 효율적으로 그 작업을 '해 치우고 있었다.' 뭔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잠깐 내리기로 마음먹었고, 그녀는 비를 피해 차에 남아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귓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거쎈 바람소리와 그 사이로 거인들이 소리 지르는 듯 한 파도 소리. 바람이 불 때마다 강해졌다 약해 졌다를 반복하며 내 방수 자켓과 차를 때리는 빗물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의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듯 한 윙윙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렸다. 캠핑장 옆에서 한창 땅을 고르고 있던 포크레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이 곳에서는, 자연이 인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잘 다듬어 놓은 듯한 국립 공원의 산과 절벽과 달리 여기는 아직 신의 거친 붓 질이 곳곳에 보였다. 그 틈새로 기어들어서 길을 내고 텐트를 치고 작은 둥지 같은 집들을 올린 인간들의 아둥바둥 한 결과물은, 마치 흡사 개미가 모래 위에 낸 흔적 처럼 보였다. 나는 금방 이라도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바다에 쳐 넣을 것 같은 그 맹렬함에 두려움을 느꼈으나 그와 동시에 압도적인 힘에 스스로를 낮출 때 느낄 수 있는 이상한 안도감과 편안함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바람에 덜덜 떨면서 그 이상한 감정의 탁류 속에 하염 없이 흘러가고 있을 때, 내 뒤로 한 남자가 마운틴 바이크를 타고 매점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그 단말마의  엔진 소리에 나는 문득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이제 돌아가자. 

 떠나기 전, 그래도 뭐라도 사 주는 것이 이 마을에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매점을 둘러보려 했지만, 날씨 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은 듯 했다. 커피와 따뜻한 핫도그 정도만 있어도 이 날씨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차를 몰고 오는 도중에도 흐린 날씨는 좋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나와 그녀는 이 세상의 끝에 갔다 온 것 만으로도 벌써 지쳐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우리는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5.

 유명 관광지에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은 이외로 힘들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생선 떼를 노리는 상어 마냥 장사치들이 모여든다. 그렇다. 나는 요리사가 아니라 장사치라고 했다. 무림 고수들이 첩첩산중에 숨어 무공을 수련 하듯,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은 이외로 유명하지 않는 곳, 인적이 드문 곳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PEI의 Richard's 처럼. 반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밥 먹을 곳을 찾다 지친 사람들이 대충 밥을 먹고 갈 때 뿌리는 돈을 줍기 위해 겨우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입이 벌어질 만한 가격으로 파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곳들은, 실제로 한번 들려서 먹어보기 전까지는 다른 맛집들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그런 유명 관광지에서 찾은 꽤 나 괜찮은 솜씨의 밥 집'은 소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장소를 사랑해야 하고, 아껴야 한다. 어떻게? 찾아가서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겨우 세 번 정도의 시도 끝에 이 곳 Cape breton에서 단골로 할 만한 장소를 찾았었다. 여기,Rusty Anchor가 바로 그러한 곳이다. 

메뉴 자체에서 독특한 면이 있다면? 그런 거 없다. 파는 것은 이 지방 Atlantic Canada에서 흔한 메뉴들 뿐. 해산물을 주재료 한 시푸드 차우더, 피쉬앤 칩스, 랍스터 롤, 샌드위치, 햄버거 등등. 이 지방의 문화적 특색 - 완고함, 우직함, 성실함,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피와 익숙한 메뉴에 대한 집착 - 을 고려한다면, 같이 음식을 파는 사람으로써 나는 그 메뉴의 구색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구색을 따질 수 없다면, 적어도 각 메뉴의 질에 대한 고려는 필수 적이지. 마치, 중식집의 솜씨 판단 기준이 흔하디 흔한 짜장면과 탕수육을 어떻게 뽑아 내는가에 있는 것처럼, 익숙한 것에 매달린다면 그에 상응하는 질적인 잣대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Rusty Anchor는 그 점에서 우리의 평균적인 기준을 멋지게 상회 하는 음식을 선보인다.

차우더의 재료는 신선하고, 오래 우린 국물에서 찾을 수 있는 깊은 맛이 들어있다. 잉글리쉬 스타일과 케이프브레튼 스타일에서 선택할 수 있는 피쉬 앤 칩스는 기호에 따라 바싹 튀긴 옷과 크로켓처럼 부드러운 옷, 쫀득하게 익은 속과 촉촉하게 익은 속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날 처음 시도해 본 화이트 와인 홍합찜도 실로 맛있었다. 차를 몰고 오지 않았다면 술 한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도 충분하고, 값은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 물가를 고려한다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할 만했다. 섬의 북쪽 고지에서 비를 뚫고 내려와 따뜻한 실내에 앉아 친절한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적정 가격에서 먹을 수 있는데, 내가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저 즐거울 뿐이지.  

 그렇다고 캠핑장에서 직접 해 먹는 요리의 재미 또한 놓칠 수는 없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저녁 즈음 캠핑장에 돌아온 우리는 준비해온 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가스 버너에 끓이는 컵라면도 맛있지만, 캐나다 캠핑 사이트에서는 fire pit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 작은 철 상자에서 뽑아 올릴 수 있는 장작 불은, 여름이라도 추운 밤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커피도 끓일 수 있고, 팬 프라이 볶음 밥을 할 수도 있고, 꼬챙이만 있으면 직화구이 부터 머시멜로우 구이까지 다양한 요리를 한번에 선보일 수 있는 만능 부엌이라 할 수 있겠다. 미리 썰어둔 야채 한 봉투, 스팸이나 햄, 혹은 갈아 놓은 돼지고기, 식용유 약간과 소금 후추 설탕 조금, 간장 약간만 있으면 불 맛이 펑펑 올라오는 훌륭한 요리도 뚝딱 만들어진다. 평소에는 요리 못한다는 타박에 시달리는 나도, 강한 화력과 그녀의 배고픔과 피곤함에 힘입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 캠핑에서도 대부분의 요리를 그녀가 하고 나는 말 그대로 숟가락만 얹었지만 말이다. 맥주도 한잔 곁들여 가며 나와 그녀는, 갑자기 몰려온 비로 모닥불이 꺼질 때 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불 옆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비가 숲을 적시기 시작하자 우리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추워지는 텐트에서 더 추워지기 전에 잠을 재촉했던 나는 문득 알았다. 아, 오늘이 그녀와 같이 텐트에서 자는 금년도 마지막 캠핑이 되겠구나 하고. 이 땅은 앞으로 더 추워질 것이고, 나의 얇은 일반 텐트로는 겨울 장군이 서성이는 얼어붙은 땅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이 여행을 즐기자, 즐기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눈을 붙였다.



6.

 3일차 아침, 날이 개었다. 끝까지 오락가락하는 하늘에 대고 나는 주먹을 휘둘렀다. 맘 잡고 여기까지 올라와 캠핑장에서 3일이나 있었는데 계속 흐린 날씨에 가랑비까지 퍼붓더니 이제 떠날 때가 되니 맑은 날씨를 내리는 겁니까.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겁니까? 라고.  하지만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떠나야겠지. 아마 이 시점에서 여기서 좀 더 머물러야 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순간 저 망할 하늘은 또 비를 내릴지도 몰라.

그래도 떠나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정말 짧은 산책로나 한 번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멀리 펼쳐진 바다에서 황금빛 아침 햇살이 육지로 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악마를 몰아내는 천사의 광검처럼 검은 구름을 가르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 아래, 정말 작은 섬이 나와 그녀 사이에 봉긋 솟은 채로, 우리와 같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이 바다에 잠긴 것 같은 이 장소는 뭐랄까, 동화에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 짧은 산책로가 금년도 마지막 캠핑의 마지막 장소라니. 귀엽긴 했지만 약간 맥이 빠졌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도 또 이곳에 와야겠지. 그때는 맑은 날씨 아래서 녹색이 우거진 숲을 신나게 걸어갈 수 있겠지. 그 올지 않 올지 모를 날을 기대하면서, 마치 이번에는 좋은 패가 걸리기를 기대하는 도박꾼의 심정으로 또 차를 몰고 이곳에 와야겠지. 제발 그때까지는 그 망할 공사가 끝났으면 좋겠는데.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그레이엄 벨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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