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e Breton Island Day3, Alexander Graham Bell National Historic Site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배낭을 다 싸 놓고 마지막으로 타 들어가고 있는 장작 소리를 들으면서, 쿠션이 꺼지다 못해 바닥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낡은 소파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리는 비가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다. 초가을의 비가 오두막의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정겹긴 하지만 양철 지붕은 녹이 잘 슬어서 날씨가 굳은 숲 속 오두막에는 어울리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런 곳에 있으면서도 효율과 효과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보다. 




1.

 Alexander Graham Bell의 박물관이 Capebreton섬에 있다는 사실을 갈게 된 것은 사실 상당히 최근의 일이었다. 몇 주전에 나의 친애하는 친구이자 영어 튜터인 Allan과 아침 산책을 하던 중, 마지막 여름 휴가로 Capebreton섬에 '또' 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 섬에 간다면 가봐야 할 곳이 3곳이 있다. Highlands National Park, Alexander Graham Bell National Historic Site, 그리고 마지막으로 Fortress of Louisbourg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까지 국립 공원만 줄기차게 찾아갔던 나에게 그가 알려준 새로운 장소들은 매우 흥미로운 정보였다.나는 그 때, 이번 여행에는 다른 두 곳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연유로 이번 휴가 여행의 3일차 오후, 나와 그녀는 Alexander Graham Bell National Historic Site이 위치한 베덕(Baddeck)이란 곳으로 향했다.

 나는 베덕(Baddeck)이란 곳을 지금껏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Capebreton 섬의 남부, 호수인지 바다인지 약간은 헷갈리는 거대한 물 옆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이유로 섬을 나고 들 때마다 멀리서 나마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곳의 이름 같은 건 알지 못했고 들려본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하지만 이날, 이상할 정도로 맑아진 날씨 아래서 들린 이 동네는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작고 앙증맞은 가게와 집들, 그리고 상점들이 넓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서 들어서 있었다. 그 거리에는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주민들과 소수의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에너지가 넘치는(?)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들은 길가에 세워진 검은색 햄버거 푸드트럭 앞에 줄 지어 서 있었다. 드문 드문 관광객도 보이긴 했지만, 이름도 올리기 싫은 그 질병으로 인해, 외지에서 놀러 온 듯한 사람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이 파란 색의 폭스바겐 레트로 캠핑카를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나는 바다 건너 온 외부인 친구를 만난 기분으로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 차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색이 바래진 곳도, 코팅이 벗겨진 곳도 없었고 타이어 캡부터 실내의 커튼과 목조 장식, 자동차 좌석의 가죽시트에 이르기 까지 모두 '순정'부품을 사용한 듯 했다. 무엇 하나 어색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언젠가 쿠바에 갔을 때 어울리지도 않은 부품으로 여기저기 메워 놓은 듯한 올드카들을 봤을 때 나는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그렇게 차를 막 대하는 쿠바 사람들에게 화가 날 정도였다. 그에 반해, 오늘 이 차를 보고 나는 너무 행복했다. 아직 세상에는 온정과 정의(???)라는 것이 남아 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할 수만 있다면 상점 안에 들어가서 바깥에 세워 놓은 차 안쪽을 구경하게 해주신다면 물건 두 개는 사 드리겠다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다.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안쪽을 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랬다면 내 뺨의 개기름이 잘 닦아 놓은 유리창에 묻겠지. 그런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 하고 있던 나의 귀를 그녀가 잡아 당겼다. 이제 좀 가자고.



2.

 Alexander Graham Bell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전화를 발명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일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가진 상식도 그 정도 수준일 것이다. 캐나다에 온 뒤에야, 그가 캐나다 사람들에게 상당히 사랑 받는 '미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사실 상당히 놀라운 일인데 왜냐하면 많은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의 '위인'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즐겨보는 BBC의 드라마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Kim's convenience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머독의 미스테리이다. 그 머독의 미스테리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구미권의 다양한 위인들이 등장하는데, 미국의 위인들에 대한 극중의 평가는 박하기 짝이 없다. 특히, 록펠러와 에디슨, 헨리 포드는 돈만 밝히고 쓸데없는 경쟁심에 자존심만 강한 속물 비슷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레이엄 벨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았다. 분명 미국국적의 발명가인데 지나치게 편파적일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이 날 이곳을 들린 뒤에야 나는 그 이유를 아주 약간은 알 수가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그레이엄벨은 가족과 자신의 병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전화기를 비롯한 다른 많은, 우리가 몰랐던 것들을 그곳에서 발명했다. 그러다가 만년에는 바로 여기, 케이프브레튼의 베덕으로 이주해서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캐나다에 이주해서 살던 시기에 그는 자신이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사회와 캐나다를 위해 많은 연구를 했고, 주변 사람들을 도왔다.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않고 말이다. 바로 이점이 그와 에디슨을 위시한 여타 미국의 발명가들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이타적이었고 물욕이 없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세운 전화회사의 거의 대부분의 주식을 자신의 아내에게 양도했다. 위 사진이 바로 그 벨 전화회사의 주식 소유권에 대한 문서 - 혹은 그 복사본 - 이다. 어떤 놈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의 한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전기를 발견한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 이지만 돈을 번 사람은 전기 미터기를 만든 사람이라고.' 그 말과 이 양도증서를 놓고 생각하면, 그 당시 벨이 했던 여러가지 행동이 얼마나 탈 자본주의적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전화기의 발명 이후에도 끊임 없이 새로운 것들을 발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위 스케치는 빛의 파장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 설계이다. 실제 몇번의 실험도 했다고 했으나 기후와 다른 환경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 빛의 특징상 실용화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레이엄 벨 자신은 사실 전화기 보다 이 연구에 더욱 많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외에도 그는  이 곳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발명을 시도 했었다. 양젓의 생산량 촉진에 대한 연구, 실용적인 저울이나 생활 용구에 대한 발명 등등. 


그리고 이 물건은 바로 축음기. 사실 축음기의 원리는 알고 보면 무척 간단하다. 그 간단한 생각을 하는 것, 그리고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그냥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면 대륙이 나오는 간단한 것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지.

 그의 수많은 연구와 발명 중 무엇보다 내가 알지 못했고 또한 재미있었던 것은 그가 비행기와 수상정에 대한 연구에 심취해 있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었다는 점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동력 비행을 성공한 이후에도, 수많은 발명가들과 과학자들은 보다 많은 무게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늘에 띄우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했었다. 그레이엄 벨도 그들 중 한 명 이었으며, 그는 당시 캐나다의 석학들과 합심하여 대형 비행기에 대한 이런 저런 실험을 바로 이곳 '베덕'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많은 물체 중 그가 최초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모듈형식으로 조립하여 크기와 형태를 조정할 수 있는 '삼각연' 이었다. 그는 수많은 연들을 가벼운 결합 장치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하늘을 나는 대형 물체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다. 당시 재료의 한계로 인해 그의 첫번째 발상은 결국 실제로 하늘을 날지는 못했지만 보다 가볍고 튼튼한 소재가 발명된 현재에는 그의 이론이 구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디까지나, 문과 전공의 꿈 같은 소리이지만 말이다.

 연을 이용한 비행체의 연구에서 방향을 전환한 그는 이윽고 이미 발명된 동력 비행기의 개선과 개량에 돌입했다. 그리하여 캐나다 정부의 지원 하에서 쌍엽기 형태의 캐나다산 비행기를 여타 과학자들과 합심하여 발명해 냈었다. 그가 연구한 비행기들은 상업적, 군사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연구 결과에 만족한 캐나다 정부는 그에게 다른 프로젝트를 의뢰한다.

 그레이엄 벨이 자신의 생애를 마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연구했던 것은 바로 비행기 동력을 이용해서 물위를 나는 듯 달리는 수상정이었다. 복잡한 해안선과 많은 호수로 이루어진 캐나다는 물위를 효과적으로 누빌 수 있는 선박이 국토 방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 수상정에 대한 연구를 그레이엄벨과 다른 항공, 선박 공학자들에게 의뢰 했었다. 베덕에 위치한 바로 그 큰 호수위에서 수많은 실험이 진행되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나 벨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가 원하는 속도의 수상정은 실현되지 못했다. 엔진의 무게에 비해 동력은 충분히 강하지 못했으며, 속도를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구현하기에는 당시의 재료가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냉전 시대를 전후하여 그의 연구 성과는 빛을 발하게 된다. 보다 가볍고 내구성이 있는 소재로 선체를 만들 수 있게 되고, 로켓 방식을 이용한 강력하지만 가벼운 내연기관의 구현으로 이론적으로만 존재했던 그의 수상정은 마침내 실제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잠시나마 캐나다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수상정을 보유했던 국가가 된다.

 다른 나라 사람이 와서 이렇게 까지 도와주고 생을 마쳤으니 어찌 캐나다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한 개인의 박물관에서 그 사람의 흠을 잡지는 않을 것이기에 편파적인 면이 있겠지만, 객관이 언제나 주관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진실이 언제나 허구보다 우월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이 곳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어서 기쁠 뿐이고, 내가 존경하던 한 사람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되어서 즐거울 뿐이다. 그 새로운 점이 그의 성과물 - 전화기와 비행기 - 에 대한 나의 이해도를 높일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하 더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순수한 결과에 나는 만족했다. 그리고 그 점에서, 나의 박물관 방문은, 그리고 이 박물관의 존재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3.

 관람을 끝마치고 나왔더니 흐렸던 하늘이 개어 있었다. 그때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보석빛 영롱한 호수가 그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여정을 잠시 미루고 호수가의 식당과 작은 항구들, 요트 사이를 부서지는 햇볕 아래서 거닐었다. 

  내 눈을 확 잡아 끌었던 이 작은 배. 언젠가 늙으면 이런 배에 몸을 싣고 가고 싶은 곳으로 맘대로 가 보는 것이 한창 대항해시대를 할 때의 꿈이었건만, 지금은 요트 가격은 얼마나 할지, 이 나라 저 나라 가려면 비자는 어떻게 해야할지, 무엇보다 내가 배를 몰려면 어떤 면허를 따야할지 하는 제한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게 된다. 국경이 생기고 제도가 발전하면서 사람은 보다 오래 살게 되었을 지언정 먼 옛날 인류가 누렸던 자유는 이제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그때가 얼마나 고달픈지 모르기에, 그 시대가 부럽다. 아니, 그 시대 정신이 부럽다. 지금은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많은 걱정과 고려를 해야 한다. 이 작은 귀퉁이에서 더 작은 가게를 하나 여는 데에도 너무 많은 것들을 해야 한다.

그러니 돈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굳어져 가는 것' 이다.

...예쁜 동네의 요트 한 척에 별 생각을 다하고 간다.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 근처 여관에 풀썩 들려서 하룻밤 자고 싶었지만 이미 잡아 놓은 곳이 있는지라, 나는 그렇게 온갖 푸념을 마음속으로 풀어놓은 요트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Cape Breton Island Day1~3, Highlands National Park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나는 지금 나의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를 차로 달려야 올 수 있는 이름 모를 숲 가운데의 오두막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그 집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글을 쓰기가 힘들다. 만두를 만들 수도 있고 장부를 정리할 수 도 있지만 '글'을 쓸 수는 없다. 왜 그런지 짐작 가는 이유는 있지만 글자로 옮기기 싫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도 해도 굳이 들추어 내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1.

 주변의 캐나다 사람들이 각자의 long weekend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면 나와 그녀도 어디로 갈 곳을 물색한다. 나에게 이곳 - Halifax는 아직 낯선 공간이지만 점점 일상으로 변해가는 시간과 공간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나는 일상을 감내하는 - 혹은 즐기는 - 삶에 다가간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언제나 어느 곳에 있는 무엇을 찾아 떠나려 한다. But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서울을 떠나 이 곳에 왔던 것처럼 그녀는 이제는 이 곳을 떠나 그 어느 곳을 언제나 갈구한다. 대단하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그 몹쓸 병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를, 심지어는 이 지역마저도 떠날 수 없다. 다행히 Atlantic bubble이라는 하는 제도 덕분 Novascotia에 살고 있는 우리는 New Brunswick과 PEI까지는 14일의 가택 연금을 각오하지 않아도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그럼 무엇 하는가. 대서양에 면한 그 세 지역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어설픈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애매하게 비슷하다. 등대와 또 등대, 랍스터와 또 랍스터. 빨간머리 앤을 한 번 더 만나러 가는 것도 좋긴 하지만 이번에는 익숙한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다 소중한 연휴를 어설프게 써버리는 것도 사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5일간의 연휴의 반은 익숙한 곳에, 나머지 반은 새로운 곳에 할여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여름 연휴의 첫 목적지는 아니나 다를까 Cape Breton Island의 Highlands National Park였다. 



2.

 내 주변의 많은 캐나다 사람 중에는 단 한번도 이 곳에 못 가본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여기 벌써 너댓 번은 온 듯 하다. 하지만 이 섬에는, 더 좁혀서 이 국립 공원에는 아직도 내가 한 발도 딛지 못한 길과 숲과 호수와 시내가 수두룩하다. 그 광활함, 그 넉넉함, 그 때문에 자생하는 곳곳에 숨겨진 미지의 볼거리가 바로 북미의 자연이 가진 매력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이 곳에서 우리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간을 찾아서 떠났다.

 그리하여 3시간 반 가량을 달려 도착한 국립 공원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경험'은 바로 공사로 인한 정체였다.


 삼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도 Cabot trail의 어딘가 에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국립 공원 도로 보수공사를 한창 성수기인 여름 한나절에 급한 기색도 없이 여유롭게 하는 캐나다 사람들을 보며, 나는 화가 나기 보다는 '아 여기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라고 오히려 기뻐했었다. 그때는 그만큼 지쳐있었다. 그래서 그 유유자적한 공사 현장을 보며 내가 마치 그들 중 한 명이었던 것처럼 행복했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삼년 동안 수많은 waiting에 치이다 보니 한국과 캐나다를 반반 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지난 기간 힘들고 흔들리는 시간을 살아온 우리는 이제 그때 마냥 행복하게 이 공사 현장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정지 표지판을 들고 있는 공사장 인부는 나의 작은 차를 비롯한 다른 여덟 대의 차를 장장 25분 동안이나 붙잡아 두면서도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나 업무에 충실한 태도 따위는 손톱 만큼도 없었다. 끊임없이 하품을 했고 줄담배를 피웠다. 혹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도 했다. 어떻게 담배를 피우다 말고 하품을 하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내 옆 창문으로 펼쳐진 해안 도로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 시간을 아름다운 순간으로 바꾸어 주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창문을 때리는 궂은 날씨는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흰색을 더욱 선명하게 대비 시켜 주었다. 저 먼 바다를 달려온 바람에 업힌 바다는 호쿠사이의 그림처럼  무시무시한 박력을 뽐 내었고, 나는 운전대 위에 머리를 놓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창문 밖 그 광경을 바라봤다. 파도 또 파도, 하얗게 무너지는 거품과 또 거품, 바람과 구름 그리고 그 틈새로 가끔 쏟아지는 황금 빛의 햇살. High Land의 다이나믹한 기후는 야영을 하는 사람들에게 앞날을 짐작할 수 없게 하는 저주 임과 동시에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크나큰 축복이기도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드디어 stop 사인이 slow로 바뀌었다. 천천히,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와 그녀는 첫날 우리가 머무를 캠핑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아 정말 다시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공원에서 나가게 되는 2일 뒤에도 이 공사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여기에서 또 와서 저 망할 sign이 바뀌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우. 



3.

 캠핑장에 도착하고 텐트를 치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하루를 자동차 속과 공사장 광경으로 마무리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와 그녀는 캠핑장 근처에 있는 짧은 트레일을 오르기로 했다. 산도 낮아 보였고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 꼭대기에서 마주한 광경은 나의 상상을 크게 넘어섰다.


 때 마침 맑게 갠 날씨로 푸른 색이 선명한 하늘 아래 짙은 숲과 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숲 중간 중간에 흩어진 호수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고, 사람 손을 탄 것이라고는 딱 두 가지, 숲 사이로 뻗은 도로와 전신주 뿐이었다. 그 도로마저도, 차들이 지나지 않을 때에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부끄럽고 가늘게 숲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아, 사람 손을 탄 게 하나 더 있었네. 바로 내가 '캐나다 국립 공원 의자'라고 부르는 그 의자가 이 산 꼭대기에도 놓여 있었다.


 무릇 트레일을 걷다가 저 의자가 보이면 꼭 가서 앉아봐야 한다. 크게 잘못되지 않은 이상, 그 의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언제나 볼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나는 저 의자에 앉아, 그녀는 저 의자 앞에 놓인 작은 벤치에 앉아 말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연애시절에는 서로 이야기 한다고 바빴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따로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듯 하다. 부부란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해가 저물고, 우리는 별 다른 말도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조용히 캠핑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4.

 다음날 아침, 날씨가 갠 듯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트레일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아침 산책 삼아서 캠핑장 근처의 해변 길을 걸었다.

 이 길의 독특한 점은, 호수와 바다가 아주 가는 해안을 사이에 두고 병존한다는 것이었다. 홍수가 나면 호수가 넘쳐 바다로 흘러 들어갈 정도였고, 파도가 심하면 바닷물이 호수로 밀려 들어갈 것 같았다. 처음에는 둘 다 바닷물이 아닌가 싶어 손가락으로 육지에 가까운 쪽 물을 찍어 먹어보기도 했다. 아니다. 짠 맛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민물.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침 산책을 끝내고 간단하게 식사를 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미답지를 찾아 떠났다. 두번째 날 우리가 가보고자 했던 곳은 Meat Cove. 케이프브레튼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북 단에 위치한 곳이다. 내가 가입한 페이스북의 Novascotia Camping Life 그룹에서도 종종 그 이름을 듣곤 했었기에 이번 기회에 가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북으로 북으로 차를 몰아 갈 수록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섬에서도 비교적 지대가 높은 북쪽은 오가던 구름이 산에 걸려 비를 뿌리곤 한다 던데 아마도 그 때문인 듯 했다. 그래도 왔으니 끝까지 가봐야 하잖겠는가.

 그렇게 도달한 Meatcove는 그 험한 산 사이로 꼬불꼬불 펼쳐진 좁은 비 포장 도로를 상당히 달려야 도달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섬이 끝나는 곳에 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뭐 랄까 어부들이 떠나버린 빈 해안 마을의 '잔해'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해안으로 뻗어있는 작은 길 사이사이로 숙박업을 목적으로 지은 듯한 작은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지만 하나같이 불이 꺼져 있었고 인적은 드물었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이는 집들, 예를 들어 드라이브 웨이에 차가 서 있고 뜰에 아이들의 장난감이 떨어져 있는 집들이 간혹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버려진 곳일까, 개척 중인 곳일까. 그 도로의 끝에는 사설 캠핑장 하나가 크게 서 있었고 캠핑장 입구 맞은 편에 큰 매점이 하나 서 있었다. 캠핑장 안에는 이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야영을 감행하고 있는 남녀 한 쌍이 텐트 옆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본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도 불행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묵묵히, 비를 맞으며 냉정하고 효율적으로 그 작업을 '해 치우고 있었다.' 뭔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잠깐 내리기로 마음먹었고, 그녀는 비를 피해 차에 남아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귓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거쎈 바람소리와 그 사이로 거인들이 소리 지르는 듯 한 파도 소리. 바람이 불 때마다 강해졌다 약해 졌다를 반복하며 내 방수 자켓과 차를 때리는 빗물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의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듯 한 윙윙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렸다. 캠핑장 옆에서 한창 땅을 고르고 있던 포크레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이 곳에서는, 자연이 인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잘 다듬어 놓은 듯한 국립 공원의 산과 절벽과 달리 여기는 아직 신의 거친 붓 질이 곳곳에 보였다. 그 틈새로 기어들어서 길을 내고 텐트를 치고 작은 둥지 같은 집들을 올린 인간들의 아둥바둥 한 결과물은, 마치 흡사 개미가 모래 위에 낸 흔적 처럼 보였다. 나는 금방 이라도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바다에 쳐 넣을 것 같은 그 맹렬함에 두려움을 느꼈으나 그와 동시에 압도적인 힘에 스스로를 낮출 때 느낄 수 있는 이상한 안도감과 편안함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바람에 덜덜 떨면서 그 이상한 감정의 탁류 속에 하염 없이 흘러가고 있을 때, 내 뒤로 한 남자가 마운틴 바이크를 타고 매점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그 단말마의  엔진 소리에 나는 문득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이제 돌아가자. 

 떠나기 전, 그래도 뭐라도 사 주는 것이 이 마을에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매점을 둘러보려 했지만, 날씨 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은 듯 했다. 커피와 따뜻한 핫도그 정도만 있어도 이 날씨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차를 몰고 오는 도중에도 흐린 날씨는 좋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나와 그녀는 이 세상의 끝에 갔다 온 것 만으로도 벌써 지쳐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우리는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5.

 유명 관광지에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은 이외로 힘들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생선 떼를 노리는 상어 마냥 장사치들이 모여든다. 그렇다. 나는 요리사가 아니라 장사치라고 했다. 무림 고수들이 첩첩산중에 숨어 무공을 수련 하듯,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은 이외로 유명하지 않는 곳, 인적이 드문 곳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PEI의 Richard's 처럼. 반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밥 먹을 곳을 찾다 지친 사람들이 대충 밥을 먹고 갈 때 뿌리는 돈을 줍기 위해 겨우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입이 벌어질 만한 가격으로 파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곳들은, 실제로 한번 들려서 먹어보기 전까지는 다른 맛집들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그런 유명 관광지에서 찾은 꽤 나 괜찮은 솜씨의 밥 집'은 소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장소를 사랑해야 하고, 아껴야 한다. 어떻게? 찾아가서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겨우 세 번 정도의 시도 끝에 이 곳 Cape breton에서 단골로 할 만한 장소를 찾았었다. 여기,Rusty Anchor가 바로 그러한 곳이다. 

메뉴 자체에서 독특한 면이 있다면? 그런 거 없다. 파는 것은 이 지방 Atlantic Canada에서 흔한 메뉴들 뿐. 해산물을 주재료 한 시푸드 차우더, 피쉬앤 칩스, 랍스터 롤, 샌드위치, 햄버거 등등. 이 지방의 문화적 특색 - 완고함, 우직함, 성실함,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피와 익숙한 메뉴에 대한 집착 - 을 고려한다면, 같이 음식을 파는 사람으로써 나는 그 메뉴의 구색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구색을 따질 수 없다면, 적어도 각 메뉴의 질에 대한 고려는 필수 적이지. 마치, 중식집의 솜씨 판단 기준이 흔하디 흔한 짜장면과 탕수육을 어떻게 뽑아 내는가에 있는 것처럼, 익숙한 것에 매달린다면 그에 상응하는 질적인 잣대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Rusty Anchor는 그 점에서 우리의 평균적인 기준을 멋지게 상회 하는 음식을 선보인다.

차우더의 재료는 신선하고, 오래 우린 국물에서 찾을 수 있는 깊은 맛이 들어있다. 잉글리쉬 스타일과 케이프브레튼 스타일에서 선택할 수 있는 피쉬 앤 칩스는 기호에 따라 바싹 튀긴 옷과 크로켓처럼 부드러운 옷, 쫀득하게 익은 속과 촉촉하게 익은 속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날 처음 시도해 본 화이트 와인 홍합찜도 실로 맛있었다. 차를 몰고 오지 않았다면 술 한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도 충분하고, 값은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 물가를 고려한다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할 만했다. 섬의 북쪽 고지에서 비를 뚫고 내려와 따뜻한 실내에 앉아 친절한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적정 가격에서 먹을 수 있는데, 내가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저 즐거울 뿐이지.  

 그렇다고 캠핑장에서 직접 해 먹는 요리의 재미 또한 놓칠 수는 없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저녁 즈음 캠핑장에 돌아온 우리는 준비해온 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가스 버너에 끓이는 컵라면도 맛있지만, 캐나다 캠핑 사이트에서는 fire pit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 작은 철 상자에서 뽑아 올릴 수 있는 장작 불은, 여름이라도 추운 밤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커피도 끓일 수 있고, 팬 프라이 볶음 밥을 할 수도 있고, 꼬챙이만 있으면 직화구이 부터 머시멜로우 구이까지 다양한 요리를 한번에 선보일 수 있는 만능 부엌이라 할 수 있겠다. 미리 썰어둔 야채 한 봉투, 스팸이나 햄, 혹은 갈아 놓은 돼지고기, 식용유 약간과 소금 후추 설탕 조금, 간장 약간만 있으면 불 맛이 펑펑 올라오는 훌륭한 요리도 뚝딱 만들어진다. 평소에는 요리 못한다는 타박에 시달리는 나도, 강한 화력과 그녀의 배고픔과 피곤함에 힘입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 캠핑에서도 대부분의 요리를 그녀가 하고 나는 말 그대로 숟가락만 얹었지만 말이다. 맥주도 한잔 곁들여 가며 나와 그녀는, 갑자기 몰려온 비로 모닥불이 꺼질 때 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불 옆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비가 숲을 적시기 시작하자 우리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추워지는 텐트에서 더 추워지기 전에 잠을 재촉했던 나는 문득 알았다. 아, 오늘이 그녀와 같이 텐트에서 자는 금년도 마지막 캠핑이 되겠구나 하고. 이 땅은 앞으로 더 추워질 것이고, 나의 얇은 일반 텐트로는 겨울 장군이 서성이는 얼어붙은 땅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이 여행을 즐기자, 즐기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눈을 붙였다.



6.

 3일차 아침, 날이 개었다. 끝까지 오락가락하는 하늘에 대고 나는 주먹을 휘둘렀다. 맘 잡고 여기까지 올라와 캠핑장에서 3일이나 있었는데 계속 흐린 날씨에 가랑비까지 퍼붓더니 이제 떠날 때가 되니 맑은 날씨를 내리는 겁니까.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겁니까? 라고.  하지만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떠나야겠지. 아마 이 시점에서 여기서 좀 더 머물러야 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순간 저 망할 하늘은 또 비를 내릴지도 몰라.

그래도 떠나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정말 짧은 산책로나 한 번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멀리 펼쳐진 바다에서 황금빛 아침 햇살이 육지로 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악마를 몰아내는 천사의 광검처럼 검은 구름을 가르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 아래, 정말 작은 섬이 나와 그녀 사이에 봉긋 솟은 채로, 우리와 같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이 바다에 잠긴 것 같은 이 장소는 뭐랄까, 동화에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 짧은 산책로가 금년도 마지막 캠핑의 마지막 장소라니. 귀엽긴 했지만 약간 맥이 빠졌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도 또 이곳에 와야겠지. 그때는 맑은 날씨 아래서 녹색이 우거진 숲을 신나게 걸어갈 수 있겠지. 그 올지 않 올지 모를 날을 기대하면서, 마치 이번에는 좋은 패가 걸리기를 기대하는 도박꾼의 심정으로 또 차를 몰고 이곳에 와야겠지. 제발 그때까지는 그 망할 공사가 끝났으면 좋겠는데.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그레이엄 벨 박물관으로 향했다. 


캐나다 1170일차, 근황 日常.Etc

1.

 8월과 9월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간 5일짜리 여행부터 집에 든 도둑놈들까지. 참 세상에는 별일도 많이 생긴다.

2.

 배달에서 out-door market을 지나 이제 in-door에서 매장을 연 지 어느덧 3주가 지났다. 판단 하기 이르지만, 시작은 좋다. 매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초기에 주방 용품을 사기 위해 투자했던 비용 때문에 올랐던 비용도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재료 준비와 조리, 서비스 제공 과정이 보다 정리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 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 규모가 낮다. 당연하지. 토요일 하루에 버는 매출이 아무리 많아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투입 노동 시간을 대비하면 높은 시급(?)을 받는 축에 들지만, 나는 좀 더 일하는 시간을 늘리더라도 많은 돈을 벌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서. 그리고 불확실한 나의 미래를 위해서도.


3.

 즐거웠던 - 하지만 돌이켜보면 계속 즐겁지 만은 않았던 - 여행을 다녀와서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 놈들이 들고 갔던 비싼 물건들, 값은 얼마 나가지 않았지만 소중한 물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이 집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일상은 흔들린다.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분노에서 체념, 그리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 다시 챙기고 보내야 했던 것들.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의 나에게 있어 이 경험에 대한 기록은 큰 도움이 될 것 같기에.

4.

 세상을 편하고 유유자적하게 사는 것이 나의 목표(?)인데 많은 것들이 날 그렇게 놓아 두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 

With Allan:Title Inflation & Custodian 日常.Etc


 Allan은 내가 여기 온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만나게 된 'English tutor'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니고, 지역 사회에 온 이민자들 혹은 이민자가 되려 하는 사람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무보수로 지원한 ' 착한 일반 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년 여 동안 그는 영어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자동차의 엔진 오일과 타이어를 교체하는 법, junk yard에서 필요한 부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산책을 하면서 마주했던 많은 식물들과 새들의 이름들, 수도와 도로, 우편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의 개별적인 성실함과 시스템의 비효율성 등등. 첫해 겨울, 아내를 한국으로 보낸 뒤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나를 초대해서 따뜻한 파티를 열어준 것도 바로 그였다.

갑작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앞으로 그가 알려주었던 '영어와 관련된 지식'을 이곳에 기록할까 싶기에, Allan에 대해서 소개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방문하는 사람이 열 명도 되지 않는 '나 홀로' 공간 이지만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2주 전에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는 'Title Inflation'과 Custodian'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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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inflation은, 경영과 관련된 용어로 보이는 'Job title inflation'과는 다른 단어이다. 영어로 된 정의를 찾으면 아래와 같다.

: a process in which the names of employees' jobs are regularly changed to make them sound more important than they are

이 정의에서, 나와 Allan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 regularly changed
- sound more important than they are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중요하게 보이기 위해, 그것도 한번도 아니라 수 차례에 걸쳐 이름을 바꿔 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 않는가? 게다가 가 새로 지은 이름이 실제 직업의 의미와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끌어다 쓴다면 누가 그것을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그 현상의 대표적인 예시로 논의 되었던 title이 바로, nail aesthetic 이다.

'미학적'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영어 단어는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는 이미 피부 미용과 관련된 직업을 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으나 캐나다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Allan에 따르면 최근 nail technicians, manicurists 라는 기존의 단어를 밀어내고 점차 그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손톱만 다듬으면 사람이 아름다워지는가? 혹은 외적인 면에 치중한 일시적인 관리 결과를 아름답다고 칭할 수 있는가? 그런 관점에서 nail aesthetic은 말 그대로 그냥 있어 보이기 위해 만들어낸 직업 명칭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설파했고, 나는 그에 동조한다.

하지만 그런 title inflation의 와중에서 실용적이고 납득이 가능한 새로운 직업 명칭도 탄생하고 있으니 그 중 하나가 바로 custodian이다. 일단, 원래 이 단어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 a person who has responsibility for or looks after something

이렇게 보면 상당히 많은 job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애초에 'custody'이라는 말이 양육권이라는 말을 고려하면, custodian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대략 짐작 가능하다. 그리고 최근에 이 말은, janitor를 대체하는 말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사실. 북미권에서 janitor가 하는 일이 단순히 걸레질을 하고 쓰레기를 비우는 것이 아니라 건물 혹은 시설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에 custodian이라는 이 말은 그들의 직무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이 현상의 긍정적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외로 political correctness로 인해 생겨난 여러가지 단어들, 예를 들어 latinx에 대한 이야기도 좀 했지만 그건 너무 길었던 관계로 오늘은 이 정도로 갈음하겠다.

캐나다 1125일차, 근황 日常.Etc

1.

 일상과 관련한 글을 올린 지 1년이 넘었을 줄이야. - 날짜를 확인해 보니, 2019년 4월 22일은 내가 여기 온 지 704째 된 날이 아니었다. 

2.

금년도 5월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던 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장사에 가까운 소규모지만,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적지만 이익이 나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오픈일 연기와 갑작스러운 업태변경, 노천 시장과 상점 입점, 정말 이런 저런 일이 많았구나. 매출이 치솟았다 안정세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 페이스를 지킨 것이 다행이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그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일단은 모든 상황이 정상이 될 때까지.

하지만 'normal'은 내가 알던 그 normal이 아니겠지.

3.

닫혔던 학교는 9월 5일부터 다시 열고, 그 날을 기점으로 시장도 열고 도서관도 열린다.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다가가지 못했던 고객들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겠지. 그 전에 휴가도 가고 생각도 정리하자. 이전보다 자주 쉬지만, 늙어가는 몸이 이전 같지 않아 더 쉬어줘야 한다. 어쩔 수 없지.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춰 무리하지 말자.

4.

일련의 사태로 여행을 가지 못했으니 여행기를 올릴 것이 없었다. 이번 휴가를 다녀오면, 그래도 좀 쓸 것이 있겠지. 아니면, 영어 공부라고 생각하고 Allan과의 대화에서 배운 것들을 정리해서 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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