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카 애호가들의 깜짝모임?(HLFX+343) 海外生活


 어제 - 그러니까 2018년6월21일 - 저녁 즈음에 있었던 일이네요. 

 파트타임 일이 끝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지나치게 된 페리터미널의 주차장에 이상하게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퇴근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텅 비는 이 곳에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요. 혹시 푸드트럭이라도 들어와 있나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니...언제나 그 자리를 차지하는 차들과는 사뭇 다른 차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화들짝 놀란 저는 집에 전화를 걸어 저보다 사진 솜씨가 월등히 좋은 아내에게 사진기를 들고 집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태우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눈앞에 펼쳐진이 환상적인 모습을 보다 좋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이렇게 이활짝 웃고있는 차를 보고 어떻게 사진을 안찍을 수 있나요. 1958년형 오스틴 힐리가 눈부신 자태를 자랑하며 이렇게 서 있단 말입니다. 저 아름다운 곡선. 저 올망졸망한 차체. 아아...한 번 몰아보고 싶다고 감격하고 있자니 옆에서 아내가 핀잔을 줍니다. 키가 180 센치가 넘는 사람이 저 차에 구겨 앉으면 참 볼만한겠다고 말이죠.

* 참고로 저는 자동차의 브랜드와 구조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Car Mechanic Simulator라는 게임 및 기타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몇몇 클래식 카를 조금 좋아할 따름입니다. 모델과 관련하여, 제가 실수로 작성한 사실이 있으면 너그러히 용서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 한 대 만으로도 충분히 뜻 깊은 자리가 되겠지만 이 곳에는 클래식 자동차 박람회라도 열린 듯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동차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습니다.  

1936 Ford Pickup...봄동산처럼 부드럽게 바퀴를 덮고 넘어가는 전륜보호판의 모양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1956 Ford Fairlane Crown Victoria...로 추정(?) 됩니다.

1957 Ford Fairlane 500. 1956년 형과 비슷해 보이지만 1957년형 부터1959년까지는 Second Generation으로 취급합니다. - Longer, wider, lower and sleeker.

1950? 1952? GMC 100 Pickup Truck. 개인적으로는 클래식 트럭은 Ford보다 GMC쪽이 제 취향인 듯. 저 트럭으로 아이스크림 트럭을 만들면 얼마나 앙증맞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이 새빨간 차는 도무지...모델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엠블럼도 이니셜도 없으니 저로써는...혹시 아시는 분 좀 무슨 모델인지 좀 알려주세요.

 의문의 붉은 차량 왼편에 있는 것이 1968 Pontiac GTO.

그리고 그 왼편에 있던 것이 1972 Chevrolet Chevelle Malibu Sedan. 보아하니 이 라인은 클래식 머슬카들이 자리잡은 곳인가 봅니다.

 1951? 1952? Willys M38(1/4 - Ton, Utility Truck M38) 혹은 민수용으로 판매된 Jeep CJ-3A를 잘 손질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고 기회가 된다면 한 대 꼭! 가지고 싶은 차이기도 합니다.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차는 역시, Volkswagen Beetle. 쿠바에 가게되면 꼭 실제로 타볼렵니다.

1955 Chevrolet Bel Air sport coupe. 차주가 자신의 차가 꽤나 자랑스러웠던지 친절하게도 제원과 모델을 정리한 패널을 한 편에 세워두셨더군요. 암요,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시지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승합차. 큰 헤드라이트와  빨간색, 녹색의 조합이 개구리 왕눈이가 생각나서 한 장 찍어보았습니다.

 1931 Ford Model A Deluxe Tudor로 보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나온 차 중 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차가 이 차가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명품 자동차들 사이로 후줄근한 차림의 사람들이 오가며 이야기도 나누고 차 구경도 하고 합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여유롭고 따뜻하던지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이 날을 위해서 어찌나 닦았는지 타이어 휠은 물론이요 후드 안의 엔진까지 전부 반짝반짝합니다. 그 은빛 찬란한 모습이 차주들의 백발과 - 젊은 사람들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 너무도 잘 어울렸습니다.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과 시간이 필요할까라고 했더니 아내가 그러더군요. 저 사람들은 자기가 젊었을 때 샀던 차를 애지중지 지금까지 관리해서 여기까지 온 것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애정과 시간이 중요한 것이죠.

 어느덧 시간은 8시가 다 되어가는데 사람들은 돌아갈 줄 모릅니다.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없는데 저렇게 그냥 의자 하나 꺼내 놓고 앉아서 생전 처음보는 사람과 취미가 같다는 이유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그 격의없음과 여유로움은 넓은 영토와 좋은 날씨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부러운 마음을 남기고, 저와 아내는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언젠가 저도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아끼고 스스로 고치면서 일생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좋은 차 한 대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Didn't you guys burn down the White House?(HLFX+342) 海外生活


 오늘 - 2018년 6월20일 - 은 제가 이곳에 온지 342일째 되는 날 입니다. 곧 1년이네요. 날짜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것은 블로그를 쓰고 싶을 때 쓰는 제 버릇 덕분에 실제 글을 쓰는 날과 그 사건이 발생했던 날이 다른 경우가 많아 그 격차를 줄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만큼은 '그날은 어쩌구 저쩌구'가 아니라 '오늘은 어쩌구 저쩌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오늘 올릴 글은 오늘과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오늘 불꽃이 튀었다는 정도의 표현이 적합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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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캐나다와 미국 사이가 꽤나 시끄럽습니다. 갈등의 시작은 미국이 알루미늄과 강철 무역에 부과되는 관세였으나 그 뒤로 이어진 트뤼도 총리에 대한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의 막말로 캐나다 국민들의 대미감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꽤나 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발언은 이른바 '그들을 위해 마땅한 자리가 지옥에 있습니다.' 발언이지요.

"There's a special place in hell for any foreign leader that engages in bad faith diplomacy..."
- Trade adviser Peter Navarro told in Fox News.

 이런 일련의 사태 이후로 - 미국에 대한 캐나다 국민들의 감정은 썩 좋지 않습니다. 어떤 호텔과 레스토랑은 미국산 와인이나 케찹 - No more Heinz! - 등을 더 이상 취급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레스토랑 운영자는 인터뷰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웃으며 미국산 육류와 어류는 십수년 전부터 쓰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는 #BuyCanadian 해쉬태그와 슈퍼마켓에서 자국산 물품을 산 인증샷이 자랑스럽다는 듯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련의 사태의 추이보다 더욱 저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뤼도 총리와의 통화 중에 한 또 다른 발언 이었습니다.

"Didn't you guys burn down the White House?"

 응? 세계최강 천조국의 그뤠이트한 수도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이 불탄 적이 있다고? 그것도 러시아나 중국이나 아스가르드인이 아닌 캐네이디언이 불 태웠다고?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제 머리에 떠오른 가설은, 아마도 영국과 미국이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의 군대가 미국을 침공, 백악관을 태운 적이 있었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짧은 검색을 통해 알아낸 바는 그와 전혀 다른 이야기더군요.

     <The Burning of Washington in 1841, depicted by Tom Freeman>

  소위 '불타는 백악관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로 부터 10년 뒤인 영미전쟁 중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영미전쟁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유럽에서 벌어지고있는 나폴레옹 전쟁이었습니다. 그 밖의 기타 요소를 고려한 영미전쟁의 원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영국은 미국이 중립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상당수의 교역이 사실상 영-미간에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미국이 프랑스와 교역하지 않기를 강력히 요구함. 미국은 이를 주권 침해로 간주.

- 나폴레옹 전쟁에서 양질의 해군병력이 필요했던 영국은 미국 선박에 탑승한 영국 출신의 선원을 강제 징발하였음. 이에 따라 자발적으로 입대하지 않은 선원을 탈주병으로 취급, 추적 및 체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상선에 대한 강제 수색이 빈번히 발생하였음. 당연히, 미국은 이를 심각한 주권 침해로 간주.

- 당시 북서부로 진출하던 미국에게 있어 테쿰세와 같은 토착민 지도자는 큰 장애물이었음. 그런데 그런 토착세력을 지원하는 것이 영국령 북부 아메리카(BNA, 그러니까 현재의 캐나다)였고 이에 대해 서부 개척자들은 끊임없이 정부의 실질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었음. 때문에 미국에게 있어 영국령 북부 아메리카에 대한 침공 및 점령은 1. 북미에서의 영국군 축출, 2. 토착 원주민 문제의 해결, 3. 광활한 영토의 획득이라는 면에서 매우 매력적이었음. 
 
- 당시 미국 내 집권 세력이었던 메디슨 대통령과 반연방주의자들은 영국에 매우 적대적이었음.

이른바 뚜렷한 대의명분 - 옛 상전들이 쫓겨난 마당에 자기 집에 대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 꼴이 무척 보기 싫었을 것이며 - 과 실질적이고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해 1812년, 미국은 영국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오랜기간에 걸친 외교적 무역적 갈등으로 인해 언젠가 전쟁이 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양국이었지만 전쟁 준비는 미흡했었습니다.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육군은 이베리아 반도에, 해군은 해상 봉쇄를 위해 유럽 해안에 집중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1812년 북미 식민지에 배치된 영국 정규군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캐나다 민병대의 지원을 받는 6,034명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미합중국이었기에 전쟁을 시작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쪽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전쟁을 선포한 미 합중국 의회는 3만5천명까지 민병대를 확대하도록 승인했지만, 병력 보충은 신속히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군복무는 지원제였고 급여도 낮았습니다. 더하여, 민병대들은 자신들의 고향 외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영국 식민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부지역에서는 여러가지 면에서 전쟁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호수너머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갑자기 총질하고 싸우라니! 국가의식, 민족의식이 낮았던 당시의 북부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벌어지는 전쟁이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1812년 6월, 겨우 1천여명의 미국 침략군이 캐나다를 침공, 일부 지역을 점령합니다만 몬트리올과 같은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데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8월 1차 침략군은 영국 정규군과 캐나다 민병대, 그리고 인디언 부족연합의 협공으로 괴멸, 항복하고 맙니다. 그 후 수차례에 걸쳐 미국은 북부 식민지를 침략하지만 모두 격퇴 당합니다.

 그렇게 미국 침략군의 진공이 지지부진한 와중, 1814년 마침내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영국은 대륙에 배치된 기존 병력들을 미국에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을 공격한 영국 정규군 중 로버트 로스 장군이 이끄는 일군이 메릴랜드주 베네딕트에 상륙, 1814년 8월 24일 블래던스버그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어퍼 말보로로 진군하는 중 1813년 미국이 북부 식민지의 요크시 (오늘날의 토론토)를 불태운데 대한 보복으로 워싱턴 D.C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불태웁니다.

 이후 영국 침략군이 승승장구...했으면 미국의 동부지역은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악착같이 저항한 미합중국 군대에 영국 정규군도 주요 전투에서 패배. 결국 영국과 미국은 전쟁이 더 길어질 양상을 보이자 켄트 평화조약을 체결, 득 없이 서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 영미전쟁을 마무리 짓습니다.

여기까지 찾아본 자료를 토대로 생각하면 트럼프의 발언에는 아래와 같은 역사적, 논리적 오류가 있습니다. 

1. 백악관을 불태운 것은 캐나다군이 아니라, 영국군. 그것도 북부 식민지 주둔군이 아닌 유럽 본토에서 온.
2. 불타버린 대통령 관저를 다시 지은 뒤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 뒤로, 미국의 대통령 관저를 백악관(White House)로 부르게 되었다. 고로, 1814년 당시 탄 건물은 어찌보면 White House가 아니었다.
3. 트럼프는 미합중국에 대한 국가 안보의 위협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캐나다 인들이 백악관을 태운적이 있다고 이야기 했지만,(200년도 전에)먼저 침공한 것은 영국군도 캐나다군도 아닌 미국군이다.

이 정도가 되겠네요. 도대체 무슨 소린가해서 찾아본 내용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짧게짧게 포스팅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이쯤 줄이면 좋겠지만 조사 도중 알게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 조금만 더 쓰겠습니다.

 백악관을 불태운 영국군 장군 로버트 로스는 1814년 9월 12일, 노스포인트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시신은 함대로 이송, 자마이카 럼주를 담는 129갤런 드럼통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대서양을 건너지 못하고 1814년 9월 29일,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노바스코샤의 할리팩스(!)로 이송되었고 그 시신은 지금도 할리팩스의 중심가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묘지, 오울드 베링 그라운드에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면 더욱 좋겠지만, 묘지에서 사진을 찍기가 찝찝해서 구글에서 얻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다니...참 신기하더군요. 날이 좋을 때 직접 보러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아무튼,

 트럼프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말이나 던지는 인간이지, 아니면 사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거짓도 차용하여 쓰는 말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발언을 대하는 캐나다인들은 마음이 복잡합니다. 이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때는 양국 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도 농담으로 재미로 넘어가기도 했고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캐나다)가 불태우려고 해도 지금은 잘 지키고 있으니 어려울 것 같네요.' 이런 뉘앙스로 말이죠. 하지만 트럼프가 이런 이야기를 해 대니 그냥 장난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겠죠. 좋은 동맹국으로 수십년을 같은 대륙에서 평화롭게 지내왔는데 기껏 돈 때문에 '국가 안보의 위협' 취급 당하니까 말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어떤 전문가는 이번 사태를 보고 'Family Quarrel' - 가족끼리의 말다툼이라고 하지만, 글쎄요. 어떻게 될까요.

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국립공원 여행_#4 6시간 달려 집으로 가는 길(HLFX+330) - 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


 캐나다에서 저는 언제나 일찍 일어 납니다. 제가 부지런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해가 부지런해서 그렇습니다. 이 곳의 여름 태양은 참 일찍도 일어나 들어가는 건 꽤나 늦게 들어갑니다. 이날도 그랬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까지 쌩쌩하던 태양이 이날은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텐트에 들어왔다는 것 정도겠네요.

 텐트 밖으로 나가니 산 너머 저쪽에서 깃털구름의 대군이 바다쪽 하늘로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은 바다를 등지고 배수진을 친 듯 했으나 밀려오는 구름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무너지는 쪽빛 방어선 곳곳으로 흰 구름이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듯 이리저리 그 틈을 비집고 바다로 바다로 퍼져나가고 있었고 그 뒤로 따르는 것이 비와 바람, 자신의 영토가 된 적진을 유린하듯 바람은 점점 세지고 있었고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전쟁은 천상의 사정, 춥고 배고픈 지상의 인간들은 비 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는 듯 했으니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 여유에 어이가 없어 심술이 난 듯한 바람이 성냥불을 피우는데 서너 차례 훼방을 놓았으나 저는 마침내 버너에 불을 붙였습니다.

 텐트를 거두고 짐을 싸야하는 관계로 아침은 간단히. 그래서 선택한 메뉴가 라면입니다. 아내는 우육면. 버너에 물을 올리고 앉아 아침 바다를 보면서 멍하니 잡생각을 했습니다. 캐나다의 너구리는 '라쿤'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물이 반쯤 끓어 스프를 먼저 어제 남긴 소시지와 함께 넣고 다시 팔팔 끓입니다. 그리고 면 투하.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1박2일 MT나 어릴적 가족과 함깨 떠난 계곡 캠핑여행의 아침은 언제나 라면이었지요. 편리하기도 하지만 라면에는 끊을 수 없는 맛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매일 먹으면 물리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유 없이 먹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맛. 제가 김치는 안 챙겨 먹어도 라면은 일주일에 한번은 먹는 이유가 바로 그 맛 때문이 아닐까요. 

 집에서 가져온 오이 소박이와 주먹밥을 곁들여 먹는 라면. 춥고 바람이 불 수록 더욱 맛있어지는 마법같은 음식이지요.계란 하나, 파 한 줄기 넣지 않았어도 어찌나 맛있던지.

 식사를 끝내고 텐트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더군요. 무너뜨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바람이 심하게 부는 해변가에서 텐트를 접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귀퉁이와 귀퉁이를 맞추기 위해 조금만 손을 들어도 불어오는 바람이 신기를 받은 무당의 치맛자락 마냥 텐트를 뒤 흔들고 가버려서 도무지 각을 잡지 못하겠더군요. 대충 접어 넣으면 부피 때문에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고...칠 때 보다 접을 때 더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도 옆 캠프 사이트에서 접는 요령을 보고 - 예를 들어 주차해 둔 차를 바람막이 삼아 그 옆에 틀어박혀 텐트를 접는 등 - 어찌어찌 텐트를 접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짐을 다 챙겨 뒷 트렁크에 넣은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섰습니다.

 한 번 갔던 길을 다시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저와 아내는 돌아가는 루트를 케이프 브레튼 섬의 북부를 한바퀴 도는, 캐봇 트레일의 남은 구간을 통해 가는 것으로 마음 먹었습니다. 풍경도 좋고 도로에 차도 없어 느긋하게 달리기 정말 좋은 길이었습니다.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저의 체력이었습니다. 최단 루트로 이곳에서 집으로 가는 시간은4시간30분 정도. 이 정도라면 효율이 떨어지는 중년의 체력으로라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습니다만, 섬의 북부를 도는데 필요한 시간이 2시간이나 되더군요. 집이 아닌 텐트에서 자고 정신없이 짐 챙기느라 컨디션이 약간 떨어진 저에게 6시간 가량되는 거리는 꽤나 버거운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마주했던 좋은 장소들에서 사진 한장 제대로 찍지 못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숨 돌리는데 시간을 다 써버렸습니다. 


 피곤한 와중에 찍은 몇 안되는 사진 들입니다. 바다 위에 떠가는 배를 보고 '이 거친 바람과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저 배는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 생각을 한 걸 보니 정말 힘들긴 힘들었나 봅니다.

 여하튼,

 놀러왔다 사고나면 그것 만큼 가슴 아픈 것도 없습니다.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이 몽땅 비극의 서곡으로 바뀌어 버리니까 말이죠. 늙었다고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지언정 자주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돌아오는 길, 2시간을 달리면 한번은 쉬어왔습니다. 이름 모를 찻집에서, 주유소에서, 그리고 마지막은 버거킹에서 쉬었던 것 같네요. 

 장거리 운전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6시간 정도 차를 몰아보니 북미 대륙의 도로변에는 왜 그렇게 모텔과 주유소,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이 많은지 알것 같았습니다. 도로를 가로지는 육지의 항해자들에게 있어 이 시설들은 등대요 선술집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기에, 퉁명스런 표정으로 껌을 짝짝 씹던 레스토랑의 여종업원이 접시가 부서져라 있는 힘껏 던지고 간 계란과 토스트 - 서니사이드 업을 요청했지만 스크램블이 되었을 확율이 높고 - 는 설익거나 다 타서 숯덩어리가 되었을지라도 피곤에 절은 운전자들에게 그 박정한 음식과 이름 모를 원두를 갈아낸 커피조차 올림포스 신들이 먹고 마시는 진미와 미주처럼 맛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제가 들렸던 곳에 계시는 분들은 모두 친절헸고 음식도 정상(?)이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지요. 저는 그 분들의 친절과 소박한 음식의 힘을 빌어 졸음과 어꺠결림, 허리 통증을 이겨내고 마침내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집은 언제나 편안하고 반갑습니다.이날도 그랬었지요. 불을 켜 어둠을 몰아내고 창을 열어 공기를 바꿨습니다. 흙이 묻은 텐트, 얼룩이 묻어 있는 코펠과 수저, 음식 냄새가 베어있는 아이스 박스를 거실에 늘어놓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음날 치우자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깔끔한 잠옷으로 갈아 입은 뒤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가 눈 부신 침대로 들어가 그 냄새를 한 껏 맡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지요. 역시 집이 최고라고. 그리고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과 메모한 것들을 꺼내 머리속에 담긴 기억을 하나하나 추억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 언젠가 어딘가에 제가 썼던 것 같은 표현이지만 - 그렇게 만들어진 추억을 하나하나 사탕처럼 머리에 담아 두었다가 일상이 심심하고 힘들어질 때 한 알씩 꺼내 입안에서 살살 녹여 먹을 겁니다. 그 사탕들이 다 떨어지면 또 만들러 가야지요. 

어딘가로. 어딘가로. 

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국립공원 여행_#3 스카이라인 트레일(Skyline Trail)과 저녁식사 (HLFX+329) - 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

  
 해가 서쪽으로 저물었나 봅니다. 스물스물 햇볕이 텐트 틈사이로 기어 들어와 제 코 끝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꿀 같은 잠이었는데. 산으로 계곡으로 놀러온 아저씨들이 왜 잠만 자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들고 온 것도 없지만 그래도 귀중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 - 예를 들어 라면 - 차에 주섬주섬 넣고 저와 아내는 스카이 트레일(Skyline Trail)로 향했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북으로 뻗는 길 도중에는 낙석 방지용 보강 작업이라든가, 새로 다리를 내는 등 크고 작은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성수기가 오기전에 마당 정리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공사 구간을 통과하는 동안에는 좁은 도로의 한쪽이 완전히 막히기 때문에, 신호를 받는 동안 저는 마음놓고 주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검고 오래된, 하지만 한눈에도 튼튼해 보이는 바위가 도로의 동쪽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살풍경해 보일 수 있는 그 강건함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그 바위산을 뒤덮은 숲과 이끼, 그리고 그 위로 아낌없이 쏟아지는 저물어가는 햇볕이었습니다. 바위산의 맞은 편에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하늘이 있었습니다. 고원과 고원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그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무섭게 달려오는 듯한 파도는 오랜 풍파를 이겨낸 바위산의 품에 얌전히 안겨 그릉그릉 기분좋게 잠든 듯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봄과 여름의 풍경이겠지요. 한 겨울이 이곳이 어떤 모습인지 잠깐 상상을 해보고 이내 몸서리를 쳤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서고를 두어번쯤 반복한 뒤, 스카이라인 트레일의 입구가 해안쪽으로 보였습니다. 자갈이 깔린 진입로를 지나니 캠핑카 주차장이 보이고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니 일반차량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차를 세운 우리의 눈앞에 해안쪽으로 좁게 뻗은 숲길이 보입니다. 저와 아내는 다리를 풀고 스트레칭을 좀 한 뒤 그 길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1킬로 정도였을 것입니다. 무스가 뜯어먹어 황폐화된 숲, 그 무스를 막아 묘목을 키우기 위해 설치한 울타리를 두 개쯤 지나고 해안으로 해안으로 걸었습니다. 어느 순간 눈앞의 녹색이 푸른색으로 바뀌고, 평평했던 길이 아래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바다로 쭉 뻗은 한 줄기 길 위로 있는 힘껏 솜씨를 발휘한 조물주의 명작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오즈로 가는 길이 황금 벽돌길이었던가요. 바다로 뻗은 한 줄기 나뭇길은 저문 해가 앉아 쉰다는 신화속의 요정나무로 인도하는 길처럼 보였습니다. 슬슬 붉은색 물감을 푼 듯, 파란색이 한결 같았던 하늘에는 황금색, 보라색, 주황색이 조금씩 물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비단처럼. 하지만 그 위를 달리는 바람은 북쪽의 준마처럼 빠르고 힘이 넘쳐, 걷느라 이마에 솟은 땀을 삽시간에 날려버릴 정도였습니다. 길이 시작되는 점에 잠깐 서서 이런저런 생각에 바다를 바라보던 저는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도중에는 경치를 볼 수 있도록 작은 전망대와 벤치가 많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어디까지 사람 손이 닿아야 좋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앉을 의자 정도는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려가는 도중, 여기에 오래 있을 작정을 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해지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 이겠지요. 스카이라인 트레일의 일몰 풍경은 국립공원 가이드에서 언급할 정도로 명물이라고 합니다. 다만, 캐나다 북부의 해는 저녁 9시가 넘어야 지는 관계로 이곳에서 잘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접하기 힘든 이벤트 이기도 하지요. 저와 아내는 잘 곳이 있지만 멋진 풍경보다 내려가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에 일몰은 다음 기회에 보기로 했습니다. 

 나뭇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이전에는 사람이 다닌 듯한 작은 길이 아래로, 더 아래로 뻗고 있었지만 그 길은 쓰지 말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좀 더 가보고 싶었지만 법을 어길 수는 없는 것이고, 배도 고파오고 있었기에 저와 아내는 캠프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갔던 길을 되돌아 저와 아내는 캠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녁먹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저녁 메뉴는 핫도그. 가져온 나무로 화로에 불을 넣고 소시지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짐을 줄이기 위해 가져온 도구는 쇠 꼬챙이 하나.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굽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소시지를 구우면서 지는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켠이 편안해 졌습니다. 갑자기 영화 <캐스트어웨이>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만, 연관성이 좀 없지요?

 가져온 또르티아에 준비해둔 야채 속 - 양배추와 통조림 옥수수를 샐러드 소스 및 식초와 버무린 것- 을 올리고 케찹을 뿌려 먹어보았습니다. 캠핑장과 풍경 버프를 받아 그 맛은 최고. 먹는 도중에도 다른 소시지를 굽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황금빛으로 물든 캠핑장 앞의 해변. 이 순간 만큼은 이 모든 풍경이 오롯이 저와 아내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풍경에 매료되더라도 소시지를 태울 수는 없지요. 다른 한편으로 척척 핫도그를 만들어 아내와 나누어 먹습니다. 슈퍼에서 산 보통 핫도그 빵인데 어찌 이리도 맛있던지요. 꾸역꾸역 저와 아내는 가져온 소시지를 모두 구워 먹었습니다. 메인 디쉬가 끝났으니 디저트를 먹어야 겠지요?


 북미지역에서 캠핑하면 으레 생각나는 이 것. 마쉬멜로우 입니다. 사실 듣기만 했지 한번도 제대로 먹어 본적이 없는 저는 무슨 맛일지 매우매우매우 궁금했지만, 제가 손을 댔다가 망쳤을 때의 뒷감당은 하기가 어려웠기에...

  저의 아내에게 모든 것이 맡기고 저는 뒤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문자 그대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녹아있는 맛있는 마시멜로우가 완성되었습니다. 이거...이에 달라 붙어서 좀 귀찮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살이 찔 것이라는 경보음이 머리속에서는 울리고 있었습니다만...이 맛은 그런 경고 따위는 깡그리 무시해 버릴 정도. 저녁을 먹어서 배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한 봉지를 다 구워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핫도그를 배부르게 먹은 저는 두 개 밖에 구워먹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마시멜로우를 먹는 동안 해는 바다에 들어갈 정도로 기울었습니다. 

 해가 사라지자 그 빈자리를 바람이 채우기 시작합니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기온은 뚝뚝 떨어지면서 저와 아내도 옷깃을 여미고 텐트에 들어갈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닥불이 남아 있는 동안 그릇을 캠프 센터로 가져가 물로 씻어내고 음식 쓰레기 등을 모아 캠프 중앙의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불이 다 타기를 기다린 뒤, 텐트로 들어갔습니다. 

 전기 랜턴을 켜고 침낭안에 들어가 가져온 책을 읽는 동안, 바람은 계속 텐트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만 요란할 뿐, 텐트 안은 따뜻하고 바람 한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어둠이 완전히 사방을 뒤덮고 책을 쥔 손이 졸음을 못 이겨 책을 놓칠 때까지 저와 아내는 책을 읽거나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난지도 모른채, 우리 둘은 거의 동시에 잠을 자야겠다는 의사를 암묵적으로 표시하고 불을 껐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고요했다면, 바깥이 조금만 더 따뜻했다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맞으러 텐트를 나서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저 밖은 너무나 추웠고, 우리의 침낭안은 꽤나 따뜻했습니다. 언젠가의 여름, 이곳에 다시 오면 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약하며, 저는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국립공원 여행_#2 커니브룩(Corney Brook)캠핑장 (HLFX+329) - 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


  케이프 브레튼 섬의 입구에서 시작해서 국립공원을 가로질러 섬을 돌아오는 2차선 도로 - 캐봇트레일(Cabot Trail) - 은 도로 주변에 흩어진 빼어난 풍경으로 동부 캐나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종의 명물입니다. 유튜브에 'Cabot Trail'만 입력해도 이 길을 달리는 주행 영상을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달려 본 감상은, 이 길은 하늘이 내린 드라이브를 위한 코스라는 것입니다. 날씨만 괜찮다면,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어루만지는 가운데 푸른 하늘 아래 따스한 햇볕을 쬐면서 완만한 경사와 적당한 커브가 호수와 해변을 타고 올라가는 길을 기분 내키는 대로 달릴 수 있습니다. 적당한 음악이 함께 한다면 영화속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만끽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리는 길에 만난 새 모양의 구름. 이날은 저도 저 새처럼 자유롭게 달릴 수 있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캐봇 트레일 곳곳에는 좋은 풍경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볼 수 있도록 작은 주차장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솜씨 없는 저 같은 사람도 그림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저녁때 찍은 것이라 좀 어둡네요.)

 도로주변으로 흩어지던 야트막한 언덕들이 쑥쑥 솟아오르고 도로의 경사가 조금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덧 도로는 바위산 사이로 스며들어 갑니다. 거친 침엽수를 코트처럼 껴 입은 험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오르는 듯 하더니 드디어 국립공원 입구가 눈에 들어 옵니다. 입구에는 차에서 입장료를 낼 수 있도록 드라이브인 형태로 만들어진 매표소가 하나 서 있고, 잘생긴 캐나다 젊은이가 반갑게 저희를 맞아 줍니다. 여기서 국립공원 입장료, 세금 포함 15.60$을 내고 난 뒤 캠핑장 사용료는 어디서 내냐고 물어봅니다. 그 젊은이가 말하길, 입구에서 내도 되고 캠프장 안의 안내시설에서 내도 되는데 지금은 비수기라 캠프장 내부 시설은 전부 문을 닫았다고 하더군요. 그리하여 내친 김에 입구에서 캠프장 사용료 세금포함 23.50$도 지불 했습니다. 다만, 캠프장에서 불을 피우는데 필요한 장작은 어디서 사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입구를 지나 한 10분 정도 차로 들어가니 저희가 하루를 지낼 장소, 커니브룩(Corney Brook) 캠핑장의 입구가 보였습니다. 자갈이 깔린 작은 진입로를 들어가니 양 옆으로 야트막한 잡목림이 조금 펼쳐지는가 싶더니 쭉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그 바로 앞에 캠핑장 부지가 펼쳐집니다. 가운데에는 캠핑장 관리센터와 화장실 건물이 서 있었고 그 건물 둘을 둘러싸는 형태로 텐트 사이트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각 텐트 사이트에는 의자가 붙어 있는 형식의 나무 테이블과 강철 화로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허. 저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캠핑 사이트는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바다에 가까운 위치에 제가 왠지 모른 죄책감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깨끗하게 쓰자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좀 일찌감치 도착한 듯, 캠핑장에는 저와 아내 뿐이었습니다. 저녁먹기 전에 스카이라인(Skyline) 트레일을 걷기로 계획했던 우리는 우선 텐트를 치고 좀 쉬기로 했습니다. 미리 거실에서 연습(?)을 해 두었기에 텐트 설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텐트에 매트와 침낭을 깔고 널부러져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캠프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텐트를 다 치고 난 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찍은 한 장. 이게 뭐라고 그렇게 기분이 좋던지요.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강찰 상자가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로시설입니다. 참고로, 국립공원에 인접한 사유지에도 다양한 시설을 갖춘 캠핑장이 6군데 정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꽤나 큰 대형 캠핑장은 미리 설치된 텐트에 전기를 이용한 바베큐 시설, 음용가능한 식수대, 운동장과 샤워장, 그리고 세탁실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커니브룩 캠핑장은 수세식 화장실과 음용이 불가능한 식수대와 이 화로를 제외하면 제반시설은 그렇게 많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캠핑장을 선택한 이유는 저렴한 가격과 국립공원 내부에 위치한 이 장소가 스카이라인(Sky Line) 트레일과 제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사람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고생하는 것도 캠핑의 묘미라고 생각한 저에게 이 곳은 정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단 하루지만 저와 아내가 머물 둘 만의 작은 집(??)을 보고 흐믓해 하고 있던 저는 밀려오는 운전의 피로로 녹신녹신, 텐트로 들어가 몸을 뉘었습니다. 텐트 입구의 그물망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내부 온도를 딱 자기 좋은 수준으로맞춰 주었습니다. 멀리서는 파도소리가 조용히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꾸벅꾸벅 졸다가 문득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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