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Epilogue:Nothing gonna change - 쿠바(Cuba)




1.
 
...이미 저녁 아홉 시가 되었지만 하늘에는 아직 해가 남아 있었다. 아니, 이 정도의 해가 딱 좋지. 황금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사그라지는 그 아름다운 노을을 멍하니 보며, 나는 포치의 안락의자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내 무릎 위에는 쿠바에서 산 시가 박스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나는 박스를 열어 시가를 하나 꺼내어 코 끝에 가져다 대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담배와 꿀이 섞인 그윽한 향기가 숨을 따라 코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마치, 성냥개비 소녀가 추위에 못 이겨 성냥을 그었을 때에 떠올랐던 그 광경처럼, 시가향을 맡을 때 마다 깜빡깜빡, 하바나와 트리니다드, 시엔푸에고스에서 보냈던 즐거웠던 추억이 등대 불빛 마냥 내 머릿속에 다가왔다 멀어졌다. 

그 멀어지는 추억을 붙잡아 보려고, 나는 불현듯 성냥을 꺼내 시가에 불을 붙였다. 화악, 하는 소리가 지나고 보라빛 연기가 시가에서 피어오르자, 램프의 지니가 마술이라도 부린 듯 저 멀리 떨어진 쿠바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저 멀리 '관타나 메라'가 들려오고 집 앞의 작은 도로로 번쩍이는 바퀴와 다채로운 색깔이 인상적이었던 쿠바의 올드카들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체 게바라 처럼 시가를 입의 한쪽 끝에 밀어 물고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었다. 이 시가가 다 타면 이 광경도 사라지겠지. 하지만 그럼 어떤가. 또 한 대 태우지 뭐.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과 만족감이 내 몸을 채우고 나는 눈을 감고 그 여운을 즐겼다...

...

아마 이런 광경이 내가 쿠바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보상(?) 이었을 것이다. 힘들 때 마다 꺼내먹고 다시 기분을 북돋을 수 있는 '여행 사탕' 중, 쿠바는 멕시코에 이어 또 다른 카리브의 맛을 내게 보장할 터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
 
 마지막 날 새벽, 공항 행 택시는 매연이 심했고 좌석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예상했던 터였다. 공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이니까. 정말 돈 주고 사 먹기 싫었던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가게와 싸구려 커피와 기념품을 파는 상점 하나 빼고는 죄다 문을 닫았었다. 심지어 인터넷 카드를 파는 곳도 문을 닫았더라. 새벽이니까. 공항직원들의 복지에 나는 공산주의 만세를 외치고 싶었지만 그로 인해 아무것도 사지 못한 불편함은 누구에게 하소연 해야하나.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을 기다리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제2의 고향 할리팩스는 흐렸고, 추웠다. 곧 눈이나 비가 올것 같았고, 우리는 피곤했다. 돌아온 행랑을 다 풀지도 못하고 나와 아내는 샤워만 하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고 그런 우리 둘 사이에 '이번 여행 정말 좋았지?' 같은 여흥은 없었다. 피곤했던 우리는 그렇게 곯아떨어졌다.

예상과 다른 맛. 원하지 않았던 조합. 처음으로 페퍼민트 초코렛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 느꼈던 그 불쾌함. 치약맛과 단맛이라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눈앞에는 집에 도착하니 경첩이 떨어져 덜렁거렸던 불량(?) 시가 박스가 멋쩍은 모습으로 놓여 있다. 강력 접착제로 다시 뚜껑을 붙여 놓은 그 놈은 상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나 언제 또 반대쪽 경첩이 떨어질까 불안하다. 박스 안의 시가를 들어보니 몇 개는 말라서 부스스 담배 잎이 바닥에 떨어진다. 몇 번이고 냄새를 맡아 봐도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 대당 몇 불짜리 싸구려 시가인데. 그래도 좀 비쌌던 시가에서는 희미하게 담배 향기가 나긴 하지만, 얼마나 오래갈지. 나는 가볍게 한 숨을 내 쉬고 시가를 내려 놓고 싸구려 우리 아파트 창문으로 바깥을 보았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그 아래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비인지 눈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릉우릉 창이 울었다. 나는 '집'에 살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포치도 없다. 뜰도 없다.

현실은 이러하다. 더하여, 쿠바에서 나는 얻고자 했던 것을 얻지 못했다.



3.

 영생을 얻기 위해 떠났던 길가메쉬는 영생을 얻지 못했다. 집을 찾아 나섰던 오딧세우스도 집에 도착했기는 했지만 꽤나 오래 걸렸고 고생도 했다. 자기 성격 탓에, 다른 놈들의 회방에, 동료의 바보짓 등등으로. 그럼 그들의 여행은 실패한 것인가.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실패한 여행이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누구처럼 중국 공항에서 추방당한 들, 누구처럼 보고타에서 카메라와 노트북을 몽땅 도둑 맞은 들, 아내처럼 싱가폴에서 여권을 잃어 버린 들, 어찌되었든 그건 실패한 여행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찌되었든 우리는 '사탕'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맛이 내가 원했던 맛이 아닐 뿐이지.

쿠바의 사탕은 '내려놓음'의 사탕이랄까. 나의 지랄 맞은 성격을 좀 더 내려 놓으면 네 맘에 안드는 곳도 즐거울 수 있다는 그런 맛이라는 것이다.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포기하고 - 혹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 다들 사람 사는 곳인데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지.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다음 번에 쿠바를 간다면, 혹은 다른 곳에 간다면 나의 그런 성격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니. 그렇지 않다. 인간은 그렇게 현명(?)하지 않고 나는 더욱 미련하다. 부탄이든 카불이든, 아마 나는 똑같이 투덜거릴 것이고 여전히 경악할 것이다. 나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내가 바뀌려고 여행을 가는가?

이번 여행에서 하나 깨닫게 된 것은, 나는 '이런' 나라도 환영받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그냥 있는 이 모습대로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을 찾아 - 혹은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 알기 위해 -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모든 낯선자에게 편한 곳이 아니라 '내'가 편한 곳. 몇 달 동안 백수 짓을 해도, 때로는 새벽까지 게임을 해도, 이 나이가 먹도록 아기도 없고, 국가와 사회가 나 같은 사람에게 바라는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고 - 혹은 행하는 것을 거부하고 - 살아가는, 현재 생산력과 사회 기여도가 한없이 0에 수렴하는 나 같은 인간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그런 생떼가, 나는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을 테니 그래도 사랑해줘라고 외치는 아기의 짜증 같은 것이 나의 여행이란 것이다. 그럴지도.

그래서 여행을 다녀와도 나는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응당 바뀌어야 할 곳은 세상(!)이기 때문에. 아, 이 제멋대로의 쾌감이여. 그래서 나는 또 짜증 내고 또 투덜거리고 또 감격하고 또 행복하기 위해 여행을 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쿠바에서 얻은 사탕은 참으로 희귀한 맛을 가지고 있다. 어찌 되었든 내가 내려놓아 보았으니. 그렇게 해 봤다는 것 자체는 나에게 있어 큰 의미가 있다. 나 같은 고집 돌덩이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니. 내가 자발적으로 포장지를 벗겨 입에 밀어 넣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 여행이 아니라 사업이나 또 다른 삶의 과정 중에서 - 나는 이 사탕의 맛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 이것도 먹어봤었지. 그때 내 귓가에 관타나메라가 들리고 코 끝에 매연과 함께 시가 냄새가 흐르고 입안에 짜릿하게 칵테일의 맛이 떠오른다면, 나는 그 황당한 상황을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쿠바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그 새하얀 백사장 위에 펼쳐지는 사파이어 색의 바다와 하늘을 더 자주 떠올렸으면 싶지만 인생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PS. 지금 나는 페퍼민트 아이스크림을 매우 좋아한다.

쿠바(Cuba),6일차:Havana,You dirty little lover - 쿠바(Cuba)


 택시로 스페인 대사관 앞에 내린 우리는 곧 숙소로 향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지만, 이 짐을 들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이 나라에 남아있을 시간도 이제는 반나절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전에, 나는 이 도시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 근처 광장까지 하수와 오줌을 뚫고 걸어야 하는 그런 도시' 로 내 기억에 남기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나와 아내에게는 각각 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내는 'Havana 1791'의 향수를 한 병 더 사고 싶었고, 나는 쿠바에 와서 6일이 지나도록 듣지 못했던 '제대로 된' 쿠바 밴드의 연주를 칵테일을 마시면서 '적당한' 가격으로 듣고 싶었다. 이날이 지나면 나는 그 음악을 유튜브에서나 찾아야겠지. 이 날, 이 밤이 마지막 기회다. 함부로 보낼 수는 없지. 

그렇게 우리는 약간은 비장한(?) 각오로 길을 나섰다.




1.

 헤어질 때가 되면 그렇게 싫던 사람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누가 그랬었나. 혹은 막 도착했을 때와 다른 루트, 다른 시간에 이 거리를 걸어서 그런가, 이날 저녁 우리가 걸었던 하바나의 거리에는 신기한 것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수두룩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니면 트리니다드나 시엔푸에고스 같은 시골, 혹은 작은 도시에서 보낸 3일이 나의 관점을 바꿔 놓았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날 마주 했던 하바나의 사람과 사물들, 스페인 식민지 양식의 요새 안에 자리 잡은 경찰서, 젊은 화가들이 꾸려나가던 영세한 아트 갤러리, 옥수수를 그대로 물통에 빠뜨려 삶아 팔던 거리의 마약 옥수수 장수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로웠고 각자의 매력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왜, 도대체 왜?
 그 빛나는 거리의 실루엣들 사이로, 저물어 가는 해와 반대로 에너지가 넘치는 군중들이 여기저기로 뻗어나가고 있었다.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로 자갈이 깔린 올드하바나를  또각 거리며 나아가든 관광객도, 군용 반팔티에 짧은 팬츠를 입고 타이어로 만든 듯한 샌달을 신고 춤 추듯 알 수 없는 장소로 뛰어가던 청년도, 그리고 그 모습을 광장 벤치에 앉아 흐뭇한 웃음과 함께 지켜보던, 힘껏 지팡이를 움켜쥔 노인도, 그 모든 것이 에너지가 넘쳤고 매력적이었다. 이날 저녁, 그 흐린 하늘 아래의 거리에 무엇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인가.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조된 분위기에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향수 가게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방황했다. 즐겁게, 약간은 멍한 기분으로. 그 때, 저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림. 그 찢어짐. 나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건 심상치 않은데, 나는 생각했다. 노느라 정신 없는 사람들은 그 큰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지만 나는 곧 큰 비가 올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적당한 곳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비를 피하자고 했고 그런 그녀는, 조금은 비싸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을 추천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El del Frento가 되시겠다.




2. El del Frento

 전반적으로 쿠바에서는 식사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딱 네 끼 정도가 괜찮았다. Rumrum의 칵테일과 돼지 통구이, Papa Ernest의 샌드위치와 레몬파이, El biky의 아침, San Jose의 저녁. 하지만 이건 어디 까지나 '밥'이란 관점에서  내린 평가였다. Fine dining에 가까운,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을 식사는 지난 6일 동안 먹어보지 못했다. 당연하지. 나는 식사에 대한 예산을 박하게 잡았으며,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 나라의 Fine dining에 대해서는 상당히 박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 누가 맛없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음식에 많은 돈을 쓰겠는가?

하지만 이 날 저녁, 나는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곧 소나기가 내릴 것이었고, 여행의 마지막 날, 대충 끼니를 때웠던 지난 날들로 인해 식사에 배정했던 돈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날의 그 거리에 가득했던 마법 같은 고양감은 왠지 뭘 찍어도 잘 걸릴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물론 객관적인 근거도 있었다. 이 레스토랑에 대한 평은 다 좋았다.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소위 '댓글 작업'을 업주가 했다고 하자. 그래도 모든 댓글을 다 조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번역기가 개발새발 써 놓은 한글이 아닌, 올바른 문법과 훌륭한 문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한국인의 평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 댓글의 이런저런 내용은 다 생략하고 딱 한 문장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가게의 '소스'는 하바나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수준. 소스만 드셔도 돈이 아깝지 않을 거에요...'


 ...이런 말을 들으면 다른 건 몰라도 소스는 먹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러니 갈 수 밖에. 가서 먹어볼 수 밖에.

 그렇게 찾아간 엘 델 프렌토 - 라고 읽는게 맞나? - 의 첫인상은 괜찮았다. 레스토랑은 2층과 룹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룹탑 - 이라 읽고 옥상이라 불러야 겠지 - 에 있었기에 2층에는 빈자리가 있었다. 비를 피하러 온 내가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옥상으로 가지는 않겠지? 나는 2층의 아주 적당한 구석자리를 차지한 뒤 칵테일을 주문하고 천천히 내부 인테리어를 살펴보았다. 정성과 돈을 들여 꾸민 흔적이 역력했다. 스테이크는 무려 '뉴욕'식으로 굽는다고 벽에 써 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과 자부심이 적정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제법 괜찮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우리가 자리를 잡고 가게 구경을 하는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을 찢는 소리가 울리고 곧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흡사 양동이로 쏟아 붓는 듯한 그 폭우에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음악은 꺼지고 여기저기 뛰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몇 무리의 관광객들이 뒤 늦게 레스토랑으로 올라왔다가 자리가 없어 거절 당했다. 룹탑에 앉아 있다 쫄딱 젖은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왔으나 역시 자리가 없어 강제 퇴장. 나는, 좀비의 습격을 미리 예상하고 안전한 은신처로 잘 대피한 것과 흡사한 만족감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비에 쓸려(?)나간 거리에는 정적이 찾아오고 오직 비내리는 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레스토랑안에서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 자기 식기와 금속 찬구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이 조용한 세상. 맘에 들었다.

그렇게 한 껏 행복감에 빠져 들고 있자니 주문한 칵테일과 음식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무에비엔, 무에비엔. 



다이키리. 가지 째로 꽂아넣은 애플민트가 스펙타클했다. 큼직하게 썰어 꽂은 라임과 병을 휘감고 있던 라임껍질 장식도 멋있었다. 게다가 양도 많고, 술도 듬뿍 쏟아넣은 볼륨감이 넘치는 한 잔 이었다. 이 가격에! 다른 건 몰라도 쿠바의 칵테일은 세계최고 수준으로 인정하겠다.
 
 그러다가 문득, 테이블 한 켠의 소스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나는 이 소스가 궁금해서 여기 온 것이 아니었는가?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건만 나는 칵테일의 안주로 소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스푼에 부어 찍어 먹어본 소스는 세상에, 정말 맛있었다. 달콤하고 새콤하면서도 매콤하고 그 모든 맛에는 자연스러움이 넘쳤다. 과일과 향신료가 아주 적절히 조화를 이룬 놀라운 밸런스. 나는 불현듯 소스병을 가방에 쑤셔넣고 싶었다. 따로 판다면 사 들고 가서 성분 분석을 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팔지는 않더라고.

나는 아쉽지만 어떻게든 그 기적적인 맛을 머릿속에, 혹은 혀 위에 남기기 위해 소스를 먹고 또 먹었다. 하지만, 지금 캐나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맛은 되살릴 수 없었다. - 최근 들어 느낀 건데, 소스에 대한 기준이 올라가면서 나의 소스 만드는 솜씨는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다. 애석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소스를 퍼먹고 있자니 전채가 등장. 팔라펠이다. 쿠바의 팔라펠은 어떨까. 한입 물었을 때 겉은 아사삭 속은 고소. 게다가 이런 튀김은 지금껏 퍼먹은 소스와 환상의 궁합이지. 나와 아내는 접시에 소스를 잔뜩 뿌린 뒤 팔라펠을 이리굴리고 저리굴리고, 소스를 잔뜩 몯혀서 먹었다. 그러다가 그냥도 먹어보고. 다시 굴려서 먹어보고. 그러다 보니 접시가 텅 비었다. 

다행히 접시가 텅 비기 전에 다음 요리가 등장했기에 우리는 쉼없이 행복감을 고조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건 세비체로 기억한다. 쿠바에서는 세비체를 어떻게 해석할까? 역시나, 통째로 썰어 올린 바질이 화끈하다. 나는 해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 맛을 보진 않았으나, 아내의 평에 따르면 꽤나 괜찮다고 했다.  

 아내의 세비체에 견주어 내가 주문한 슈니첼. 잘 두들긴 고기. 얇고 바삭하게 잘 튀겨낸 튀김옷. 허허, 이런 솜씨가 있나. 게다가 덤으로 준 스파게티도 맛있었다. 고명(?)으로 살짝 구워낸 버섯도 그 구운 솜씨가 꽤나 괜찮았다. 아, 역시 쿠바라도 돈을 투자하면 이런 요리사를 구할 수 있구나. 나는 이 레스토랑에서 하바나, 아니 쿠바 요식업계의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이 식당의 하이라이트는 다름이 아니라 이른바 '뉴욕식 돼지 스테이크' - 솔직히 나는 뉴욕식 스테이크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햄버그로 다져서 고기가 나오는 판에, 이 레스토랑의 요리사는 어려운 재료 수급에도 스테이크의 본질에 가까운 요리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고민한 흔적이 충만한 한 접시를 내 주었다. 통 돼지살을 적정한 두깨로 수평으로 펴 내어 구워낸, 그 목살 스테이크는 그 요리에 기대하는 육즙과 육질을 잘 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디핑 소스. 그리고 딱 적정한 수준으로 구워낸 양파와 토마토와 감자와 아스파라거스. 이게 바로 제대로 된 요리사가 낸 스테이크라고, 쿠바에도 스테이크가 뭔지 아는 요리사가 있다고 외치는 듯 했다. 물론, 비쌌다. 약간 아플정도로. 하지만 그 값을 하는 한 접시였다. 나는 아주 만족했다. 

 내친김에 디저트까지 주문할까 했는데, 아내가 극구 만류했다. 기념품을 사야하는 우리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한 것이겠지. 그래서 우리는, 비가 잦아들 때까지 남은 사이드와 소스를 쩝쩝 맛을 보다가 적당한 시점에 밖으로 나섰다. 마냥 여기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그렇게 나가는 우리에게 아리따운 웨이트리스가 꽃 한 송이를 건네더라. 좋은 여행되세요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이름없는 열대의 꽃 한 송이지만, 나가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쿠바에도 이런 레스토랑이 있었구나.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돈을 들여야 이 기분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의 하바나가 어떤 곳이었는지 나는 모르니, 나의 이런 기분이 공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3.

 꽃 한송이를 들고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많이 잦아 들었지만, 아직도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퍼 부은 그 비로 인해 도시는 깔끔해 보였다. 거리에는 물 웅덩이만 좀 있을 뿐, 쓰레기도 냄새도 없었다. 그리고 짙게 내린 어둠은 이 거리의 낡고 방치되었던 상처를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다. 어두운 클럽에서 얼큰하게 취기에 오른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면 전부 미인으로 보인다고 누가 그랬던가. 지금 하바나의 시내가 그랬다.

이런 나의 심적 변화의 또 큰 이유는 내가 비에 쫄딱 젖어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이 올줄은 몰랐던 나는 작은 우산과 비옷 한 벌만 가지고 나왔었고 그 우장은 전부 오롯이 아내에게 제공되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우산을 좋아하지 않기에 뭐 곧 그치겠지 하고 줄곧 비를 맞으며 기념품 가게를 찾았었는데, 시간이 꽤 지나자 말 그대로 바지까지 흠뻑젖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나니, 그냥 모든게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구정물이 좀 튀면 어떤가. 어쨋든 홀딱 젖었는데. 기념품 가게를 못 찾은들 어떤가? 어차피 시간도 다 흘러가 버렸는데. 불교 용어로 이야기 하자면 레스토랑에서 나오고 거리를 헤매이면서 나는 그냥 다 내려놓아버렸다.

그러니 행복했다.

나와 아내는 이날 결국 기념품을 사지 못했다. 어두운 골목은 낮에 기억했던 구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가 다가왔고 이리 돌고 저리 지나치고 하다가 우리가 그 향수 가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하지만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내도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우리는 어께를 한번 으쓱하고, 이날 저녁의 또 다른 목적인 '음악'을 듣기 위해 다시 거리로 다섰을 따름이었다. 

비가 오니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니 술집에도 손님이 없고 손님이 없으니 음악도 없는 것이겠지. 낮에는 서로 경쟁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던 가게들이 이날은 조용하게 - 혹은 우울하게 - 영업을 하고 있더라. 다소 슬픈 표정의 종업원들과 주인장들은 구석에 서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오직 서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만이 이런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따름이었다. 우리는 그 가게들을 지나고 지나고 지나서, 어딘가에 들리는 음악을 따라 이 골목 저 골독을 돌아다녔다. 그것은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비와 어둠에 빠진 하바나는 매우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였다...그리고 나는 이쪽에 속한 '그녀'가 더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마침내, 우리는 그 빗속에서도 꿋꿋하게 밴드를 불러 조용히(?) 놀고 있는 술집을 찾을 수 있었다. 더 돌아다녔음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싶을 타이밍이었기에 나는 더욱 만족스러웠다.  


 밴드 앞에는 단체로 놀러온 여닐곱명의 관광객들이 큰 테이블을 통으로 차지하고 자기들이 상상해 왔던 쿠바의 바에서 해야할 것들을 하나하나 하고 있었다. 남녀 노소 모두 커다란 시가를 한 대씩 물고 불을 붙이고 빨아들였다 내뱉고, 그리고 누군가는 미소를 짓고 누군가는 기침을 토해내고, 그 모든 과정은 한 손에 들린 최신형 모바일폰에 녹화되거나 시진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럼과 쿠바의 칵테일이 우루루 테이블로 몰려나오고 그들은 과장된 웃음과 환호성으로 그 잔을 환영한 뒤 과장된 몸짓으로 술을 마시고 잔을 뒤집곤 했다. 전형적인 행동양식을 보이는 전형적인 개체들을 관찰하는 것도 이외로 재미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즐거웠던 건, 밴드의 신입 보컬을 보는 것이었지.

연령대와 헤어스타일 - 아프로 머리! - 에서 확연히 다른 멤버와 차별화된 분위기를 풍기던 그 기타리스트겸 보컬은 다른 멤버의 코치와 충고를 받아가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관타나메라'로 시작하는 오소독스한 쿠바의 노래에서 약간은 현대적인 팝송까지. 관록 넘치는 트럼펫과 베이스, 드럼이 적절하게 서포트를 해 준 덕에 그 아프로의 보컬은 자유롭게,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상외하는 분위기를 무대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좋은 연주였다. 그리고 맘에 들었다. 그 신구의 조화가, 이 모습은 흡사 지금 변화하는 시대에 조금씩 문을 열어가고 있는 쿠바가 바라지 마지 않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이상향을 그려낸 듯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 위로 시가 연기가 흐르고 술의 향기가 공기를 채우고 사람들의 즐거움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래, 즐거움 밤이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라니 너무도 아쉽지만 만족스러운 엔딩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이제 집에 가야할 때라고 직감했다. 갑자기 피곤해지기고 했고, 몸이 으쓸으쓸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돌아가자고 이야기 했다.

 돌아가는 길 나와 아내는 많이 웃고 많이 이야기 했다. 어둠은 더 짙어졌지만 비가 그쳐서 그러지 사람들이 드문드문 거리로 나오고 있는 듯 했다. 그래, 밤은 짧으니 우리는 걸어야 겠지. 하지만 나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밤에 만난 하바나라는 아가씨는 너무 아름다웠고 환상적이었기에, 곧 해가 뜨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그녀의 모습에 실망하기 전에 돌아서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자. 이제 가야겠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고, 샤워를 하고 짐을 싸고 곧 침대에 들었다.

침대에서 잠으로 떨어지기 전, 머리 속에 '좀 더 일찍 이렇게 해 주지 그랬어.' 라는 문장이 떠 돌았다. 누가 누군가에게 한 원망일까. 내가 하바나에게? 하바나가 나에게? 

-End-

쿠바(Cuba),6일차:Cienfuegos,복서와 뱃지, 그리고 시가 - 쿠바(Cuba)


 이번 여행지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내일 아침에는 정신없이 공항으로 가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야겠지. 무언가를 볼 시간도, 살 시간도 없을 것이다. 물론, 투덜거리고 짜증 낼 시간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마지막 시간 만큼은 즐거운 감정으로 색칠하고 싶었다. 가기 전에 조금이나마 많은 것을 알고 싶고, 얻고 싶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새벽같이 일어나 바깥으로 나섰다.




1. Good morning, Cienfuegos 

 일단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호텔 부터 돌아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식당, 수영장, 호텔바, 기념품 가게 등등 많은 곳이 문이 닫혀 있었다. 혹은 원래부터 문이 닫힌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불이 켜져 있던 곳은 단 한 곳, 카운터 뿐. 덕분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호텔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호텔의 루프바는 나름 명물이라고 어제 호텔 직원에게 들었던 것 같았다. 아침부터 술을 마실 생각은 없지만 경치가 궁금해서 올라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호세 마르띠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마도 이 도시의 주요 명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팟이 여기가 아닌가 싶었다. 밤에는 어땠을까.

광장을 본 김에 나는 그곳까지 산책을 가보기로 했다. 

 광장은 조용했고 몇몇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비둘기 모이를 주고 있었다...라는 말로 시작해야 할 시간과 날씨인데, 내가 목격한 풍경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침 고요 대신 췻췻 하는 기합 소리. 저 멀리서도 땀 냄새가 풍길 것 같은 격렬한 움직임. 새빨간 트레이닝 복을 입은 복서 한 분이 광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아주 열심히 쉐도잉을 하고 있었다. 그는 원투 라이트 레프트 어퍼컷. 원투 라이트 레프트 어퍼컷, 이 다섯 동작을 췻췻췻췻췻 다섯 번의 기합에 맞춰 하면서, 광장의 한 편에서 다른 한 편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쿠바의 무명 복서라. 그러고 보니 멕시코를 위시한 중남미 국가에서는 좋은 복서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성당 앞의 사자는 그런 복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격려하는 듯 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이 사자는 꽤나 잘 만든 조각이었다. 공산주의 혁명 이후에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조각이었다. 어찌하여 이 조각이 여기 서 있을까.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이런 걸 보면서 '이건 어느어느 시대의 누가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고 이야기 하고 싶기에 나는 공부 - 혹은 덕질 -을 한다. 이 사자도 내 호기심의 대상이긴 했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고 있다. 게으름이여, 게으름이여.

이런저런 생각을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하고 있으니 어느덧 아침 시간이 되었다. 나는 호텔로 돌아가 아내를 깨운 뒤 밥을 먹으러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호텔 조식은 언제나 랄랄라 하는 기분으로 식당을 향하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약간 걱정이 되었다고 할까.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앞에 등장한 과일 샐러드의 저 아름다운 위용을 보라. 차라리 과일을 쌓아 놓고 뷔페식으로 퍼 먹는 것이 양적인 만족감에서는 더 좋았을 것이다. 이후 등장했던 달걀 요리와 빵 등의 사진은...도저히 올리기가 그래서 생략하기로 하겠다. 김영하 아저씨가 그랬지. 맛없고 좋지 못한, 하지만 인상적인 식사는 좋은 글 감이 될 수 있다고. 과연, 이 호텔의 식사는 여행기를 쓰기에는 참으로 좋은 소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감사해야겠지.




2. 

 비아술도 택시도 예약하지 않은 우리는, 서둘러 이곳을 떠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여행지마다 뱃지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나는 적당한 배지와 기념품을 여기에서 사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와 같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가이드에서 말하기를 '보물같은 옛 서적과 기념품을 사려면 이곳으로 가라'기에 찾아가 본 서점 및 골동품점'. 작고 아담했다. 문을 넘어 들어가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더라. 물건(?)을 좀 보러 왔다고 했더니 높은 톤의 목소리로 안쪽의 남편을 불렀다. 그랬더니 신나는 표정으로 주인장이 나와 우리에게 이런저런 물건의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떠벌떠벌, 조금은 안타까운 영어로 우리에게 영업을 하고 있는 그를 그의 아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더니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여기서 직감했다. 아, 저 아주머니는 남편이 골동품 가게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장식장에는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옛 물건들이 가득했다. 오랜 시가 박스, 회중시계, 혁명 용사들이 사용했던 물건들, 공산주의 프로파간다 뱃지(!) 등등. 전반적인 가격은 제법 높은 편이었지만 뱃지 같은 작은 물건의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나는 그중 적당한 것 하나를 골랐다. 그랬더니 주인장이 안쪽의 아내에게 뭐라고 말을 했고 그녀는 다시 나와 나의 뱃지를 누런 종이에 싸기 시작했다. 물건이 팔렸으니 좀 누그러진 표정이긴 했으나 그 여자는 여전히 무언가가 불만인 듯 했고, 이제는 물건이 아니라 가게 자랑을 하기 시작한 주인장에게 결국 한 마디 크게 소리질렀다. '아 그러니까 이 비싼 돈 주고 가게를 빌렸으면 카페 같은 것 하지 무슨 골동품 점이냐고!'

어딜가도 괴짜는 바가지를 긁히기 마련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주인은 멋쩍은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했고, 나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들을 그에게 명복을 빌어주었다. 개인적으로 나도 카페 보다는 골동품점을 했을 것 같다.

이런 가게는 사업의 수단이 아니라 '꿈'의 영역이라고.  

지나는 김에 눈에 들어온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 코펠리아의 간판. 그 위의 프로파간다 문구가 있는 줄 몰랐는데 뭐라고  써 있는 건가?




3. 

 산책을 끝내고 돌아온 뒤 우리는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비교적 빨리 짐을 싼 나는 뱃지 외의 다른 기념품을 구하고 싶어 다시 바깥으로 나섰다.

씨엔푸에고스에는 꽤나 큰 쇼핑가가 있었고, 관광객 뿐만 아니라 다른 쿠바 사람들도 각자의 물건을 사기 위해 분주했다. 그 중 눈에 띄는 풍경은 배급되는 우유를 받기 위해 가게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행렬. 여기는 아직 우유를 배급하는가 싶었다. 그 모습이, 맞은 편에 사람은 커녕 개미 한마리도 보이지 않은 고급 의상점의 풍경과 너무도 달랐다.  

과연 이 분들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어느 쪽이든, 행복하세요.

기념품 가게는 많았지만 나는 무엇을 살지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그러다가 결국, 적당한 가격으로 시가 박스를 샀다. 시가 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도 담아둔다는 핑계를 마음속으로 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시가 박스에 시가가 없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평생 피우지도 않을 담배를 사러 시가 판매점을 방문했다. 

다행인지, 시엔푸에고스에는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가 가게가 있었다.  

어두운 색의 목제와 유리로 만들어진 장식장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시가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 통에 100 CUC 정도 하는 저렴한 친구 부터 한 대(!?)에 300 CUC 정도 하는 하이엔드 시가도 있었다. 깨내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사지도 않을 물건 보여달라고 하기에는 간이 너무도 작은 나는 여기저기 혼자서 뒤적이다가 찾아낸 한 대 단위로 파는 시가를 각각 다른 종류로 3대 정도 샀다.

그런데 그렇게 담배를 고르고 있는 나를 보고 한 중국계 미국인? 캐나다인?이 다가와 시가에 대해서 잘 아냐고 물어 보더라. 아니 나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했더니 정말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보더니, 이내 납득한 듯 자신도 담배는 안 피우지만 친구 중에 시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도무지 뭘 사야 할 줄 모르니 자기를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하지만 나도 뭘 모르기는 마찬가지라 곤란했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던 - 혹은 아는 채를 하고 싶었던 나는 내가 샀던 시가를 보여주면서 한 대 단위로 판매되는 시가의 장점과 돌아다니면서 알아낸 가격의 격차를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가 산 시가의 구성에 만족한 듯 그것과 똑같은 시가를 6대 정도 사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더라.

그 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가도 공부를 좀 해야 겠다고.




4. 

원하는 시가를 얻고 득의 양양하게 숙소로 돌아간 나는 아내와 함께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비아술 예약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터미널로 향하는 짐을 든 관광객을 보면 당연히 택시 기사들이 영업을 해 올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고 그 예상은 딱 맞아 떨어졌다. 우리는 비아술 가격보다 저렴하게 택시를 구할 수 있었고 신속하고 편하게 하바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는 도중, 날씨는 흐려졌고 깔끔했던 공기는 다시 자동차의 매연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질 법도 한데 오늘 밤이 쿠바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이 검고 뿌연 하늘의 얼룩들이 반갑기도 했다. 과연 나는 하바나와 화해를 하고 쿠바를 떠날 수 있을까?

쿠바(Cuba),6일차:Cienfuegos,당연하지만, 때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 - 쿠바(Cuba)


 6일차. 우리는 쿠바 여행의 끝을 하루 약간 넘게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아침. 청량한 공기와 쎄한 에어콘 소리, 그리고 부드러운 어둠이 가득 차 있던 방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묘한 감정의 림보지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1. 

어제 하루 동안, 나는 앙꼰 해변에서 기대를 상회하는 경험과 까사의 저녁에서 기대에 한껏 못 미치는 경험을 겨우 몇 시간 간격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좋았다 말았다, 줬다 뺏었다, 나는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 위에서 휘둘리다 지쳐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내 마음속의 무언가 부서졌을 수도 있겠다. 이유와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이날 아침 이후,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달관? 체험의 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왜 이날 아침에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감정의 시차를 조정하는데에는 최소 6일이 걸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시간을 알아냈다는 것은 꽤나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내가 여행에서 마음 편히 '변경'을 헤매이려면 최소 6일은 지나야 한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무튼, 왠지 모르게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기상한 나는 이 곳을 떠나기 전에 가볍게 아침 산책을 하기로 했다. 

 날씨는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 인터넷을 찾는 여행객들로 북적이던 광장에는 사람은 없고 고요함과 따뜻함, 그리고 여유가 가득했다. 나는 그곳 계단에 앉아 밀린 일기를 끄적였다.

 물론 인터넷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드문드문 앉은 사람들의 표정에는 서로 간의 공간 만큼 여유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사람도 많았다.

 꽤나 밀렸던 일기를 쓰고 숙소로 돌아가려 하니, 광당 한켠의 성당 문이 반쯤 열려있는 것이 보이기에 슬쩍 들어가 보았다. 소박한 내부는 여타 대성당과 비교할 수 없었지만, 편안함과 경건함이 있었다. 공산주의 했다고(?) 다 때려부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뭐든 간에 너무 극단적이면 좋지 않다고. 암암.

쿠바 비아술의 고무줄 운행 - 예약은 그냥 명목인 것이고 출발시간은 제멋대로 왔다갔다하는 것 - 에 대해 익히 들었던 우리는 예약했던 시간의 한 시간 전에 터미널에 가서 기다리고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다리려면 체력이 필요하고 체력은 밥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래서 숙소에서 나선 우리는 가는길에 길가에 있던 카페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짐을 끌고 터미널로 가던 도중, 레스토랑 중간에 커다랗게 소금에 절인 돼지다리를 걸어놓은 곳이 보이길래 그곳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혹시해서 시켰던 쿠바노스 샌드위치. 결과는 역시나. 하지만, 그래도 걸어 놓은 돼지다리 값은 하려고 이 가게는 노력 중이었다. 햄 대신에 들어간 돼지고기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빵은 바삭했다. 하~지만 그래도 25% 정도 부족했음. 그래도 배는 불렀고, 이미 충분히 각오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 이런게 쿠바인 것이겠지. 
대량 생산 단일 상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케찹과 머스타드 병이 귀여워서 한 장. 엄지척 케찹.

그 뒤에 이어지는 소위 '비아술 탑승기'는 빨리 넘어가도록 하자. 미리 도착한 터미널에서 우리는 에정시간을 한 시간 더 넘겨 기다려야 했고, 들어본 적 없는 짐 붙이는 비용을 달라는 사무직원에 당황했으나 따지지도 못해서 억울 & 속상했던 것도 굳이 곰씹지 말자. 역시나, 기다리는 도중 버스 터미널에는 한 마리의 암캐에 엉겨붙는 망할 동네 수컷들이 서로 실갱이를 벌였었고, 그 개들을 빗자루로 쫓아내는 터미널 직원이 꽤나 우스웠고, 그 뒤 어디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는 덩치 큰 암캐가 갑작스럽게 그 판에 뛰어들어 수캐들을 퇴치하는 속 시원한 장면도 더웠던 그 낮의 신기루 마냥 속절없이 흘러보내자.

그래도 우리와 우연히 동선이 겹쳐 하바나와 트리니다드에서 세번이 마주쳤던 70세 벨기에 할머니 만큼은 기억해야 겠지. 그 할머니가 지금도 씩씩하게 여행하시고 있기를 바란다. 우리보다 먼저 그녀는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떠났고, 우리는 좀 더 기다려 중국에서 만들어진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씨엔푸에고스로 갔다. 그 버스의 승차감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 계속 잤으니까. 하지만 다음에 쿠바를 간다면, 나는 차를 빌려 타거나 택시를 탈 것 같다.




2. Cienfuegos

 왜 여기를 갔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모르겠다고 답하겠다. 7일 동안 하바나와 트리니다드에만 있기에는 좀 아쉬웠지만 트리니다드에서 다른 곳 - 예를 들어 비날레스나 바라데로 같은 - 을 가기에는 시간이 좀 빠듯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야하는 하바나와 트리니다드의 중간 쯤에 있는 적당한 동네를 한 번 가보자고 아내와 이야기를 했고, 호텔에서 하루 정도는 자고 싶었던 우리는 리조트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호텔이 있다길래 이 곳 '시엔푸에고스'를 쿠바 여행 3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시엔푸에고스는 이 지역의 주도(州都)로 나름 쿠바에서는 성공적인 산업화의 대표사례로 볼 수 있는 동네이다. 그래서일까, 도착한 버스 터미널은 트리니나드의 그것과는 규모가 달랐고 사람들도 꽤나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양을 본 나는 일찌감치 하바나로 가는 비아술을 예약하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나 하고 미리 체념을 했다. 이제는 별로 화도 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아니나 다를까, 행여나 해서 찾아간 비아술 예약 사무실에는 '이미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을 확인해야 한다는 이상한 이유로 표를 주지 않아 차를 다 놓치게 된 6명의 크로아티아 선남선녀들'이 매우 억울한 표정으로 책상앞에 그리스의 조각 같은 역동적인 동작으로 감정을 어필하고 있었고, 그들을 대하는 사무실 직원은 무책임함과 심드렁함으로 코팅된 '철면피'를 뒤집어 쓰고 이런 저런 핑계로 그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다. 그들이 표를 제시간에 얻을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었고 나는 내일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비아술은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내일 돈을 벌고 싶어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제 값을 주고 편하게 하바나로 가겠어.

그렇게 나는 총총, 아비규환의 터미널을 뒤로하고 우리가 예약한 숙소로 짐을 끌고 걸어갔다. 제법 걸어야 하는 그 거리에 등에는 땀이 좀 났지만 우리는 어렵지 않게 우리가 묵을 호텔을 찾아 갈 수 있었다. 

한 때 그 영화를 뽐냈을 것이 분명한,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잘나가는 호텔이 아닌 것임이 분명한 이 고급 호텔의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겠다. 기억이 나지 않거니와 굳이 찾아서 적고 싶지도 않다. 정말 실망스러운 호텔은 아니지만, 그 가격을 주고 묵어가기에는 여러가지로 부족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특유의 - 내가 좋아하는 무라가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자면 - '한 때 잘나가던 공화국의 몰락한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오는 이 호텔은 '빛나는 열대의 쿠바'여행 컨셉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점이 있다면 인터넷을 호텔 내부에서 쓸 수 있다는 점 - 놀랍게도 공짜가 아니다. 인터넷 카드는 따로 구매해야 한다. 그래도 광장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이외로 큰 장점이다. -과 낡고 오래되었지만 수영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 왼편 상단에 보이는 것이 가이드에는 '거품이 올라오는 온수 월풀' 이다. 하지만 거품 장치도, 온수도 고장나서 현실은 앉아서 쉴 수 있는 냉탕 정도? 그래도 물은 시원하고 깔끔했다.

3시가 넘어 찍은 사진이라 사람이 없었지만, 꽤나 많은 관광객들이 저 벤치에 누워 열대의 태양이 아닌 인터넷(...)을 즐기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수영복도 입지 않은 채로 말이지. 무릇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기 나름이다.

여튼, 이런 호텔이다 보니 오는 손님들이 꽤나 반가웠나 보다. 체크인 직원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우리에게 친절했고, 열악했던 환경에도 무엇 하나 챙겨주려는 의지는 좋았다. 호텔이 망해서는 안된다는 그들 모두의 바램이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듯 했다. 그래서 그 여행사의 직원도 여기를 밀어주려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 상태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3. 

 저녁은 호텔에서 먹기로 했고, 그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우리는 주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호텔 바로 옆에는 호세 마르티 광장이 있었다. 그리고 시엔푸에고스의 볼거리는 여기에 다 몰려 있다고 하더라. 마리아 칼라스도 와서 공연했었다는 오페라 공연장부터 시청까지. 한 바퀴 쭉 둘러본 이 광장은 제법 괜찮았다. 

 서서히 지던 일몰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호세 아저씨. 참 많이 뵙고 갑니다. 

뭐 하는 건물인지 모르지만 이쁜 건물이라 한 장. 이 시점에는 무슨 건물인지 찾는 것도 귀찮아 졌었다. 나 답지 않게. 그저 서서 그 모습을 색상을 지는 해와 하늘에 비교해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했었다.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성당. 비대칭인 탑이 묘하게 귀여웠던 건물. 오른쪽 첨탑 위로 천천히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성당 앞의 사자는 왜 저기 있는 것일까. 때마침 뎅뎅, 울렸던 종소리가 인상에 남았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날이 일요일 이었나? 거기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골목에는 척 봐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뭐가 있나 보려고 했는데, 저녁이라서 그런지 다들 짐을 싼다고 정신이 없었다. 가만 생각하면 내일이 기념품을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이구나 싶어, 내일 오전에는 이 골목을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엔푸에고스의 말레콘. 기가 막히게 골든 타임에 딱 맞춰 도착한 우리 앞으로 바다와 하늘이 노란색, 주황색, 황금색, 그리고 자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 앞 벤치에는 쿠바 하면 떠오르는 그 새하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앉아 석양을 즐기고 있었다. 여유, 그리고 아름다움. 어떤 관점에서는 하바나의 말레콘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런 시간을 여기에서 보낼 줄이야. 우리는 어둠이 잦아들고 있는 거리 곳곳을 다리가 아플 정도로 여기저기 걸어 다녔다.

당연하지만, 때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동네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것을 즐기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이것이 Fact of life 겠지.

어느덧 호텔에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대충 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그 유명한 쿠바의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 코펠리아(Coppelia)가 눈에 들어왔다. 많은 관광객들이 먹어보려 했으나 어마무시하게 긴 대기열과 툭 하면 바닥나는 아이스크림 재료 때문에 사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그 곳. 그런데 이때, 줄도 그렇게 길지 않았고 아이스크림을 양동이(??)로 받아가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식사 전에 디저트를 먹는 것은 좀 애매하겠지만 언제 다시 맛볼지 알 수가 없으니 우리는 일단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등장한 쿠바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의 아이스크림은!

  맛이 없다고도 할 수 없지만 맛이 있었다고 말하기에도 참 애매한 맛이었다. 공장 분유 맛이라고 할까. 나 어렸을 때 우리집이 우유집으로 업종 전환한 뒤에 심심치 않게 집에서 뜯어 먹었던 전지분유. 그 가루 우유를  얼려 만든 아이스크림과 비슷했다. 하지만, 한국의 '베지밀 아이스크림'과 같은 그런 비슷한 컨셉의 아이스크림에는 미치지 못하는 그런 맛이었다. 좋았던 것은 저렴한 가격에 꽤나 많이 아이스크림을 퍼 주었다는 것. 

하지만 역시나,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기에 만족스럽게 아이스크림을 다 퍼먹었다. 덥기도 했으니 시원한 것을 먹어서 좋기도 했고.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다. 그런 아이스크림을 먹고도 화가 나지 않았다니.

아이스크림 그릇을 깔끔하게 비운 나와 아내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그릇을 치우는 종업원에게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는 의미에서 엄지척을 날려주고 - 좋은 게 좋은 거다. - 호텔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4. 

예상했던 시간에 겨우 맞춰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현관 오른편에 위치한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레스토랑안에 사람 이라고는 우리와 다른 외국인 한 명, 그리고 뭔가 멋쩍은 미소를 띄고 있는 종업원이 전부였다. 그 넓은 레스토랑에 단 4명 뿐이라니. 이건 좋지 않은 신호다.

테이블 뿐만 아니라 샐러드 바에도 음식이 하나도 없다. 우리 말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 신사도 음식이 아니라 줄기차게 맥주만 시켜 마시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에이 그래도 호텔인데...우리는 메뉴판에서 요리하기 제일 쉬워 보이는 메뉴를 골라 주문했고, 주문을 받고 사라진 종업원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의 식사를 들고 등장했다.

그렇게 등장한 접시를 보고 나는 웃음을 참느라 참으로 힘이 들었다.

이 사진은 아내가 시켰던 닭 가슴살 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올림픽 오륜기가 연상되는 화사한 색깔의 플래이팅과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인 밥 모양이 너무도 기가 막혀 킥킥거리느라 제대로 음식을 먹지도 못했다. 게다가 저 감자는 무언가. 색을 화사하게 만들어야 하는 쪽은 여기 사이드가 아닌가. 아니, 파인애플이나 포도 같은 것 좀 놓지...

당연히 내 요리도 다를 바가 없었다.

메뉴에는 분명히 '비프 스테이크'라고 써 있었는데 등장한 건 '함박 스테이크' 였다. 뭐. 소고기로 만든 햄버그였긴 했다만 보통 비프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기대하는 바는 그게 아니지 않냐고. 닭고기든 소고기든 관계 없이 충실하게 동일한 플래이팅을 시전하는 주방장에게 나는 어떤 의미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화가 났냐고. 아니, 나는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이제는 기가 막히는 수준을 넘어 코메디였다. 그리고 은근, 다음번에는 어떤 엉망인 요리가 나와서 나를 웃겨줄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 때 내 머리를 스치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Charlie Chaplin

그렇다, 6일차가 되어 거진 많은 것을 내려놓은 나는 이제 내가 봉착하는 이 우습지도 않은 상황을 그냥 우습게 즐기고 있었다. 어차피 돌릴 수도 없다고. 나는 내친김에, 과연 디저트로 나오는 아이스크림이 '코펠리아'보다 나은지 아닌지 보고 싶어서 주문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시나!



 딱 코펠리아에서 퍼온 듯한 아이스크림이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라고 코코아 분말과 설탕을 조금 더 넣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이제는 내 예상이 너무도 잘 맞아서 이상한 만족감까지 들었다. 이런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받아 놓고서 말이지.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내는 인터넷으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고, 나는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기대하지 못했던 행복과 웃음을 생각하면서 편하게 잠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호텔에 다시 올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쿠바(Cuba),5일차:Trinidad,Maybe this is all I ask to you, Cuba. - 쿠바(Cuba)


 이날, 우리는 느지막이 일어났다. 딱히 잡아둔 계획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할여한 곳은 단 한 곳, 바로 안곤 비치(Playa Ancon)이었다. 




1. 

파란 카리브의 하늘 아래 따끈따끈한 모래사장에 누워있다 더워지면 시원한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몸이 식으면 다시 밖으로 나와 백사장에 누워 다이키리를 마시고 독서를 하거나, 한가로히 이런저런 몽상에 빠진다. 그렇게 신선놀음을 하다보면 이날 하루는 후딱 지나가겠지. 여기까지가 나의 '계획' 혹은 이번 오늘이란 시간 속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여행 일정 중 하루를 오롯이, '검증되지 않은' 해안에 몽땅 투입하는 것은 리스크가 큰 선택이긴 했다.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이 시점까지 쿠바의 많은 것들은 내 기대와 달랐다. 칵테일은 맛있었지만 음식은 what the hell에 가까웠다. 거리는 예뻤지만 더러웠다. - 나는 지금까지 이쁜것과 더러운 것을 동일한 사물에 사용한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내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대해서 스스로 꽤나 놀라고 있다. - 혁명의 기치는 아직도 드높았으나 조만간 이 곳은 카리브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자본주의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경이와 실망, 이 두 단어가 지금까지 쿠바여행의 키워드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읽고 있는 김영하 아저씨의 책에서 그러더라. 여행의 목적? 혹은 헤택? 중 하나는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통해서 또 다른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쿠바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일 만사 지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다'라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최소한 내가 원했던 것 하나는 이루고 싶었다. 나는 따뜻한 열대의 태양을 찾아 눈 내리고 얼음이 덮인, 폐병 걸린 태양이 토해내는 듯한 허약한 햇볕이 지겨워 여기까지 왔단 말이다. 홍콩에서 나는 네온사인을 잃어 버렸고, 방콕에서는 아름다운 운하와 카오산 로드를 보내야만 했었다. 오사카의 도톤보리도 못 본만 못했으니 최근 나의 여행은 말 그대로 상실의 행진이었다. 나는 착실하게 여행에서 배워온 샘이다.

하지만 단 하나, 이번 하나 만큼은 제발 좀 얻어내고 싶었다.




2.

 안곤 비치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택시를 이용한다. 값이 무턱대고 비싸거나, 대안이 존재한다면 기를 쓰고 그 대안을 찾으려 하겠으나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요모조모 따지고, 이것저것 물어봐도 택시만큼 편하고 저렴한 교통편이 없기 때문이었다. 변수가 있다면 얼마나 착하고 친절한 택시기사를 찾는가 일 것이다. 그건 발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

다음 여행지인 시엔푸에고스행 비아술 대기열에 이름을 걸어둔 우리는 버스 터미널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적당한 택시기사를 물색했다. 가이드에 제시된 평균 가격보다 높게 부르면 우리는 미련없이 등을 돌리고 다른 곳을 향했다. 그렇게 서너명을 보내고 혹시 가이드의 가격이 잘못되었나 싶을 때 쯔음, 우리는 삼촌과 조카가 사이좋게 운전도 하고 호객도 하는 적합한 가격의 택시를 찾을 수 있었다. 

우스운 것은 그렇게 저렴한 가격을 찾아 해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면 기억에 남았어야 할 것인데. 거참.

해안까지 달려온 우리는 기사에게 5시간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꽤나 긴 시간이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럼 그때 보자고 유유히 차를 몰아 돌아갔다.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있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한 10여 미터를 해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드디어. 마침내.

에메랄드빛으로 눈부신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을 얼싸안고 있었다. 그 위에 펼쳐진 파란 하늘은 감동할 정도로 높았다.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날씨마저도, 지나치게 뜨거워지기 쉬운 해안에 적당한 그늘을 던져주고 있는 듯 했다. 공기 가득 퍼진 그 따뜻함. 그 온화함. 이 모든 것은 내가 꿈꿔왔던, 그리고 그 예전 신혼여행으로 잠시 마주했던 칸쿤과 툴룸의 그 바다가 맞았다. 나는 지금 카리브에 있는 것이다.


 해안 군데군데 야자수가 자라는가 싶었던 것들은 야자수 잎으로 만든 그늘이었다. 불현듯 자리 값을 받을려나 싶어 불안하기도 했지만 까짓 것 돈 달라면 주자는 생각에 적당히 빈 파라솔에 가서 자리를 폈다. 이 자리에 대한 자본주의적인 나의 예상은 반은 틀렸고 반은 맞았다. 이 자리는 공짜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으니 적당한 간격으로 어디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는  바텐더가 와서 야자수나 칵테일을 권했다. 요는 고객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미끼상품인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조차도 용서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칵테일과 야자수를 사 먹을 테니까 말이다.  

 탈의실은 없다. 그래서 해변 뒤에 무너진 파라솔 지붕에 숨어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그냥 모래사장 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 그 뒤는? 천국이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냥 좋았다는 것. 마냥 행복했다는 것. 지난 4일 간의 상실과 실망이 이 한 순간을 위한 시련(?)이었기에 그마저도 정당화 될 정도로 좋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파도는 잠잠했다. 햇볕은 열대의 그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덧붙여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목이 마르면 뒤로 지나가는 바텐더를 불러 음료를 시켰다. 쿠바리브레, 다이키리, 야자수 등등. 음식은 아니지만 칵테일은 정말 잘 드는 이 친구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게다가 가격도 저렴했다. 

헤롱헤롱 술김이 오른 와중에 읽은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같지만 다른 이야기. 이 해변에서 나는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었다. 뿌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그 노인의 최후(?)가 너무도 좋아 나는 마지막 장면만 또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놀랍게도, 하루가 그냥 지나갔다. 나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가 썩을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체감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이 슬프거나 아쉽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까.




3.

돌아가는 길, 올 때는 알지 못했던 우리 택시의 이모저모가 눈에 들어왔다. 기운차게 도로를 달리는 이 택시는 꽤나 낡아있었고,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좌석의 쿠션에는 구멍이 나 있었고 문의 손잡이는 뜯겨나가고(?!) 없었다. 다행인 것은 잘 잠기기에 주행 도중 사람이 튕겨져 나가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 불행인 것은 안에서는 열 방법이 없다는 것. 그래서 택시 기사는 본의 아니게 매너남이 되어야 했다. 손님이 내릴 때에는 그는 운전석에서 나와 차 문을 열어줘야 했었기 때문에. 손님들은 그 매너에 즐거워했을까 그 이유에 기가 막혔을 까. 

어찌되었든 우리는 즐거웠다. 이상할 정도로.

 시내로 들어온 우리는 삼촌 - 조카 택시 콤비와 열렬하게 인사를 나누고 다음 목적지의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여행사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나 B&B에서 머물러왔던 우리는, 그래도 한 군데 정도는 괜찮은 호텔에서 머물고 싶었다.
 

 공산주의 특유의 '우리네' 관료주의로 오래 걸리고 답답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여행사에서의 호텔 예약 과정은 이외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아니 오히려, 예상했던 가격보다 더 싸게, 없던 조식과 저녁식사까지도 포함되는 옵션으로 예약을 해 주겠다고 선뜻 직원이 나서는 바람에 나는 짐짓 의심이 들 정도였다. 'Too good to be true' 라고 했던가. 그래도 큰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그 직원이 알려주는 옵션으로 호텔 예약까지도 마칠 수 있었다. 이 직원의 친절과 예상보다 훨씬 저렴했던 옵션은 하루가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무튼,

 여행사 예약까지 미무리하고 트리니나드의 공식 일정(?)은 다 마무리가 되었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나면 짐을 싸고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 그 아름답던 해프을 떠나야 한다니, 생각하면 아쉽지만 기억이 아름다울 때 돌아서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그렇게 마음을 다 잡고 나와 아내는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낮잠을 잤다. 물놀이 뒤의 낮잠,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이다.




4.

바깥 복도에서 달그락달그락, 접시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시간이 저녁시간이 되었다. 아침은 꽤나 괜찮았으니 이 숙소의 저녁은 어떨까. 쿠바 밖에서 이케아 가구까지 공수해서 숙소를 꾸밀 정도로 수완가인 집주인이니, 식사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식전 샐러드와 수프...). 샐러드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이었다...게다가 소스는, 소스는 어디 있다는 말인가. 수프는...지금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그 맛이 기억나지 않는 맛이었다. 맛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맛이 있지도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불모(不毛)의 맛이라고 할까. 나와 아내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장과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다.


그 다음 메인메뉴. 아내가 주문한 '피쉬 앤 칩스'인데...접시 가득 쌓아주는 캐나다의 감자튀김과 비교할 때 그 양이 너무도 적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를 튀겼다는 것 정도? 문제는 사이드가 아니라 메인. 생선전에서 튀김옷이 떨어져나간 생선살만 모아 놓은 듯한 이 접시는...어떤 의미에서 고향을 생각나게 만들었었다. 명절이 끝나는 시점, 피곤하셨던 어머니가 제사상에 올리고 남은 음식들을 몽땅 쓸어 모아 대충 차린 한 상에는. 품질 부적격으로 상에 오르지 못한 생선전들이 홀딱 껍질을 벗은 채로 등장하곤 했다. 그게 바로 저 모양이었다. 아내의 표정은 굳어졌고, 나는 내가 그 요리를 주문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등장한 내 요리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주문한 건 '치킨앤 프라이' 였는데... 했다. 치킨 한 마리가 닭 다리 딱 두 개로 구성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게다가 그 닭다리도 너무 바싹 마른 것 같지 않나? 언뜻 보면 카리브해의 해적 깃발 같아서 웃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역시나 쿠바의 요리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주인장이 애써서 해준 요리이니 나는 접시를 깔끔히 비우긴 했다. 하지만 정말, 그 주인장에게는 혹시 해외에 가면 맛집 탐방을 해서 음식에 대한 기준을 높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나는 애싸 집어 삼켰다. 왜냐하면, 트리니나드는 인생에서 언젠가는 다시 올 것 같았고 다시 온다면 이 숙소에 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굳이 저녁을 여기에서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결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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