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중부(8-9일차),토론토(Toronto) - 캐나다(Canada), NB/QB/ON


  앨곤퀸 국립공원을 떠나 남으로 남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것이 약간 지겨워질 즈음해서 점점 도로가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넓어지는 도로 못지않게 눈에 들어오는 차들도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퀘벡, 오타와와는 급이 다른 강철의 급류. 저는 캐나다에 온 뒤 처음으로 꽉꽉 막히는 도로체증을 이 도시의 외곽에서 체험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주변지역에 캐나다 전체 인구의 25%가 모여살고 있는 토론토(Toronto)에 들어선 것이지요.

오랜만에 재회한 도로체증과 복잡한 도로 그리고 장거리 운전에 대한 피로로 토론토의 첫날은 잘 먹고 실컷 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Bnb에 체크인을 한 우리는 일단 주변에서 평이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아 그곳으로 직행했습니다. 그리하여 들리게 된 곳이 이자까야 킨교(Kingyo). 처음에는 킹요(King-Yo)인줄 알았습니다.

 레스토랑 내부는 토론토답게 깔끔 새련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벽에 장식되어있던 빠칭코들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종업원은 대부분 아시아계. 이런 경우 영어로 주문을 해야할지 한국어를 써야할지 중국어를 말해야 할지 일본어를 사용할지 쓸데없는 고민을 하곤 합니다. 주문은 결국 영어로 했습니다.

정말, 몇 개월만에 맛보는 '잘 우린 국물'의 돈코츠 라멘. 절로 맥주가 생각나서 한 잔 더 주문했습니다.


아내가 주문한 동남아시아풍 비빔국수...로 기억합니다만 확실치 않네요. 맛은 그냥저냥.



먹다보니 맥주 안주가 부족해서 주문한 야채튀김. 새우를 동동 띄운 매콤한 간장소스가 잘 어울렸습니다.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하고 숙소에 들어가 씻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푸욱 잤습니다.

 그 다음날(9일차)는 개인정비(?)시간. 밀린 빨래도 하고 식료도 보충하고 그냥 주변을 좀 걸어다녀 보기로 했습니다.


숙소 주변의 풍경. 약간은 삭막한 상점의 간판위로 뻗어올라간 벽화가 너무 좋아서 찍어봅니다. 벽화를 보니 생각났는지 문득 아내가 할리팩스에서 구하기 어려운 미술도구를 사러 가자는 제안을 해서 걸어서 미술도구점까지 가 보기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걸었습니다. 시장도 지나고 골목도 지나고 공원도 지나고...날씨는 좋고 공기는 대도시 답지 않게 깔끔했습니다. 이렇게 목적없이 보고 듣고 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저 다른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워질 수 있기에 사람들은 여행을 가는가 봅니다. 

가는 도중에 만난 치크케잌모양의 건물. 플랫아이언(Flatiron)의 미니 버전 같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꽤나 걸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때 쯔음, 아내가 다왔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 미술도구점은 OCAD(Ontario College of Arts & Design University)옆에 있다고 하는데 속으로 'OCAD가 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건물의 샤프펜슬 같은 독특한 외관을 보니 이거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러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캐나다 드라마 'Kim's Convenience'의 등장인물, 자넷이 다니고 있는 학교가 이곳이더군요. 

평소 시트콤은 잘 보지 않지만 이 TV 시리즈는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아시아 - 한국계 사람들의 행동과 아버지와 아들 세대들이 이제는 달라진 문화배경에서 서로 살아가는 모습과 그 와중에 발생하는 여러사연을 웃음으로 풀어가는 모습은 저도 모르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좋더군요. 겸사겸사 문화,관습 그리고 영어 - 물론 부모세대가 사용하는 'Broken English'는 제외하고 - 도 배울 수 있어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작품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의 실제장소에 가면 어떨까 싶었는데, 기분이 남다르네요. 내친 김에 김씨네 편의점도 가 볼까 싶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세트겠지요? 이 넓은 토론토에서 찾아가기도 힘들 것 같으니 말이지요.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내가 하나가득 미술도구를 사 들고 나옵니다. 우리는 그대로 숙소에 돌아가 식료를 사고 빨래방에가서 세탁을 한 뒤, 또 그냥 쉬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나이아가라 폭포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가기위해서 말입니다.

캐나다중부(8일차),앨곤퀸국립공원(Algonquin Park) - 캐나다(Canada), NB/QB/ON


 아침 일찍 일어난 저와 아내는 오타와 북서쪽에 위치한 앨곤퀸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토론토 - 나이아가라를 향해 바로 달리지 않고 굳이 위로 돌아가는 이곳을 가는 도중에 넣은 까닭은, 꽤나 큰 국립공원의 캠핑장은 과연 어떻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어떻게 와서 자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날씨는 좋았습니다. 사실, 좋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맑았습니다. 하늘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햇볕을 퍼붓고 있었고 그 아래의 불쌍한 생명체들 - 저를 포함한 - 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회색 건물들이 사라지고 점점 녹색이 짙어질수록, 그리고 차 안의 에어콘이 점점더 힘을 낼 수록 맑은 날씨는 조금씩 축복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과 진한 녹음, 그리고 마치 길 전체가 내 것인것 마냥 차 하나 보기 힘든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캠핑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더군요.

그리하여 두어번의 도로공사를 거쳐 우리 작은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저녁에 사용할 나무를 구매한 뒤 저와 아내는 안내원이 표시해준 지도위의 우리 사이트로 향했습니다.

 지도만 봐도 이 캠핑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다 돌아다녀보려면 최소 일주일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단 하루. 아쉽더군요.

 지도가 있어도 캠핑장이 너무 넓어서, 자리를 찾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습니다.


튼튼한 나무 테이블에 넓직한 불자리, 쭉 뻗어오른 나무사이로 호수가 보이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그 호수위로 사람들이 배타고 노는 모습이 보이네요. 그런데 수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서 신기했습니다. 이 더운 날씨라면 누구라도 저 물에 들어가 있어야 할 듯 한데 말입니다.



 일단 점심때가 지났으니 가져간 식량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했습니다. 네모지게 썬 베이컨에 토마토소스와 갖은 야채를 잘게 썰어 넣어 볶아 빵위에 올려먹는 간단 한끼. 캠핑에서는 베이컨 야채 볶음 만한게 없지요.

 식사를 끝난 뒤 피곤하고 더위에 지친 아내는 얼음주머니를 껴안고 텐트로 들어가 낮잠을 잡니다. 저는 그 사이에 호수에 들어가 더위를 식힙니다. 

호수 바닥은 흙반 나무조각 반이었습니다. 발가락 사이로 그 오랜세월 동안 물속에서 삭고 있던 나무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집니다. 가끔 물에 녹지않은 송진이 발 바닥에 달라붙어 끈적거리기도 했지만, 이 더위를 피할 수만 있다면 그정도는 감수해야지요. 물속에 누와 코와 눈만 물위로 내밀어 둥둥 떠 다녀 봅니다. 가끔 벌레우는 소리, 작은 보트가 호수 위에 노 젖는 소리만 들릴 뿐, 이 곳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수영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러 공용 샤워장으로 향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에 여기저기 들어선 캠퍼들의 공간에 절로 눈이 갑니다. 크고 잘 갖추어진 캠핑 차량부터 작은 텐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They know great out door, they enjoy great out door.

 명망높은 캠핑장이라서 그런지 공용 샤워장은 크고 깔끔하고 뜨거운 물도 콸콸 잘 나왔습니다. 샤워부스도 많고, 설겆이를 할 수 있는 개수대도 넓었습니다. 하긴, 토론토에서 주말마다 사람이 올 것인데 이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겠지요.

샤워를 끝내고 돌아와 저도 낮잠을 좀 잤습니다. 두세시간쯤 지나니, 해가 많이 기울었네요. 그래서 그런지 숲속의 공기는 선선하고 불어오는 바람도 더 이상 열을 내지 않더군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다가 여행계획을 확인하다가 하늘을 바라보다가 합니다. 쭉 뻗은 나무가지 틈새로 보이는 하늘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좋습니다. 역시 저는 촌놈인가 봅니다. 이런 것 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 말이지요.


어느덧 여기저기서 불 피우는 냄새가 퍼지고 저희도 질새라 불을 피웁니다.

그리고 소시지 구워먹는 시간. 미리 챙겨둔 맥주 한병을 나누어 먹으며 불이 꺼질때 까지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왜 우리가 여행을 하고 있는지. 왜 우리는 캐나다에 왔는지. 왜 나는 1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간까지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지. 집에서는 잘 하지 못했던 약간은 무거운 이야기도 뻥 뚫린 자연 아래에서는 웃음반 섞어가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자연은 위대합니다.

사다놓은 장작이 다 타고, 우리는 쏟아지는 별을 잠깐 바라보다가 텐트에 들어가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 토론토까지 가는 길이 꽤나 멀기에 일찌감치 텐트를 걷었습니다. 그냥 자고만 가기에는 아쉬워서 길가에 보이는 짧은 트래킹 코스를 하나 돌아봤습니다. 그 꼭대기에서 바라본 이 공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숲그리고 또 숲. 토론토에 살았다면 가을에 한번 와 봤으면 좋을 것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을에 여기까지 차를 몰고오기에는 너무도 머나먼 당신. 미련없이 돌아서면 또 만날 날이 있겠지요.


캐나다중부(7일차),오타와(Ottawa):역사박물관(Canadian Museumof History) - 캐나다(Canada), NB/QB/ON


 아내와 시내에서 만나서 근처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 뒤 슬슬 걸어서 차를 세워둔 곳으로 향했습니다.

 날씨는 너무도 화창했습니다.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하늘이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정말 눈이 시릴까 싶었는데 그랬습니다. 끝도 없이 파란색이 빨려올라가는 높은 하늘에 제 시선은 한참을 방황하다 피곤해 하더군요. 정말 더운 여름날인데 이렇게 가을 같은 하늘이 펼쳐지다니요. 그것도 나름 도심 한 가운데서 말이지요. 다른 부분도 많지만, 캐나다의 자연환경은 정말 하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도심 가운데를 흐르는 운하를 따라걷다보니 어느덧 주차한 곳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역사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건물만 봐도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박물관에는 유럽 사람들이 오기 전의 선(先)주민에서 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캐나다의 역사를 꼼꼼히,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잘 전시해 두었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캐나다 정부는(이렇게 써 놓고 보니 무슨 홍보하는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만...) 자국 역사에서 원주민의 삶과 문화를 밝히는데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캐나다의 역사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세워진 시점 훨씬 전부터 존재해 왔던 다양한 원주민들의 역사를 모두 섭렵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많은 수의 원주민들은 이 넓은 북부 대륙에서 서로 다른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키며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물이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무껍질로 만든 카누와 무리를 지어 물소를 사냥하는 것 등이 있겠네요.

그러다가 많은 시간이 흘러 프랑스와 영국에서 개척자들이 찾아와 해안과 강변을 따라 퀘벡, 몬트리얼, 토론토, 할리팩스 등 아직까지 현존하는 수많은 도시를 세워 올립니다.

초기 식민도시의 주요 산업을 상징하는 도구....중 일부입니다. 제재업과 메이플 시럽 제조업. 가운데 보이는 큰 무쇠솥이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데 쓰였다고 하네요. 풍부한 목제는 다른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먼저 조선업. 그리고 산업혁명과 일련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오랜 기간동안 땅 속에서 잠자던 석탄과 철광이 광부들의 피와 땀으로 빛을 보게 됩니다.

국제 정세의 변화 - 미국의 독립, 민족주의의 대두 등 -와 축적된 산업과 자본, 그리고 사람들의 노력으로 캐나다는 마침내 하나의 국가로 발돋움을 하게됩니다. 위 사진은 아직까지 오타와에 남아있는 연방의회의 낙성식인데...정말 저 건물만 달랑 올라가 있는 주변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미국처럼, 독립 이후 치열한 서부 개척시대가 열립니다. 위 사진은 캐나다가 한창 북부와 서부 영토를 확장할 시기의 개척자들이 입었던 모피코트 입니다.


영토확장 뒤에 이어지는 거점의 건설과 연결. 또 다른 수많은 도시들이 서부에 세워지고, 그 도시들을 잇는 철로가 동부에서 서부로, 남부에서 북부로 이어집니다.

 국토의 확장에 따라 늘어난 인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일찍부터 적극적인 이민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위 삽화는 당시 신문에 실렸던, 백인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정부의 이민 책을 비난하기 위해 그려진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온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이민자들은 캐나다의 여기저기에서 그들의 문화를 지켜가면서, 또 수용하면서 면면히 살아갑니다. 윗 그림은 어느 이민자 마을에 있었던 교회 - 그리스 정교회로 기억하는데...확실치 않습니다. - 를 통째로 뜯어 전시해 놓은 것입니다.

 캐나다에 유입된 유럽의 문화는 이 대륙의 자연환경과 다른 이민자들의 문화와 융합하여 독특한, '캐나다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들로 진화합니다. 윗 그림은 캐나다의 수려한 풍광을 유럽의 인상주의 화풍으로 해석해 낸 그림으로 이후 수많은 캐나다의 거장들도 위와 같은 화풍으로 하늘에 뿌려진 별처럼 많은 명작들을 그려냅니다.

수많은 총리들이 국민들의 손에 의해 선출되고...


원주민의 문화도 이런저런 방향으로 재해석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맘에 안든다고 갈라서려고 한 적도 있었다는 군요. 1995년에 있었던 퀘벡 독립 투표. 49% VS 51%의 근소한 차이로 퀘벡사람들은 캐나다의 국민으로 남아있는 것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꽤나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 선거결과를 토대로 퀘벡은 독립을 하지는 못했지만 프랑스어의 병기 및 병용, 프랑스어 학교 설립 등 프랑스권 문화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뭐, 최근 가장 큰 정치적 이슈는 내부사정 보다는 아무래도 미국과의 관계이지요.


관람을 끝내고 내려온 별관에는 중세 유럽문물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금잔, 상아로 만든 장신구, 테페스트리 등이 잔뜩 있어 눈을 돌릴 틈이 없었던 곳이었지요. 전시물이 다 마음에 들어서 큰 마음먹고 도록을 샀는데, 후에 꼼꼼하게 보니 프랑스어로 쓰여진 도록이어서 저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영어수없을 같이 듣는 프랑스 노부부에게 선물로 주고 말았답니다. 지금도 아쉽습니다.

들리는 도시마다 박물관과 미술관만 보는 여행이 어찌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와 아내는 언제까지 살아갈 지 모르는 이 나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많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들이 다시 않올 곳도 아니라서, 1차 여행은 이렇게 목표를 뚜렷이 세우고 오는 것이 짧은 여행기간 동안 그래도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여행기간을 더 길게 잡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박물관을 다 보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뉘엇뉘엇. 다음 목적지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즐거웠던 내셔널 갤러리에 다시 들려 작별인사를 하고, 저와 아내는 차에 올라 숙소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 슈퍼에 들려 다음 목적지인 알곤퀸 국립공원에서 쓸 물건들을 조금사고 일찌감치 자리에 들었습니다만 그날 저녁 역사에 남을 더위가 다시 찾아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너무도 더워서 저와 아내는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TV를 켜고 누군가 남겨놓은 DVD에서 '로드트립'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와 무심결에 같이 보게 되었는데...내용이 정말... 머리를 뿅망치로 계속 내려치는 듯한 B급 영화였습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말이지요. 다시 보라면 글쎄요...굳이 이 DVD를 가져다 놓은 이유가 뭘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고민하다가 까무룩 저는 잠이 들었습니다.

캐나다중부(7일차),오타와(Ottawa):캐나다 전쟁박물관(Canadian War Museum) - 캐나다(Canada), NB/QB/ON

 
 오타와 Bnb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찜통더위가 밤 늦게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었거든요. 내부 인테리어는 번지르르 했는데 막상 실속은 조금 부족했던 곳이었습니다.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면 세탁기가 있어서 마음껏 옷을 빨 수가 있었다는 것 정도겠네요.

아무튼,

 오타와의 두번째날이 밝았습니다. 시내 중심가에서 간단하게 커피와 아침을 먹은 저와 아내는 오전 시간에는 각자의 관심사에 맞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흩어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뒤 아내가 어디 갔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어딘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지요. 제가 캐나다 전쟁박물관에서 보낸 시간만큼 행복하고, 감탄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전쟁박물관은 오타와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도 제법 있으며, 슬슬 걸어서 연방의회 건물이나 대법원 등의 건물을 구경하면서 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멀리서 보니 돌로 만든 거북이가 연상되었던 전쟁박물관에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평일이기도 했고,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요. 이 큰 건물을 혼자 차지하는 짜릿한 기분. 저는 행복한 나머지 휘파람을 불면서 표를 사고 경비원들에게 조금은 들뜬 모습으로 인사를 하며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은 관람하는 내내 점점 더 눈덩이 처럼 커져만 갔지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도, 침략당한 적도 드문 - 없지는 않지요. - 캐나다에 무슨 전쟁 박물관인가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만 캐나다는 나름 여러 군기(軍旗)아래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 박물관에서는 소위 '전투민족' 캐나다의 지난 시간을 정성껏 정리해 두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영국과 프랑스 식민 개척자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또는 원주민과 연합하기도 하면서 싸웠습니다.


알곤킨족 원주민과 연합하여 크리족 원주민과 싸우는 프랑스 식민 개척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크리족도 협정을 통해 프랑스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고, 후에 이들은 프랑스와 연합하여 영국 식민지 개척자와 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는 영국에 패배, 그들의 캐나다 식민지는 모두 영국에 편입됩니다.


근대에 들어와 정치적으로 영국에서 독립한 캐나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영연방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보어전쟁(Boer War)에도 참전하였으며...


1차 세계대전에도 참여, 서부 전선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웁니다.



위 그림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가스가 퍼지는 와중에서도 독일과 싸운 연합군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1차세계대전에서 사용한 무기와 당시 참호전을 묘사한 디오라마도 있더군요. 이 모든 전시물은 시간의 흐름과 관람자의 동선이 일치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즉, 저는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개척자들의 전쟁에서 세계대전의 한 가운데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죠.


1차 세계대전시 제작되었던 포스터. 검소한 생활을 하지않으면 적의 친구라는 심플하지만 강한 메시지가 보입니다.



100년전의 오늘 - 그러니까 제가 글을 쓰고 있는 11월11일 - 1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으로 추앙하였습니다. - 마치 성인처럼 스테인드 글라스에 그들의 공적을 새겨넣기도 했지요. 아마 모두, 더 이상의 전쟁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현명하지 않은 동물이지요.


아돌프 히틀러가 사용했던 슈퍼 메르세데스 벤츠입니다. 캐나다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2차 세계대전에도 참여, 전쟁이 끝난 뒤 독일에 있었던, 그리고 독일군이 사용했던 많은 무기들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이 차량은 그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밀리터리 매니어라면 소름이 돋을만한 당시 병기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88ml 고사포. 고사포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연합군의 탱크를 파괴한 병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탈리아 시실리에 주둔한 독일군이 사용했던 병기들.

3호 돌격포.


36호 대전차포(Panzerabwehrkanone 36)...였을겁니다.

42호 범용기관총(Universal-Maschinengewehr Modell 42) 소위 MG 42입니다. 쏘는 소리가 전기톱과 비슷하다고 해서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별명이 붙었지요. 위 전시물이 흥미있는 이유는, 전용 장착대에 거치되어 장식된 MG42는 저는 처음봤기 때문이지요. 저 전용장착대의 가격은 거의 MG42 한 정과 맞먹을 정도로 비쌉니다. 하지만 그 위에 장착된 화기의 성능은 거의 3배 가량 향상되었기 때문에 높은 비용값을 했다고 볼 수 있지요.


다연장로켓포 네벨베르퍼(Nebelwerfer).다양하고 보존상태가 좋은 독일군의 장비가 아주 잘,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독일군의 장비만 전시되었던 것은 아니었죠.


'전쟁은 숫자입니다.'라는 말을 언제나 연상시키는 전차. 미군의 셔먼.

영국군의 브랜건 캐리어를 개조한 화염방사차량.

그리고 연합군의 발이 되어 전장을 누볐던 하프트랙. 제가 어릴적에 가장 처음 조립했던 장난감이었기도 하지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부족했던 물자로 인해 배급제를 실시한 캐나다에서 생산되었던 식품들입니다. 그 중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니 더 이상 캐나다 사람들이 전쟁할 일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웬걸, 그들은 한국전쟁에도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여 했더군요.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이 사용했던 무기. 트레이드 마크인 '따발총'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는데...

중공군 복식을 전시한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도 캐나다사람들은 UN군의 일원으로 각지에서 활약합니다.


UN 평화유지군의 장갑차.


1900년도 후반의 폭탄 제거 차량.

보스니아 - 로 기억합니다만 좀 가물가물 하네요. - UN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캐나군이 정찰에 사용했던 차량. 이 차량은 새해, 반군의 사격으로 100여발에 달하는 총알 세례를 받았습니다. 탑승했던 두 명의 캐나다 군인은 각각 8발. 4발의 총상을 입었으나 그 와중에 차를 몰고 위험지역을 탈출, 기지로 귀환하였습니다. 그 들 중 누구도 죽지 않았고,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 차량은 그때의 총알 자국 그대로 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분쟁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인지뢰. 그리고 그 옆의 인형은 그 지뢰 피해자를 후원하기 위한 단체에서 만든 캐나다군 인형입니다. 

식민시대에서 가장 최근의 UN활동까지. 휴. 1층 전체를 둘러보는데도 3시간 가량 걸린 것 같습니다. 엉성겅성 휙 보고 지나간 곳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 나가시면 안됩니다. 이 곳 지하에는 더욱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기를 장식했던 그림들이 비행기 장갑 그대로 전시되고 있으며...


각 시대를 망라한 크고 아름다운 대포들...







그리고 전차들. 세상에. 르노, 야크트 티거, 팬저. 떡떡 벌어지는 입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수송 차량들. 그 중에서도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포드사에서 만들었던 이동식 식당차. 아, 지금 이차를 가지고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 수가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 같은데...그럴 수는 없겠지요.

전시가 아니라 숫제 고물상에 물건을 모아놓은 것 처럼 박물관 지하를 가득채운 병기들의 모습에 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자 하나 가져와 그 가운데 앉아만 있어도 한 4시간은 기꺼히 있을 수 있었습니다만, 아내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 저는 박물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다시 오타와 시내로 향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오타와에서 이곳은 당신의 성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00%!

캐나다중부(6일차),오타와(Ottawa):National Gallery of Canada - 캐나다(Canada), NB/QB/ON


 한참 고속도로를 달려 해가 저물어 가기 직전, 저와 아내는 오타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관람시간을 늘이기 위해 우리는 짐도 풀지않고 목표로 삼았던 'National Gallery of Canada'로 직행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걸어가면서 2시간30분 가량이면 충분히 보고 싶은 것은 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갤러리 바깥에서 마주친 반가운 대형 거미 <Maman>. 신혼여행지였던 멕시코시티의 모 갤러리 바깥에서도 이 친구를 본 것 같은데 어떻게 한참 북으로 올라온 캐나다에서 또 만나게 되네요.


안쪽 홀에서 찍은 갤러리의 유리 외벽입니다. 저 멀리 연방의사당 건물이 보이네요. 저긴 7일차에 가볼까...생각 중이었는데 시간 관계상 들리진 못했습니다.

그림 취향이 상당히 다른 저와 아내는 여기에서 잠깐 헤어지기로 합니다. 아내는 컨템퍼러리로, 저는 클래식으로. 굳이 다른 취향을 서로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각자 따로 보는 것이 속 편합니다.

그리하여 보무도 당당하게 스윽 들어간 클래식 관에서 저는 저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방 하나하나에는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고 들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했습니다. 더하여, 여기 콜렉션의 1/4만 가져다 놓아도  돗대기 시장처럼 사람들로 미어터졌을 한국의 갤러리들과 달리 공간은 널찍하고 소파는 푹신했고 관람객들은 조용했습니다. 온연히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그 곳에 존재했습니다.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들어서는 방 마다 저 같은 문외한도 알 만한 대가들의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보는 내내 감탄하고 기뻐했던 수많은 명작 중, 한 눈에 알아본 작품들만 뿌듯한 마음에 추려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엘 그레코(El Greco)의 <St. Francis and Brother Leo Meditating on Death>. 예전에 살았던 이태원의 그리스 요리집 이름이 '엘 그레코' 였습니다. 요즘도 장사가 잘 되는지 모르겠네요.

장 프랑스와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Oedipus Taken Down from the Tree>. <만종>만 알고 있어도 이 독특한 그림체는 쉽게 구분할 수 있지요.

클로드모네(Claude Monet)의 'Jean-Pierre Hoschedé and Michel Monet on the Bank of the Epte'. 화면 가득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이 느낌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폴 고갱(Paul Gauguin)의 'Vase with Nasturtiums and Quimper Faience'. 이 분이 그린 정물화는 저는 처음 봤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Hope I'. 그림의 색감과 느낌이 옆에 서 계신 경비원과 이상하게 어울려 억지로 같이 사진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런 명작들에 하루종일 둘러쌓여 있으면 절로 행복해 질 것 같은데 저분들 표정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더군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can Gogh)의 'Iris'.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귓가에 'Starry starry night~ '하는 익숙한 멜로디가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괜시리 반가웠습니다.

미술 시험에 나오면 너무도 쉽게 맞출수 있어서 즐거웠던 작품. 그리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대가.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Composition No. 12 with Blue' 가만 보고 있으면 시골방의 창호문이 생각나서 정겨운 그림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미술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graitte)의 'Perspective: Madame Récamier by David'. 만약 누군가 저에게 거실에 걸어놓을 그림을 마음대로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아무고민 없이 이 분의 '빛의 제국'을 뽑겠습니다. 절대 이루어 질리가 없는 소원이지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Gala and the Angelus of Millet Immediately Preceding the Arrival of the Conic Anamorphoses' 언제나 뚝뚝 녹아떨어지는 시계와 추파춥스 포장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달리. 그런 그도 멀쩡한 그림을 그릴때가 있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심상치 않은 것들이 보입니다. 문위에 떡하니 붙어있는 밀레의 <만종>을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의 아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예술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The Eiffel Tower'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The Small Table'. 이 이상 그림이 복잡해지면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이고 저는 그때부터 흥미를 잃게되더군요. 큐비즘이 한계인 듯 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보는데 3시간이 넘게 지나갔습니다. 마이갓...아직 못본 관이 2~3개는 더 있는 것 같은데 벌써 나가야 할 시간이라니...제가 캐나다의 갤러리를 너무 우습게 봤습니다. 크기뿐만 아니라 소장된 작품의 양과 질에서도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름 발전했다고 뽐내는 한국의 어느 국립 갤러리가 이 정도의 콜렉션을 갖추고 있더랩니까.

여하튼, 갤러리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나온 저와 아내는 근처에서 정말 징하게 매운 중국요리를 먹고 그날을 보낼 숙소로 향했습니다. 속으로, 이 갤러리를 보기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오타와를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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