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3일차:Havana,엘 비키(El Biky),그리고 나폴레옹 박물관 - 쿠바(Cuba)


 아침. 바깥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금박처럼 하늘에서 부서지던 햇살은 어디로 가고 비릿한 습기가 공기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다. 나는 꽤나 심란하고 실망한 상태였다. 48시간을 간신히 넘긴 이 곳에서의 시간에서 뭘 그렇게 실망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상상으로 간직하던 멋진 그녀의 모습은 이곳에 없었다. 실낙원(失樂園). 나는 이렇게 또, '아 정말 가보고 싶구나.' 하는 곳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여행은 그런 상실의 과정일 수도 있겠지.




 이날 일정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어젯밤 그 난리가 벌어졌던 광란의 거리로 아침 산책을 갔다. 그 많던 쓰레기와 무질서는 사라지고, 잘 정돈된 거리와 아침의 고요함이 그 곳에 있었다. 나는 아내가 인터넷을 끝내고 목적지를 정할 때 까지, 그 큰 간극의 사이를 배회했다. 같은 인간이지만, 나는 다른 인간들을 이해하는 것이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그 동안 가보지 않았던 베다도(Vedado)지역으로 가 보기로 했다. 주요 관광지가 신, 구 하바나에 몰려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볼 게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1. El Biky

'Havana needs more places like El Biky...'

Lonely Planet에서 이 곳을 찾으면 가장 처음에 써 있는 문장이 바로 이 문장이다. 하바나에는 이런 곳이 더 있어야 한다. 그렇다. 100% 동의한다. 베다도로 가는 일련의 과정 - 택시를 찾아 드문드문 비가 내리고 온 거리가 침수된 오랜 차이나타운(China Town)을 지나 짜증 반, 분노 반으로 운전기사를 가격으로 후려쳐 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온 그 시간은 굳이 서술하지 않겠다. 그냥 여기서 싸게 택시를 타겠다는 발상을 한 우리의 잘못이다. - 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할 지라도 이 곳은 굳이 찾아갈 만 하다.

엘 비키(El Biky)의 입구에는 흰 셔츠와 깔끔하게 다려진 바지가 인상적인 문지기(?)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서 두 명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니, 여기서 잠깐 기다리면 자리가 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굳이 바깥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 짜증 날 법도 하지만, 무질서에 시달리던 나는 그런 격식이 오히려 반가웠다. 이윽고 자리가 생긴 듯, 그제야 흰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문지기는 우리를 레스토랑 안으로 안내했다.

레스토랑은 깔끔했고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종업원들 사이에는 가격대에 어울리지 않은 절도가 흐르고 있었다. 자리는 편안했고 벽에는 1950년도 하바나와 그곳에 살았던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이 결려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살펴본 메뉴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먹음직한 메뉴들이 지극히 합리적인 가격(!)과 함께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었다. Muy bien! 경제적인 가격에 나와 아내는 큰 고민 없이 샌드위치, 커피, 계란 요리가 포함된 아침 등등을 마음껏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랄 정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은 아름답게 테이블 위에 척척 도착했다.

바삭하게 구워진, 이 곳의 수제 파니니. 빵 맛이 정말...알고 보니 이 레스토랑 옆에는 여기서 직접 운영하는 베이커리가 있었다. 빵의 질이, 그 어느 공산시대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식빵 쪼가리하고는 격이 달랐다. 바삭했다. 쫄깃하면서도 은근 단 맛이 돌았다. 그 옆에 곁들인 것은 얇게 썬 고구마 칩.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그 맛 또한 매우 만족스러웠다. 어설픈 감자칩보다 400% 우월했다. 나는 그 칩을 남김없이 전부 입안으로 쓸어 넣었다.

아내가 주문한 계란 요리. 바질과 갖은 허브, 햄, 양파가 푸짐하게 들어간 계란이 호밀빵과 역시 참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수제 치즈와 함께 등장했다. 고급은 아니더라도 다양하고 풍성한 맛을 갈구했던 아내는 그야말로 이 요리를 공기처럼 빨아들였다. 우리는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식사에 열중했다. 그 조용했던 시간은, 그 동안 하바나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가격대비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우리의 경건한 예배 시간 같았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모든 접시와 커피, 음료까지 깔끔하게 비운 우리는 한 손에는 그 옆 베이커리에서 팔던 빵 봉지를 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고 거리고 나섰다. 언젠가 하바나에 다시 간다면, 나는 이곳에 다시 갈 것이다. 꼭!



2. 나폴레옹 박물관(Museo Napoleonico)

프랑스도 아니고 무슨 쿠바에 나폴레옹의 박물관이 있나? 처음 이 장소를 가이드 북에서 찾았을 때 그렇게 생각했지. 그리고 박물관이라고 해 봤자 뭐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하바나 대학교에서 은근 가까운 위치에 있던 이 4층 규모의 박물관에는 무려 7000여점이 넘는 나폴레옹 관련 물품이 전시되어 있었지. 그 구색은 그가 입었던 옷과 그가 잤던 침대에서부터 그의 기병대가 사용했던 창, 칼, 총 그리고 대포까지 없는 것이 없었지. 도대체 왜 누가, 비행기로도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프랑스에서 이 물건들을 여기다 가져다 놓았을까?

그렇다. 이 기적 같은 박물관은 두 명의 수집가, - 라고 쓰고 '오덕후'라고 읽는다. - 일명 사탕수수 재벌이라고 불리던 훌리오 로보(Julio Lobo)와 정치가 어레스떼스 페레라(Orrestes Ferrara)의 나폴레옹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이루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그 중 한 명인 어레스떼스 페레라(Orrestes Ferrara)의 초상화. 이 박물관도 사실 그의 저택이었다고 하더만. 나는 아마 평생 이런 집에서는 살 수 없겠지. 한번 정도는 살면서 청소, 빨래, 설거지도 해 보고 싶은데 말이지(...)

아무튼,

3CUC 정도의 저렴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그곳에는 눈 돌리는 곳 마다 나폴레옹의 유물이 가득 했다. 반 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현관을 지나 1층과 2층 중간 정도에 위치한 홀에 들어섰을 때, 나는 층별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그 모습에 나는 왠지 가슴이 뭉클해서 한참을 바라보았지. 한참 전에 읽었던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에 등장했던 '르네 아주머니'가 생각나더라고. 그때 내가 들어온 것을 알아챈 할머니가 천천히 일어나 내가 다가왔어.


르네(?) 아주머니 : Welcome! 괜찮다면 이 방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 설명해 줄까?
나 : 아....네...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누군가의 가이드를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안다. 이 설명이 끝난 뒤에 그들은 돈을 요구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요청을 들었을 때 내 안의 비뚤어진 마음은 그 순간 친절과 인정으로 생각했던 그들의 행동이 하찮은 상행위로 평가절하 해 버릴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런 나의 비뚤어짐이 싫어서 언제나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 번에는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내 눈에 들어온 주름 가득한 손과 하얀 머리, 하지만 그 아래 검은 진주색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 - 기대와 따뜻함이 그곳에는 공존했다. - 를 마주한 나는 항복했다. 그리고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꽤나 놀랐고, 재미있었다.



그녀는 나폴레옹 기병대에 속했던 기라성 같은 장군들의 이름을 10여명이 넘게 암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의 전시장에 있던 기병대의 모형에서 하나하나 그들을 짚어냈다. ...제일 앞에 있는 것이 나폴레옹. 그 오른쪽 뒤에 서 있는 말이 후에 베스트팔렌 지역의 왕이 되는 그의 동생...그의 장군 중에는 누가 가장 용맹했고...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이야기하는 그녀의 설명 중 65%는 알아 들을 수가 없었지만 언젠가 KOEI의 게임에서 마주했었던 그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나올 때 마다 나는 감탄사를 내 뱉었고 그럴 때 마다 신이 난 그녀의 설명은 더욱 열기를 띄었다.

...나폴레옹이 입었다고 알려지는 수많은 옷이 있지만 이 옷 만큼은 그 누구도 진위 여부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다고 한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옷의 모든 단추에 새겨진 나폴레옹의 이니셜..

그렇게 그 홀을 전부 돌면서 설명을 들은 나는, 그녀가 팁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돈을 먼저 내밀었다. 

그래, 이렇게 하면 이 모든 것을 호의라고 생각한 나의 착각을 지킬 수 있겠지.

여기에서 그녀가 그 돈을 정중히 거절했다면 그것은 정말 소설의 한 장면이 되었겠지. 나는 꽤나 부끄러워 하겠고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정말 쿠바의 르네 아주머니로 아마 평생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건 다들 알지. 그녀는 기쁘게 돈을 받고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어. 그리고 내가 들어올 때 그녀가 있었던 그 창가의 의자로 돌아가 책을 펴고, 천천히 물을 마셔가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준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전혀.

그렇게, 평생 동안 또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나는 천천히 꼼꼼히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건물을 올라갔다. 정말, 대단할 정도로 사소하고 많은 것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고 상태도 훌륭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몇 개 소개하면...


교황을 앉혀 놓고 그의 대관식 진행 과정을 지시(?)하는 나폴레옹의 그림. 철두철미한 그의 성격과 당시 그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설명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황후의 자세와 표정이 색다른 포인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그가 사용했던 침대. 그 머리맡에 걸린 그림은 나폴레옹이 죽을 때를 그린 그림으로 그 그림 속의 침대와 진짜 침대를 비교할 목적으로 같이 전시한 것으로 보인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꽤나 고급스러운 자재로 만들었다는 점과, 그의 짧은 신장을 짐작할 수 있는 아담한 사이즈가 인상적이었던 수집품이었지.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서관. 나폴레옹과 관련된 책과 문서자료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긴 보여줘도 알아 볼 수 없었겠지.

그 도서관은 스페인식 타일이 깔리고 그리스 스타일의 기둥이 인상적인 테라스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말 멋있었다. 저 멀리 말레콘부터 스페인 요새까지 하바나의 랜드마크들이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이 곳. 문득 이 좋은 위치에 이런 좋은 집을 짓고 이렇게 물건을 모으려면 정말 꽤나 잘 살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혁명으로 인해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몸만 달랑 미국으로 도망가야 했었던 그 부자들은 정말 피눈물이 나왔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건물을 다 보고 슬슬 나갈까 싶었는데, 홀에 앉아 있던 르네 아주머니가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가가니, 이제 뒤의 정원이 열리니 거기도 보고 가라고 말씀하시더라. 사실 뒤의 정원은 사람들이 잘 몰라서 지나치는 곳이니 거기도 가 보라고 웃으면서 알려주는 그 모습이 너무도 고마웠지.

그 정원에는 작은 나무와 작은 분수와, 그리고 나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던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작은 벤치에 앉아 흐리지만 하늘을 보면서 조용하고 여유 있는 짧은 시간을 보냈다. 목적 없고 제한 없는 휴식. 이게 또 다른 여행의 묘미이지. 

거기 더 앉아 있다가 고양이와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정이 들까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 옆에 있는 작은 별채로 들어갔는데...그곳에는 나폴레옹의 기병대가 사용했던 온갖 총, 칼, 갑옷, 그리고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작은 병영이나 병기창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감동, 또 감동.

도대체 이 작은 대포로 무엇을 할까 싶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크기는 작고 바퀴는 커야 알프스 산맥이라도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다양한 종류의 기병 권총. 말을 탄 상태에서 쏘는 총이라서 그런지 역시 작고 아담하다. 그 밖에도 많은 전시물들이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올리는 것으로 하자.

무한 반복되는 나폴레옹의 행진에 슬슬 아내가 지겨워하는 듯 했다. 하지만 트리니나드로 향하는 차편 예약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기에 우리는 다른 곳도 좀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나.

쿠바(Cuba),2일차:Havana,雨, 기막힌 이탈리안 피자 그리고 魔都狂夜 - 쿠바(Cuba)


 파파 어네스토에서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하늘색이 심상치 않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들. 광장 옆의 스페인 요새를 잠깐 구경하고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폭우가 쏟아진다. 관광객들은 이리 저리로 흩어지고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도로는 금방 흙탕물이 차 올랐다. 그 안에 무엇이 섞여 있는지 상상도 하기 싫은 그 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관광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나와 아내는 숙소로 돌아가 비가 그친 뒤 밤 거리를 거닐기로 했다.

 하바나의 밤 거리를 구경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우리의 머리에 그려진 하바나의 야경은 이랬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들었던 것 같은 흥겨운 음악들이 거리의 술집마다 흘러나오고, 그 중 한 곳에 앉은 나와 아내는 저렴한 가격의 칵테일과 맛있는 열대의 과일, 그리고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겠지. 화려한 색깔의 옷으로 꾸며 입은 선남선녀들이 과거 스페인의 영광과 혁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멋진 거리로 나와 밤새 춤을 추고 우리는 그걸 흐믓한 혹은 므흣한 미소를 지으면서 구경하는 것이지...비바 하바나! 

껑충껑충 침수되지 않은 인도를 뛰고 넘어 황급히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샤워를 하고 발을 몇 번이나 닦아내고 있다가 일어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 둔 뒤 잠을 청했다. 정말 꿀 같은 잠.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어느덧 서너 시간이 지나 있었다. 창을 살짝 열어 밖을 보니 거리에는 어둠과 습기가 가득했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다시 나가자.

 그런데 어디로 가지?

 쿠바의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다른 관광객들이 가는, 그런 흔하고 - 비싼 - 장소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이 저녁에 무엇을 먹고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나와 아내는 하바나 주민들의 밤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호텔 주인장이 준 작은 메모에 써 있던, '현지 사람들이 춤추러 가는 거리'의 이름을 핸드폰 지도에 입력해 두고,  이 근처에서 사람들이 밥을 즐겨 사 먹는 곳을 확인 한 뒤 그곳으로 향했다. '이탈리안 파스타와 피자를 파는 곳'는 평을 보고 나는 아주 만족스러웠었다. 그래, 아마 파인애플이 잔뜩 올라간, 열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피자를 먹을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현실은 내 뒤통수를 꽤나 심하게 때렸다. 

숙소에서 몇 블록 떨어진 그 앞에서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빈손에 슬리퍼를 끌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들고 온 아주머니도 보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영어는 숫자 밖에 모르는 주인장을 붙들고 어떻게 주문을 했다. 그런데 CUC을 받아가서 나온 잔돈 CUP의 양이 적은 듯 했다. 하지만 따질 수도 없었다. 말이 안 통하니까. 그러고 보니 현지인 식당에서 CUC을 내면 이런 일이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좀 찝찝했지만 넘어가자. 뭐, 음식이 맛있으면 용서할 수 있지.

그래서 나온 음식이 바로 아래 사진과 같았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 혹은 머리에서 기억하기를 거부하는 것일 수도 - 이탈리안 파스타. 이탈리안 소시지 토핑을 추가한 모습이다. 딱 세 장의 소시지가 퉁퉁 불은 면발 사이에 파 묻혀 있었다. 어찌나 불었던지 포크로 뜨면 면이 중간에서 뚝뚝 끊어졌었다. 게다가 치즈라고 뿌려준 파마산 치즈의 양은 정말 개미 눈물 정도였다. 그릇을 받아 들고 그 주인장을 한번 바라보니 그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뭐 어쩌라고!

그래도 파스타는 모양과 색깔이 파스타 같기는 했다. 이제 피자를 보자.

나름 파인애플 토핑을 추가했는데 파인애플이 토핑인지 치즈인지 알 수 없는 재료에 파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쫀득하지 않고 물컹물컹한 피자는 약간만 손을 기울여도 마치 눈 사태를 직전의 설산처럼 그 형태가 천천히 함몰되어 갔다. 도우, 치즈, 토마토...피자에 쓰는 재료가 들어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 이런 구조로 결합해 놓고 피자라고 부르는 것은 피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의 피자를 보지 못한 공산주의 치하의 하바나 서민들은 앞 다투어 이 피자를 사갔고 맛있다고 미소를 지어가면서 그 자리에 서서 피자를 마셨다(?). 그 즐거워하는 분위기에 못 이겨 나와 아내도 파스타와 피자를 꾸역꾸역 먹었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배를 붙들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그래, 배를 즐겁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귀는 즐겁게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몇 블럭을 또 걸어서 갔다. 가로등은 없고 바닥은 구정물로 뒤덮이고 머리 위로 뻗어나온 하수 파이프에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오수가 폭포수 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거리 구석 구석에 쌓여있던 쓰레기는 그 물을 한 껏 빨아들여 묘한 냄새를 내면서 썩어가고 있었다. 모든 거리가 이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깔끔 떠는 내 성격에 이 풍경은 정말 참상 그 자체였다. 그래도 어떻게 그 거리를 통과 해서 목적지로 삼았던 Casa de la Musica de Miramar의 근처의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허공의 모든 신호등은 노란불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2차선 도로는 노점상, 술장사, 춤추는 사람들, 클럽 호객군,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 그리고 오수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100여 미터 간격으로 거리를 따라 양쪽에는 경찰들이 서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중범죄만 참견하려는 듯 오줌을 싸든 침을 뱉든 아무런 상관하지 않았다. 

 현지 사람들은 웃고 즐기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간혹 보이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로 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끔 정말 간이 큰 관광객들이 호객군을 따라 어딘가의 클럽으로 사라지곤 했지만 나는 도무지 거기 동승할 수 없었다. 이 거리는 정말 무질서 그 자체였다. 조용한 재즈가 아닌 싸구려 팝송이, 맛있는 칵테일이 아닌 마리화나가 반 섞인 시가가 - 마른 해골 같은 아저씨가 나에게 히죽히죽 웃으면서 내밀던 하얀 종이에 싼 그 시가 - 이 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탁류와 광기에 휩쓸려 추고 또 춤을 추었다.

나는 그러기 싫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거리 옆의 인터넷 광장에서 다시 숙소 위치를 확인한 우리는 우리의 침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바나의 마지막 밤 - 물론 캐나다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와야 하지만 - 을 이렇게 끝내야 한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더 이상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했던 하바나의 이미지는 겨우 이틀 동안 너무나도 쉽게 산산조각 나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그 쓰라린 조각 위를 걸어 다닐 수 없었다. 

여기는 아닌가 보다. 일단은.

숙소로 오는 길, 그래도 뭔가 있을까 싶어 말레콘으로 나가 보았다.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과 비, 그리고 무언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크고 요란하게 들려오는, 낡은 건물들 중 어디 인가의 삐걱거리는 소리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묵묵히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잤다. 맹렬히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거리의 사람들은 춤을 추겠지.

캐나다 704일차, 근황 日常.Etc

1.

4월. 여러모로 다사다난 했던 달이다. 아내는 곧 졸업을 하고 내 취업 비자는 기간이 만료된다. 영주권은 없지만 그래도 돈은 벌었으니 세금 신고도 했어야 했다. 이런저런 일에 중년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나는 폭풍 앞의 갈대처럼 이리 휘청이고 저리 휘청였다. 그러니 포스팅을 할 겨를이 있나.

2.

한국의 세금 신고에 비하면 캐나다의 세금 신고는 정말...뭔가 번거롭다. 혹은 나의 개인적인 신상 문제 때문에 일이 복잡했었을 수도 있지.

일단 나는 시민권자도 영주권자도 아니라서 인터넷으로 세금을 신고할 수 없었으며,

세금용 프로그램을 돈 주고 사기 싫어 어떻게 우체국에 있는 세금 포멧으로 해 보려 했는데 이게 복잡하기가 대중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좀 얻을까 싶어 무료 세금 클리닉을 찾아가 보았더니 개인 사업자는 도와줄 수 없다고 하고, 

결국 돈 주고 산 프로그램으로 혼자 이틀을 끙끙거려서 신고를 하긴 했다. 돈을 더 내도 좋으니 다시 하라는 말만 하지 않기를.

3.

취업 비자가 끝나면 또 강제 백수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제는 정말 일을 하고 싶다. 그것도 남 밑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작더라도 내 것을. 금년에는 꼭! 뭐 하나라도 내 힘으로 팔아 보련다.

4.

그리하여 쿠바 여행기는 또 3개월이 지나도 완성하지 못한 불운한 자식이 되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쿠바(Cuba),2일차:Havana,렘브란트와 향수, 그리고 허밍웨이 - 쿠바(Cuba)


힘들면 재미없다. 멋진 거리도 아름다운 날씨도 몸이 피곤하면 다 보기 싫을 뿐이다. 그래서 나이 먹으면 먼 곳으로 떠나기 힘들다. 이것이 나의 지론이다.

환전 과정에서 체력이 방전된 나는 쉬고 싶었다. 그렇다고 숙소에 들어가는 것은 싫고. 그럴 때 쉬면서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한적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다. '한적한'이라는 형용사가 중요하다. 루브르나 오르세는 그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이지. 그곳에서는 오히려 더 피곤해질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쿠바 국립 미술관은 참 쉬면서 여행하기 좋은 장소이다.



1. 쿠바 국립 미술관 제2관

어제 샀던 표로 입장. 공짜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뿌듯하다. 하바나에서 미술관을 도는 관광객은 드물다. 그러니 조용하고 한적하다. 이 미술관 전체가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전시된 작품들도 부담스럽거나 유난 떨지 않는다. 매 시점 각각의 관점에서 소중한 작품과 유물들.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에는 평범한 작품들.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마주하는 명망있는 작가의 작품들. 마치 '우리 미술관을 깔보지 말라고!' 라고 뻣대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엘그레코(El Greco). 마주하면 한 눈에 그의 작품인지 알 수 있어 좋다. 게다가 그 이름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친숙하다. 이태원의 옛 집 근처에 있던 괜찮은 그리스 요릿집 이름이 '엘 그레코'였지. 지금도 수블라키는 맛있으려나.


그러다가 또 마주한 익숙한 화풍의 작품... 램브란트(Rembrandt).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이 걸려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미술관에 속한 작품이 아니라 놀러온 관광객을 보는 느낌이랄까. 꽤나 오랜 시간을 걸려있었는지 낡은 그림은 꽤나 색이 어둡게 변했지만 그 특유의 온화함과 부드러운 표정은 여전히 탁월했다. 나는 램브란트, 엘 그레코를 좋아한다. 피카소와 달리도 좋아한다. 르네 마그리트도 좋아한다. 왜냐고? 바로 그 들인 줄 알아볼 수 있으니까! 반가운 친구를 만난 기분 이랄까. 이날도 램브란트 앞에서 한참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이네.

앉아서 쉬면서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하는 와중 나의 눈에는 층별 관리인(?)의 모습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사람도 없거니와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된 곳도 아니었기에 솔직히 그들은 할일 없어 보였다. 그런 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핸드폰 삼매경. 십자가에 걸린 예수님 옆에 서 있던 저 아가씨도 그랬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이었던가. 옛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건축에 반영하려 무던히도 노력했던 이유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그 건축의 미학으로 인해 선해지고, 행복해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 안에 있어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저 관리인은 이 건물에서 최소 6시간 이상을 보내겠지. 이 세상의 걸작들에게 포위되어 있는데 과연 그 혹은 그녀의 예술적 소양은,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는, 인류에 대한 사랑은 증가했을까? 아니, 아니겠지.

결국 닭을 닭 보듯이 하고 소를 소 보듯이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미술관의 다른 한쪽 건물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좋아하는데, 아직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색의 폭포를 마주한 적이 없다. 언젠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의 향연을 맞을 수 있겠지. 하지만 Not today, not today.



2. Old Havan, Havana 1791

 체력이 회복되었으니 다시 길을 나섰다. 새로운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곳. 어제 가지 않고 아껴 두었던 올드 하바나(Old Havana)로 나와 아내는 향했다.

 산책의 시작 지점이 되었던 성 프란시스코 아시시 성당(San Fransisco de Asis). 지금은 예배당이 아닌 콘서트홀로 사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혹시 지나가다 좋은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나 싶어서 가 봤는데 그런 행운은 없었다. 

그 뒤로 펼쳐진 거리에는 오랜 이발소, 가게, 약국, 소매점, 총포상(!)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 적당히 예쁘게 꾸며져 있던 가게들. 그나마 다행인건 이 거리를 퀘벡의 어느 골목 마냥 H&M과 베스킨라빈스와 스타벅스가 점령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하지만 곧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 우울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나와 아내는 이런 가게에서의 쇼핑은 지양하는 편이다. 파는 물건이 그렇게 싼 편도 아니고, 파는 물건의 질이 좋은지 나쁜지 사전 정보가 너무 적은 상태에서 꼭 필요하지 않는 물품을 사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이런 말 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하지만 난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적당한 가격에 질 좋은 물건이, 그것도 여러모로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 물건이 이 오랜 옛 건물을 지나는 동안에 눈에 들어왔으니 바로 향수였다.

일단 우리의 눈길을 사로 잡은 건 깔끔한 외관의 건물과 큰 윈도우에 보란 듯이 전시되어 있던 옛날 방식의 향수 제조장치. 반짝반짝 황금색으로 빛나는 실험 도구처럼 보이는 물건은 언제나 나를 매료 시킨다. 저 장치에서 무엇을 넣으면 무엇이 나올까. 나는 홀린 듯이 그 건물로 들어섰다.

그러자 펼쳐지는 자극의 향연. 아기자기 예쁜 병들이 시선을 자극하고 - 내 취향이다. - 시향지를 흔들 때 마다 퍼지는 다양한 향기가 후각을 즐겁게 했다. - 아마 이건 아내의 취향일 것이다. - 향에 민감한 아내는 천연재료를 사용해서 옛 방식으로 만드는 이 곳의 향수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가격은 약간 높은 편이었지만 작은 병을 산다면 우리의 박한 예산 내에서도 한 두 병 정도는 향수를 살 수 있을 듯 했다.

이걸 사고 싶다고 손가락으로 향수를 가리키자 점원이 그 사이즈에 맞는 병을 가지고 와서 큰 유리병에 담긴 향수를 직접 담아서 꾹꾹 봉해준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우리 향수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곳이라고. 아 그래서 여기 이름이 Havana 1791인가.

한쪽 벽에 그려진 화학 기호와 세련된 디자인에서는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하지만 약간은 낡아 보이는 향수병과 열대의 나무로 만들어진 묵직한 색의 가구들. 그리고 강하지 않고 은은한 향수의 향에서는 옛 시절의 따뜻함과 그리음이 무더 났다. 나는 왜 이리도 오랜 것들이 좋은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더 빠르고, 더 복잡하게 변해갈 것이기에 벌써 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왜 나는 이리도 옛 시간들을 그리워 하는지.



3. Papa Ernesto

 옛 건물들과 상점들, 그리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플라자 비에자(Plaza Vieja)가 나왔다. 뭔가 먹을 것이 있을 것 같은 곳이었으며 뭔가 먹어야 할 타이밍이기도 했다. 골목을 누비며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으면서도 맛있어 보이는 곳을 우리는 찾아 헤맸다. 해 보면 알겠지만 이 조건에 부합하는 곳을 찾기는 정말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해 냈다.

결국 인생의 상당 부분은 타이밍이다. 우리가 이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모든 좌석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리에 앉아 우리는 쿠바노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영화 'Chef'에서 그렇게 맛나게 쿠바노 샌드위치를 묘사하던데, 결국 하바나에서 그걸 먹어보는구나. 먹어보질 않았으니 이 샌드위치의 맛이 이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맛있었다. 결국 맛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맛난 샌드위치에 자신을 얻은 우리는 레몬파이를 오랜지 주스와 함께 주문했고, 아내는 맛있게도 먹었다. 나는 시간이 난 김에 밀린 일기장을 꺼내 눈앞의 광경과 지금까지의 느낌, 그리고 얼마나 돈을 찾았고 어떻게 돈을 썼는지를 기록했다. 내가 앉은 이 곳의 이름은 파파 어네스토. 쿠바 사람들이 허밍웨이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그 이름 아래서 나는 겨우 일기를 끄적이고 있다니 왠지 숙스럽기도 했지만, 그 일기의 내용이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오르고 있으니 약간 정도는 면이 서는 것 같기도 하다. 골목의 그늘에서 땀은 식어가고, 혈액 중에 올라가는 당분의 힘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향기를 맡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 있는 힘껏, 나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느낌. 좋다. 이것이 바로 여행에서 찾고자 하는 수많은 행복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기분 좋은 낮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에 무슨 아수라장을 만나게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쿠바(Cuba),2일차:Havana,말레콘, 군인 그리고 환전 - 쿠바(Cuba)


 이날도 일찍 일어나버렸다. 이러지 않았는데. 삐걱거리는 침대에서도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좁디좁은 비행기의 좌석에서도 나는 잘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언제나, 옅은 향 냄새처럼 내 안에는 아직 피로함이 떠돌고 있겄만 나의 눈은 야속하게 열려버린다. 창 밖으로는 아침 해나 혹은 아직 다 떨어지지 못한 달이 나를 보고 서글프게 웃는 듯 하다. 마흔. 나는 점점 늙어간다.

 내가 일어난 풀에 잠에서 잠깐 깬 아내는 인터넷 카드를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가게의 오픈 시간이 아홉시 반이었던가. 내가 일어난 시간은 아직 일곱시 반. 나는 남은 두 시간 동안 천천히 샤워를 하고 꼼꼼히 소지품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산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1. 말레콘(Malecon)

난 1박2일도 보지 않고 분노의 질주도 보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이 장소가 방송이나 영화에 나온 곳이라고 해 봤자 아무런 감흥이 없다. 게다가 청결과 정리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나에게 아무리 이 곳이 하바나를 대표하는 '이쁜 해안'이라고 이야기 해 봤자, 제대로 청소도 안된 보도를 지나 매연을 뿜으며 질주하는 차 사이를 겨우 피해 도착한, 거의 다 무너져갈 것 같은 건물 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이 좋게 보이겠는가. 


다만 오직 아름다운 것들은 사람들 뿐. 어떤 물을 먹고 자랐는지 알 수 없는 고기를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어가면서 잡는지. 저걸 가져가서 어떻게 먹을지가 먼저 걱정인 소심한 이 여행객과 달리 그들은 노래하고 떠들고 행복해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저녁 노을이 지고 하늘이 좀 더 맑고 그들이 파나마 모자라도 쓰고 있으면 더 멋졌을 것인데. 나는 바다가 아닌 그 사람들을 한참 바라보다 여기저기를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2. 젊은 군인

 숙소 길 건너의 큰 호텔과 스페인 대사관 사이에는 작은 박스같은 통신사 판매부스가 있다. 그 곳에서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필요한 인터넷 카드 - Wifi card지만 내 맘대로 인터넷 카드라고 하겠다 - 를 그곳에서 파는 것은 알고 있지. 사실 어제 저녁에 살까 싶었는데 그 앞에 늘어선 줄이 너무 길어서 이날 아침에 일찌감치 가서 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지.

30분이나 먼저 도착한 그 박스 앞에 녹색 군복의 색이 선명한 한 군인이 서 있었다. 딱 봐도 상당히 어려 보이는 그 젊은 친구는 자신의 상의 앞 주머니에 핸드폰을 꽂아 두고 있었다. 굳이 왜 그런 것이 눈에 들어왔냐면, 그 친구의 핸드폰에서 꽤나 큰 소리로 아침 공기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빰빠가빠가빰빰 차카차카 빰빠가빠가 빰빰. 뭐 이런 느낌이었나. 그 현란하고 싼티나는 음악은 군복과 건장한 체격에서 느껴져야 할 위엄과 듬직함을 몽땅 집어 삼키고 이 젊은 친구를 옆집의 철없는 고등학생 같은 오라로 덧칠하고 있었다.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기는 한데, 그 음악을 30분 동안 같이 듣고 있기에는 너무 시끄러웠고 취향의 저편에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뒤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건만 그 음악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그 음악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오로지 나만, 그 음악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여기서 이런 방식으로 외로움을 느낄 줄이야.

이윽고 왠지 짜증 난듯한 부스 직원이 저 멀리에서 걸어오더니 긴 줄의 가운데를 뚫고 박스 뒤쪽의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10분 정도 늦으면 사과 정도는 하라고!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공산주의 관료제에서 느림은 하나의 미학이겠지. 괜히 피 보기 싫었기에 나는 조용히 있었다. 이윽고 부스 앞의 작은 창문이 열리고 마침내 그 군인은 자신의 가슴에서 울려퍼치던 음악을 끄고 - 하나님 감사합니다. - 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정말, 30초도 못 되어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통신사 종업원에게 면박을 당하고 줄의 제일 뒤로 쫓겨났다. 아마 이때만큼 스페인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쫓겨났는지 너무 궁금했으니까.

망연자실한 군인은 잠깐 멍하니 서 있다 터덜터덜 줄의 제일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의 나는 30초도 안되어 원하는 카드를 사서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돌아가는 도중 저 멀리서 그 음악 소리가 또 들려왔다. 빰빠가빠가빰빰 차카차카 빰빠가빠가 빰빰.



3. Hostal Peregrino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숙소에는 진한 햇볕이 에스프레소 마냥 직원과 손님들을 깨우고 있었다.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하는 사람들. 무언지 알 수 없는 서류를 정리하느라 분주한 지배인. 청소를 하고 손님들에게 안내를 하는 직원들 등등. 바쁘게 돌아가는 여행자 숙소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설레이게 한다. 내가 그 흐름의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마다 나는 내가 여행 중임을 다시 실감한다.

내일, 우리는 이 곳을 떠나 트리니다드(Trinidad)로 향한다. 하지만 이 숙소에서의 시간이 나쁘지 않았기에 나와 아내는 여행의 마지막이 될 하바나의 하루를 또 이곳에서 머물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트리니나드로 향할 택시도 이 숙소의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우리의 생각을 밝히자 지배인은 기분 좋게 웃으며 추가 숙박과 택시 예약과 관련한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동안 나와 아내는 천천히 숙소 내부의 사진을 찍었다.

나무로 만든 아프리카 - 의 것으로 추정되는 - 공예품과 하바나의 흑백 사진들. 내 취향이다.

체크인, 체크 아웃 동안 손님들이 앉아서 기다리는 대기석(?). 여기저기 보이는 찰리채플린의 영화사진과 피규어에서 주인장의 취향을 약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서류가 다 준비되었고 돈을 미리 지불하고 서명 또 서명. 영수표를 받고 있자니 아침 식사가 다 준비 된 듯 하다.

어제와 비슷한 느낌의 아침 식사. 과일은 신선했으나 뭘로 만들었는지 알기 어려운 소시지. 그리고 보온병의 커피. 하지만 역시나 맛있는 스팸. 나는 즐겁게, 아내는 약간은 괴롭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바깥으로 나섰다. 아 정말, 이 식사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이 숙소는 80점 이상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구나 아쉬워.



4. Today's

레스토랑에서 무얼 먹을 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으레 '오늘의 ~' 시리즈를 선택하곤 한다. 오늘의 커피, 오늘의 스프, 오늘의 샐러드...'오늘의' 시리즈는 책임을 전가 할 수 있어서 좋다.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맡긴다는 것은 신뢰를 상징하기도 하겠지만 과다한 관계와 정보에 치인 현대인 - 혹은 나 - 에게 있어서 '나는 더 이상 고민하고 선택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포기 선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긍정적인 포기. 그리고 가끔은 필요한 포기. 우리는 더 이상 선택하고 싶지 않아.

여행지에서는 모든 것을 '오늘의' 시리즈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냥 발 닫는 대로, 눈 가는 대로 간 뒤 모든 책임은 여행지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것이지. 혹은 여행지의 '덕분'으로 돌려버리거나.

오늘의 날씨는 내가 지금까지 하바나에서 보낸 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 (이봐 겨우 2일 있었다고)

맑은 날씨 때문 인지 아니면 토요일이기 때문인지 오늘 이 거리에는 예술가들이 가득했다. 캔 따개로 만든 가방에서 낡은 커피 포대로 만든 가방까지. 물감으로 그린 온 갖 그림에서 어느 시대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골동품까지. 그 사이로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면서 놀고 옆 벤치에는 노인들이 앉아 체스를 둔다. 그림 같은 풍경. 그러고 우리에게는 어제 보다 만 국립 미술관 제2건물의 표가 있었지.

하지만 그 전에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돈을 바꿔야 한다는 것. 

생각보다 씀씀이가 커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공항에서 바꾼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트리니다드에서 돈 바꾸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으니 그래도 수도인 하바나에서 환전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시작이 문제였다. 그냥 모든 돈을 공항에서 바꾸고 왔어야 했다는 것이지.



5. 환전

구글맵으로 환전할 수 있는 곳, 즉 환전소를 찾아간 우리는 그곳에 늘어선 줄을 보고 기암을 했다. 무슨 놈의 줄이 이렇게 긴건가. 게다가 그 와중에도 시시각각, 누군가는 택시를 타고,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어떤 이는 걸어서, 어떤 이는 스쿠터를 타고 환전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나도 황급히 줄을 섰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1시간 안에 끝날 줄이 아니었다. 게다가, 소위 환전소라고 불리는 장소는 정말 떡볶이 파는 노점 리어카 두 개 정도의 크기로, 몰려드는 인파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은행 강도라도 있는 모양인지 알 수 없지만 안에서 문을 잠그고(?!) 한 명씩만 들여보내 돈을 바꿔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창구는 3개에 직원도 4명이나 있는 주제에 말이다! 좋은 날씨 덕에 기온은 점점 올라가고 있었고 이 상황에 아내를 내버려두면 아마도 곧 폭발하겠지. 나는 아내에게 아침에 산 인터넷 카드를 쥐어주고 어디 공공 인터넷이 되는 장소에서 앉아 있으라고 보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돈을 바꾸기 위해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내 앞의 러시아 커플은 서로 싸워 댔고, 내 뒤의 브라질 여자에게는 환전 암상인이 접근해서 돈을 바꾸라고 추근거렸다. 그리고 경찰 사이렌이 울리고 순찰차가 도착하자 와 하고 여기저기있던 암상인들이 각자의 수단으로 도망갔다. 애초에 경찰은 그 사람들을 잡을 생각은 없었는지 주변을 정리하고 또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러자 또 암상인들이 다가오고...무질서 무질서 혼돈 혼돈.

...무질서와 불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독일인들은 기꺼이 불의를 선택한다...고 어디서 그랬던가. 이 꼴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지. 암암.

어느덧 시간은 1시간 하고도 20여분이 지났고 나는 에어콘이 잘 돌아가는 환전소에서 무사히 돈을 바꿀 수 있었다. 망할. 오전 내내 이 햇살을 즐겨야 하는데 여기서 이미 다 지쳐버리다니. 나는 인터넷을 하고 있을 아내를 찾아 터덜터덜 거리로 나섰다. 앞으로 돈은 무조건 공항에서 다 바꿔 다니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