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동부(6일차),퀘벡(QC):몽모랑시 폭포와 문명박물관 - 캐나다(Canada), NB/QB/ON




1.

퀘벡에서 맞이하는 두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약간 졸린 눈으로 부엌으로 내려가 Bnb 주인장 다니엘의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향긋한 크레페 냄새, 꿀과 초콜릿과 과일향이 고요한 공기사이를 부유하고 있을 때 다니엘이 물었습니다.

"오늘 어디 갈 예정이야?"

"음...숙소 근처에 폭포가 있다고 들어서 우선 거기에 가 볼까?"

"아~ 아직 몽모랑시 폭포(Chutes Montmorency)를 보지 않았구나! 우리 숙소에 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곳이 그곳이거든. 꼭 가보는 것이 좋을거야.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넓지는 않지만 더 높다구!"

...퀘벡 사람들의 자기고향 사랑 - 하기는 자기 고향 좋아하고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서도 - 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어제 아침 먹을때 이야기 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찌 그걸 또 기억하고 있더군요. 사려깊고 기억력 좋고 향토애가 넘치는 다니엘입니다.

아무튼,

저와 아내는 아침을 먹으면서 몽모랑시 폭포의 입구 및 주차장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이지요. 날씨는 조금 흐리지만 좋은 풍경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식사를 마친 저희 부부는 몽모랑시 폭포로 차를 몰아 갔습니다.



2.

몽모랑시 폭포를 방문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폭포 위쪽 지역에서 접근하는 법과 폭포 아래쪽으로 접근하는 법. 대형 주차장이 있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폭포의 아래쪽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천길만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엄청난 물줄기의 높이와 폭포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위해 걸어야 하는 계단의 숫자에 질려버립니다. 반면, 폭포 위쪽으로 오면 입이 떡 벌어지는 폭포의 위용을 보기위해서는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지만 공원처럼 조성된 산책로와 다리, 폭포 주변의 벤치를 쉽게 걸어서 즐길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저와 아내는 폭포 위쪽 루트를 택했습니다. 언제나 공짜로 주차장을 제공하는 맥도널드도 근처에 있었기에, 커피 한잔을 사고 가장 구석진 곳에 차를 주차시켜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산책을 나온 인근 주민들의 무리에 섞여 폭포로 나아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폭포로 다가갈 수록 콰아아 하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커져옵니다. 공원에 조성된 나무 너머로 바람도 불어오는 것 같고, 그 바람에는 물방울도 섞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설치된 나무 계단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와락하고 폭포의 풍경이 눈을 가득 채웁니다.

정말 크고 아름답더군요.

솔찍히 대도시 근처에 폭포가 있어봤자 얼마나 크겠냐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제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폭포의 '폭'은 그렇게 넓지 않았습니다만 그 높이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폭포의 양 옆으로는 그 아래쪽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마치 하늘로 기어오르는 이무기처럼 길게 뻗어 있었고 그 이무기의 등을 타고 관광객들이 폭포 위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봐도 보일 정도로 헥헥 거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폭포 양쪽으로 오르는 두 줄기의 계단을 집라인이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설마 이 폭포를 저 가느다란 철선 하나로 가로지르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있더군요. 가격은 약간 비싼 편이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저와 아내는 돈 내고 스스로를 고통에 밀어넣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에 타고오는 사람을 보며 엄지척을 날려주는 것으로 집라인에는 신경을 껏습니다.

여름이라 물이 많은지 큰 폭포 줄기 주변으로 작인 물 줄기들도 여기저기 터져나오고 있었습니다. 도시 주변의 큰 물은 강이나 수원지 정도만 보던 촌놈에게 이렇게 도시 옆 큰 폭포라니 나름 큰 충격이었습니다. 선선한 온도에 적절한 수분에, 마냥 벤치에 앉아 폭포를 보면서 책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또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폭포를 떠났습니다.

이번 폭포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침실에 폭포를 설치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겠네요.



3.

다음 목적지는 문명 박물관(Musée de la civilisation)이었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간혹 오타와(Ottawa)의 역사박물관(Canadian Museum of History)을 문명박물관이라고 설명하는 글을 볼 수가 있는데 이쪽이 문명박물관 입니다. '문명5'로 입덕해서 아직도 가끔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저는 이 박물관의 이름이 꽤나 오만하게 들리더군요.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물건이 들어 있기에 박물관 이름에 '문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말이지요.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와 올드 퀘벡과 해안 도로가 만나는 어디쯤에 위치한 이 박물관 근처에는 매우 편리하게도 제법 크고 가격도 괜찮은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박물관까지 거리는 걸어서 약 3분 정도? 저와 아내를 짜증나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박물관의 첫 인상은 매우 좋았습니다.


박물관의 외관입니다. 프랑스 문화가 강세인 이곳 퀘벡의 박물관에 왜 빅벤이 떡하니 그려져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 기획전의 주제가 '영국문화' 더군요. 특별 전시회장 입구의 영국 택시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을 확 잡아 끌었습니다.

그 외 다양한 영국의 문물들이 런던의 익숙한 동네이름들과 함깨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비틀즈와 존 레논, 섹스 피스톨즈, 패션 등등. 꽤나 잘 꾸며진 컬렉션에 살짝 놀랬습니다.

일반 전시회장에서는 서구 문물의 발전사 전체를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었던 물건들로 조관해 보겠다는 야심찬 발상의 결과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시대별로 문물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용도와 특징에 따라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물품을 한번에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은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밀레니엄 팔콘의 장난감이 고대 연극에 사용되었던 돌판 마스크와 함깨 있었던 것이겠지요.



4.

그 다음 전시관에는 퀘벡의 문명, 산업, 역사와 관련된 전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잘 만들어진 알아브라함 평원 전투(Battle of the Plains of Abraham)의 디오라마가 담당하고 있더군요.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는 북미 식민지역의 주도권을 영국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 이 전투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할말이 많아서요. 하지만 게을러터진 제가 언제 포스팅을 할지는 저로써도 의문입니다.

퀘벡과 관련된 다양한 물품들이 디오라마 뒤로 연이어 등장했습니다. 한 때 성당의 일부를 장식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물방앗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부품, 근대 쯤으로 추정되는 기차역의 모형, 프랑스 말로 쓰여진 간판과 우편함, 그리고 소방도구 등등.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였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훅훅 지나갔습니다.


퀘벡을 최초로 발견하고 '캐나다'라는 이름을 최초로 붙인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탔을 것으로 예상하는 배의 모형입니다. 1534년 프랑수와 1세는 그에게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두 척의 배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했던 그는 중국 대신 캐나다를 '발견' 했습니다.

퀘벡지역에 정착한 프랑스 인들은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 - 지금까지 우리가 인디언이라 불러왔던 북미 원주민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윗 사진의 벽에 붙어 있는 퍼스트 네이션의 세공방식으로 만들어진 당시 프랑스의 깃발이 그 둘간의 동맹을 상징하는 중요한 물품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층에서는 퀘벡시의 산업과 상업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었습니다. 세인트 로렌스강을 통해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으며 오랜 세월 그 지역에 조성되었던 삼림으로 인해 조선업과 목재는 퀘벡에게 있어 가장 발전한 산업 중 하나였습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뒤, 곧 발생한 보어전쟁 및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캐나다는 자국산 무기에 대한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었습니다. 그리하여 퀘벡 일대에는 당시 캐나다 군대에 공급했던 탄약과 무기를 생산했던 공장이 꽤나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이런 이야기는 다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캐나다에서 자체 생산된 소총의 성능에 문제가 있어 결국 다시 영국제 소총을 들여오게 되었다는 슬픈 사실도 있습니다.

그외 금융, 보험 및 다양한 상업 또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퀘벡의 입지에 힘입어 크게 발달했었습니다. 윗 사진은 그 당시에 사용되던 이런 저런 가게의 간판들입니다. 프랑스말로 쓰여 있어서 뭐가 뭔지 알기가 어려웠지만 치과의 간판은 무언지 바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무릇 간판은 알기 쉬워야 한다는 점에서 참 잘 만들어진 간판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박물관에서 지적 욕구를 채우고 있자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와 아내는 머리를 채우는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위장을 채우기 위해 거리로 다시 나가기로 했습니다.

캐나다동부(5일차),퀘벡(QC):올드타운의 거리, 그리고 '도깨비 성' - 캐나다(Canada), NB/QB/ON




1.

갤러리 밖은 아직 더웠지만 그 기세는 크게 꺾여 있었습니다. 흐린 날씨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더위를 가려준다면 누군들 마다하겠습니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때를 놓칠세라 종종 걸음으로 시내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올드타운을 둘러싸고 있는 옛 성벽의 모습입니다. 캐나다의 작은 프랑스라고 불리우는 퀘벡이건만 정작 이 성벽을 쌓은 것은 그 프랑스를 물리친 영국입니다. 기껏 키워(?)졌더니 자기들을 몰아내고 나라세운 미국이 북부 식민지까지 침략할까 두려워했던 영국은 1765년 부터 성벽을 쌓기 시작, 도시 자체를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전체길이 4.6km에 달하는 이 성벽은 퀘벡을 북미에서 유일한 성곽도시로 무장시켰으나 지금은 군사적인 목적보다는 관광자원으로 더욱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지요.

올드 타운의 곳곳으로 뻗은 거리에는 건물 본연의 양식미와 소유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상점 및 주택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할리팩스의 거리에서는 소박함과 꾸밈없음이 미덕이었다고 한다면 올드타운의 거리에는 세련됨과 뽐냄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건물들이 저의 눈길을 끌었지만 성벽에 너무 가까운 곳들은 지나치게 상업화된 감도 있었습니다. 관광객과 상점이 넘치는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지거나 때로는 성벽 밖에 있는 건물들이 개발과 보존의 적정선상에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2.

'Epicerie Boucherie' - 프랑스어를 읽지 못해도 가게 위 베란다에서 푸른 야채? 꽃들을 싣고 늘어서 있는 카트를 보면 여기가 식료품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딸기철인지 가게 밖에 신선한 딸기가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관광객과 주민들이 반반 섞인 손님들의 무리는 여기저기서 식료와 와인을 사고 있더군요.

슈퍼에서 술을 살 수 있다는 것. 노바스코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한 사회가 문명화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은 슈퍼에서 자유롭게 술을 구매할 수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라고 저의 튜터 알랜이 농담반으로 이야기 했었습니다. 그때 직접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서울의 밤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던 풍경들, 소리치고 노래하고 길거리에 주저 앉은 술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말은 약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한 사회가 충분히 문명화 되어야 슈퍼에서 자유롭게 술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라고 말이지요. 과연 퀘벡의 밤거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심히 궁금했지만 그걸 보기 위해 한 밤중에 유흥가를 헤매이기에는 저의 체력과 돈과 용기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3.

아트갤러리에서 봤던 작품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건물입니다. 1층의 의류점. 입구 옆 가로등의 교통 사인들. 2층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층계 양 옆으로 솟아오른 코린트 양식을 흉내낸 기둥. 벽돌로 올린 벽체. 쭉 하늘로 뻗은 중앙 건물과 그 위에 앙증맞게 덮여진 코발트색 지붕. 평소라면 보기 싫을 왼쪽의 비개들도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벽화로 인해 거기에 있어야하는 존재가치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고전미와 팝아트적인 즐거움 - 50% 세일 간판 마저도 - 이 한 자리에 어울리는 것을 현실세계에서 마주하는 것은 실로 만나기 어려운 경험이지요.

개인적으로 레고로 만들어주면 사서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

거리를 걷고 또 걸어 바닷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가다보니 눈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건물과 그 보다 더욱 압도적인 인파들이 복작거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벽돌로 지어진 벽체, 창문을 둘러싼 흰색 테두리, 녹청색의 구리 지붕, 그리고 갑자기 툭 커진 추파춥스 같은 건물이 인상적인 프렌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 샤토 프롱드낙(Château Frontenac)입니다. 한국사람들에게는 '도깨비 성'으로 알려진 곳이지요.

고전미가 넘치는 양식에 프랑스 식민시대에 지어진 총독관저라도 되는가 싶었더니 17세기 후반에 짓기 시작해서 1893년에 개업한, 애초부터 호텔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주말 영어수업에서 만난, 퀘벡 출신 프랑스 할아버지 도미닉이 여행가면 여기에서 브런치를 먹어보라고 추천해 주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한 그 가격에 깜짝 놀란 저는 감히 저 건물에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습니다. 각오를 하면 못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 돈이면 다른 맛난 것을 먹겟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걸 보면 저는 아직도 부산 촌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호텔 앞,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펼쳐진 뒤프랭 테라스 입니다. 벤치도 많고 바람도 시원하고 풍경도 좋고 물론 사람도 많습니다. 그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저와 아내는 더 높은 곳,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5.

계단과 경사를 오른 그 끝에 있는 것은 야트막히 펼쳐진 평원과 작은 공원이었습니다. 세인트 로렌스 강을 바라보는 퀘벡시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참으로 묘한 장소이지요.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이곳은 260년 전만 해도 총이 울고 칼이 부딪히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었습니다. 1759년 역사적으로 '아브라함 평원의 전투(Battle of the Plains of Abraham)'라고 알려진 이 전투에서 군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두 가지 실수가 발생, 프랑스군은 영국군에게 패배하고 퀘벡을 비롯한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는 고스란히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수많은 영국과 프랑스와 캐나다와 원주민들이 죽고 그들의 피가 이 평원을 적셨지요.

물론, 지금이야 전장을 돌진하는 기병 대신에 탱크탑에 조깅하는 여성분들이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고, 어머님을 부르며 누워있는 부상병은 간데 없고 날씨가 좋으면 햇볕을 쬐러 누워있는 상반신 나체의 젊은이가 있을 뿐입니다. 넓은 평원은 콘서트를 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공간을 제공하기에 틈만나면 큰 공연이 바로 이곳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도깨비 팬들에게 있어 이 곳은 김신의 묘비가 있던 곳이지요.


이 곳에서 이런저런 도시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퀘벡은 참 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가로히 요트가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강은 흡사 남 프랑스의 휴양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맞은 편 강변에는 거대한 컨테이너 선이 항구에 화물을 토해내고 그 옆으로 도시를 절반으로 나눌 듯한 거대한 공장이 불빛을 번쩍이며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친 산업시설의 전진을 우아하게 뻗은 성벽과 산책길, 아름다운 작은 건물들이 다독여 멈추고 유럽 어느 마을의 낭만스런 분위기가 스물스물 언덕을 덮어 올라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불꽃이 터지듯, 거대한 도깨비 성이 화려함과 웅장함을 뽑내며 한껏 손을 하늘로 뻗어 올립니다. 피날레! 그리고 쏟아지는 박수.

도시의 역사가 이렇게 뚜렷하게, 그리고 한 눈에 들어오는 도시 구획들의 연장선상에서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성장의 수레바퀴에서는 우회보다는 짓밟고 나아가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공업도시면 공업도시이고 관광도시면 관광도시가 되는 것이고 휴양도시면 휴양도시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퀘벡은 오밀조밀 그 특징들을 참 잘 보존하면서 커지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신기하고, 쉽사리 찾기 힘든, 네, 정말 '도깨비' 같은 다재다능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머물고 싶지만 언제나 부족한 것은 시간. 저의 이 감정이 착각인지 아닌지를 알아 볼 시간도 하루 밖에 남지 않았네요. 내일은 또 어떤 퀘벡의 풍경을 볼 수 있을까요.

스코틀랜드인 78연대의 어떤 행사(HLFX+380) 海外生活




1.

몇 일전.

이 날이 할리팩스 시타델의 25주년 기념일이라는 소식은 언제나 즐겨보던 무가지 'The Star'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한 25주년 기념일이란 것은 알 수 없었습니다. - 세워진지 25주년은 확실히 아닙니다. 1800년대에 세워진 요새라는 것은 문명 게임만 좀 해도 알 수 있으니까요. - 다만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 두 가지는 이날 입장료가 무료라는 것. 그리고 그 날 'Presentation of Colours'라는 모종의 행사가 열린다는 것이었죠. 어떤 행사인지는 가서 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저는 만 일년 만에 시타델을 다시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오전 영어수업을 끝내고 근처에서 쇼핑까지도 끝낸 저는 아내와 함깨 시타델로 향했습니다.


2.


입장료가 무료라는 소식이 신문에까지 났으니 사람이 없을리가 없겠지요. 관광객에 인근 주민까지 더하여 제법 많은 사람이 시타델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날 입구에 서 있는 위병은 빨간 코트에 성냥 골 같은 모자가 익숙한 18세기 영국병사...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캐나다 복장을 한 군인 이었습니다. 오호호. 이것도 나름 색달라서 좋더군요. 그런데 그 위병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위병 옆을 지나 시타델의 연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행사 시간보다 조금 일찍 온 저와 아내는 일찌감치 박물관 건물 바깥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행사가 기다리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중간에 저는 박물관이 바뀐 것이 있나 싶어 좀 둘러보았는데 1년 전과 비교해서 개선된 점이 많이 보였습니다. 관람객들의 휴식공간이나 실내 카페가 생겼다는 점, 그리고 전시관 내부의 동선을 정리하고 벽화를 추가 했다는 점 등을 들 수가 있겠네요. 더불어 좋았던 점은, 오늘 행사에 참여하러 오신 참전 용사 분들이 전시관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관람객들에게 들려주었는데 그 내용이 참 흥미진진, 생동감이 넘쳤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온 연병장에는 아까는 없었던 분들이 서 계셨습니다.

복장을 보아하니 공군...같아 보였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연령대를 보아하니 현역 군인은 아니신 것 같고 은퇴한 분들로 추정됩니다. 이른바 공군 출신자 군악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백발이 성성하신 할아버지에 꽤나 덩치가 있으신 아주머니, 젋은 아가씨까지 성별, 나이가 다양했습니다. 설렁설렁 서 있는 모습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시작된 연주는 어라라, 꽤나 멋진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하나 둘 관객들이 모이고 집중을 하더니, 연주가 끝날 때 마다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 그리고 어느덧 귀에 익은 선율 '콰이강의 행진곡(The River Kwai March)'이 흘러나오고 저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초등학교때의 운동회가 생각납니다.



3.

그렇게 연주가 끝나고 어느덧 행사 시간이 되자 군악대가 연병장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고 앞에 배치된 의자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몰려와 앉기 시작합니다. 할리팩스 시장의 얼굴도 보이고, 시타델 박물관의 총 책임자라는 분도 왔습니다. 초청받은 참전용사 분들도 하나 둘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사에 빠지지 않는 단계, 사회자의 개회사와 주요 인사의 연설타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윈스턴 처칠경이 이야기 했지요.

'A good speech should be like a woman's skirt; long enough to cover the subject and short enough to create interest.'

요즘 정치인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기저기서 난리가 나겠지만 그가 1900년대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윈스턴 처칠의 명언과 더불어 그가 했던 이런저런 삽질과 공적을 생각하는 새에 지루했던 연설 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행사 시작이라고 외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요란한 백 파이프 소리가 군악대의 연주와 함깨 연병장 한쪽 끝에서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연주를 끝내고 한켠으로 사라졌던 퇴역공군 군악대와 18세기 영국군 군악대가 섞인 행렬에 천천히, 다시 연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바로 그 유명한 'Scotland the Brave' 아...멋지고 기가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스코틀랜드 피라면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저라도 저 음악을 들으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피가 끓습니다. 

그렇게 연병장을 가로질러 반대편까지 온 행렬은 자신들이 걸어온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고 행렬을 멈춥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이 왔던 그 연병장에 한 무리의 병사들이 척척 소리를 내며 행진해 들어옵니다. 오오오...근무하는 위병들이 다 어디에 갔나 싶었더니 저기 다 들어 있나 보네요. 사회자가 외칩니다. 이들이 바로 the 78th Highlanders -  제 78 스코틀랜드인 보병연대라고 말이지요. 이어지는 설명에서 알았지만 저들 중 대부분은 시타델 박물관에 지원한 학생들이라고 하더군요.

연병장 가운데 차렷자세로 연대인원이 늘어서자 행렬을 이끌던 연대 선임상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와 상급 지휘관에게 인원보고를 합니다. 이 장면은...군대의 아침점호가 생각나서 왠지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허허...여기나 거기가 지금이나 옛날이나 군의 시스템은 변함없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 쓴 웃음이 나오더군요.




4.

병사들의 인원 확인이 끝나고 열중 쉬엇 상태가 되자 멈추었던 군악대에서 전통 군악대 인원들만 다시 연주를 하면서 연병장을 가로질러 갑니다. 음? 어디가는가 싶었는데...

연병장 반대쪽까지 군악대가 걸어가자 사회자가 엄숙히 이야기 합니다. 

'이제 곧 'The Colours'가 등장 하오니 관람자 여러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하시기 바랍니다.'

그말을 듣자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과 자리에 앉아 있던 관광객들 중 영어를 알아듣고, 교양있어 보이며,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일어났습니다. 저와 아내는 애초에 일어나 있었으니 큰 문제는 없었지만, 눈치 없는 몇 몇 중국인 관광객이 그래도 앉아 있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윽고 두 명의 병사가 큰 군기를 들고 연병장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하나는 멀리서 봐도 뚜렷이 구분할 수 있는 유니온 잭. 그 가운데 왕관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얀색 바탕에 구석에 유니온 잭이 몰려 있는 깃발. 아, 이 깃발을 'The colours'라고 부르는 구나. 저는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깃발을 보고 격식과 절차에 맞춰 경례와 행진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사회자의 한 마디.

'오늘 우리는 지금껏 사용했던 옛 군기를 보내고 새로운 군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땅과 조국을 지키는 용사들을 상징하는 그 깃발이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예의를 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오늘 행사는 다름이 아닌 이들의 군기 교체식이었군요.

사회자의 선언이 끝나자 군기를 든 병사들이 천천히 다시 연병장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는 동안 한 켠의 군악대는 백파이프와 브라스로 멋진 연주를 시작하는데 그 곡이 바로 'AULD LANG SYNE'...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라는 가사로 귀에 익은 곡이죠. 이 곡은 원래 스코틀랜드 민요랍니다.

졸업식때마 듣던 노래가 군대 연병장에서 울려퍼지면 우습기도 할 법한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백파이프와 브라스로 연주하는 이 곡은 가슴 먹먹한 파괴력이 있었습니다. 제 옆에 사진 찍느라 정신없던 아랍계 관광객도 그 연주를 배경으로 사라지는 깃발의 모습에는 숙연한지 나직하게 그 멜로디를 따라부르며 얼굴에는 근엄한 기운이 돌더군요. 음악의 힘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 같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했습니다.

하긴 이 장소, 이날의 날씨 - 안개가 살짝 끼고 습기가 공기중에 가득한, 기온이 조금만 낮았으면 스코틀랜드의 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이날 의 날씨를 배경으로 울려퍼지는 백파이프 연주에 행진하는 군인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떠나는 깃발을 바라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5.

그렇게 그들의 오랜 군기가 연병장으로 사라지자 갑자기 군악대에서 고수(鼓手)들이 연병장 가운데로 들어와 그들의 북을 가운데 쌓기 시작합니다.


북을 쌓는 모양이나 위치로 보아 그 배열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 같더군요.

북을 쌓아 작은 단을 만든 그들은 작은 제단 두 개를 가져와 그 북 앞에 놓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바라보고 왼쪽편에 일렬로 늘어섭니다. 그러자 연대병사들 중 검은 천으로 가려졌던 큰 깃발을 든 두명의 병사가 앞으로 걸어나오더군요. 아하, 저 가려진 깃발이 새로운 군기인가 봅니다.

네, 새로 만들어진 군기가 북 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조심스럽게 북 위에 깃대가 겹쳐진 상태로 놓여 집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목사님이 등장하더니 깃발에 축복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연대 전체가 일제히 주기도문을 읊기 시작합니다. 허허...영어로 주기도문을 들으니 느낌이 아주 새롭더군요.

그러자 놀랍게도!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축성이 끝나고 깃발에 대한 경례가 시작될 즈음에는 파란 하늘이 보이고 햇볕도 다시 내리쬐기 시작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지만 참 극적인 순간이더군요. 그 뒤에 어떻게 될지 더 보고 싶었지만 오후에도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시타델을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6.

시타델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제 마음은 참 복잡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저는 교회, 군대, 국가에 대한 행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것들을 억지로 좋아하게 만들려는 요소들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항심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는, 제가 싫어하는 그 모든 요소들이 전부 섞여 있는 이벤트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 행사에 참여한 저는 작위적인 요소를 느끼지 못했을까요. 남의 나라 군대였기 때문에? 이국적인 요소가 있었기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행사에 참여했던 학생들이나 주변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할리팩스 사람들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성실함, 행사에 대한 존중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그럴 수 있을까요.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저도 언젠가는 그 답을 알 수가 있을까요.

캐나다동부(5일차),퀘벡(QC):국립 퀘벡 아트갤러리(MNBAQ) - 캐나다(Canada), NB/QB/ON





1.

퀘벡 시에서 보내는 첫 날, 그 동안 호스텔과 텐트에서만 잤던 저와 아내는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습니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까지 촌놈티를 벗지 못한 저는 눈뜨자 마자 Bnb는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니 다니엘이 우리를 위해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막구워낸 프랑스식 메밀 크레페가 그의 손에서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으며 부엌 테이블 위에는 바나나, 블루베리, 스트로베리, 크랜베리에 초코렛과 크림치즈, 꿀과 메이플 시럽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침이 공짜라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행복했던 저는 예상치 못했던 풍요로운 식사에 또 한번 감탄했습니다. 다음번에 퀘벡 올 일이 있으면 꼭 여기에 다시 들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다니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아침과 서비스, 깔끔한 시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칭찬을 하자 그는 웃으면서 손님들의 만족을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엌 벽을 틔운 뒤에 지금 밥을 먹고 있는 큰 테이블을 놓는다든지, 바닥과 벽의 소재를 바꾼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지요. 그리고 부엌에 작은 방을 2개 더 만들면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2층의 큰 방 하나도 Bnb 숙소로 돌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문득 그 많은 방들 청소는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더니, 지금 다니엘이 하는 작은 사업 중 하나가 Bnb 숙소를 전문으로 하는 청소대행업체라고 하더군요. 과연! 프로의 손길은 달라도 달랐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기 직전, 다니엘에게 올드 퀘벡에 갈 예정인데 주차하기 적당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잠시 생각하더니, 지금은 성수기라 주차요금이 다 비싸긴 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찾아보면 좋은 곳이 있으니 의회 - Congress 라고 말하더군요 - 주차장은 사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주차장을 찾아 그 좁은 골목을 몇 번이나 돌던 저와 아내는 결국 의회 센터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말았습니다. 12시간에 25달러 - 한화 2만원 - 였던가로 기억합니다. 더 싼 곳도 있겠지만 더위와 날씨와 첫 경험 - 인근 야외 주차장에 요금을 물었는데 12시간에 35달러를 부르더군요. - 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에 그냥 그 가격에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여행에서 주차로 시간낭비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차를 대고 나온 저와 아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꽤나 높은 성벽과 비쭉하게 하늘로 솟은 첨탑이었습니다. 일단 우리는 그 첨탑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찾은 곳이 퀘벡 의회 건물 이었습니다. 노바스코샤와 뉴브런즈윅에서는 보지 못한 높게 솟은 옛 양식의 건물에 저는 입을 딱 벌렸습니다. 물론, 여행에서 마주한 다른 도시에서 더욱 놀라운 건물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처음 이 건물을 보았을 때는 뭐랄까, 아직도 이런 건물이 캐나다에 남아 있구나 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게다가 건물앞에는 말이 끄는 마차도 지나가고 큰 분수대에서는 물도 막 솟아오르고 있었으니, 책과 게임만 파는 촌놈이 볼 때는 동화속의 물건들이 눈앞에 튀어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었지요.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수리중인지 공사중인지 알 수 없는 장막으로 사방이 둘러쌓여 있었다는 것 정도였겠네요.

하지만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기에 저와 아내는 종종 걸음으로 올드 퀘벡의 성벽 안쪽으로 향했습니다.



2.

자갈이 깔린 좁은 골목길, 색이 바랜 오랜 돌과 벽돌로 지어진 집들, 유럽에 가보진 않았어도 책과 사진에서 접할 수 있었던 풍경들이 눈앞에 하나하나 나타나는 놀라운 시간. 이건 것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오래된 건물이라 손 봐야 될 곳은 많은지 여기저기 공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아트갤러리까지 가는 동안, 오를레앙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잔다르크의 동상도 공사 중 이었고 옛날 요새의 포루와 탄약고 자리도 공사중이더군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여행과 공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시안(西安)의 고루(鼓樓)가 그랬고, 가나자와의 천수각이 그랬었지요. 깔끔하게 구경할 수 없어 아쉬워 하는 차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행여나 비가 올까 두려웠던 저와 아내는 속도를 높여 아트갤러리까지 단숨에 나아갔습니다.


퀘벡의 국립 아트 갤러리는 공원 가운데 세워진 기념 기둥을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싼 세 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두 동은 옛 성당과 감옥을 개조해서 갤러리로 만들었으며, 나머지 한 동은 현대식으로 완전히 새로 만든 건물이었습니다. 티켓의 구매 및 갤러리 입장은 새로 만든 건물에서 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영어를 모두 능통하게 구사하는 직원들과 현대적인 인테리어, 깨끗한 화장실과 꽤나 괜찮은 솜씨로 유명한 레스토랑을 모두 갖춘 국립 아트 갤러리. 하지만 그 모든 것 보다 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팡팡 돌아가고 있던 에어컨이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비가 내리고 더위가 가실 때까지 여기서 머무르기로 마음을 먹고 느긋하게 갤러리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3.

이번 로드트립의 또다른 목표는 캐나다 3대 미술관을 모두 둘러보는 것입니다. 온타리오 미술관과 몬트리올 미술관, 그리고 오타와 미술관이 바로 3대 미술관이지요. 아쉽게도 퀘벡 아트 갤러리는 그 반열에 들지는 못했습니다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방문한 곳 치고는 꽤나 재미있고 괜찮은 작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하면 인상파, 인상파 하면 프랑스이지요. 비록 마네, 모네, 드가와 같은 일류급의 작품은 찾을 수 없었지만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퀘벡의 겔러리에서는 수준 높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애니메이션 '오렌지로드'가 생각납니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모더니즘 이후의 현대미술은 정말 제 취향이 아닙니다만 가끔씩 제 취향에 맞는 작품이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위의 작품은 퀘벡 아트 갤러리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현대미술 작품이었습니다.

정물과 큐비즘도 제 취향이지요. 아내는 너무 전형적인 것만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투덜거립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하지만 그 모든 작품들 중에서 제 마음에 쏙 들었던 것들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캐나다 작가들이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강렬한 흑백의 대조. 그로인해 딱딱해질 수 있는 전체 그림을 살짝 비튼 원근법의 건물로 재미를 살린 그림. <수도원의 수녀들?> 이었던가요. 이 강렬한 색의 대조를 기분 좋게 즐기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새하얀 설원을 달리는 열차. 색깔이라곤 5개도 안 쓴것 같은 이 소박한 작품에서 왜 저는 광활함과 고독함, 그리고 비장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 그림을 보자마자 제 머리를 스쳐간 영화 <설국열차>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의 쓸쓸한 회색 하늘과 새하얀 눈밭, 그리고 그리지 않아도 윙윙거리며 그 위를 불고 있을 바람은 캐나다에서 겨울을 보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 나라의 전형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지요.

그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바다를 검은 색으로 그려도 어색하지 않는 이유는 눈 내리는 날 캐나다의 바다를 보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 검은 바다 한 켠에 새하얗게 서 있는 등대를 가슴 먹먹하게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퀘벡 출신의 작가가 카톨릭의 축일을 소재로 그린 작품입니다. 절대 한눈에 볼 수 없는 퀘벡을 대표할 수 있는 소재를 모두 한번에 밀어넣었습니다. 고전주의 작품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방식인데 이렇게 현대화에 써도 잘 어울리더군요.


아주 전형적인 캐나다의 풍경화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풍이기도 하고요. 이후 이 화풍의 작품들을 블로그에 잔뜩 올릴 예정이오니 여기서는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이누이트 - 북극에 가까운 지역에 거주하는 캐나다의 선(先) 주민들의 작품입니다. 그들의 생활 환경을 고려하면 물개와 고래, 곰의 뼈 등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예술 소재였겠지요. 온 세상이 눈에 뒤덮여 사냥도 낚시도 못하게 될 때, 그들은 얼음집에 앉아 시간을 들여 자신들의 생활상이나 신앙의 대상, 생존을 위한 토템들을 조각했습니다. 길고긴 겨울만큼 그들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온 세상을 돌과 뼈 위에 다시 만들어 냈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감탄, 또 감탄. 저라면 저 위의 곰 한마리도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현대 미술을 싫어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고, 도대체 어떤 느낌과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위의 작품은 여기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꼼꼼함과 세심함이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기에 저도 예술로 수긍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이른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한 작품인 것 같은데요, 최근 퀘벡의 현대미술에서는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아래의 다른 작품들을 보시죠.

멀리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사진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이 다가가 이 작품을 보고 입이 벌어지고, 그 뒷 면을 보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저도 탱크와 병사들을 플라스틱 상자에 구현한 나만의 세계에 늘어놓고, 그 세계를 양껏 진짜처럼 만들어 보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상상력과 인내심의 결핍과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그 취미를 놓아버리고 말았는데, 아마 그 취미를 극한까지 갈고 닦으면 이런 수준으로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너무 많고 다양한 작품들이 아트갤러리에 있었으나 시간이 부족해서 다 보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전부 사진에 담지도 못했지요. 이후 다른 지역의 미술관, 박물관에도 느낄 수 있었지만 캐나다의 미술관들은 여유를 가지고 관람하려면 한 곳당 3일씩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 2일. 그정도는 있어야 쫓기지 않고 앉아가면서 관람을 하지 하루에 한 곳씩 보겠다는 생각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의 소치라는 것을 직접 와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디테일한 현대 작품에 코를 박고 구경하고 있자니 아내가 해가 다 저물어 더 이상 덥지 않을 것 같으니 슬슬 나가보자고 합니다. 좀더 머물고 싶었지만 아직도 못 가본 곳은 많고 시간은 없으니 여기서 이별해야 겠지요. 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시원한 캘러리를 나서서 저물어가는 해로 선선해지고 있는, 하지만 아직은 덥고 뜨거운 올드 퀘벡으로 다시 나갔습니다.

퀘벡:펄프공장 박물관(La Pulperie de Chicoutimi),사그네(Saguenay)-4일차(+352) - 캐나다(Canada), NB/QB/ON




1.

저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차를 몰고 사그네 강변을 따라 달렸습니다. 한 여름의 공원과 이벤트가 벌어지는 광장, 기념탑과 성당, 또 성당을 지나서 북서 혹은 북동으로 달린 저의 다스베이더는 어느새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잔잔하게 흐르는 다운타운의 강변과 달리, 이 곳의 강은 막 계곡에서 탈출한 기분을 만끽하듯 콸콸하는 소리를 지르며 하얗게 바위들 위로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그 강가 옆에는 벽돌로 지어진 꽤나 높은 건물이 서 있었고 지금은 아무것도 달리지 않을 것이 분명한, 낡은 철교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그 건물이 저와 아내의 최종 목적지가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 건물은 18세기 후반 유럽 지역의 건축물이 지니는 고아함과 우아함을 뽐내는 동시에 구조와 입지, 그리고 철로의 흔적으로 보았을 때 산업적, 과학적으로 한 때 꽤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저와 아내의 관심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몇 안되는 관광지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한참을 강 건너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우리는 문득 우리가 건물부지가 아닌 공원 옆에 위치한 어떤 집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경치 구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후다닥 우리는 차를 몰고 강 건너의 벽돌 건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La Pulperie de Chicoutimi' 입니다. 직역하면 치쿠티미(Chicoutimi)의 펄프공장이란 뜻이지만 현재는 이 박물관이자 문화시설을 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이 펄프 공장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설명을 위해 web에서 적당한 사진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2.

치쿠미티의 펄프공장은 1896년에 세워졌습니다. 증기기관의 가동과 목재가공, 원재료의 수송 등 모든 면에서 수자원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에 치쿠티미 강과 사그네 강이 만나는 이곳 삼각지는 펄프 공장의 입지로는 최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점차 성장하고 있던 프랑스어권 퀘벡 - 캐나다 지역의 경제는 펄프의 거래 및 소비를 지속적으로 촉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단지 12년 만에 치쿠미티의 펄프공장은 캐나다 최고의 펄프 생산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유럽에서 발발한 1차 세계대전과 스칸디나비아 지역 펄프공장의 파업으로 인해 펄프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났고 이에 1912년, 치쿠미티 펄프회사는 첫번째 제조공장 근처에 세번째 펄프공장까지 세우게 됩니다.

1920년, 펄프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는 총 2천명으로 이는 당시 사그네 지역 인구 8천명의 25%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그리고 1921년 회사는 제조 공장의 기계설비를 정비, 수리하는 공방 건물을 새로 증축하는데 이것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제가 블로그 제일 위에 올린 사진입니다. 그래서 제 사진 건물의 지붕 앞 부분에 '1921'이라고 써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요. 1921년을 기점으로 사업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펄프의 시장가는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고, 다방면에 대한 회사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부채는 늘어났습니다. 1923년, 회사의 정신적 지주였던 'Julien-Édouard-Alfred Dubuc'이 사임하였고 1924년 3월, 치쿠미티 펄프회사는 사업을 정리하고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30년, 대규모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펄프 주문의 감소와 지속적인 가격의 하락으로 이 공장은 영원히 그 문을 닫았습니다. 아듀...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이 공장 부지에는 다른 형태의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1970년에는 해체업자들이 몰려와 뜯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뜯어가려 했습니다. 그 승냥이들이 포기할 정도로 튼튼하게 지은 벽돌담 덕분에 상당수의 건물은 원형을 유지했지만 대부분의 목재구조물은 전부 들려나갔습니다. 그리고 1996년, 평소보다 11배나 많이 내린 비로 인해 엄청난 규모의 홍수가 이 지역을 강타했습니다.

* 해당 이미지는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물벼락은 백년을 버텨온 벽돌벽까지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단지 몇 시간만에 펄프공장 부지는 고대 신전의 유적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3.

하지만 무너진 상태로 방치된 이 곳을 안타깝게 여긴 사그네 시 정부는 해당 부지를 구매, 정리하여 박물관 및 문화공간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렇게 조용히 발 아래를 흘러가는 물이 어떻게 건물벽을 쓸어버릴 정도로 불어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용수용 파이프를 설치했던 기단부는 아직도 남아 계곡 위 숲까지 이어진 상태였습니다. 그 파이프의 지름은 거의 저의 키만했습니다. 수력으로 터빈을 돌리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펄프를 제조하기 위한 용수를 끌어들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규모만큼은 이 뻥 뚫린 구멍크기에서 능히 짐작할만 했습니다.

* 해당 이미지는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부지를 돌아본 우리는 박물관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날 열리고 있었던 전시는 'The World of TinTin'.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름을 들어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선가 본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어디였을까요. 제 기억의 가장 끄트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어머니가 억지로 보낸 피아노 학원 한 구석에 쌓여있던 잡지를 연습시간 도중에 몰래 훔쳐보았던 것 같은데, 그때 그 잡지에서 저 개와 주인공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시는 훌륭했지만, 프랑스어를 모르면 잘 그린 만화를 쭈욱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때였을까요. 제 아내는 프랑스어를 공부해야 겠다고 저에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박물관의 내부는...뭔가 좀 부족합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보호하고 그대로 두는 것은 참 잘하는 것 같은데 막상 꾸미는 것은 좀 아쉽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ps. 하지만 저의 그런 생각은 이후의 여정에서 확! 바뀌게 됩니다.)

밖으로 나온 저와 아내는...해가 다 기울었음에도 정말 더운 날씨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더 시간도 없고 해서 일단 이곳을 떠나 시원한 곳! 에어콘이 나오는 퀘벡 숙소로 직행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허겁지겁 가방과 물건들을 차에 던져놓고 에어콘을 최대로 올린 뒤 도로를 질주 했습니다. 그 뒤에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우 더웠고, 퀘벡 인간들은 차를 참 짜증나게 몰았고, 퀘벡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는 공사 투성이에 재미 없었습니다. 정말 달리는 보람이 없는 곳이 바로 대도시의 외곽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4.

퀘벡에 도착한 저희는 외곽의 Bnb 숙소로 직행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집과 호텔급의 깔끔함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남이 사는 집에 자는 건 뭔가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던 저는 - 저도 어쩔 수 없는 아저씨라서 그런가 봅니다. - 이 집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 저의 그런 첫 인상을 고려해서 아내가 평도 좋고 숙박비도 적당히 높은 곳으로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니엘 -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집에 없었으나 저녁쯤에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이라는 주인장이 사는 이 집은 위로 길게 뻗은 형태의 2층 집이었습니다. 입구 현관 위를 틔어 햇볕과 공기가 내부에 잘 들어오게 만든 구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집이라면 그 위까지 바닥을 깔아 어떻게든 2층 면적을 넓히려고 했겠지요.
 
2층 침실은 깔끔했고 아늑했습니다. 바닥 카페트는 푹신했고 나무는 오래됨과 세련됨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1인당 작은 타월 2장과 큰 타월 2장, 물병하나와 물컵 두개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 어디에도 먼지 한점, 머리카락 한올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 깔끔떠는 방은 호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배려이지요. 

1층의 부엌은 자신들이 사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생활감이 두드러 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방문했던 그 어느 캐나다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정리가 잘 되고 청결한 부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감탄, 또 감탄. 다니엘에게 그렇게 칭찬했더니 그도 엄지를 들면서 좋아하더군요.

손님이 있는 동안 주인장들이 머무는 거실입니다. 뒷뜰도 있고 지하에도 방이 있다고 합니다. 지하의 방도 개조한 뒤에 Bnb 숙소로 쓸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아...저도 집이 있으면 Bnb는 한번 꼭 해보고 싶습니다.

친절하고 깔끔해서 제 마음에 쏙 든 다니엘은 내일 아침은 같이 먹자고 합니다. 첨 보는 사람하고 아침에 밥먹는 걸 별로 안좋아하는 저이지만 - 그것도 영어로 이야기 해야 하는 옵션이 붙으니- 이번 만큼은 선뜻 그러자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보송보송한 시트 감촉을 즐기면서 누워있자니 잠이 절로 오더군요. 그래서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이날은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꿈나라로 직행했습니다. 길었던 여행 4일차가 이렇게 저물어 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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