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디 국립공원(Fundy National Park), Laverty fall,뜻 밖의 고향 계곡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1.

 어느덧 여름이 다 지나고 있었다. 1년 전 우리는 Atlantic Canada의 이런저런 도시를 지나고 있었는데 지금 나와 아내는 집안일과 회사 업무와 벗어나지 못하는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Labor day가 낀 long weekend는 또 집을 떠날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근처 몇 군데의 캠핑장을 홀로 다녀보았던 나는 주립 공원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좀 멀리 가더라도 뉴브런즈윅에 있는 펀디 국립공원(Fundy National Park)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왕 놀러가는 것 최소 2박3일은 머물고 싶었고, 노바스코샤의 케짐쿠직 국립공원의 캠핑장은 지금 보수공사 중이었기에 사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더하여, 이전에 1박 2일로 머물렀던 펀디 국립공원은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입장료와 캠핑장 사용료는 합리적이었고, 샤워 부스와 싱크대가 딸린 화장실은 깨끗했다. - 하루에 최소 두 번은 청소를 하는 것 같았다. - 경치도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공원 안에서 차가 퍼졌을 때, 지나가던 낯선 이가 jump를 해 주었던 좋은 기억이 있었다. 아내도 나의 장소 선정을 맘에 들어 했기에 우리는 일찌감치 2박 3일의 여행 준비를 착착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출발 3일 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으니 그것은 바로 날씨였다.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도 모를 열대성 태풍 하나가 갑자기 북상, 우리가 출발하는 당일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들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는 고민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목요일이 아닌 금요일에 출발, 일정을 1박 2일로 줄일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목요일에 출발, 폭풍을 뚫고 캠핑장에서 비와 함께 하루를 보낼 것인가. 꼬박 이틀을 라디오에 귀 기울여가면서 심사숙고했던 우리는, 금요일 새벽부터 날씨가 개일 것이라는 예보를 믿고 예정대로 목요일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출발하는 목요일이 되었다. 아내는 미리 짐을 챙겨두고 회사에 출근을 했고, 나는 나와 그녀의 짐에 텐트와 침낭. 3일 분의 식량과 기타 캠핑 도구를 꼼꼼히 살펴가면서 차로 옮겼다. 그리고 4시가 약간 넘은 시간, 회사 앞으로 가 아내를 태우고 우리는 북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비는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했었고 해가 넘어가면서 점점 더 거세게 내렸다. 노바스코샤와 뉴브런즈윅의 경계를 넘을 때에는 안개와 강풍도 우리를 환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깔리는 어둠에 나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갔다. 약간 긴장된 분위기의 차 안에서 여행의 분위기를 느낄 만한 것은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ABBA와 Bruno Mars의 노래 뿐, 나와 아내는 차분하게 폭우가 몰아치는 도로를 차로 나아갔다.

 굳이 이런 날 여행을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나와 아내는 약간은 들떠 있었다. 떠나지 않았었다면 더 우울했을 것이기에, 어찌 되었든 출발했으니 좋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오후 9시가 다 되어서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비가 그치지 않아 텐트를 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좁은 차 안에 에어매트를 깔고 쪽잠을 자야 했을 때도 우리는 마냥 재미있었다. 물론, 답답하고 습한 차 안의 공기 때문에 자다가 몇 번이고 일어나 시동을 걸고 에어콘을 틀었다 껐다를 반복했어야 했고, 차창을 때리는 빗 소리와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 덕에 잠을 깨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여행이지 않은가. 아직 우리는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 할 수 있을 만큼 젊었고, 그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이번 여행의 시작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 불편하기는 했었기에 비가 그친 새벽 서너시 경, 아내는 나를 걷어차 밖으로 쫓아내어 텐트를 치라고 명령했고 나는 군소리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후다닥 텐트를 쳤다. 그 안에 침낭과 매트를 몽땅 집어 넣은 나와 아내는 피곤한 나머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영화처럼 짹짹 거리는 새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2.

  하늘은 맑았다. 공기는 상쾌했고 시원했다. 시원한 비를 마신 숲은 그동안 미루어 놓은 광합성에 한창인지 엄청난 양의 산소를 내 뿜고 있었다. 그 향기, 그 신선함. 나는 단숨에 기운이 좋아졌다. 그리고 서둘러 아내를 깨워 하이킹에 나설 준비를 했다.

 가져온 밥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샤워와 설겆이를 끝낸 뒤 우리는 차를 몰고 공원 도로를 달렸다. 어제 밤 지불하지 못한 입장료를 내러 공원 입구로 향하는 도중, 바다와 절벽이 맞닿는 도로의 오른쪽으로 멋진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차를 새우고 아내와 함께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토끼가 절벽에서 껑충 뛰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처럼 보였다. 한창 숲과 산을 뛰어 다니며 비와 바람을 몰고 온 열대 태풍이 날이 맑자 자신이 왔던 바다로 토끼의 모양을 하고 돌아가는 모습이라고 할까.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에 나와 아내는 근처의 '캐나다 국립 공원 공식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그 모습을 감상했다. 이 장면은 이제 흐린 날은 끝나고 맑은 날만 계속 될 것이라는 하늘의 계시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었다.

아무튼,

 돌아가는 짓궂은 손님 배웅 잘한 우리는 차를 몰고 목표로 했던 곳으로 나아갔다. 차로 15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곳. 여기 공원은 어떻게 이렇게 큰지. 부럽다, 이렇게 해도 사람들을 먹고 살리는데 아무런 문제 없는 그 넉넉함이.




3. Moosehorn trail

  포장 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도로의 가파른 언덕 길을 5분 가량 더 달린 뒤에야 우리는 Laverty fall로 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일찌감치 왔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간 사람들의 차가 두어 대 주차 되어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Laverty fall로 바로 가는 짧은 코스. 전에 혼자 왔을 때 갔었지. 하지만 오늘 우리는 오른쪽의 Moosehorn trail로 향한다. Moose horn trail은 총 4시간 가량이 걸리는 긴 코스로 폭포로 향하는 도중 멋진 계곡와 작은 폭포 두 개를 더 볼 수 있다고 들었다. 왜 그렇게 폭포를 좋아하는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나는 폭포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trail 코스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폭포를 아래에서 봐야 하니 일단 내려가야겠지. 내려가는 코스는...처음은 좋다. 힘들지 않아서. 나중이 힘들다. 내려온 만큼 올라가야 하니. 그래도 일단 편하니 좋았다. 그리고 길이 좋았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폭풍을 뚫고 온 보람이 있었다.

풍부한 수분이 가득 찬 숲 사이로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그 시내 위의 돌에는 이끼가, 양 옆의 나무 아래에서는 버섯이 잔뜩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숲 속은 습했지만, 아직은 해가 다 오르지 않아 덥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모기가 하나도 없었다. 맑고 마른 날이면 캐나다의 숲 길에는 으레 잔 벌레나 모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날 만큼은 전~혀 벌레가 없었다. 신 나게 와하하 웃고 다녀도 입안으로 들어와 죽는 녀석들이 없다는 거지! 나와 아내는 이 쾌적한 환경의 내리막길을 경쾌하게 내려갔다. 

  가는 도중 마주친, 막 태어난 듯한 폭포. 물이 충분하지 않았을 때는 눈에 뜨이지도 않았을 작은 시내가 지금은 콸콸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그 모습에, 나는 불현듯 손을 뻗어 그 물을 받아 얼굴에, 목에, 팔을 적셨다. 그 청량감. 그 깨끗함. 막 딴 사이다 한 잔을 마신 듯한 느낌을 피부에서 느낄 수 있다니. 

내리막을 다 내려올 때 즈음 해서 태양이 치솟고 점점 숲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대지에 충만한 수분은 시원한 느낌을 넘어 이제는 '한증막'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아. 좋은 시절 다 지나갔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계곡이 펼쳐지고, 그 위로 시원한 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그 바람을 마주 보며, 계곡 옆을 따라 난 트레일을 걸어 조금씩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으며 둘러본 계곡은...왠지 낯설지 않았다. 계곡 양 옆으로 펼쳐진 산과 숲. 물결에 깎여 동글동글 반질반질 한 큰 바위들. 그 틈새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 줄기와 그 소리와 그 향기. 이 광경은 어릴 절, 아버지의 고향에서 보냈던 그 여름날의 거창, 그 산 '골짝'에서 많이 봤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어릴 적 그 골짜기에 들어설 때에는 여기에 올 때처럼 비 포장 도로를 달려야 했지. 여름만 되면 뭐 그리 서로 좋다고 아버지와 삼촌들은 큰 아버지 댁에 모여 왁자지껄 먹고 마시고 놀면서 휴가를 보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집 까운 곳에 있던 이런 계곡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튜브를 띄우고 더위를 식혔다. 그립고,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비포장 도로가 포장 도로로 바뀔 즈음, 계곡 옆에 사람 손 탄 건물이라면 조선 시대의 정자 밖에 없던 그곳에 '무슨 가든', '무슨 농원', '무슨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계곡 손 바닥 만한 평지만 보이면 대충 만든 평상이 깔리고, 어느 여름부터 수영을 하고 있자면 생전 본 적도 없는 '그 땅 주인'이 나타나 여기 텐트 치려면 자리값을 내야 한다고 대죽 거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을 대면서 여기 사는 사람 가족이라고 하면 머리를 긁으며 사라지던 그 치들이 나는 싫었다. 포장 도로 옆으로 들어서는 양식 없고 보기 힘든 간판들도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여름 휴가를 계곡으로 가는 것도 뜸해 졌었다. 돈이 있으니 평소 가보고 싶던 해외에 가보고 싶던 마음도 컸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이제 변해 버린 시골 계곡에 가는 것이 싫어졌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나는 그 때, 그 계곡은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골짝'을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이야.

그렇게 다시 마주한 골짜기는 약간은 반가웠다. 하지만 내 가슴에 차 올랐던 감정의 상당 부분은 아쉬움와 억울함 이었다. 왜 나는 이 광경을 내가 태어난 곳에서 더 보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나마 여기에서 이 광경을 다시 보게 되어서 나는 만족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생각이 불어 오른 계곡 물 마냥 내 가슴에 차오를 때, 문득 내 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를 따라오는 아내의 흐트러진 모습이 들어왔다. 그 웃음에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냥 그 생각 모두 버리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여기'에 왔지. 

나는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냐고 퉁퉁 거리기 시작한 아내를 달래면서, 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좀 더 걷다 보면 그 언젠가 내가 놀았던 것 같은 작은 자갈과 모래가 깔린 평지가 나올 것이다. 캐나다든 한국이든 자연은 다 '그러할 테니.' 거기에서 가져온 물과 밥을 먹으면서 좀 쉬자, 그러면 아내도 힘이 좀 나겠지. 그러니 가자, 가자.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목표로 했던 Laverty fall에 도달했다.




4. Laverty fall

 숲속의 물을 다 받은 듯, 폭포는 그 어느 때 보다 화려하게 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 막대한 수량으로 인해 생성된 바람이, 폭포에서 계곡 언저리까지 마치 에어콘을 틀어 놓은 듯 대낮의 열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물이 얼마나 불었는지 비교하기 위해 이전에 혼자 왔을 때의 사진을 올려 보면...


보이는가 저 몇 물기의 작은 폭포가. 저렇게 보여도 가까이에서 보며 상당히 '아름답고 우아한' 폭포였지. 하지만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이날의 폭포에는 좀 부족하긴 하다.

Fundy 국립공원의 명소 답게, 이 폭포에는 많은 하이커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발도 씻고,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하라고, 옆의 폭포 설명 문에도 써 있었기에 나도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물에 들어가 보았다. 

처음에는 입이 자동으로 덜덜 거리면서 떨릴 듯 차가운 물이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안에 앉아 있을 만 했다. 걸어오면서 땀과 열에 시달렸던 몸을 식히고 물에 뜬 채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쏴 하게 쏟아지는 물 소리와 코 끝을 스치는 바람. 좋다. 좋구나. 마냥 이대로 있고 싶었다. 내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파란 눈, 금발의 아이들이 하나둘 용기를 내어 물에 들어오더니 폭포로 갔다가 멀어졌다를 반복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륵 웃더라. 흐믓한 광경이었다.

좀 있다가 여기를 나가면 옷을 다시 갈아입어야 하고 무거운 배낭도 다시 정리해야 하고, 주차장에 세워 둔 차까지 펼쳐진 긴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아마도 다시 땀이 나겠지. 아마도 다시 힘들어지고 다리는 풀리겠지. 하지만 그건 그때 고민하자. 지금은 너무 좋다. 아 너무 좋다. 언제 느낄 지 모르는 현재의 이 행복감에 좀 더 빠져 있어보자. 

 그렇게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갔고 나는 그걸 멍하니 즐겼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빨간머리앤의 생가와 잊을 수 없는 피쉬앤칩스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1.

 이른 아침,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적잖이 돈이 들어간 숙소에서 편하게 잠을 잤기 때문일까 나와 와이프의 컨디션도 매우 좋았다. 기운차게 일어나 숙소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우리는 신속하게 짐을 꾸리고 다음 목적지인 케번디시Cavendish)의 Green Gables Heritage Place로 향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에게는 <빨간머리 앤>으로 익숙한 캐나다의 소설, <Anne of Green Gables>는 바로 이곳, PEI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리라. 그나저나 일본에서는 왜 이 소설의 원제를 바꿔 '빨간머리  앤(赤毛のアン)'으로 했을까...라는 생각을 차 안에서 해 봤는데... 아마도 'gable'에 해당하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지붕'으로 퉁 치기에는 의미하는 바가 너무 다르고, 박공(牔栱)이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누가 알겠는가? 나 같은 괴짜나 알아 듣겠지.

 아무튼,

 어릴적 한창 보았던 세계명작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 아직도 나는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머리 앤'이라는 그 추억의 주제가를 제법 많이 기억하고 있다. - 나는 언제나 PEI에 오면 그 배경이 되는 캐번디시에 꼭 한번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 PEI를 찾는 일본 관광객의 상당수도 나와 같은 목적으로 여기에 온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던 그 장소를 찾아가는 오늘, 나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적잖이 걱정하기도 했다. 괜히 그곳에 가서 실망하지는 않을지. 추억은 추억대로, 그냥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 상상 속의 모습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가보고 해보고 실망하는 쪽을 선택했다.




2.

 햇살과 하늘이 아름답고 선명한 시골길을 달리는 건 언제나 즐겁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마냥, 어디까지고 달리고 싶은 기분. 이 곳 캐나다의 도로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그런 충동을 느꼈던가. 음악과 낡은 차,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는 이 쭉쭉 뻗은 여행길. 그래서 캐나다인들은 여유럽고 너그럽고 친절한가 보다. 돈이 많지 않아도 그들은 아주 쉽게 행복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 남짓을 달리다 보니, 목적지에 도달한 듯 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공사를 하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도로의 아스팔트를 다시 깔고, 길 가의 배수로를 정비하고, 주차장을 넓히고 있는 모습들. 여기저기 놓여있는 공사장 표시판과 접근 통제 테이프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덧 구글맵이 도착했다고 알리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보니 꽤나 넓은 주차장 가운데 우리의 작은 차가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꽤나 새것으로 보이는 큰 입구가 보였다. 설마 문닫지는 않았겠지? 불안한 마음으로 나와 아내는 그곳으로 가 보았는데...알고 보니 최근들어 'Green Gables Heritage Place' 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서 좋은 점은,

- 깔끔한 화장실, 기념품점, 식수대, 휴식 공간을 갖추고 있다는 점! 사실, 이전에 누군가가 올린 블로그에서 여기 화장실 시설이 그렇게 깔끔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봤기에 나는 적히 걱정을 했다. 우리 마나님은 화장실이 더러운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

하지만 나쁜 점이 있으니,

- 표값이 비싸졌다.
- 곧 해결 되겠지만, 공사중이라 여기저기 걸려있는 접근금지 테이프나 '공사중' 사인이 '빨간머리앤'의 풍경에 푸욱 빠져들고 싶은 내 시야에 심히 거슬렸다. 덕분에 집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고, 여기 사람들도 할 건 해야겠지.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 잡으면서 정리 중인 길을 지나 빨간머리앤의 집으로 다가갔다. 




3.

 집의 뒷 마당에는 앤과 매슈가 타고 다녔을 것이라 '상상'되는 마차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소설에 등장하는 앤이 사랑했던 많은 산책로들로 가는 길들이 뻗어 있었다. 그 이름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드디어 앤의 집에 왔구나 하는 것이 실감 나서 정말 감격스러웠다. 이 순간을 사진에 잘 남기고 싶어 나는 집 앞쪽으로 갔는데...

 저 공사장 테이프. 저 공사장 테이프가 심히 거슬렸다. 몸을 마당에 붙여도 보고 뒤로 떨어져도 보고 각도를 달리해 봐도 보인다고, 보인단 말이다! 그렇다고 저 앙증맞은 초록색 삼각형 'Gable'을 빼고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 주변 사람들만 없다면 다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정도로 타락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혀 차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는 죄 없는 공사책임자에게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으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의 불만은 집안의 광경에 쑤욱 사그라 들었다. 

그전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가자.

- 빨간 머리앤의 '생가'라고 라고 제목을 짓긴 했지만 소설 속의 캐릭터가 어찌 태어난 곳이 있겠는가. 굳이 태어난 곳을 쓰자면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집필한 곳을 써야겠지. 하지만 이곳은 그녀의 집이 아니라, 그녀가 소설을 쓸 때 앤의 집으로 '참고'한 곳이다.

- 우리가 '빨간머리앤'이라고 알려진 주근깨 소녀의 이야기는 총 7여편으로 이루어진 앤의 일대기 중 한 편일 뿐이다. 작가는 앤의 일생을 6세 부터 75세까지 다양한 관점과 배경으로 집필했는데, 이 집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 중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 이 집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사촌인 맥네일 가족의 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문에 따르면 맥네일의 친척들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해 대었기에 그녀는 상당히 괴로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안의 집을 배경으로 쓴 걸 보면 나로써는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튼,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한껏 낮추는 외부와 달리 집안은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다. 집의 현관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거실과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좌,우로 나 있었다. 하지만 내 맘대로 돌아볼 수는 없고, 지정된 동선을 따라 우리는 1층 거실 -> 2층의 방들 -> 다시 1층의 부엌과 작업실 등의 순으로 돌아봐야 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보게 된 거실의 풍경은, 가구의 가짓수는 적었지만, 제법 화려했다. 화려한 양탄자와 소파, 안락의자와 레이스가 들어간 의자 커버 등등. 내가 기억하는 앤은 좀 더 가난한 집에서 살았던 것 같았지만 내가 앤 전문가도 아니고 소설의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까, 이렇게 꾸며 놓은 것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하지만, 거실에서는 아직 '스파크'가 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 방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저 검은 모자와 같은 색의 조끼와 바지. 소박한 실내 장식. 세면대 옆에 놓인 면도기에서 나는 이 방이 그의 방임을 알 수가 있었다. 앤의 영원한 아군. 매튜 아저씨(Matthew Cuthbert)의 방이었다. 부끄럼을 많이 타지만 자상하고, 소심하지만 앤을 위해서는 이런저런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던 그 양반. 별로 볼게 없던 이 방의 그 검소함과 단순함이 오히려 그를 잘 나타내었기에 나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이 정도 센스가 있는 사람이 있으니 다음 방도 볼만하겠네 하고...말이지. 

그리고 역시 다음 방도 잭 팟. 마음에 들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화려한 장식의 벽지, 집 중앙 2층에 있어 언제나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따뜻한 방. 그리고 침대와 방문 가득 걸려 있는 사춘기 소녀의 드레스들. 옷장 문 뒤에 빼꼼 숨어 있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밀짚모자. 의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던가 드라마였던가에서 봤었던 그 가방. 그렇습니다. 여기가 드디어 주근깨 빼빼 마른 그녀, 앤 셜리(Anne Shirley)의 방인 것입니다.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바빴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눈에 들어오자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 나이가 나이 인지라, 어릴 적에 봤던 애니메이션에서 생각나는 장면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앤이 수업용 석판으로 그녀를 '홍당무'라고 놀린 길버트 블라이스(Gilbert Blythe)의 머리를 내려치는 그 장면을. 그리고 이 방 한 구석에 그 석판이 있었다. 아, 난 이런 디테일이 너무 좋다.

비록 석판으로 맞았지만 길버트는 이후 앤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그는 너무 멀고도 험한(?)과정을 지나야 했다. 일일이 다 쓰자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그 이야기는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앤의 방 옆에는 옷을 만드는 도구들이 있었다. 실을 짓는 물레와 발로 움직이는 재봉틀. 물레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로 잣는 재봉틀은 어릴 적 우리 할머니의 집에도 있었지.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어떤 옛 물건들은 비록 불편하고 볼품이 없을지라도 나에게 있어 참 따뜻하게 다가온다. 저런 타입의 재봉틀이 바로 그런 물건들 중 하나이며, 아마도 내가 영원히 눈을 감고 불꽃 위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그 느낌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2층 마지막 방의 주인은 바로 이 집의 안주인이자 지배자(?) 마릴라 커스버트(Marilla Cuthbert)였다. 왜일까 어릴적의 나는 그녀와 매튜를 부부로 생각했었는데, 그 둘의 관계는 자매. 그러니까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는 두 분 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 혹은 그 성격으로 인해 못했다는 - 것이지.

 검소한 옷. 전형적인 패턴의 벽지. 잘 정돈된 화장대. 깐깐하고 고지식한 그녀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그 성격으로 인해 그녀와 앤은 작품 초기에 서로 많이도 부딪혔었고, 이른바 '자수정 브로치' 사건 때에는 그 갈등이 절정에 치달았었다. 하지만 결국 만사 돌아돌아 어울림으로 마무리되는 그 시절의 소설 답게 그녀와 앤은 서로 성장해 가면서 진짜 모녀와 같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아도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나는 너무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삶을 모두 다 살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내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 방 화장대 구석에서 빛나고 있는 그 브로치를 보면서 약간은 슬픈 생각에 한 숨을 내 쉬었다. C'est la vie, C'est la vie.

주요 등장인물들의 방을 모두 둘러본 우리는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은 단연 부엌. 당시 캐나다 사람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식기와 조리 도구들이 한 방에 가득했다. 수도가 없는 시절이었기에 모든 물은 길어서 써야 했다. 때문에 싱크대가 아니라 큰 물통이 있던 모습이 깔끔해 보이기도 했지만 물 때문에 정말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방과 조리, 오븐을 한 번에 할 수 있었던 다용도 난로. 거실의 벽난로가 집 전체의 난방을 책임졌다면 이 작은 난로는 이 집의 요리를 책임졌으리라. 나는 작지만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너무 좋다. 언젠가 내가 작은 집이라도 한 채 가지게 된다면, 꼭,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이 난로를 넣고 싶다.

그렇게 집을 다 둘러본 우리는, 집 주변에 펼쳐진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4.

 집 주변의 산책길은 작고 아담했으며,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지금껏 가본 다른 국립 공원의 하이킹코스와 달리 스펙타클한 광경이 펼쳐지진 않았지만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멋이 있었다.

 작은 나무들이 들어선 숲 사이로 뻗은 산책길에는 햇볕이 많이 머물러 있었다. 그 사이로는 맑고 깨끗한 시내가 졸졸 흐르고 있었으며 풍부한 수분으로 인해 시냇가의 바위나 흙에는 이끼가 뭉성뭉성 오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밀짚모자를 쓴 앤이 검은 머리의 다이애나와 함께 걷고 있을 것 같은 그런 풍경. 우리는 이런저런 소설의 장면을 떠올리며 산책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풍경을 하나 발견했다.

 언뜻 보면 별것 없는 위 풍경에 남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냇물에 들어있던 우유를 담은 유리병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언뜻 읽은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등교한 아이들은 곧장 학교 뒤의 시내로 가서 점심때 먹을 우유병을 시냇물에 넣어 시원하게 만들어 두었다.'하는 그런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그 장면을 이렇게 진짜로 보게 되니 대단한 보물을 찾은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장소 옆에는 이렇게 그 우유병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있었다. 뭔가 대단한 퀘스트를 완료한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무엇인가 있을까 나와 아내는 주변으로 부산하게 펼쳐진 산책로를 죄다 꼼꼼히 돌아보았다. 

 도중에 우리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묻힌 묘지도 갈 수 있었고, 그녀와 관련된 장소로 추정되는 기념품 가게와 우체국인지 박물관인지 헷갈리는 곳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앤의 집과 일부 산책로를 제외한 나머지 인근 시설들은 전반적으로 뭔가 부족했다. 설명도 부족했고, 보수와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이곳이 무언가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지만 그걸 설명하는 안내문이나 사람은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새로 정비하는 도로와 산책 코스는 어설프게 꼬여있었으며, 어떨 때는 사람들이 골프를 치고 있는 골프 코스를 지나야만 했다. 국립 공원의 주변 곳곳에는 주차장과 모텔과 주유소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건 돈을 벌기 위한 장소일 뿐, 그 어떤 것도 작품과 연관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디자인이나 시설의 이름 정도는 맞춰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용두사미'까지 떨어지지 않았지만 '화룡점정'을 하지는 못한 이 곳. 언젠가 다시 올 때에는 좀 더 잘 정리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나와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올 때와 같은 길이기에 나는 굳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사고 없이 잘 가면 되지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아내가 굳이 좀 돌아가더라도 꼭 찾아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하기에 나는 그곳을 향해 떠났다. 




5. Richard's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우리가 간 곳은 작은 항구 옆에 위치한 더 작은 식당이었다. 이름도 간단하다. '리차드네 집'(Richard's)이라고 할까.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가끔 놀러 오는 해변 두 개가 있는 것 빼고는 딱히 특별한 것이 없어서 이런 곳에서도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알고 봤더니 이 식당이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오픈 시간에 맞춰가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 얼른 가자고 아내가 재촉을 하지만 뭐 진짜로 그럴까 싶어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이 작은 가게의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메뉴판에 올라있는 음식들은 애틀란틱 캐나다의 여느 바닷가 항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피쉬앤칩스, 피쉬버거, 랍스터롤, 관자 베이컨 말이 등등. 메뉴가 독특한 것이 아니면, 흔한 요리를 잘 한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아내는 랍스터롤을,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피쉬앤칩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한 20 여분 정도를 기다리자 요리가 나왔다.

 이 친구가 내가 주문한 피쉬앤칩스인데, 일단 외양부터 지금껏 먹었던 피쉬앤칩스와 달랐다. 통튀김옷에 휩싸인 채로 등장했던 다른 피쉬앤칩스와 달리 이 집의 생선 튀김옷은 잘게 부서진 튀김조각들이 촘촘히 생선에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튀김으로 이루어진 체인메일을 생선이 입었다고 해야하나? 어떻게 보면 잘 구워진 일본식 돈까스 튀김옷과 같은 느낌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튀김옷 하나하나가 굉장히 고소했고 바삭했다. 그리고 그 안의 생선살은 입에서 녹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건 완전히 접근방식이 다른 피쉬앤칩스였다. 

더하여 감자튀김에서는 송로버섯향이 가득했다. 송로버섯 기름을 감자튀김에 가미하면 정말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기법이지만 이쪽 동부 캐나다에서 그 기법을 사용하는 집을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이와 경탄 그 자체였던 메뉴. 나는 거의 넋을 잃고 이 음식을 흡입했다. 아, 차만 없었더라면 맥주 한잔 했어야 하는 것인데.

 요 친구가 아내가 주문했던 랍스터롤.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얼마나 맛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곳의 랍스터롤이 이제 그녀가 캐나다에서 먹은 랍스터 롤 중 가장 맛있었던 것으로 등록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후다닥, 이 불쌍한 친구는 삽시간에 그녀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사진이 이쁘게 나오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정신없이 먹다 보니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허.

 이 환상적이었던 한 끼를 마지막으로, 짧았지만 보람찼던 이틀 간의 PEI 여행도 끝났다. 돌아오는 길은, 모든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길이 그렇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몸은 피곤했고, 돌아가면 해야 할 것들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은 무겁기도 했다. 차는 우리가 달린 거리만큼 낡아가고 있기에 조만간 이런저런 검사를 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엔진 오일을 갈아줘야 하는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그런 고민들, 걱정들은 모두 우리가 어딘가로 갔기에 얻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딘가로 갔었기에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고, 비판하고, 그리고 추억으로 저장할 수 있었다. 요는, 인생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떠나는 길보다 아쉽고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래서 나의 여행기에서 마무리는 언제나 짧고, 어설프다. 다 쓰고 보니 이 글도 예외가 아니구만.

하지만 마무리를 잘 쓰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두번,세번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다시 떠나는 길을 생각한다. 다시 PEI로 떠날 그 길을.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그 길을. 그때 새로 마주한 PEI는 어떤 모습일까.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Charlottetown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1.

 그 여름날, 아내의 취업이 확정되었다.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더 이상 쉽게 여행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슬픈 소식이다. - 물론 한국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우리는 아직 매우 자유롭다. - 그래서 이 자유로운 일상이 끝나기 전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럴 때를 위해 나에게는 아껴 둔 여행지가 있었다. Prince Edward Island. 통칭 PEI. 제주도의 4배에 달하는 거대한 섬. 그 이름만 떠 올려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빨간머리 앤의 고향. 그리고 집에서 겨우(?) 3시간 4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 아내는 지난 여름 나를 버리고(?!) 학교 동료들과 같이 이 곳에 다녀왔었다. 버스로 떠났던 그녀는 가는 길만 대략 5시간이 걸렸고 그 때문에 제법 고생을 했었다고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했었지.

 지금은 우리에게는 작지만 차가 있다. 그냥 가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아내도 운전을 한다. 나는 그녀에게 핸들을 넘기고 조수석 창문을 활짝 열고 햇살과 바람을 가르며 드라이브를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갈 때 만큼은. 돈도 아낌없이 쓰기로 했다. 9월에 오시는 장모님을 위해 그때 같이 식사도 하고 잠도 주무실 곳을 미리 알아두고 싶었다...는 핑계로 말이지.  나도 이제는 좀 편한 여행을 가고 싶은가 보다. 점점 늙어가나 보다. 조금 더 슬픈 것은 이제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

아무튼,

모든 것이 다 좋으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여행 가능한 시간이 주말, 딱 2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PEI를 다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는 딱 두 곳만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샬럿타운(Charlottetown)과 빨간머리 앤의 농가를 그대로 꾸며 놓았다는 캐번디시(Cavendish)의 Green Gables Heritage Place. 사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PEI 여행이라고 붙이는 것이 조금 멋쩍기도 하다.

 고르고 골라 선택한 날 맑은 주말, 나는 아내가 타는 차를 타고 PEI로 향했다. 노바스코샤에서 뉴브런즈윅을 지나 길고 긴 다리를 건너 PEI로 들어서는 드라이브 코스는 정말...아름다웠다. 가는 동안 Queen과 Maroon5 그리고 어린 시절 여름을 같이 보냈던 쿨과 터보의 노래가 끊임없이 카스테레오에서 흘러 나왔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시원한 바람, 주황색의 비옥한 땅이 끝도 없이 길 옆으로 펼쳐지는 중에 가끔 드문드문 소와 말, 그리고 양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캐나다의 시골 풍경. 하지만 그 장면은 지겹지 않고 마냥 여유로웠다. 우리는 그저 달리고, 또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우리에게는 도달해야 하고 돌아가야 할 장소와 시간이 있다. 행복하지만 조금은 답답한 현실. 그러기에 이 주말 여행이 더 소중한 것이다. 아니, 사실 모든 주말 여행이 다 소중한 것이다.



2. Charlottetown

 점심때를 좀 지나서 우리는 샤롯타운에 도착했다. PEI의 주도(州都)라고 들었기에 뭔가 크고 으리으리한 '도시'틱한 분위기를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작고 귀여운 마을이 그 사이즈만 커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샤롯타운에는 마치 가정 교육을 잘 받은, 하지만 명랑하고 밝으며 호기심이 넘치는 소녀가 뒷짐을 지고 나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PEI의 주 산업은 단연 관광업. 그 중심 도시인 샤롯타운에는 맛집과 기념품 가게, 펍, 호텔과 B&B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운 좋게 시내 중심가에 빈 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우리는 룰루랄라 주차를 하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마을 산책에 나섰다.

 산책의 시작 지점인 다운타운 십자대로 한 쪽 거리에는 PEI의 명물 아이스크림, 카우즈(Cow's)가 있었다. 핑크색 아이스크림이 켜켜이 쌓인 간판과 그 뒤에 순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귀여운 젖소 간판을 내가 어찌 못 보고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이곳의 아이스크림은 꽤나 맛있는 편이라 노바스코샤나 뉴브런즈윅의 이런저런 도시에도 분점이 있다고 들었다. 벤쿠버나 토론토에는? 글쎄 잘 모르겠다. 날도 덥고 하니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물고 돌아다녀 볼까 싶었는데. 마나님이 나중에 아이스크림 먹을 곳이 있으니 지금은 그냥 가자고 한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 그녀의 말에 따라 다시 길을 나섰다.

 거리는 깔끔했고 넓었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성수기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라 사람도 적당한 수준이었다. 마음에 드는 거리였다. 나이 먹고 이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수많은 거리의 매력 요소 중 가장 맘에 들었던 면은 잘 정돈되고 깔끔하면서도 예술성 또한 갖추고 있는 상점 간판들과 도로 표지판들 이었다. 뭐 때문에 그렇게 아둥바둥, 중구난방, 엉망진창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이 서울 거리의 간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유와 정이 있었다. 물론, 인구가 천만이 넘어가는 대도시와 이름 모를 시골의 큰 섬 마을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 수도 있겠지만, 도시 촌놈인 나는 이렇게 잘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여유 있고 따뜻한 거리가 좋다.   

 예를 들어, '빨간머리 앤 초콜릿' 간판을 보자.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노란색 모자. 크고 강렬한 색상이 멀리서봐도 눈에 잘 들어온다. 그 와중에도 놓치지 않은 것은 앤의 뒷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신비로움. 만약 저 간판에 앤의 앞 모습이 그려져 있었으면 어땠을까. 다음으로 양 갈래 땋은 머리 끝으로 만든 가게 상호의 시작과 끝. 굳이 따로 리본을 만들지 않아도 리본을 그려 넣은 듯한 느낌이 드는 간결하면서도 스마트한 마무리. 정말 좋지 않은가.

다만 이 가게의 초콜릿은 간판만 못하더라.  

 보행자 건널목을 나타내는 표지판. 밍숭맹숭 그냥 걷는 사람보다 이렇게 몬티 파이선의 '얼렁뚱땅 걷기 부서 장관'을 넣어두니 얼마나 재미있는가? 

  이 거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비단 간판 덕분 만은 아니다. 옛 것과 새것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 거리 곳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잘 보존되고 꼼꼼히 보수 된 오랜 건물들 또한 이 매력적인 거리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 맘에 들었던 건 바로 이 시청 건물. 건물 한 쪽 구석의 종탑이 지금도 멀쩡하게 서 있는 그 건물 안에서는 이 도시의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문화재로 박제된 건물이 아니라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살아 있는 건물이라는 것이지. 

 시청 옆에는 소방서가 있었고, 그 소방서 앞에는 구식 소방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은 장식용에 지나지 않지만 이 소방차는 한 때 이 거리를 요란스러운 종소리와 함께 달렸겠지. 모름지기 소방차는 달리지 않고 건물에서 낮잠이나 자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만, 이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은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불현듯 운전석이나, 하다 못해 뒤의 짐칸에 실려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겨우 그 유혹을 뿌리치고 발걸음을 옮겼다.

 두터운 턱이 인상적인, 처칠의 얼굴이 떡 하니 붙어 있는 펍, 처칠. 한 국가의 수장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본국도 아닌 타국의 술집 이름으로 불릴 정도라니. 뭐, 술도 좋아하고 담배 좋아하는 그 선생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술집에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긴 한데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좀 이상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이 아닌 어느 외국의 술집에 '율곡 이이'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면 느낌이 어떨까. 나는 이상할 것 같은데. 



3. The Roman Catholic Diocese of Charlottetown

 거리를 걷다가 골목 사이로 뾰족하게 올라간 첨탑의 끝 부분이 보여 그리로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거리에 잘 어울리는 교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녔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교회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여행지 마다 성당이나 교회가 눈에 띄면 챙겨보는 편이다. 물론 절이나 도교 사원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비과학적, 초월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맹신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에 그 어떤 것도 섣불리 믿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섣불리 부정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덕분에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마음 것 갈 수 있다.

아무튼,

이 교회의 구조와 크기, 그리고 외관의 특징과 아름다움은 한눈에도 이 곳이 범상치 않은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뭐가 ㅇ 있나 찾아 봤더니 이름이 좀 다르다? 'The Roman Catholic Diocese of Charlottetown'...Diocese...Diocese? 아하, 여기가 주교가 머물렀던 교구교회 였구나. 문은 반 정도 열려 있었고 지나가던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 중에서도 하나 둘,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조심스럽게, 하지만 마치 빨려 들어가듯 교회 안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교회는...놀라울 정도로 조용했고, 웅장했고, 경건했다. 늘어선 사도의 조각들, 성찬대 아래에 부조로 들어있는 최후의 만찬, 그 옛날 처음 부임한 주교가 포교를 위해 만들었다는 썰매이자 수레 등. 그 모든 곳에 들어 있는 정성과 경건함. 그 모든 것들이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앙의 증거로 볼 수 있으리라. 신앙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 자체는 부정할 수 없으리라. 아니,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두운 실내로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스테인드글라스의 화사한 색들을 입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 쏟아지는 색의 향연이 들어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속에 서 있으면, 평소에는 믿지 않았던 저 먼 초월자의 존재가 마치 내 위에, 혹은 내 안에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흥미로웠던 점은, 이 곳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비단 성경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 교회에서 사임하셨던, 현생을 살았던 주교들의 이야기들도 전부 들어있었다는 것이었다. 상부 구조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구약, 신약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가운데 그 아래 하부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이곳 사람들과 미사를 행하고 장례를 치르고 재난에 맞서는, 안경을 쓰고 차를 모는 주교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이유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스테인드글라스 한 장, 한 장을 살펴보다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찬 가슴을 어쩔 줄 모르고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를 서성거리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하늘의 해는 조금씩 저물어 파란색에는 황금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산책을 하는데,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걸으면 지금 내 감정의 틈새로 이 여행에 어울리지 않을 향수와 삶에 대한 감정이 가득 차 오를 것 같았다. 산책 도중에 마주한 중국인 이민자 건물 앞에서 그런 생각은 결국 한계에 도달했다. 그 옛날 고향을 등지고 이곳까지 찾아온 중국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니, 지금 나의 편한 일상은 그에 비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어느덧 그들의 감정에 공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나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즐겁게 여행하자.

그래서 나는 정처 없이 걸었던 산책을 마무리 짓고 배를 채우기로 했다. 맛있는 술과 달달한 디저트도 곁들여!



4. Gahan House & Truckin' Roll

 이 곳 캐나다에서 나는, 처음 가본 곳에서는 언제나 피쉬앤칩스를 시켜본다. 그 메뉴는 중국집의 짜장면과 탕수육과 같다고 내가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래서 이곳. 샤롯타운의 거리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도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피쉬앤칩스를 시켰다. 물론, 맛있는 맥주와 같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곳 - Gahan House 였지? - 의 피쉬앤칩스는 훌륭했다. 살도 두툼하면서도 속까지 적정한 수준으로 잘 익어있었다. 튀김옷은 바삭하면서도 질기지 않았고, 손수 만든 타르타르 소스와 사우어크라우트도 맛있었다. 더욱이 PEI의 명물 맥주 브랜드, Gahan의 스타우트는 진하면서도 부드러웠고 구수하면서도 달달 했다. 가격은 좀 비쌌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먹고 마시면서 피곤한 다리를 풀고 먹먹해졌던 감정을 달랬다. 지난 여름 캐나다에 왔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그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서 이렇게 둘 중 하나라도 취직을 할 수 있었는지, 다시 보내왔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때로는 즐겁게 웃었고 때로는 쓴 미소를 지었다. 즐거웠다. 즐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일단 예약했던 호텔에 들려 체크인을 했다. 아니, 식사하기 전에 체크인을 했던가? 뭐, 중요한 것은 잠깐 호텔에서 쉬고 나온 우리는 황혼이 지는 이 거리에서 디저트를 찾아 헤매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리하여 찾은 곳이 바로 샬롯타운의 명물 아이스크림 트럭, Truckin' Roll이 되겠다.


 사실 여기 이 트럭은 Church St.에 붙어 있는 트럭이니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종을 쳐서 아이들을 모으는 그런 아이스크림 트럭과는 많이 다르긴 하다. 그러면 어떤가. 어른 두 명이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외관은 의젓한 유럽식 트럭,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자기들이 직접 유럽에 가서 이 트럭을 배에 싣고 왔다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제공되는 아이스크림은 콘 모양이 아닌 Roll 형태의 아이스크림이다. 남극의 대지 마냥 차가운 금속판에 이런저런 아이스크림 재료를 넣고 뚝딱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낸 뒤에 주걱으로 얇게 펴고, 그 아이스크림 양탄자를 주걱으로 밀어 이렇게 동글동글한 롤을 만들어 낸다. 이전, 한국에서 먹었던 콜XX톤 아이스크림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아름답게 말린 모양과 그 식감에 있겠다. 이름이 복잡해서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 말차 아이스크림은 마치 막 피어난 녹차꽃(??) 같았다. 크림도 맛있고 그 위에 뿌려진 고명들도 고소하고, 아이스크림 사이사이에 스며든 말차향과 꿀맛도 정말 괜찮았다. 

 제조공정이 복잡하다보니,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꽤나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고객들을 위해 이 트럭이 준비해둔 것은 피크닉 매트와 젠가 게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도, 연인의 팔짱을 끼고 나온 남녀 커플도 잔디밭에 매트를 펼치고 앉아 젠가를 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않고 벌렁 드러누어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보면서 달달한 자신만의 디저트가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유롭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정말, 여름 휴가다운 시간이었다. 우리도 그 사이에 앉아 그 신선놀음이나 해 볼까 했으나 생각보다 우리의 아이스크림은 빨리 나왔다. 그리고 곧, 그 아이스크림들은 우리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하나 더 시키기에는 너무 많이 기다려야 했기에,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번에는 장모님과 함께 이곳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5.

 나의 아내는 배가 부르면 소화시켜야 한다는, 혹은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이 있다. 돈과 시간을 들여 올려놓은 만복도를 왜 낮추는지 난 정말 이해가 안되지만, 나이먹으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세상에 목숨걸고 지켜야할 가치와 생각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바라는대로, 끌고가는대로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로 나아갔다.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할 만한 캐나다의 그림같은 풍경이 또 눈앞에 펼쳐졌다. 진한 오랜지색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바라보는 가운데 해안선과 나무들 사이로 잘 정비된 산책로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여유가 넘치는 풍경에 경탄하고, 내가 그 가운데 앉아 - 혹은 저 집의 포치에 앉아 - 은퇴생활을 즐길 수 없음에 살짝 질투심이 들기도 했다. 이 나이에 무슨 은퇴냐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죽기전에 다 보려면 지금 당장 은퇴해서 돌아다니지 않으면 다 볼 수 없을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한때 이곳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에도 샬롯타운은 PEI에서 손 꼽히는 정치적,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기에 바다가 면한 해안선에 이렇게 요새를 지은 것이겠지. 산책로를 따라 잘 보존되어 있던 포대와 방둑, 탄약고와 작은 병영들이 바로 그러한 샬롯타운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저 대포가 이곳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한 면이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저 정도의 구색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와이프는 산책로의 끝까지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변 풍경, 내일 여행 계획, 장모님이 오시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놀이터에서 울려오는 음악소리 등등. 해는 이제 많이 기울어 어둠이 드문드문 해안에 펼쳐진 숲 사이로 깃들고 있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상황, 그녀가 내 옆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왜 우리는 집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이 바로 일상의 저주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러기에 우리는 그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닌지, 나에게 있어 수많은 여행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돈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되는 한, 숨을 쉬고 눈을 뜨고 있는 이 살아 생전에 되도록 많은 곳을 가 봐야 겠다고 마음을 다시 먹었다. 가능하다면 그녀와 함께. 


쿠바(Cuba),Epilogue:Nothing gonna change - 쿠바(Cuba)




1.
 
...이미 저녁 아홉 시가 되었지만 하늘에는 아직 해가 남아 있었다. 아니, 이 정도의 해가 딱 좋지. 황금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사그라지는 그 아름다운 노을을 멍하니 보며, 나는 포치의 안락의자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내 무릎 위에는 쿠바에서 산 시가 박스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나는 박스를 열어 시가를 하나 꺼내어 코 끝에 가져다 대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담배와 꿀이 섞인 그윽한 향기가 숨을 따라 코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마치, 성냥개비 소녀가 추위에 못 이겨 성냥을 그었을 때에 떠올랐던 그 광경처럼, 시가향을 맡을 때 마다 깜빡깜빡, 하바나와 트리니다드, 시엔푸에고스에서 보냈던 즐거웠던 추억이 등대 불빛 마냥 내 머릿속에 다가왔다 멀어졌다. 

그 멀어지는 추억을 붙잡아 보려고, 나는 불현듯 성냥을 꺼내 시가에 불을 붙였다. 화악, 하는 소리가 지나고 보라빛 연기가 시가에서 피어오르자, 램프의 지니가 마술이라도 부린 듯 저 멀리 떨어진 쿠바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저 멀리 '관타나 메라'가 들려오고 집 앞의 작은 도로로 번쩍이는 바퀴와 다채로운 색깔이 인상적이었던 쿠바의 올드카들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체 게바라 처럼 시가를 입의 한쪽 끝에 밀어 물고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었다. 이 시가가 다 타면 이 광경도 사라지겠지. 하지만 그럼 어떤가. 또 한 대 태우지 뭐.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과 만족감이 내 몸을 채우고 나는 눈을 감고 그 여운을 즐겼다...

...

아마 이런 광경이 내가 쿠바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보상(?) 이었을 것이다. 힘들 때 마다 꺼내먹고 다시 기분을 북돋을 수 있는 '여행 사탕' 중, 쿠바는 멕시코에 이어 또 다른 카리브의 맛을 내게 보장할 터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
 
 마지막 날 새벽, 공항 행 택시는 매연이 심했고 좌석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예상했던 터였다. 공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이니까. 정말 돈 주고 사 먹기 싫었던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가게와 싸구려 커피와 기념품을 파는 상점 하나 빼고는 죄다 문을 닫았었다. 심지어 인터넷 카드를 파는 곳도 문을 닫았더라. 새벽이니까. 공항직원들의 복지에 나는 공산주의 만세를 외치고 싶었지만 그로 인해 아무것도 사지 못한 불편함은 누구에게 하소연 해야하나.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을 기다리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제2의 고향 할리팩스는 흐렸고, 추웠다. 곧 눈이나 비가 올것 같았고, 우리는 피곤했다. 돌아온 행랑을 다 풀지도 못하고 나와 아내는 샤워만 하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고 그런 우리 둘 사이에 '이번 여행 정말 좋았지?' 같은 여흥은 없었다. 피곤했던 우리는 그렇게 곯아떨어졌다.

예상과 다른 맛. 원하지 않았던 조합. 처음으로 페퍼민트 초코렛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 느꼈던 그 불쾌함. 치약맛과 단맛이라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눈앞에는 집에 도착하니 경첩이 떨어져 덜렁거렸던 불량(?) 시가 박스가 멋쩍은 모습으로 놓여 있다. 강력 접착제로 다시 뚜껑을 붙여 놓은 그 놈은 상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나 언제 또 반대쪽 경첩이 떨어질까 불안하다. 박스 안의 시가를 들어보니 몇 개는 말라서 부스스 담배 잎이 바닥에 떨어진다. 몇 번이고 냄새를 맡아 봐도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 대당 몇 불짜리 싸구려 시가인데. 그래도 좀 비쌌던 시가에서는 희미하게 담배 향기가 나긴 하지만, 얼마나 오래갈지. 나는 가볍게 한 숨을 내 쉬고 시가를 내려 놓고 싸구려 우리 아파트 창문으로 바깥을 보았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그 아래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비인지 눈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릉우릉 창이 울었다. 나는 '집'에 살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포치도 없다. 뜰도 없다.

현실은 이러하다. 더하여, 쿠바에서 나는 얻고자 했던 것을 얻지 못했다.



3.

 영생을 얻기 위해 떠났던 길가메쉬는 영생을 얻지 못했다. 집을 찾아 나섰던 오딧세우스도 집에 도착했기는 했지만 꽤나 오래 걸렸고 고생도 했다. 자기 성격 탓에, 다른 놈들의 회방에, 동료의 바보짓 등등으로. 그럼 그들의 여행은 실패한 것인가.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실패한 여행이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누구처럼 중국 공항에서 추방당한 들, 누구처럼 보고타에서 카메라와 노트북을 몽땅 도둑 맞은 들, 아내처럼 싱가폴에서 여권을 잃어 버린 들, 어찌되었든 그건 실패한 여행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찌되었든 우리는 '사탕'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맛이 내가 원했던 맛이 아닐 뿐이지.

쿠바의 사탕은 '내려놓음'의 사탕이랄까. 나의 지랄 맞은 성격을 좀 더 내려 놓으면 네 맘에 안드는 곳도 즐거울 수 있다는 그런 맛이라는 것이다.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포기하고 - 혹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 다들 사람 사는 곳인데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지.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다음 번에 쿠바를 간다면, 혹은 다른 곳에 간다면 나의 그런 성격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니. 그렇지 않다. 인간은 그렇게 현명(?)하지 않고 나는 더욱 미련하다. 부탄이든 카불이든, 아마 나는 똑같이 투덜거릴 것이고 여전히 경악할 것이다. 나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내가 바뀌려고 여행을 가는가?

이번 여행에서 하나 깨닫게 된 것은, 나는 '이런' 나라도 환영받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그냥 있는 이 모습대로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을 찾아 - 혹은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 알기 위해 -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모든 낯선자에게 편한 곳이 아니라 '내'가 편한 곳. 몇 달 동안 백수 짓을 해도, 때로는 새벽까지 게임을 해도, 이 나이가 먹도록 아기도 없고, 국가와 사회가 나 같은 사람에게 바라는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고 - 혹은 행하는 것을 거부하고 - 살아가는, 현재 생산력과 사회 기여도가 한없이 0에 수렴하는 나 같은 인간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그런 생떼가, 나는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을 테니 그래도 사랑해줘라고 외치는 아기의 짜증 같은 것이 나의 여행이란 것이다. 그럴지도.

그래서 여행을 다녀와도 나는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응당 바뀌어야 할 곳은 세상(!)이기 때문에. 아, 이 제멋대로의 쾌감이여. 그래서 나는 또 짜증 내고 또 투덜거리고 또 감격하고 또 행복하기 위해 여행을 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쿠바에서 얻은 사탕은 참으로 희귀한 맛을 가지고 있다. 어찌 되었든 내가 내려놓아 보았으니. 그렇게 해 봤다는 것 자체는 나에게 있어 큰 의미가 있다. 나 같은 고집 돌덩이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니. 내가 자발적으로 포장지를 벗겨 입에 밀어 넣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 여행이 아니라 사업이나 또 다른 삶의 과정 중에서 - 나는 이 사탕의 맛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 이것도 먹어봤었지. 그때 내 귓가에 관타나메라가 들리고 코 끝에 매연과 함께 시가 냄새가 흐르고 입안에 짜릿하게 칵테일의 맛이 떠오른다면, 나는 그 황당한 상황을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쿠바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그 새하얀 백사장 위에 펼쳐지는 사파이어 색의 바다와 하늘을 더 자주 떠올렸으면 싶지만 인생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PS. 지금 나는 페퍼민트 아이스크림을 매우 좋아한다.

쿠바(Cuba),6일차:Havana,You dirty little lover - 쿠바(Cuba)


 택시로 스페인 대사관 앞에 내린 우리는 곧 숙소로 향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지만, 이 짐을 들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이 나라에 남아있을 시간도 이제는 반나절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전에, 나는 이 도시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 근처 광장까지 하수와 오줌을 뚫고 걸어야 하는 그런 도시' 로 내 기억에 남기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나와 아내에게는 각각 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내는 'Havana 1791'의 향수를 한 병 더 사고 싶었고, 나는 쿠바에 와서 6일이 지나도록 듣지 못했던 '제대로 된' 쿠바 밴드의 연주를 칵테일을 마시면서 '적당한' 가격으로 듣고 싶었다. 이날이 지나면 나는 그 음악을 유튜브에서나 찾아야겠지. 이 날, 이 밤이 마지막 기회다. 함부로 보낼 수는 없지. 

그렇게 우리는 약간은 비장한(?) 각오로 길을 나섰다.




1.

 헤어질 때가 되면 그렇게 싫던 사람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누가 그랬었나. 혹은 막 도착했을 때와 다른 루트, 다른 시간에 이 거리를 걸어서 그런가, 이날 저녁 우리가 걸었던 하바나의 거리에는 신기한 것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수두룩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니면 트리니다드나 시엔푸에고스 같은 시골, 혹은 작은 도시에서 보낸 3일이 나의 관점을 바꿔 놓았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날 마주 했던 하바나의 사람과 사물들, 스페인 식민지 양식의 요새 안에 자리 잡은 경찰서, 젊은 화가들이 꾸려나가던 영세한 아트 갤러리, 옥수수를 그대로 물통에 빠뜨려 삶아 팔던 거리의 마약 옥수수 장수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로웠고 각자의 매력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왜, 도대체 왜?
 그 빛나는 거리의 실루엣들 사이로, 저물어 가는 해와 반대로 에너지가 넘치는 군중들이 여기저기로 뻗어나가고 있었다.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로 자갈이 깔린 올드하바나를  또각 거리며 나아가든 관광객도, 군용 반팔티에 짧은 팬츠를 입고 타이어로 만든 듯한 샌달을 신고 춤 추듯 알 수 없는 장소로 뛰어가던 청년도, 그리고 그 모습을 광장 벤치에 앉아 흐뭇한 웃음과 함께 지켜보던, 힘껏 지팡이를 움켜쥔 노인도, 그 모든 것이 에너지가 넘쳤고 매력적이었다. 이날 저녁, 그 흐린 하늘 아래의 거리에 무엇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인가.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조된 분위기에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향수 가게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방황했다. 즐겁게, 약간은 멍한 기분으로. 그 때, 저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림. 그 찢어짐. 나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건 심상치 않은데, 나는 생각했다. 노느라 정신 없는 사람들은 그 큰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지만 나는 곧 큰 비가 올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적당한 곳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비를 피하자고 했고 그런 그녀는, 조금은 비싸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을 추천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El del Frento가 되시겠다.




2. El del Frento

 전반적으로 쿠바에서는 식사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딱 네 끼 정도가 괜찮았다. Rumrum의 칵테일과 돼지 통구이, Papa Ernest의 샌드위치와 레몬파이, El biky의 아침, San Jose의 저녁. 하지만 이건 어디 까지나 '밥'이란 관점에서  내린 평가였다. Fine dining에 가까운,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을 식사는 지난 6일 동안 먹어보지 못했다. 당연하지. 나는 식사에 대한 예산을 박하게 잡았으며,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 나라의 Fine dining에 대해서는 상당히 박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 누가 맛없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음식에 많은 돈을 쓰겠는가?

하지만 이 날 저녁, 나는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곧 소나기가 내릴 것이었고, 여행의 마지막 날, 대충 끼니를 때웠던 지난 날들로 인해 식사에 배정했던 돈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날의 그 거리에 가득했던 마법 같은 고양감은 왠지 뭘 찍어도 잘 걸릴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물론 객관적인 근거도 있었다. 이 레스토랑에 대한 평은 다 좋았다.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소위 '댓글 작업'을 업주가 했다고 하자. 그래도 모든 댓글을 다 조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번역기가 개발새발 써 놓은 한글이 아닌, 올바른 문법과 훌륭한 문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한국인의 평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 댓글의 이런저런 내용은 다 생략하고 딱 한 문장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가게의 '소스'는 하바나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수준. 소스만 드셔도 돈이 아깝지 않을 거에요...'


 ...이런 말을 들으면 다른 건 몰라도 소스는 먹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러니 갈 수 밖에. 가서 먹어볼 수 밖에.

 그렇게 찾아간 엘 델 프렌토 - 라고 읽는게 맞나? - 의 첫인상은 괜찮았다. 레스토랑은 2층과 룹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룹탑 - 이라 읽고 옥상이라 불러야 겠지 - 에 있었기에 2층에는 빈자리가 있었다. 비를 피하러 온 내가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옥상으로 가지는 않겠지? 나는 2층의 아주 적당한 구석자리를 차지한 뒤 칵테일을 주문하고 천천히 내부 인테리어를 살펴보았다. 정성과 돈을 들여 꾸민 흔적이 역력했다. 스테이크는 무려 '뉴욕'식으로 굽는다고 벽에 써 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과 자부심이 적정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제법 괜찮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우리가 자리를 잡고 가게 구경을 하는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을 찢는 소리가 울리고 곧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흡사 양동이로 쏟아 붓는 듯한 그 폭우에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음악은 꺼지고 여기저기 뛰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몇 무리의 관광객들이 뒤 늦게 레스토랑으로 올라왔다가 자리가 없어 거절 당했다. 룹탑에 앉아 있다 쫄딱 젖은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왔으나 역시 자리가 없어 강제 퇴장. 나는, 좀비의 습격을 미리 예상하고 안전한 은신처로 잘 대피한 것과 흡사한 만족감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비에 쓸려(?)나간 거리에는 정적이 찾아오고 오직 비내리는 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레스토랑안에서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 자기 식기와 금속 찬구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이 조용한 세상. 맘에 들었다.

그렇게 한 껏 행복감에 빠져 들고 있자니 주문한 칵테일과 음식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무에비엔, 무에비엔. 



다이키리. 가지 째로 꽂아넣은 애플민트가 스펙타클했다. 큼직하게 썰어 꽂은 라임과 병을 휘감고 있던 라임껍질 장식도 멋있었다. 게다가 양도 많고, 술도 듬뿍 쏟아넣은 볼륨감이 넘치는 한 잔 이었다. 이 가격에! 다른 건 몰라도 쿠바의 칵테일은 세계최고 수준으로 인정하겠다.
 
 그러다가 문득, 테이블 한 켠의 소스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나는 이 소스가 궁금해서 여기 온 것이 아니었는가?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건만 나는 칵테일의 안주로 소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스푼에 부어 찍어 먹어본 소스는 세상에, 정말 맛있었다. 달콤하고 새콤하면서도 매콤하고 그 모든 맛에는 자연스러움이 넘쳤다. 과일과 향신료가 아주 적절히 조화를 이룬 놀라운 밸런스. 나는 불현듯 소스병을 가방에 쑤셔넣고 싶었다. 따로 판다면 사 들고 가서 성분 분석을 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팔지는 않더라고.

나는 아쉽지만 어떻게든 그 기적적인 맛을 머릿속에, 혹은 혀 위에 남기기 위해 소스를 먹고 또 먹었다. 하지만, 지금 캐나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맛은 되살릴 수 없었다. - 최근 들어 느낀 건데, 소스에 대한 기준이 올라가면서 나의 소스 만드는 솜씨는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다. 애석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소스를 퍼먹고 있자니 전채가 등장. 팔라펠이다. 쿠바의 팔라펠은 어떨까. 한입 물었을 때 겉은 아사삭 속은 고소. 게다가 이런 튀김은 지금껏 퍼먹은 소스와 환상의 궁합이지. 나와 아내는 접시에 소스를 잔뜩 뿌린 뒤 팔라펠을 이리굴리고 저리굴리고, 소스를 잔뜩 몯혀서 먹었다. 그러다가 그냥도 먹어보고. 다시 굴려서 먹어보고. 그러다 보니 접시가 텅 비었다. 

다행히 접시가 텅 비기 전에 다음 요리가 등장했기에 우리는 쉼없이 행복감을 고조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건 세비체로 기억한다. 쿠바에서는 세비체를 어떻게 해석할까? 역시나, 통째로 썰어 올린 바질이 화끈하다. 나는 해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 맛을 보진 않았으나, 아내의 평에 따르면 꽤나 괜찮다고 했다.  

 아내의 세비체에 견주어 내가 주문한 슈니첼. 잘 두들긴 고기. 얇고 바삭하게 잘 튀겨낸 튀김옷. 허허, 이런 솜씨가 있나. 게다가 덤으로 준 스파게티도 맛있었다. 고명(?)으로 살짝 구워낸 버섯도 그 구운 솜씨가 꽤나 괜찮았다. 아, 역시 쿠바라도 돈을 투자하면 이런 요리사를 구할 수 있구나. 나는 이 레스토랑에서 하바나, 아니 쿠바 요식업계의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이 식당의 하이라이트는 다름이 아니라 이른바 '뉴욕식 돼지 스테이크' - 솔직히 나는 뉴욕식 스테이크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햄버그로 다져서 고기가 나오는 판에, 이 레스토랑의 요리사는 어려운 재료 수급에도 스테이크의 본질에 가까운 요리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고민한 흔적이 충만한 한 접시를 내 주었다. 통 돼지살을 적정한 두깨로 수평으로 펴 내어 구워낸, 그 목살 스테이크는 그 요리에 기대하는 육즙과 육질을 잘 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디핑 소스. 그리고 딱 적정한 수준으로 구워낸 양파와 토마토와 감자와 아스파라거스. 이게 바로 제대로 된 요리사가 낸 스테이크라고, 쿠바에도 스테이크가 뭔지 아는 요리사가 있다고 외치는 듯 했다. 물론, 비쌌다. 약간 아플정도로. 하지만 그 값을 하는 한 접시였다. 나는 아주 만족했다. 

 내친김에 디저트까지 주문할까 했는데, 아내가 극구 만류했다. 기념품을 사야하는 우리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한 것이겠지. 그래서 우리는, 비가 잦아들 때까지 남은 사이드와 소스를 쩝쩝 맛을 보다가 적당한 시점에 밖으로 나섰다. 마냥 여기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그렇게 나가는 우리에게 아리따운 웨이트리스가 꽃 한 송이를 건네더라. 좋은 여행되세요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이름없는 열대의 꽃 한 송이지만, 나가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쿠바에도 이런 레스토랑이 있었구나.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돈을 들여야 이 기분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의 하바나가 어떤 곳이었는지 나는 모르니, 나의 이런 기분이 공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3.

 꽃 한송이를 들고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많이 잦아 들었지만, 아직도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퍼 부은 그 비로 인해 도시는 깔끔해 보였다. 거리에는 물 웅덩이만 좀 있을 뿐, 쓰레기도 냄새도 없었다. 그리고 짙게 내린 어둠은 이 거리의 낡고 방치되었던 상처를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다. 어두운 클럽에서 얼큰하게 취기에 오른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면 전부 미인으로 보인다고 누가 그랬던가. 지금 하바나의 시내가 그랬다.

이런 나의 심적 변화의 또 큰 이유는 내가 비에 쫄딱 젖어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이 올줄은 몰랐던 나는 작은 우산과 비옷 한 벌만 가지고 나왔었고 그 우장은 전부 오롯이 아내에게 제공되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우산을 좋아하지 않기에 뭐 곧 그치겠지 하고 줄곧 비를 맞으며 기념품 가게를 찾았었는데, 시간이 꽤 지나자 말 그대로 바지까지 흠뻑젖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나니, 그냥 모든게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구정물이 좀 튀면 어떤가. 어쨋든 홀딱 젖었는데. 기념품 가게를 못 찾은들 어떤가? 어차피 시간도 다 흘러가 버렸는데. 불교 용어로 이야기 하자면 레스토랑에서 나오고 거리를 헤매이면서 나는 그냥 다 내려놓아버렸다.

그러니 행복했다.

나와 아내는 이날 결국 기념품을 사지 못했다. 어두운 골목은 낮에 기억했던 구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가 다가왔고 이리 돌고 저리 지나치고 하다가 우리가 그 향수 가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하지만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내도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우리는 어께를 한번 으쓱하고, 이날 저녁의 또 다른 목적인 '음악'을 듣기 위해 다시 거리로 다섰을 따름이었다. 

비가 오니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니 술집에도 손님이 없고 손님이 없으니 음악도 없는 것이겠지. 낮에는 서로 경쟁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던 가게들이 이날은 조용하게 - 혹은 우울하게 - 영업을 하고 있더라. 다소 슬픈 표정의 종업원들과 주인장들은 구석에 서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오직 서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만이 이런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따름이었다. 우리는 그 가게들을 지나고 지나고 지나서, 어딘가에 들리는 음악을 따라 이 골목 저 골독을 돌아다녔다. 그것은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비와 어둠에 빠진 하바나는 매우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였다...그리고 나는 이쪽에 속한 '그녀'가 더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마침내, 우리는 그 빗속에서도 꿋꿋하게 밴드를 불러 조용히(?) 놀고 있는 술집을 찾을 수 있었다. 더 돌아다녔음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싶을 타이밍이었기에 나는 더욱 만족스러웠다.  


 밴드 앞에는 단체로 놀러온 여닐곱명의 관광객들이 큰 테이블을 통으로 차지하고 자기들이 상상해 왔던 쿠바의 바에서 해야할 것들을 하나하나 하고 있었다. 남녀 노소 모두 커다란 시가를 한 대씩 물고 불을 붙이고 빨아들였다 내뱉고, 그리고 누군가는 미소를 짓고 누군가는 기침을 토해내고, 그 모든 과정은 한 손에 들린 최신형 모바일폰에 녹화되거나 시진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럼과 쿠바의 칵테일이 우루루 테이블로 몰려나오고 그들은 과장된 웃음과 환호성으로 그 잔을 환영한 뒤 과장된 몸짓으로 술을 마시고 잔을 뒤집곤 했다. 전형적인 행동양식을 보이는 전형적인 개체들을 관찰하는 것도 이외로 재미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즐거웠던 건, 밴드의 신입 보컬을 보는 것이었지.

연령대와 헤어스타일 - 아프로 머리! - 에서 확연히 다른 멤버와 차별화된 분위기를 풍기던 그 기타리스트겸 보컬은 다른 멤버의 코치와 충고를 받아가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관타나메라'로 시작하는 오소독스한 쿠바의 노래에서 약간은 현대적인 팝송까지. 관록 넘치는 트럼펫과 베이스, 드럼이 적절하게 서포트를 해 준 덕에 그 아프로의 보컬은 자유롭게,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상외하는 분위기를 무대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좋은 연주였다. 그리고 맘에 들었다. 그 신구의 조화가, 이 모습은 흡사 지금 변화하는 시대에 조금씩 문을 열어가고 있는 쿠바가 바라지 마지 않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이상향을 그려낸 듯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 위로 시가 연기가 흐르고 술의 향기가 공기를 채우고 사람들의 즐거움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래, 즐거움 밤이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라니 너무도 아쉽지만 만족스러운 엔딩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이제 집에 가야할 때라고 직감했다. 갑자기 피곤해지기고 했고, 몸이 으쓸으쓸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돌아가자고 이야기 했다.

 돌아가는 길 나와 아내는 많이 웃고 많이 이야기 했다. 어둠은 더 짙어졌지만 비가 그쳐서 그러지 사람들이 드문드문 거리로 나오고 있는 듯 했다. 그래, 밤은 짧으니 우리는 걸어야 겠지. 하지만 나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밤에 만난 하바나라는 아가씨는 너무 아름다웠고 환상적이었기에, 곧 해가 뜨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그녀의 모습에 실망하기 전에 돌아서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자. 이제 가야겠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고, 샤워를 하고 짐을 싸고 곧 침대에 들었다.

침대에서 잠으로 떨어지기 전, 머리 속에 '좀 더 일찍 이렇게 해 주지 그랬어.' 라는 문장이 떠 돌았다. 누가 누군가에게 한 원망일까. 내가 하바나에게? 하바나가 나에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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