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촨(四川):사천 가정요리집, 청두(成都)반점 - 스촨(四川)

 그렇게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 우리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비에 젖은 옷을 말리고, 샤워를 하고, 누구는 맥주를 마시고 누구는 웰컴 과일을 아삭아삭 갉아 먹으면서, 우박과 비에 흩어지고 11번 구비의 계곡 도로를 내려오면서 어지러워진 정신을 다시 주워담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늘 그렇듯이 우리는 밥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로비에서 식사를 위해 모였습니다.

몸이 편해지면 움직이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우선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의 메뉴를 봤는데 이름만 멋지고 그렇게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 낯선 이름의 메뉴가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걸려 있습니다. 먹어보지도 않은 비싼 메뉴에 도전 하기에는 일행의 피로도와 공복도가 상당히 높죠. 그래서 과감히 호텔을 벗어나 보기로 합니다.

숙소로 택시를 타고 올때, 길 옆에 큰 주차장이 있었고 그 주변에 외관은 부실하지만 사람이 꽤 있어보이는 식당과 슈퍼가 있었습니다. 일단 그곳을 목표로 삼아 호텔 정문을 나섭니다. 정문 근처에는 택시가 나란히 서 있고, 기사들이 옹기종기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카드게임에 여념이 없습니다. 한 기사 분이 택시를 타겠냐고 슬쩍 말을 붙여 오지만 웃으며 아니라고 말을 전하니 다시 일행들 사이로 쏙 들어가 게임에 집중 합니다. 이런 드라이한 상황이 너무 좋습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아까 봐 두었던 큰 주차장이 보이고, 주차장을 가로지른 반대편에 훠궈(火锅)라고 쓰인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훠궈를 먹지 않더라도 저기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저렴한 메뉴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에 일행을 독려, 주차장을 빠른 속도로 가로질러 그 식당으로 달음박질 쳤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2일 동안 우리의 저녁을 책임졌던 곳, 청두(成都)반점 이었습니다.  

스촨의 대도시, 청두의 이름을 딴 이곳은 이름에서 짐작하시겠지만 맵고 강렬한 사천요리를 주로 하는 곳 입니다. 참고로, 구채구 인근에는 청두반점이 꽤나 많습니다. 제가 들른 곳은 쉐라톤 호텔 옆의 거대한 주차장을 가로지른 가장자리에, 디엔디엔(点点)슈퍼 옆에 위치한 곳 입니다.

식당문으로 들어서니, 청바지에 꽤나 낡은 양복 자킷을 입은 굉장히 난해한 패션 센스의 키가 큰 아가씨가 0.5초 정도 이상한 눈으로 저를 처다 보더니 - 외국인은 이 곳에 잘 안오는가 봅니다. - 자리로 일행을 안내합니다. 제가 중국어로 메뉴를 보여 달라고 하자 굉장히 안심한 태도로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메뉴를 가지러 갑니다. 

자리에 앉아 가게 내부를 둘러봅니다. 우리가 앉은 것 같은 탁자가 총 6개 정도가 있었고, 먼저 주문을 받은 아가씨에 비해 키와 나이가 모두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소녀 종업원이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저와 눈을 마주치자 슬쩍 눈을 피합니다. 테이블에는 테이블보 대신 얇은 비닐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벽에 붙은 정말로 거대한 메뉴판이 눈에 들어 옵니다.

 
...커서 눈에 잘 들어오긴 하는데, 참 맛없게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1인분의 가격이 구채구의 관광물가에 비해서 저렴한 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종업원이 가져온 메뉴판을 살펴보고, 저의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게다가, 저의 유학시절에 즐겨 먹었던 익숙한 가정요리 이름이 눈에 들어 옵니다. 왠지 그리운 생각에 가슴이 뭉클, 학창시절에 즐겨 먹던 메뉴를 두루두루 주문하였습니다. 

PS. 이곳에서도 먹기에 바빠 사진을 찍어 둔 것이 적고, 첫번째 저녁에 먹었던 메뉴와 두번째 저녁에 먹었던 메뉴가 섞어서 포스팅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두 이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던 것이니,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비주얼과 익숙한 맛. 그렇습니다. 우리의 탕수육에 가장 가까운 요리, 탕추리지(糖醋里脊)입니다. 고기를 가늘게 썰어 튀긴 뒤, 바삭할 때 소스를 뿌려 내는 요리. 중국에서는 '찍먹'이 아닌 '부먹'으로 나옵니다. 사천식이라고 해서 좀 매울 줄 알았는데, 색은 빨갛지만 오히려 신맛이 강합니다. 가격은 48 RMB.

마(麻)씨 성을 가진 노파(婆)의 두부(豆腐)요리. 사천 요리집에서 안 먹어 볼 수 없는 메뉴, 마포더우푸(麻婆豆腐) 입니다. 한입 먹어보니, 역시나 본고장의 솜씨는 다릅니다. 입안 가득 얼얼한 매운 맛이 퍼집니다. 고추가 내는 달짝지근한 매운 맛이 아닌 산초가 내는 얼얼한 매운 이 맛!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과 등에 땀이 조금씩 납니다. 

마포더우푸와 같이 먹으려고 시킨, 지단차오판(鸡蛋炒饭)입니다. 주문을 할 때메뉴에 볶음밥이 없어 이집은 볶음밥이 없냐고 물어봤더니 말하면 만들어 주니까 뭐랑 볶을 것인지 고르라고 하더군요. 얇게 썬 고추와 고기를 넣어서 볶으면 칭쟈오차오판(青椒炒饭), 삼겹살과 파를 넣고 볶으면 회이구어러우차오판(回锅肉炒饭), 계란을 넣고 볶으면 지단차오판(鸡蛋炒饭). 다 된다고 하길래, 두부와 같이 먹을 것이니 지단차오판을 달라고 했습니다. 밥은 고슬고슬 계란은 포슬포슬. 파기름이 밥알에 잘 스며들어 고소하면서도 탱글탱글 합니다. 역시, 볶음밥은 강한 화력에 큼직한 웍으로 팍팍 볶아줘야 제맛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식사에는 국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시킨 탕. 지엔지단시홍스탕(煎鸡蛋西红柿汤)입니다. 중국에서 꽤나 탕을 먹어봤지만 계란을 풀지 않고 간짜장에 올리는 것처럼 튀긴 계란을 탕에 빠뜨려 주는 것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육수는 닭으로 맛을 내었고 큼직한 호박이나 토마토도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탕이 좀 멀겋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큼직하게 썰어 놓은 감자과 돼지고기를 토마토 등을 넣은 붉은 양념으로 볶아낸 요리...인데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돼지 기름을 흠뻑 빨아먹은 감자의 고소하면서도 포슬포슬한 맛과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매콤새콤한 맛이 참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일까요. 나중에 한번 더 먹어 보라는 하늘의 계시로 생각하겠습니다.


땅콩과 닭고기, 오이, 대파 등 갖은 재료를 '네모지게' 썰어 간장과 식초, 설탕, 소금, 전분, 맛술 등으로 볶아 만든 최고의 맥주 안주. 궁바오지딩(宫保鸡丁) 입니다. 유학시절, 이 안주 하나로 맥주 3병까지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시켜보았습니다. 매콤달콤, 어떤 것이 오이이고 어떤 것이 닭고기 인지 일단 모르니까 집어 먹어보자는 복불복의 재미. 궁바오지딩은 여전히 재미있는 요리였습니다.


저렇게 좋은 안주들이 많은데, 반주 한잔 안할 수가 없어 맥주를 시켰습니다. 중국맥주는 칭다오(青岛)만 알고 있으신 분들이 많을 것인데 각 지역에도 좋은 맥주가 많이 있습니다. 스촨 지역에는 쉐화(雪花)맥주가 유명하다고 해서 시켜 먹어봤는데, 괜찮더군요. 맥주를 좋아하시는 아버님도, 맵고 강한 사천요리에는 이 맥주가 괜찮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먹고 마시며 밤까지 보내면 좋겠지만, 다음날 하루종일 구채구를 돌아다녀야 하는지라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서 쉬기로 했습니다. 배부르고 취해서 식당을 나서니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하늘이 캄캄합니다. 잘 살펴보면 별이 보일 것도 같은데 구름 때문인지 보이지가 않더군요.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했는데 아니면 어쩌나 걱정을 하다가, 걱정해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피식 웃고 걱정을 내려 놓습니다.

그렇게 산골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 일행은 터덜터덜 숙소로 걸어갑니다. 내일은 드디어, 구채구를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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