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비 내린 방콕 방황 - 방콕(Bangkok)


  마사지까지 받았으니 아쉽지만 왓포를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잘 계세요, 부처님. 나중에 뵈요.
그렇게 왓포를 빠져나오니 오전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진 듯 합니다.

맥주와 냉수를 파는 노점상이 줄지어 선 가운데, 어디서 오셨는지 동서양의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합니다. 어느 식당에서는 밥을 먹는 내내 무슨 주술의식이라도 하는지 북치는 소리가 요란하고, 어느 카페에서는 더위에 녹아내린 파란눈의 아저씨가 거의 누울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그 와중에 길가에 늘어선 화려한 색의 툭툭 기사들은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한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어떤 툭툭 기사는 서너명의 서양청년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다가 오히려 '그 가격이면 여기, 여기, 여기를 가야하지 않냐?' 는 역공에 정신을 못차리고 웃고만 있었습니다. 

오호라 온 천지에 물씬 풍기는 관광지의 분위기가 제가 지금 한국이 아닌 동남아 관광의 중심지, 방콕에 있다는 기분을 실감나게 합니다. 그래서 매우 기분이 좋아집니다. 호기롭게 저도 왕궁으로 발길을 옮기려는 순간, 문득 하늘을 보니 심상치 않은 구름이 한쪽에서 몰려 옵니다. 어쩐기 공기가 찐득찐득 피부에 달라붙는 듯 한 것이 곧 비가 올 것 같더군요. 저와 아내는 빠르게 인근 카페에서 비를 피할 곳을 찾았습니다. 

왓포 사원 근처에는 카페가 많습니다. 그 많은 카페 중 저와 아내가 요구한 조건은 두가지 였습니다. 
- 에어콘이 빵빵할 것 : 이것은, 카페 문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면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보지 않을 적당히 외진 곳에, 혹은 주인이 착해보이거나 자리가 넉넉한 곳에 있을 것.

이 조건에 부합되는 카페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만, 저희는 운 좋게 한군데를 찾아냈습니다. 

'Joy Cup'카페라고 이름 붙은 이곳은 화교로 추정되는 젊은 여자분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입구는 검은색 미닫이의 밀폐식 도어로 들어가자마자 냉장실에 육박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가게 내부는 깔끔하고, 영어 메뉴와 사진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귀여운 여자아이 한명이 작은 책상에 앉아 숙제와 홀 서빙(!)을 동시에 하는 조금은 특이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온지 얼마지나지 않아 이윽고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후두둑 정도로 비가 떨어지는 것 같더니 조금 지나자 물통으로 들이 붓는 수준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길거리의 노점들과 관광객들은 바닥에 콩을 쏟아 부은 듯 이리저리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잠시 후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차도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 배수가 잘 안되는 듯 했습니다. - 여유로웠던 차도에는 툭툭과 트럭, 승용차들이 엉기기 시작합니다. 하교하는 아이들은 신발과 옷이 모두 젖은 상태로 갈길을 재촉하고 있었고,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한 관광객들은 우비를 뒤집어 쓰고 자리가 있는지 카페 문앞을 서성이다 다른 곳에 갔다가 다시 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의 사람들 중 이 와중을 즐기는 사람들은 공사중이었던 인부들 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비 때문에 작업을 못하게 된 틈에 담배를 태우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모습이 여유롭기만 합니다. 그리고 서로 농담을 건네는 모양인지 웃는 모습도 간혹 눈에 들어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시아 인디영화의 한 장면 같군요. 팝콘이나 콜라가 있으면 좋았을 것을.

음료로 버티기에는 주인장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점심을 여기서 먹기로 했습니다. 주문을 하고 조금 시간이 흘러 식사가 나왔습니다.


타이요리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대표 주자. 볶음국수 팟타이 입니다. 굴소스에 술과 설탕, 그리고 느억맘도 약간 들어 있는 듯 합니다. 거기에 팟타이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숙주에 땅콩가루가 솔솔. 취향에 따라 더 섞어 드시라고 접시 한켠에 설탕과 땅콩가루, 그리고 MSG 향이 약간 풍기는 매운 칠리파우더가 놓여 있군요.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먹을 만 했습니다.

어제 저녁 시장에서도 먹었지만, 타이에 있는 동안 실컷 먹어둬야지요. 한국에서는 비싸디 비싼 똠얌꿍입니다. 똠은 '끓이다', 얌은 '시다', 꿍은 '새우'라는 뜻으로 '신맛이 나도록 끓인 새우'라는 뜻이죠. 때문에 새우 대신 다른 재료를 쓰면 이름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닭고기를 쓰면 똠얌까이가 되지요. 하지만 보통 똠양꿍을 주문하고 들어가는 재료를 바꾸긴 합니다. 닭이 들어가든, 돼지가 들어가든 똠양얌꿍이라는 것이죠. 

페퍼라임, 샬롯, 고수 등 향신료로 맛을 낸 해물 육수에 레몬그라스와 갈랑가 - 생강과 비슷한 뿌리과 향신료 - 버섯, 홍고추, 라임 혹은 레몬으로 맛을 냅니다. 어떤 집은 코코넛 밀크를 쓰기도 하는데, 이집이 그렇더군요. 밥 한두접시는 이 탕 한그릇으로 모두 먹어 치울 수 있는 밥도둑 메뉴. 정말 맛있었습니다. 한국에 비해서 너무 싸니까 더욱 맛있더군요. 아무리 향신료의 원산지라고 해도 이렇게 가격차이가 나면, 한국에서 이제 똠얌꿍 못 사먹을 것 같습니다.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면서, 여비나 일정 등을 다시 점검합니다. 그리고 책을 좀 보거나 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음료수를 두 잔 정도 더 마셨더니 비가 좀 그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4시가 다 되어 갑니다. 슬슬 왕궁으로 가볼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주인장이 눈인사를 하네요. 그렇게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가 안보여 좋더군요.

그렇게 왕궁에 도착했더니 홍수가 났습니다. 물난리가 아니라 사람난리. 왕궁을 보고 나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모두 입구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사람이 나올 수도 있나 싶어서 봤더니, 아이고, 왕궁은 4시에 문을 닫는 다고 하는군요. 그 사실을 깜박하고 카페에서 너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망연자실한 우리는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하고 근처를 배회하고 돌아 다녔습니다. 왓아룬을 볼 수 있는 카페에 앉아 노을이 지는 광경을 볼까도 싶었지만, 지금 날씨로 그런 노을은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갈 곳이 있는가하면 그것도 아니었지요. 그냥 정처없이, 왕궁 주변을 떠돌면서 어디로 갈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목적없이 떠돌다가 인도의 보도블럭 사이로 튀어오르는 오수도 맞고, 차도로 지나가는 100년 쯤 된듯한 낡은 버스의 매연도 맞고, 차가 밀리니 꼭 내 툭툭을 타고 가라면서 이미 알고 있는 가격의 4배 이상 부르는 칼안든 강도 같은 툭툭기사도 만나고, 오전의 감동을 한참 깎아 먹고 짜증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중, 아내가 배를 타고 새로 문을 연 야시장으로 가보자고 했습니다. 이름이 아시아티크 리버프론트시장(Asiatique The RiverFront)이라고 하는데, 아비규환에서 탈출 할 수 있다면 아시아티크 인 유럽티크 인지 무엇을 마다하겠습니까.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수상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왓아룬의 모습으로 노을까지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선착장에서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그러고 있자니 관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목적지를 물어 봅니다. 왓 라싱콘(Wat RajSingKorn)으로 - 거기에 그 시장이 있습니다. - 간다고 하니, 여기서 기다리면 배가 온다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배가 왔습니다.

올때 탔던 관광 페리와는 격이 다른 배였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올때는 우등버스라면 이건 그야말로 시골 버스라고 할까요. 사람은하나 가득, 뱃전은 낡을 대로 낡았고, 배에 탈때도 안전장치 그런 것 없습니다. 배가 가까이 오면 알아서 뛰어 타야 하더군요. 저는 재미있었습니다만, 아내는 약간 겁을 먹을 정도였습니다. 

배를 탈때, 매의 눈을 가진 안내양이 타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해 둡니다. 그리고 배가 출발하자 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요금을 받습니다. 저는 왓라징콘에 간다고 하자 1인당 10바트,총 20바트를 받아가더군요. 거리상으로는 좀 더 받아가야 할 것 같은데, 요즘 새로 생긴 시장 프로모션으로 BTS와 연결되는 탁신 선착장부터의 요금은 시장에서 대신 내주는 듯 합니다.

바야흐로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난 강에는, 올때 보지 못했던 이런저런 물건들이 가득 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죽어서 배에 가스가 가득찬 돼지시체가 물에 떠내려 가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태국 사람들까지도 깜짝 놀라는 광경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수상버스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이게 빨리 달리면 물이 튀는데, 그 물에 이런저런 것들이 다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니...도무지 탈 생각이 안나더군요. 그런데, 가는 와중에 그 물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마이갓...세상은 참으로 다양한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왓 라징콘에 도착, 우리는 워터 프론트 시장으로 다가갔습니다.

배에서 바라본 시장의 풍경입니다. 관람차가...저는 왠지 불안해 보입니다.

이 사진에서 짐작을 하시겠지만, 여기는 모두 새로 지은 시장이더군요. 원래 화물선에서 짐을 내리고, 그 짐을 보관하는 하역시설과 창고를 모두 식당이나 상점으로 개발한 곳 같은데...너무 비쌉니다. 외국 문화를 선호하는 방콕 젊은계층이라면 좋아하겠지만, 외국에서 와 타이의 로컬 문화를 선호하는 저 같은 관광객들에게 여기는 약간은 어설프고 가격은 혀를 내두를 만한 그런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장소입니다. 

아내도 저의 생각에 동의, 여기에 가자고 한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배를 타고 시암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까 이야기 했던 대로 왓포와 관련한 서적을 사기 위해 서점이 있는 좀 큰 백화점에 가서 적당히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BTS로 방콕의 중심가로 진입, 구찌니, 에르메스니 하는 으리으리한 시설이 가득 들어찬 곳으로 갔습니다. 마침 퇴근시간에 딱 걸려, BTS에는 사람이 가득차 있었고, 두번의 장소선정 실패로 우리의 사기는 떨어졌고, 배가 고프니 더욱 마음은 심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보이는 백화점 - 이름도 기억이 안납니다. - 으로 직행, 그것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정말, 아까운 한끼를 떼웠습니다.

분위기나 위생도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밥 사먹는 방법이 에러 입니다.

- 일단, 푸드코트 카드를 발급하는 곳에 가서, 보증금 10 바트에 충전할 금액을 지불, 푸드 코트 카드를 만듭니다.
- 그 푸드코트 카드를 가지고 상점에서 각기 주문, 카드로 지불합니다.
- 잔액이 남았을 경우, 카드를 다시 발급처에 가서 이야기 하면 보증금과 함깨 돌려 줍니다.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밥을 먹어야 하는 생각이 - 물론 카드를 만들어 계속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 들었지만, 선택할 도리가 없었지요. 가격은 비쌌지만, 다행이 여기서 먹은 오솔?(Oh sol)로 '기억'하는, 튀긴 소시지 같은 요리가 맛이 괜찮아서 분노수치를 낮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굳이 떠돌아 다닐 이유가 없어, 서점에서 책을 사고 - 결국 왓포와 관련한 책은 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책을 샀지요. - 우리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숙소로 가는길, 이미 시간은 늦어 상점들은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기차는 지나지 않는지, 숙소로 가는 길에 있던 철길은 사람들의 보행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타이 어딘가에 철로 바로 옆에 시장이 서는 곳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어딘지는 모르겠군요. 뭐, 그때 당시에는 그런게 뭐가 중요해 라고 생각할 정도로 피곤해 있었으니까요.

오전, 왓포에서 시간 대비 너무 진하고 높은 수준의 감동과 감탄에 노출되어 그런지, 오후 - 저녁까지의 코스는 왠지 불발탄 같은 느낌이 강한 하루였습니다. 무리해서 여기저기 찾아가려 한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방콕의 3일차 오전은 숙소에서 노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그 좋은 수영장이 있는데 한번은 들어가 봐야지요.

덧글

  • reiner 2016/07/11 06:22 # 삭제 답글

    시치미 노노, 아님. 칠리 파우더임.
  • Oldchef 2016/07/11 06:29 #

    아이고 내 정신좀 보게...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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