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빗속의 사원과 왕궁 - 루앙프라방(LuangPra..


탁발 구경을 마치고 시내를 좀 돌아다녔으나, 생각보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더군요. 그래서 일단 호텔로 돌아가 조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약간 거추장스러울 것 같은 자전거는 숙소에 반환하고 구름이 깔린 도로를 걸어걸어 시내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메인스트리트에서 언제나 눈에 들어오던 사원, 왓 마이(Wat Mai)입니다. 라오스에 와서 처음으로 방문한 사원이죠.

화려하고 비까번쩍한 타이의 사원과 달리 세월과 날씨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합니다. 흰색으로 칠했던 것 같 회벽과 담벼락은 습기와 곰팡이에 질려 검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추하지 않았습니다. 낡아감으로 인해 생기는 아름다움과 따뜻함, 그리고 친근함이 느껴집니다. 아, 저는 나이를 어느정도 먹어서 그런지 새것 같이 깔끔한 사원도 좋지만 세월을 머금은 이런 사원들도 너무 좋습니다.

왓 마이(Wat Mai)는 '새로운 사원'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이 사원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입니다. 이곳은 왕족들이 수행하던 왕실사원으로 라오스 불교계의 가장 큰 스님이 머무른 적도 있고, 라오스의 중요 국보인 황금불상이 안치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낡아 보이는 외면과 달리 굉장한 이력을 지닌 곳이죠.

 
1만낍의 시주 - 입장료 - 를 내고 대 법당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다양한 불상들이 서 있습니다. 대웅전에 많아야 3좌의 불상을 모시는 한국사찰에 비해 꽤나 많은 불상들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역대 라오스의 큰 스님분들의 사진과 함깨 그 분의 불상도 모셔져 있는 듯 했습니다. 아, 이분들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부처가 되셨나 보네요. 사진에 계신 그 분들의 얼굴은 참 선량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법당에 모인 이 불상들은 위엄이 넘치거나 무섭다기 보다는 참 편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처님의 처진 눈이 왠지 순박해 보이기도 하네요. 불경스러웠다면 죄송합니다.


대법전의 천장에는 붉은 바탕에 식물을 표현한 듯한 문양이 황금색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낡은 나무로 짜 올린 천장은 화려해 보이는 문양과 황금색에도 불구하고 소박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의 힘이지요. 천장과 창문 사이의 공간에는 수많은 작은 부처들이 조각된 뒤 역시 금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법전에는 엄청난 수의 부처님들이 계신 것이죠. 그 정성이 대단했습니다. 역시, 신앙이란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대법전을 나오니 곧 비가 쏟아질려나 해서, 잠깐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 봅니다. 그렇게 의자에서 둘러본 시선에 대법전의 문 장식과 회랑, 기둥등에 새겨진 조각이 눈에 들어옵니다. 잠으로 정교합니다. 이 사람들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계가 장인의 섬세한 손길로 벽과 기둥에 꼼꼼히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 칠해진 금박은 부처님의 축복을 뜻하는 것일까요. 부처님과 왕으로 보이는 인물들에게 경의를 표하는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생생합니다.

그렇게 벽화를 구경하고 있어도 비가 오지 않아 재빨리 옆의 왕궁 - 정확히는 왕궁박물관 - 으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입장료는 3만낍. 란쌍왕국과 루앙프라방 왕국으로 이어진 라오스 왕국의 왕궁이었던 왕궁박물관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원래 라오스의 왕궁은 1887년 흑기군의 공격으로 불탔다고 하네요. 때문에 현재 왕궁박물관은 라오스의 전통양식과 프랑스 건축양식이 혼합된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왕궁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아주 화려한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이 바로 신성한 황금불상 파방(Pha Bang)을 모시는 호 파방(Ho Pha Bang) 입니다.


이곳에 안치된 황금 불상은 크기 83cm, 무게 53kg의 90% 순금 불상으로 라오스의 수호상 입니다. 즉, 이 파방을 소유한 왕조가 국왕의 전통성을 인정받는다고 여겨진 것이죠. 이 파방은 실론 - 오늘날의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졌으며 캄보디아를 거쳐 라오스에 불교가 전파되었을 때 같이 넘어왔다고 합니다. 이 때 원래 씨앙통(Xieng Thong)이었던 이 도시의 이름을 루앙프라방 - 신성 황금 불상의 도시 - 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다1779과 1828년 두 차례에 걸친 씨암 - 현재 타이 -의 침략으로 신성한 황금불상과 에메랄드 불상 - 프라깨우(Phra Kaew) - 모두 씨암으로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그 후 1867년 씨암의 라마4세가 파방을 다시 라오스로 돌려보내면서 이 불상은 제자리를 찾게 되었으나 에메랄드 불상은 아직 타이의 왓 프라깨우 사원에 있습니다. 라오스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죠. 

파방을 나왔을 때, 잔뜩 지뿌렸던 하늘이 마침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중앙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뛰었습니다. 국립박물관인 중앙 건물에는 신발을 벗고 짐을 맡기고 들어가야 합니다. 복장제한도 있으며 사진도 찍을 수 없으니 참고하시길. 이 곳에서 왕의 접견실이나 왕의 가족이 생활했던 공간, 역대 왕들의 초상화나 당시 루앙프라방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물건들을 볼 수 있으나 그렇게 크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없었습니다. 좀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지요. 오히려 눈에 띄었던 건 사회주의 혁명후, 이곳을 방문한 베트남의 호치민과 라오스의 공산 혁명에 혁혁한 공을 세운 쑤파누웡 왕자(?!) 내외가 전통 춤을 추는 사진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공산당의 괴수가 유려한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내가 있는 이곳과 내가 굉장히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사진 하나가 밋밋한 박물관 관람을 아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자 우리는 다시 동네 산책을 시작합니다. 왕궁을 나가는 길, 입구를 바라보고 왼쪽에 라오스의 국왕 중 한명인 씨싸왕웡 왕의 동상이 있습니다. 프랑스에 의해 임명되어, 실제로 이 왕궁에 살았던 왕이라고 하네요. 그의 아들은 이 왕궁에서 살다가, 사회주의 혁명으로 폐위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 동상의 큼직한 덩치와 육중한 근육이 좀 안타까워 보입니다.

날씨가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식민시대와 사회주의 시대에 시달린 왕족의 생활상을 주욱 돌아봐서 그런지 기분이 조금 가라앉더군요. 일단 우리는 커피 한잔 하면서 좀 쉬기로 했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