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_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의 덮밥과 명란우동 美食


날씨란 것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는 듯 바뀌는 것이었던가요. 하루 전만해도 더워서 자다가 일어나 이불을 걷어찼던 것 같은데 이제는 차가운 새벽공기에 코가 시려 한바탕 재채기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돌아보니 그 곳에 오랜 친구가 서 있었던가요. 그렇게 돌아보니 가을이 서 있었습니다. 햇살에는 쓸쓸한 기운이 조금씩 감돌고 공기도 바사삭 습기를 덜어내고 있습니다. 더워서 방안에서 선풍기와 PC만 껴안고 있으니 오죽 답답했을까요. 언제 올줄 모르는 이 좋은 날, 산책도 하고 식사도 할겸 집을 나섭니다.

경리단길을 거슬러 올라 남산 허리 주변을 가볍게 한바퀴 돕니다. 배가 고파지면 저녁 시간에 맞춰 한강진역으로 난 나무계단을 내려가 한남동으로 접어 듭니다. 집에서는 조금 멀어도 사람이 좀 덜있는 한적한 장소를 찾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여기저기 골목을 돌아다니다 어디갈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똑똑한 아내가 여기 가자고 저를 잡아 끕니다. 이럴때는 그냥 따라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바로 라운드어바웃(Round About)입니다.


흰색과 회색으로 칠한 건물에 '라운드 어바웃'이라 쓰인 붉은 네온사인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깔끔한 외관이 맘에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는 머리가 아프거든요. 내부도 단촐합니다. 작은 주방과 적은 수의 메뉴. 다섯 개 남짓의 테이블과 혼자, 혹은 두어명의 손님을 위해 창가로 길게 붙어 있는 바(Bar), 알아서 따라마시는 셀프 물 서비스 등등. 단촐함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제 인생모토에 적합한 곳인 듯 했습니다. 그런 저의 철학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은지, 식사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더군요. 테이블 자리는 포기하고 구석의 바에 앉아 사람들이 뭘 먹고 있는지 슬쩍 둘러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먹고 있는 메뉴, 명란 크림우동과 덮밥을 주문했습니다.

오래지나지 않아 메뉴가 나왔습니다.


덮밥입니다. 마요네즈 콘샐러드, 곤약졸임, 오이피클에 간장을 뿌린 순두부의 4가지 반찬과 국으로 유부된장국이 같이 나왔습니다. 조금조금씩 담긴 반찬이 정갈스럽고 귀엽습니다. 그저그런 반찬으로 보이지만 다른 집과 다른 포인트가 조금씩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콘 샐러드에는 파슬리? 바질? 아는 듯 모르는 듯 향신료 끝맛이 살짝 들어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덮밥의 포인트는 고명보다 밥에 있었습니다. 얇은 고기 아래 넉넉하게 담긴 밥을 한 술 떠 먹으면 입안 그윽한 생강향이 버터향의 실루엣과 함께 퍼집니다. 고기와 생강은, 정말 떼어낼래야 뗄수 없는 환상의 조합입니다. 맛을 느끼면서 천천히 먹어야지 다짐을 하지만 숟가락질의 속도는 저도 모르게 빨라지고 그릇은 점점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불러오는 배와 더불어, 만족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켜집니다. 아, 이 행복하면서도 아쉬운 이율배반적인 상황이여.

아내가 주문한 명란크림우동입니다. 알로 담근 젓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메뉴 이지만 - 먹고 있자니 대량학살의 현장에 있는 느낌이라서요. - 맛있는 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색상에 한입 먹어보았습니다. 이외로 비리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그렇게 느끼하지 않은 밸런스가 잘 잡힌 메뉴더군요. 통통한 우동면과 약간은 걸죽한 소스가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덮밥이 더 좋더군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창밖의 가을하늘 아래 연극처럼 펼쳐지는 골목길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사람을 보는 것이 즐거운 것일까요,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 즐거운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확실한 건 맛있는 밥먹으면서 바로 코 아래 사람구경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흔하지는 않다는 것이죠. 허리까지 오는 캐리어를 끌고 지도를 손에 들고 지친걸음으로 걸어가는 동남아 관광객들 옆으로 더위쉼터에서 나온 영감님이 터덕터덕 지나갑니다. 그 뒤로 산책을 나온 듯한 젊은 여자 & 나이차가 좀 나는 중년남자 커플이 여유있는 표정으로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어디로 오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순간 제 입안에서 생강과 고기와 잔파와 밥알이 강강수월래를 돌면서 이런저런 맛을 입안에서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인생, 행복이란 것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말이죠.

덧글

  • 쿠켕 2016/09/01 09:55 # 답글

    일상의 느낌이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듯한 담담한 어투가 너무 좋아요.
    저도 항상 궁금하더라구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요 :-)
  • Oldchef 2016/09/02 09:29 #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러게요.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요...
  • anchor 2016/09/05 09:04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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