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_로건(Logan)과 고전 일리아스(ILIAS)의 유사점에 대한 정리 日常.Etc


* 상당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월 7일, 조조로 로건을 봤습니다. 마이갓...최근 아침에 본 영화는 어찌그리 다 잔인한지...일격에 치명상을 입혀야 한다는 상황적 설정은 이해합니다만 이러다가 트라우마가 생기겠습니다.
 
 영웅물의 근원에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있으며 그리스의 비극은 '일리아스(ILIAS)'의 내러티브를 기본 패턴으로 삼고 있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로건(Logan)' 을 골라 영웅물과 고전과의 유사점을 정리하는 이유는, 더 시간이 늦으면 1월에 공부했던 '일리아스의 문학적 의미'에 대한 내용이 점점 더 심해지는 머리속 망각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질까 싶어서 입니다. 별 다른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개괄적으로 볼 때, 많은 영웅물과 '일리아스'는 크게 4가지 단계를 걸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완결된다는 점에서 자식과 부모에 준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즉, 일리아스는 수 많은 영웅물의 조상뻘 되는 것이죠. 그 4가지 단계는 각각 '추락 - 운명의 거부 - 친우의 죽음 - 불멸'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제, 로건의 스토리를 통해서각 단계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추락

 세상에 못 자를 것 없는 아다만티움 클로와 불사(不死)에 준하는 재생능력으로 세상을 주름잡던 영웅, '울버린'은 어찌된 일인지 조금씩 능력을 잃고 멕시코의 국경에서 리무진 운전사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밥줄인 크라이슬러 300(개조)에 총알자국이 남을까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에서 'X맨'의 모습은 간데 없고 술에 찌든 불쌍한 중년 제임스 하울렛(James Howlett)만 서성거립니다.

 이러한 영화의 시작은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몰락과 유사합니다. 그리스 비극 패턴의 핵심은 영웅이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반전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영웅의 존재가 위대한 만큼, 그가 신에 가까웠던 만큼 그 추락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인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고통을 통해서 반신(半身, 영화에서는 '뮤턴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들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그 인간됨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다만 '로건'과 '일리아드'의 몰락에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아킬레우스의 몰락은 불완전한 자기자신으로 인한 오만(Hybris)과 그로 인한 맹목(Ate), 그리고 이 때문에 자신이 행한 일로 인한 복수(Nemesis)의 결과 입니다. 즉, 자업자득인 것이죠. 하지만 로건의 몰락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잃은 채로 변경에서 늙어가고 있을까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 내막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2. 운명의 거부

 살지만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처절하게 이어가는 로건, 그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나 그의 옛 이름을 부릅니다. '울버린'. 그리고 그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로건은 마치 문둥병 환자라도 본 듯 진저리를 치며 그녀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그의 현실이 지독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길을 거절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 길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반신인 영웅들은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운명의 여신들이 알려주기도 하고, 민활한 그들의 본능이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그들의 명지(明知)가 그들에게 알려 줍니다. '그렇게 하면 너는 죽는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 운명을 거부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한가요. 그 난제에 대한 답을 바로 그리스의 고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나의 어머니 은빛 발을 가진 여신 테티스께서 늘 말씀하였지. 두 가지 서로 다른 죽음의 전령이 나를 죽음의 끝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둘러싸고 싸운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힐 것이나, 나의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고귀한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나에게 죽음의 종말이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오.' (9. 410~416) 

 누군들 죽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죽습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동일합니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죽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치매에 시달리는, 한 때 '프로페서X' 였던 찰스가 끊임 없이 주장하는 인간다운 삶은 바로 인간다운 죽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영웅은 인간 = 필멸하기 때문에 그 운명을 일단 거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거부한 채로 살아가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미 그 이야기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 되겠지요.

 결국 로건은 운명을 거부하는 듯 했으나 그 길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을 찾아온 그 여자의 부탁에 따라 아흔살의 치매환자와 자기의 분신 같은 뮤턴트 소녀와 함깨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모험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또 다른 삶을 위한 '돈'을 얻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게 되고, 로건은 여정내내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장면은 마치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가 온 그리스의 병사가 패퇴하는 와중에서도 맹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자신이 아닌 친구 파트로클로스에게 자신의 무구를 입혀 '대신' 출전 시키는 그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운명에 최선을 다해 임하지 않은 행동은 필연적으로 운명의 복수, 또 다른 비극을 부르게 됩니다.


3. 친우(親友)의 죽음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곳, '에덴'으로 향하는 로건 일행은 집요한 추적과 머나먼 여정에 지친 나머지 가는 도중 마주친 어떤 일가의 농장에서 하루 쉬어가게 됩니다. 따뜻한 저녁식사와 편한 잠자리에 한 때 '완벽한 저녁'을 보내는 듯 하더니 곧 발생한 일련의 상황에서 찰스와 그 일가족 모두 죽게 됩니다.


'로건, 이런 게 인생이라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집, 안전한 곳... 자네도 잠시만 느껴보게나(Logan. This is what life looks like... people who love each other, home, safety place... You should take a moment and feel it)..'


 '일리아스'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입고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전공을 세우나, 트로이군을 함선에서 몰아낸 뒤에는 곧 돌아오라는 아킬레우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트로이아의 성벽까지 진군한 나머지 결국 헥토르에게 죽고 맙니다. 자신의 무공에 심취한 그의 오만(Hybris)이 그를 맹목(Ate)에 빠지게 만들었고, 결국 복수(Nemesis)가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찰스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가 쉬어가야겠다며 로건을 재촉하는 순간,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 결정을 이해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죽음을 예상하였을 것입니다. 찰스가 보여준 인간적인 덕성은, 신과 운명이 지배하는 여정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오만 혹은 치열하지 못한 결함에 준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언제나 '좋은 사람은 일찍 죽고 나쁜 사람이 장수하는' 공식이 성립합니다. 

 우스운 것이, 이렇게 먼져 스러져간 수많은 친구들의 죽음이 바로 영웅들의 각성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파트로클로스는, 소년기에 고향을 떠나 트로이아의 전장에서 10여년을 보낸 아킬레우스에게 있어 친구이자 애인(당시 고대 그리스의 군대에는 동성연애가 일반적이었습니다.)이며, 아버지이자 스승이었습니다. 사망 당시 파트로클로스는 30세 후반으로 그는 용맹하지만 교양과 덕성이 부족한 아킬레우스에게 연설법과 사교, 기본적인 예절등을 가르쳤다고 전해 지며, 그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사랑은 그가 그의 무구까지 빌려주었다는 점에서도 능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은 아킬레우스를 심히 괴롭게 만들었고, 동시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됩니다.


'슬픔의 먹구름이 아킬레우스를 덮어 버렸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은 먼지를 움켜쥐더니 머리에 뿌려 고운 얼굴을 더럽혔고 검은 재가 그의 향기로운 옷에도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은 먼지속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 듣었다.' (18. 22~29)

'이제 나는 가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습니다.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 왕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힘센 헤라클레스도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운명의 여신과 헤라의 무서운 노여움에 제압되었지요. 제게도 똑같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다면 저도 죽은 뒤, 꼭 그처럼 누워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고귀한 명성을 얻고 싶습니다. (중략) 그러니, 제 출전을 모정으로 막지마세요. 저를 설득하지 못하실 거에요.' (18. 114~126)

 영화에서 로건의 '떨쳐 일어남' 또한 찰스의 죽음이 큰 역할을 합니다. 직접적인 계기가 아닌 것으로 볼 수 도 있지만 결국 큰 연장선 상에서 찰스의 죽음 이후 드리우는 또 다른 친한 사람의 생명의 위기, 혹은 찰스의 유지가 꺾이는 것은그에게 있어 참을 수 없는 가치가 되었고 이에 그는 전력으로 운명에 임하게 됩니다.


4. 불멸(不滅)

 '에덴'에 모여 캐나다로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된 뮤턴트 아이들, 하지만 추적대의 공격에 하나 둘, 아이들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로건은 한꺼번에 쓰지말라는 강화제를 주사하고 적진에 돌격, 추적대를 격멸하고 아이들을 구출하지만, 심한 상처와 강화제의 부작용으로 결국 죽게 됩니다. 

 죽어가는 그를 뮤턴트 소녀는 '아빠'라고 부르며 이제는 평화와 정적만이 감도는 계곡에 그를 묻습니다. 하나 둘 아이들은 북으로 다시 길을 향하고 마지막으로 소녀는 무덤에 서 있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기울게 세워 'X'자를 만들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삶으로 다시 한 걸음 나아갑니다. 

 결국, 그 자신이 짐작했던대로 로건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 로건이 아니라, 영웅 울버린으로 죽었습니다. - 그러기에 사람의 무덤에 세우는 십자가가를 소녀가 X로 고쳐세운 것입니다. -  그리고 너무도 흔한 이야기지만 영웅 울버린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 지언정 그의 후대에 해당하는 뮤턴트 아이들이 살아서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한, 그는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He)는 이야기(Story)가 되었기에 영원히 죽지않고 역사(History)에서 살아있게 된 겁니다. 그는, 죽음이라는 결과를 알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필멸에서 불멸을 이룩하는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수천년 전의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의 전쟁에서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현재까지 내려오는 이름을 얻은 것 처럼 말입니다.

 결국, 세상의 수많은 영웅물 들은 모두, 세상에 귀한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삶을 값진 것으로 여기면서, 죽음은 내일이라도 닥칠 수 있는 엄연한 필연으로 받아 들이고, 그러기에 불멸의 명예를 통해 영원하고자 하는 삶을 기원하고자 하는 '진부하지만 감동적인 작품들'인 것입니다. 평가하는 잣대가 어찌되었든 간에 말이죠. 혈통의 정당성을 따지기 전에 우리는, 그 작품들이 그 아버지의 혈족들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형태는 달라졌지만 연연히 내려오는 핏줄이 있기에, 저는, 그리고 우리는 수천년 전 그리스인들이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눈물 지었던 것 처럼, 십자가를 돌려 세우는 소녀의 모습에도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 눈물이 지금도 우리 눈에서 흐를 수 있도록,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쓰시는 많은 영화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Ps1)
 세상의 모든 삶이 필멸자가 불멸자가 되기 위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삶도 있고,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와 동시에 그 반대 축상에 있는 삶도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모든 그리스의 고전이 '일리아스' 같은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일리아스'의 다음 이야기인 '오뒷세이'가 바로 그러하지요. 때문에, '오뒷세이'는 호머가 쓴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이질적이니까요. 다른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면 호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이죠. 

Ps2) 위에 인용한 '일리아스'의 구절이나 이론과 지식은 압구정의 풍월당에서 들었던 교양강좌의 내용과 프린트에서 발췌, 정리한 것이 많습니다. 저는 단지 공부하는 중년일 뿐입니다. 

덧글

  • 망둥이 2017/03/27 15:38 # 답글

    글 잘읽었습니다 영화보면서 좋아하는 히어로가 늙고 지친 모습에 울컥했는데 이 글 읽으면서 또 울컥했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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