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도톤보리(道頓堀川) Travel.旅游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나니. 나니와(오사카의 옛 지명)의 영화여, 꿈 속의 꿈이로다.
(露と落ち 露と消えにし 我が身かな 浪速のことは 夢のまた夢)

* 일본 여행으로 부터 벌써 반년 가까이 지나다니, 시간은 빨리도 흘러갑니다. 이때 써 둔 글을 보면 무언가 열심히 쓰려는 강박에 사로잡힌 듯, 내용은 길고 문장은 걸리적 거리네요. 통째로 벽난로에 집어넣고 태워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언제 어떻게 갔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조금씩 고쳐서 올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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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를 여행의 출발점이자 재회의 장소로 삼은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항공편 가격이 비교적 저렴했다는 것. 그리고 다녀온 사람들의 평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네요. 그래도 대도시 관광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들은 8일의 여정 중 첫날과 마지막 날만 오사카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으며,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잘한 것이었습니다. 오사카는 제 취향에 맞는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꼼꼼히 배낭을 채워놓을 때만 해도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는데, 막상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이상할 정도로 피곤했고 긴장되더군요. 눈으로 뛰어드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자들. 조곤조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이국의 말소리.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않은 질서 정연함과 깔끔함. 다시금 외국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약간 손해보는 감이 있더라도 간사이 스루패스를 샀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일본의 지하철에서 차를 갈아탈 때마다 이를 갈아 붙이느니 돈을 좀 더 쓰더라도 편하게 지내고 싶었습니다. 일본은 정말, 입국 할 때에 가장 지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입장료겠지요.

 스루패스를 사기 위해 공항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탓에 시내에 들어오니 해가 많이 저물었습니다. 머리 위로는 밤 마저도 잘 준비를 하는 듯 짙은 보라색의 이불을 펼치고 있더군요. 졸지에 자리를 내줘버린 낮이 우물쭈물 서쪽으로 잦아드는 하늘 아래 사람들이 어디론지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그 인파들 사이로 예약한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도톤보리와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다고 했는데 찾아가는 길은 조용하다 못해 약간 무서울 정도로 외졌습니다. 가로등은 드문드문 서 있었고 불이 켜진 창문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불 꺼진 창문에서 터져 나온 어둠이 거리를 조금씩 컴컴한 탁류로 채우고 있는 것 같더군요. 나와 아내는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주택가를 작은 액정화면에 떠오르는 화살표가 시키는 대로 앞으로, 옆으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골목 저 너머로 마치 북해(北海)의 등대처럼 따뜻하게 빛나는 호스텔 미츠와야(Mitsuwaya)의 현관이 보였습니다. 

 고백하건데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내심 걱정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6인실의 구석 침대에 짐을 풀고 있자니 이 정도의 깔끔함이라면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 같더군요. 관짝이 연상되는 좁은 침대였지만 새로 짜 넣은 나무의 신선하고 은은한 향기가 희미하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화장실 타일에는 물방울 하나 튀어있지 않았더군요. 가져다놓은 리넨은 빳빳했으며 공용으로 사용하는 주방의 냉장고는 청결하다 못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황량한 툰드라의 한 부분 같았습니다. 무언가를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죄책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만 임자모를 요구르트 한 병이 이글루 마냥 홀로 그 추운 사각 상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삭막함이 너무도 일본같다는 생각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날은 무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아내와 나는 근처를 잠깐 돌아보고 요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호스텔을 찾아 들어온 골목이 아닌 반대쪽으로 걸어가보니 다른 세상이 나왔습니다. 사람과 차와 불빛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당황하면서 걸어가다 보니  오사카를 검색하면 으레 눈에 들어오는 열심히 뛰는 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먹으러 나온 우리는 도톤보리 주변에 맛있는 집들이 주욱 깔려있는 광경을 상상했었습니다. 선선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하천변으로 노천 테이블이 보이고 그곳에는 퇴근한 회사원들이나 가족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즐겁게 웃으면서 맛있는 식사와 맛있는 생맥주를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요. 조금 더 보태서, 깨끗한 강물을 가르며 유람선이 지나가고 아담하게 꾸며진 무대에서는 밝고 친절한 오사카의 젊은 사람들이 버스킹을 하고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꿈'이었을 뿐이죠.

 하천변의 상점은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으며, 문을 열지 않은 가게의 앞은 숙소 주변의 주택가와 달리 지저분했습니다. 강을 오르내렸던 것으로 보이는 낡은 유람선은 잡혀온 고래 마냥 맥빠진 채로 강가 한편에 묶여 있었고 그 옆으로 쓰레기가 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천변이 아닌 신식 상점가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 상점가는 지나치게 밝고 일본이 아닌 다른 어디든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브랜드 매장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건 나의 잘못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왜 계속 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글리코사인(グリコサイン)앞에서 모두들 호호 웃으며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킨류(金龍)라면 앞의 자판기에서 한참을 어리둥절하고 있었습니다. 넥타이를 풀어낸 소대 단위의 회사원들이 오사카 사투리로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경쾌하고 걸어가고, 어디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가이드북에 실릴 만한 분주하고 화려한 밤의 한 자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즐겁지 않았습니다. 도톤보리가 그렇게도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 광경을 위해, 이 거리의 누군가는 간판에 큰 게도 만들어 붙이고 복어도 공중에 띄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헛발질. 저는 그 간판이 없더라도 게 다리 4개는 800엔 보다 싼 가격에 먹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도톤보리와 저는 이 시간 이 곳에서 만나기 위해 열심히 서로 다가 온 듯 합니다만, 마치 터널을 뚫기 위해 이쪽과 저쪽에서 열심히 굴을 파들어 갔지만, 결정적인 지점에서 엇나간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많다고 했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방황했습니다. 모든 집이 화려했고 모든 집에 손님이 가득 차 있어 모호했습니다. 인터넷과 간판에는 과장된 정보와 에너지가 알 수 없는 기준과 정보들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그 와중에 꽤나 비싼 가격은 더욱 저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소심한 저에게 이곳은 밥을 먹는 즐거운 일상조차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길 가다가 눈에 띄는 적당한 라멘집에서 스페셜 라멘을 먹었습니다만, 한국에서도 이런 라멘은 먹어본 적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히데요시의 사세구가 떠 올랐습니다.. '나니와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였던가. 내가 오사카를 꿈꾸었고, 막상 와서 보니 허망하구나. 차라리 꿈을 꾸지 말아야 할 것을 그랬나?

* 숙소로 돌아오던 중 편의점에 들렸습니다. 다양하고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와 오니기리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 햄까츠 샌드위치와 우메보시 오니기리, 그리고 이치방 시보리 맥주 한 캔에 라면땅 4종 세트를 사서 싱글벙글 웃으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공용 주방의 테이블에서 앉아 맥주캔을 푸쉭 열었던 그때, 그때가 그날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결론은 일본 편의점은 정말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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