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팩스(Halifax)+15: 이사, 텅빈 방. 海外生活


 15일차, 우리의 에어비앤비 숙소 생활이 끝남과 동시에 새집 생활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떻게 끌고 왔는지 생각만해도 이가 갈리는 이민가방과 트렁크를 다시 큰길가로 끌어내려놓고 에어비앤비 숙소 주인에게는 메모로 인사를 남깁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우리는 이제 간다. 숙소에 머무는 기간 동안 얼굴 본 시간이 참으로 적었던, 하지만 별다른 이유로 괴롭히지도 않았던 냉정과 친절 사이의 주인장이여. 그러기에 이별인사를 메모로 끝내도 별 다른 죄책감이 들지 않아 좋았습니다.

 차로 10여분도 안되는 거리이지만, 짐이 꽤나 많았기에 택시를 불렀습니다. 연락 후 금새 달려온 택시는 말 그대로 나사가 한 두 개쯤 빠진 - 내부의 실내등은 어디다 떼어 팔았는지 전선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 낡은 택시였지만, 강한 러시아 액센트의 임신 중인(!!) 운전사에 문화 쇼크를 크게 받은 우리는 별 다른 불만 없이 그 기사가 시키는대로 얌전히 택시에 올랐습니다. 흑해 어딘가에 붙은 도시에서 왔다는 여자 운전사는 영어가 어설프다는 점에서 크게 동질감을 느꼈는지 가는 내내 우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아내는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그녀의 악센트에 당황했는지 말을 잘 잇지 못했고 오히려 제가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았지요. 니코~ 마이커즌~ 

 그렇게 도착한 아파트. 열쇠를 받으러 아내는 아파트 사무실로 향했고 저는 내려놓은 짐과 함께 큰 길에 잠깐 멍하니 있었습니다.

* 이 역시 사진을 찍지 않아 구글맵의 사진으로 대체 합니다. 도무지 귀찮아서 꽤나 멋진 광경이 아니면 셔터도 누르기가 싫은 것을 어쩌겠습니까.

 주황색 벽돌로 겉을 씌운 똑같은 높이, 똑같은 크기의 아파트가 길을 따라 안쪽으로 줄이어 서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군인이 연상되는 주택단지라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진짜 군 막사를 개조해서 만든 아파트라고 하더군요. 허허허...

 길 맞은 편으로는 꽤나 큰 호수가 있어 그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위로 오리 몇 마리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호수의 건너편에서 짤랑짤랑 병 부딪히는 소리가 풍경소리처럼 울리고 있었습니다. 가만보니 재활용품 수거 센터가 보이더군요. 바삐 움직이는 지게차가 큰 흰색 주머니를 들어 옮길 때 마다 그 안에 든 병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였습니다. 짤랑짤랑. 이외로 청아한 병들의 노래가 반복되는 건물의 행진으로 삭막해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멍때리고 있자니 열쇠를 받아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문 앞까지 짐을 옮겨놓고 열쇠로 열고 들어간 집은...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넓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넓은 집에 살아본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넓은 거실과 방 두개, 부엌의 넓은 창으로 햇살이 실컷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창을 여니 맑은 공기도 질세라 안으로 뛰어드네요. 호수 위를 지나면서 차갑게 식은 바람은 방의 창문으로 뛰어들어 복도를 달리다 거실에서 한 두어바퀴 돌다가 집 뒤의 작은 언덕의 수풀로 사라졌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환기가 잘 되는 집은 또 여기가 처음입니다. 

 다만, 신발을 신고 실내생활을 하는 문화적 차이로 바닥의 마루는 그렇게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비롯한 부엌설비를 제외한 그 어떤 가구도 갖추어 있지 않았기에, 어디에 앉아야 할지도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캠핑용 의자를 두개 한국에서 가져왔었는데 그나마 그거라도 있어서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사태는 면할 수 있었지요.

 이렇게 텅빈 방을 보면 막막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동안 필요없었지만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던 계륵같은 물건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시원했습니다. 또, 이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고민하고, 열심히 번 돈으로 소중하게 채워넣을 것들을 생각하면 희망이 차오르기도 합니다. 일종의 New colony mood 버프 상태였던 것이죠.

 그렇게 텅빈 방에 홀가분함과 희망, 짐을 소중히 놓아두고 저와 아내는 생활용품과 간단한 가구를 사기위해 쇼핑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코스트코로, 시어즈로, 소베이로 말입니다. 차가 없어도 들고 올 수 있는 크기의 접이식 테이블과 식량을 코스트코에 구매한 카트와 상자에 실어 집으로 날랐습니다. 저녁이 되자 2일 전에 주문해 두었던 침대가 Sleep Country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첫날은 캠핑의자 두 개와 접이식 테이블, 그리고 예상외로 호사스러운 침대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덧글

  • 지나가다 2017/08/07 09:09 # 삭제 답글

    딱히 댓글달지 않고 님의 정착기 탐독하고 있었는데 거처를 정하셔서 이제 한시름 놓으시겠네요. 타국 생활이 신기한 것도 많지만 적응하는 과정에서 소소한 스트레스도 없지 않은데 잘 정착하시고 즐거운 캐나다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단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장점도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구요, 행운을 빕니다!
  • Oldchef 2017/08/07 21:39 #

    네, 격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어느곳이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겠지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장점이 저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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