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시장에서 김치를 파는 영국여인과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Full-time Job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오늘 아플예정(?!)으로 좀 일찍 회사에서 퇴근할 예정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와 아내를 포함한 세명은 그녀가 판매용 김치를 만드는 레스토랑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파머스 마켓에서 파는 가공음식은 모두 위생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조리시설에서 가공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요리를 파는 사람들은 자기 집 부엌이 아닌 레스토랑의 조리실을 빌려야 한다고 하네요.
제시 - 그 영국여자 - 는 결혼 케이터링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곳의 부엌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약속시간이되어 도착한 제시와 함께 들어간 조리실은 높고 넓었으며, 대량의 음식을 생산할 수 있는 거대한 오븐들, 화구들, 냉장고가 가득했습니다.

시간이 늦어 그가 나갈 때 까지 그는 정말 끝내주는 선곡의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게 틀어놓고 끊임없이 미트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미트볼을 만드는 동안 저와 아내와 제시는 꽤나 많은 양의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김치와 무를 쌓아 산을 만들고, 소금을 뿌려 대야에 담아 무거운 깡통으로 눌러 숨을 죽이고, 그러는 동안 사과와 파프리카와 마늘과 생강을 썰고 갈아서 소스를 만들고, 신나게 고추가루를 뿌려 김치를 만들어 냈습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저는 아내와 제시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묵묵히 김치만 만들었습니다. 배추와 무에 든 짠 물기를 짜내는 것이 저에게 내린 신의 사명인 듯, 힘이 들어 손이 떨려도 끊임 없이 속을 짜 냈습니다. 갈려나가는 파프리카와 사과를 바라보며 테이블을 치우고, 절임용 풀을 끓이는 와중에 김치가 숨이 잘 죽고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공장같은 이곳의 분위기가 저에게 기계 부품의 영혼을 덮어 씌운 듯, 저는 만드는 기쁨도, 노동의 피곤함도 느끼지 않고 손 닿는 곳에 주어진 과제를 하나하나 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우리는 14병 정도의 비건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 양이 조금 부족한 두 병을 나와 아내가 가지고 가 숙성 정도를 집에서 가늠하기로 했습니다. 나머지는, 판매가능 여부를 판단하고 더 나아가 위생검사를 받기 위해 제시가 가지고 갈 예정입니다. 검사 결과와 퀄리티에 따라, 비건 김치의 파머스마켓 데뷔 여부가 결정되겠지요.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제가 파트타임 잡을 할 수 있을지가 결정되겠지요.
김치를 다 만들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초밥집에 가서 저녁으로 먹을 초밥을 주문해 놓고 근처 펍으로 가서 피자를 먹고 맥주를 마셨습니다. 밥 먹기 전에 드링크를 마시는 것이 이 곳의 관습이라고 하네요.


아주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2년간 이곳에서 김치를 팔면서 최근에는 정말 김치 이야기는 하기도 신경쓰기도 싫었는데 이렇게 너네들이랑 김치를 또 만들고 있다고 푸념하는 제시의 말이 달 아래 흩어집니다.
남들 보기에는 멀쩡한, 게임회사와 방송국을 다니는 내내 상사와 이상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다가 어찌어찌 전공과 관계도 없는 과목을 선택해서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아내의 나레이션이 그 뒤에 깔립니다.
한 해 가까이 8시 출근 저녁 11시 퇴근을 하면서 만들어낸 게임이 바깥 퍼블리셔의 감놔라 배놔라에 어떻게 흔들리고 뒤틀리는지 바라보다 속이 상해서 또 다른 인생의 '게임만들기'를 찾아 반은 아내에게 끌려왔다는 저의 툴툴거림이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캐나다까지 와서 저런 이야기를 떠듬떠듬 영어로 뿌려대고 있을 줄이야. 세상은 묘한 곳입니다. 재미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게다가 이 모든 것이 김치 때문이라니.
이날 만든 김치가 잘 익어서 맛있어지면 그 영국여자와 또 한잔 할 기회가 오겠지요.
PS. 이날 먹은 초밥은 괜찮은데, 왜 연어초밥에 와사비가 없냐고 아내가 투덜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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