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FX+60:야시장의 벤더로 참여했습니다. 海外生活


 바다에 다녀온 그날 저녁, 김치파는 영국여인 제시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날 급하게 야시장에 벤더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너무 없어서 일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까지 7시간, 주방과 판매 업무를 도와주면 최소 시급으로 돈도 주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날은 바다를 다녀온 멤버들과 공원의 공용 오븐을 이용해서 - 캐나다 공원에는 공용 오븐이 있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 피자를 구워 먹기로 했었으나, 제시의 사정이 딱해 보이는 데다가,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보는 경험은 쉽게 얻기 힘들 것 같아서 제시의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일정을 정리했습니다.

 이날 2시, 약속한 장소에서 제시를 만난 뒤 곧바로 판매할 물건의 조리를 시작했습니다. 주요 판매 품목은 12 CAD의 병김치, 7 CAD의 김치 소스, 그리고 3 CAD의 김치 주먹밥과 김치 타코, 총 4종이었습니다. 이 중, 시장 시작전에 주방에서 만들어야 하는 품목은 김치주먹밥 30인분과 김치 타코 20인분의 속이었습니다.

 시장 오픈 시간은 6시. 4시간 만에 둘이서 거의 50인 분의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저는 약간 긴장했습니다. 집에서나 요리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양은 만들어 본적이 없으니까요.  저는 제시의 지시에 따라 김치를 비롯한 주요 속 재료를 썰고, 만들어진 밥으로 초밥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식기와 도구들을 모두 설겆이 했습니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습니다. 시장 시간에 못 맞출까봐 제시는 중간 중간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 저에게 지르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욕을 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기적적으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던 우리는 부랴부랴 만든 음식을 차에 싣고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한 시장에는 두 대의 푸드트럭을 비롯하여 장신구와 수제 모자, 비누, 맥주 등을 파는 벤더가 10여명 가까이 모여 있었습니다. 나와 음식을 내려놓은 제시는 판매 허가와 관련된 서류를 가지고 집으로 향했고 저는 사장님(?)의 지시에 따라 매다를 정리했습니다.

 그럴듯 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선이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효율적인 상품배치...와는 좀 거리가 먼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파트타임 직원은 사장님의 지시에 일단 따라야 합니다. 제안은 제 영어가 늘고 상황이 좀 안정적이 되면 이야기해도 되니까 말이죠.

 뒤에서 찍은 매대의 사진입니다. 왼쪽의 스토브에서 제시가 김치 타코를 만듭니다. 저는 오른쪽에서 주먹밥과 병김치, 소스를 판매하고 현금을 관리합니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잘게 썬 김치를 샘플 용기에 담아 건네면서 먹어보라고 하고, 먹어 본 뒤 관심을 표하는 손님들에게 제품을 소개합니다. 이 프로세스 자체는 실행 결과 상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번 시장의 주최측은 클라이빙 클럽과 맥주 브루어리와 카페를 겸하는 묘한 시설이었습니다. 조명이나 전체적인 동선에서 부족한 면이 매우 많이 눈에 들어오지만 - 한국에 비하면 캐나다 사람들은 참으로 여유있고 느긋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 그래도 흥을 돋우기 위해 DJ를 불러서 음악도 크게 틀어 놓고 형형색색 조명을 켜 두기도 했습니다. 
 
 화장실을 가거나 식수를 얻기 위해 주최측 시설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면 매우 친절하게 이것 저것 챙겨주더군요. 나중에 알고보니 이 시장의 매대를 내는 가격은 하루에 40 CAD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가격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할리팩스의 메인 거리인 스프링가든 스트리트의 경우 매대가격이 몇백 CAD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고 저와 제시는 본격적으로 물건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김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아 샘플을 시식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추가 구매에 호의적이었습니다.

 베지터리언이 꽤나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김치에 들어가는 젓갈 때문에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을 위해 주먹밥에 들어가는 김치는 젓갈을 쓰지 않았고, 김치 타코도 채식주의자를 위해 두부를 넣고 만들어 둔 것이 있어서 쉽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좀더 봐야 알겠지만, 캐나다에서 김치는 왠지 채식주의자용 건강 식품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6시 부터 9시가까지, 새학기를 맞이하는 대학생 부터 가족단위의 손님까지 많은 분들이 시장에 왔습니다만, 제시의 말에 따르면 작년의 반의반도 오지 않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때문에 제시는 주변 벤더와 함께 주최측에 항의를 할 생각이 있는 듯 했습니다. 마케팅과 호객은 주최측이 담당하는 것이니 그들의 항의는 당연한 듯 합니다.

 저의 예상대로, 그리고 제시에게는 아쉽지만 병김치나 김치 소스를 사는 사람보다 김치 타코와 주먹밥을 사는 사람이 월등히 많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병김치는 2병, 소스는 1병 팔았지만 김치 타코와 김치 주먹밥은 50인분 거의 다 팔렸습니다. 많이 팔리긴 했지만 저에게 주는 시급과 자리세, 그리고 재료를 고려하면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매출로 보입니다. 하지만 제시는 이번 시도로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고 금년도 야시장의 트렌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9시가 되자 제시는 저에게 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10시까지 남아 좀더 물건을 팔아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시급은 인터넷으로 송금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먼저 떠나게 되어 약간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내와 그녀의 친구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저는 인사를 하고 제시를 뒤로 하였습니다. 

 이번에 판매를 해 보면서 느낀 점은, 부족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파는 것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 자신감이 아주 조~금 상승했습니다. - 아무래도 동양인이라는 비주얼적인 요소와 어설픈 영어가 오히려 김치를 판매하는 데에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듯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영어를 잘 했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습니다. 캐나다의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참 즐거운 일로 보였으니까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안부도 물어가고 관심사도 공유해 가면서 여유있게 소통하는 모습은, 한국의 시장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지요. 

 뭐, 사장님의 속마음은 어떤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즐거운 시간이었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다시 벤더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과연 적자를 본 제시가 또 출점을 할지는 모르겠네요.

PS. 시급은 1시간당 12 CAD로 총 84 CAD를 다음날 즉시 입금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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