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국립공원 여행_#4 6시간 달려 집으로 가는 길(HLFX+330) - 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


 캐나다에서 저는 언제나 일찍 일어 납니다. 제가 부지런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해가 부지런해서 그렇습니다. 이 곳의 여름 태양은 참 일찍도 일어나 들어가는 건 꽤나 늦게 들어갑니다. 이날도 그랬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까지 쌩쌩하던 태양이 이날은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텐트에 들어왔다는 것 정도겠네요.

 텐트 밖으로 나가니 산 너머 저쪽에서 깃털구름의 대군이 바다쪽 하늘로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은 바다를 등지고 배수진을 친 듯 했으나 밀려오는 구름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무너지는 쪽빛 방어선 곳곳으로 흰 구름이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듯 이리저리 그 틈을 비집고 바다로 바다로 퍼져나가고 있었고 그 뒤로 따르는 것이 비와 바람, 자신의 영토가 된 적진을 유린하듯 바람은 점점 세지고 있었고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전쟁은 천상의 사정, 춥고 배고픈 지상의 인간들은 비 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는 듯 했으니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 여유에 어이가 없어 심술이 난 듯한 바람이 성냥불을 피우는데 서너 차례 훼방을 놓았으나 저는 마침내 버너에 불을 붙였습니다.

 텐트를 거두고 짐을 싸야하는 관계로 아침은 간단히. 그래서 선택한 메뉴가 라면입니다. 아내는 우육면. 버너에 물을 올리고 앉아 아침 바다를 보면서 멍하니 잡생각을 했습니다. 캐나다의 너구리는 '라쿤'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물이 반쯤 끓어 스프를 먼저 어제 남긴 소시지와 함께 넣고 다시 팔팔 끓입니다. 그리고 면 투하.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1박2일 MT나 어릴적 가족과 함깨 떠난 계곡 캠핑여행의 아침은 언제나 라면이었지요. 편리하기도 하지만 라면에는 끊을 수 없는 맛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매일 먹으면 물리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유 없이 먹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맛. 제가 김치는 안 챙겨 먹어도 라면은 일주일에 한번은 먹는 이유가 바로 그 맛 때문이 아닐까요. 

 집에서 가져온 오이 소박이와 주먹밥을 곁들여 먹는 라면. 춥고 바람이 불 수록 더욱 맛있어지는 마법같은 음식이지요.계란 하나, 파 한 줄기 넣지 않았어도 어찌나 맛있던지.

 식사를 끝내고 텐트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더군요. 무너뜨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바람이 심하게 부는 해변가에서 텐트를 접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귀퉁이와 귀퉁이를 맞추기 위해 조금만 손을 들어도 불어오는 바람이 신기를 받은 무당의 치맛자락 마냥 텐트를 뒤 흔들고 가버려서 도무지 각을 잡지 못하겠더군요. 대충 접어 넣으면 부피 때문에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고...칠 때 보다 접을 때 더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도 옆 캠프 사이트에서 접는 요령을 보고 - 예를 들어 주차해 둔 차를 바람막이 삼아 그 옆에 틀어박혀 텐트를 접는 등 - 어찌어찌 텐트를 접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짐을 다 챙겨 뒷 트렁크에 넣은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섰습니다.

 한 번 갔던 길을 다시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저와 아내는 돌아가는 루트를 케이프 브레튼 섬의 북부를 한바퀴 도는, 캐봇 트레일의 남은 구간을 통해 가는 것으로 마음 먹었습니다. 풍경도 좋고 도로에 차도 없어 느긋하게 달리기 정말 좋은 길이었습니다.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저의 체력이었습니다. 최단 루트로 이곳에서 집으로 가는 시간은4시간30분 정도. 이 정도라면 효율이 떨어지는 중년의 체력으로라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습니다만, 섬의 북부를 도는데 필요한 시간이 2시간이나 되더군요. 집이 아닌 텐트에서 자고 정신없이 짐 챙기느라 컨디션이 약간 떨어진 저에게 6시간 가량되는 거리는 꽤나 버거운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마주했던 좋은 장소들에서 사진 한장 제대로 찍지 못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숨 돌리는데 시간을 다 써버렸습니다. 


 피곤한 와중에 찍은 몇 안되는 사진 들입니다. 바다 위에 떠가는 배를 보고 '이 거친 바람과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저 배는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 생각을 한 걸 보니 정말 힘들긴 힘들었나 봅니다.

 여하튼,

 놀러왔다 사고나면 그것 만큼 가슴 아픈 것도 없습니다.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이 몽땅 비극의 서곡으로 바뀌어 버리니까 말이죠. 늙었다고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지언정 자주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돌아오는 길, 2시간을 달리면 한번은 쉬어왔습니다. 이름 모를 찻집에서, 주유소에서, 그리고 마지막은 버거킹에서 쉬었던 것 같네요. 

 장거리 운전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6시간 정도 차를 몰아보니 북미 대륙의 도로변에는 왜 그렇게 모텔과 주유소,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이 많은지 알것 같았습니다. 도로를 가로지는 육지의 항해자들에게 있어 이 시설들은 등대요 선술집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기에, 퉁명스런 표정으로 껌을 짝짝 씹던 레스토랑의 여종업원이 접시가 부서져라 있는 힘껏 던지고 간 계란과 토스트 - 서니사이드 업을 요청했지만 스크램블이 되었을 확율이 높고 - 는 설익거나 다 타서 숯덩어리가 되었을지라도 피곤에 절은 운전자들에게 그 박정한 음식과 이름 모를 원두를 갈아낸 커피조차 올림포스 신들이 먹고 마시는 진미와 미주처럼 맛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제가 들렸던 곳에 계시는 분들은 모두 친절헸고 음식도 정상(?)이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지요. 저는 그 분들의 친절과 소박한 음식의 힘을 빌어 졸음과 어꺠결림, 허리 통증을 이겨내고 마침내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집은 언제나 편안하고 반갑습니다.이날도 그랬었지요. 불을 켜 어둠을 몰아내고 창을 열어 공기를 바꿨습니다. 흙이 묻은 텐트, 얼룩이 묻어 있는 코펠과 수저, 음식 냄새가 베어있는 아이스 박스를 거실에 늘어놓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음날 치우자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깔끔한 잠옷으로 갈아 입은 뒤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가 눈 부신 침대로 들어가 그 냄새를 한 껏 맡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지요. 역시 집이 최고라고. 그리고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과 메모한 것들을 꺼내 머리속에 담긴 기억을 하나하나 추억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 언젠가 어딘가에 제가 썼던 것 같은 표현이지만 - 그렇게 만들어진 추억을 하나하나 사탕처럼 머리에 담아 두었다가 일상이 심심하고 힘들어질 때 한 알씩 꺼내 입안에서 살살 녹여 먹을 겁니다. 그 사탕들이 다 떨어지면 또 만들러 가야지요. 

어딘가로. 어딘가로. 

덧글

  • 01 2018/06/16 14:26 # 답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ㅎㅎ
  • Oldchef 2018/06/17 09:48 #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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