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dn't you guys burn down the White House?(HLFX+342) 海外生活


 오늘 - 2018년 6월20일 - 은 제가 이곳에 온지 342일째 되는 날 입니다. 곧 1년이네요. 날짜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것은 블로그를 쓰고 싶을 때 쓰는 제 버릇 덕분에 실제 글을 쓰는 날과 그 사건이 발생했던 날이 다른 경우가 많아 그 격차를 줄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만큼은 '그날은 어쩌구 저쩌구'가 아니라 '오늘은 어쩌구 저쩌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오늘 올릴 글은 오늘과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오늘 불꽃이 튀었다는 정도의 표현이 적합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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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캐나다와 미국 사이가 꽤나 시끄럽습니다. 갈등의 시작은 미국이 알루미늄과 강철 무역에 부과되는 관세였으나 그 뒤로 이어진 트뤼도 총리에 대한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의 막말로 캐나다 국민들의 대미감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꽤나 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발언은 이른바 '그들을 위해 마땅한 자리가 지옥에 있습니다.' 발언이지요.

"There's a special place in hell for any foreign leader that engages in bad faith diplomacy..."
- Trade adviser Peter Navarro told in Fox News.

 이런 일련의 사태 이후로 - 미국에 대한 캐나다 국민들의 감정은 썩 좋지 않습니다. 어떤 호텔과 레스토랑은 미국산 와인이나 케찹 - No more Heinz! - 등을 더 이상 취급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레스토랑 운영자는 인터뷰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웃으며 미국산 육류와 어류는 십수년 전부터 쓰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는 #BuyCanadian 해쉬태그와 슈퍼마켓에서 자국산 물품을 산 인증샷이 자랑스럽다는 듯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련의 사태의 추이보다 더욱 저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뤼도 총리와의 통화 중에 한 또 다른 발언 이었습니다.

"Didn't you guys burn down the White House?"

 응? 세계최강 천조국의 그뤠이트한 수도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이 불탄 적이 있다고? 그것도 러시아나 중국이나 아스가르드인이 아닌 캐네이디언이 불 태웠다고?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제 머리에 떠오른 가설은, 아마도 영국과 미국이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의 군대가 미국을 침공, 백악관을 태운 적이 있었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짧은 검색을 통해 알아낸 바는 그와 전혀 다른 이야기더군요.

     <The Burning of Washington in 1841, depicted by Tom Freeman>

  소위 '불타는 백악관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로 부터 10년 뒤인 영미전쟁 중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영미전쟁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유럽에서 벌어지고있는 나폴레옹 전쟁이었습니다. 그 밖의 기타 요소를 고려한 영미전쟁의 원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영국은 미국이 중립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상당수의 교역이 사실상 영-미간에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미국이 프랑스와 교역하지 않기를 강력히 요구함. 미국은 이를 주권 침해로 간주.

- 나폴레옹 전쟁에서 양질의 해군병력이 필요했던 영국은 미국 선박에 탑승한 영국 출신의 선원을 강제 징발하였음. 이에 따라 자발적으로 입대하지 않은 선원을 탈주병으로 취급, 추적 및 체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상선에 대한 강제 수색이 빈번히 발생하였음. 당연히, 미국은 이를 심각한 주권 침해로 간주.

- 당시 북서부로 진출하던 미국에게 있어 테쿰세와 같은 토착민 지도자는 큰 장애물이었음. 그런데 그런 토착세력을 지원하는 것이 영국령 북부 아메리카(BNA, 그러니까 현재의 캐나다)였고 이에 대해 서부 개척자들은 끊임없이 정부의 실질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었음. 때문에 미국에게 있어 영국령 북부 아메리카에 대한 침공 및 점령은 1. 북미에서의 영국군 축출, 2. 토착 원주민 문제의 해결, 3. 광활한 영토의 획득이라는 면에서 매우 매력적이었음. 
 
- 당시 미국 내 집권 세력이었던 메디슨 대통령과 반연방주의자들은 영국에 매우 적대적이었음.

이른바 뚜렷한 대의명분 - 옛 상전들이 쫓겨난 마당에 자기 집에 대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 꼴이 무척 보기 싫었을 것이며 - 과 실질적이고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해 1812년, 미국은 영국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오랜기간에 걸친 외교적 무역적 갈등으로 인해 언젠가 전쟁이 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양국이었지만 전쟁 준비는 미흡했었습니다.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육군은 이베리아 반도에, 해군은 해상 봉쇄를 위해 유럽 해안에 집중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1812년 북미 식민지에 배치된 영국 정규군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캐나다 민병대의 지원을 받는 6,034명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미합중국이었기에 전쟁을 시작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쪽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전쟁을 선포한 미 합중국 의회는 3만5천명까지 민병대를 확대하도록 승인했지만, 병력 보충은 신속히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군복무는 지원제였고 급여도 낮았습니다. 더하여, 민병대들은 자신들의 고향 외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영국 식민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부지역에서는 여러가지 면에서 전쟁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호수너머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갑자기 총질하고 싸우라니! 국가의식, 민족의식이 낮았던 당시의 북부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벌어지는 전쟁이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1812년 6월, 겨우 1천여명의 미국 침략군이 캐나다를 침공, 일부 지역을 점령합니다만 몬트리올과 같은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데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8월 1차 침략군은 영국 정규군과 캐나다 민병대, 그리고 인디언 부족연합의 협공으로 괴멸, 항복하고 맙니다. 그 후 수차례에 걸쳐 미국은 북부 식민지를 침략하지만 모두 격퇴 당합니다.

 그렇게 미국 침략군의 진공이 지지부진한 와중, 1814년 마침내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영국은 대륙에 배치된 기존 병력들을 미국에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을 공격한 영국 정규군 중 로버트 로스 장군이 이끄는 일군이 메릴랜드주 베네딕트에 상륙, 1814년 8월 24일 블래던스버그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어퍼 말보로로 진군하는 중 1813년 미국이 북부 식민지의 요크시 (오늘날의 토론토)를 불태운데 대한 보복으로 워싱턴 D.C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불태웁니다.

 이후 영국 침략군이 승승장구...했으면 미국의 동부지역은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악착같이 저항한 미합중국 군대에 영국 정규군도 주요 전투에서 패배. 결국 영국과 미국은 전쟁이 더 길어질 양상을 보이자 켄트 평화조약을 체결, 득 없이 서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 영미전쟁을 마무리 짓습니다.

여기까지 찾아본 자료를 토대로 생각하면 트럼프의 발언에는 아래와 같은 역사적, 논리적 오류가 있습니다. 

1. 백악관을 불태운 것은 캐나다군이 아니라, 영국군. 그것도 북부 식민지 주둔군이 아닌 유럽 본토에서 온.
2. 불타버린 대통령 관저를 다시 지은 뒤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 뒤로, 미국의 대통령 관저를 백악관(White House)로 부르게 되었다. 고로, 1814년 당시 탄 건물은 어찌보면 White House가 아니었다.
3. 트럼프는 미합중국에 대한 국가 안보의 위협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캐나다 인들이 백악관을 태운적이 있다고 이야기 했지만,(200년도 전에)먼저 침공한 것은 영국군도 캐나다군도 아닌 미국군이다.

이 정도가 되겠네요. 도대체 무슨 소린가해서 찾아본 내용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짧게짧게 포스팅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이쯤 줄이면 좋겠지만 조사 도중 알게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 조금만 더 쓰겠습니다.

 백악관을 불태운 영국군 장군 로버트 로스는 1814년 9월 12일, 노스포인트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시신은 함대로 이송, 자마이카 럼주를 담는 129갤런 드럼통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대서양을 건너지 못하고 1814년 9월 29일,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노바스코샤의 할리팩스(!)로 이송되었고 그 시신은 지금도 할리팩스의 중심가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묘지, 오울드 베링 그라운드에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면 더욱 좋겠지만, 묘지에서 사진을 찍기가 찝찝해서 구글에서 얻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다니...참 신기하더군요. 날이 좋을 때 직접 보러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아무튼,

 트럼프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말이나 던지는 인간이지, 아니면 사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거짓도 차용하여 쓰는 말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발언을 대하는 캐나다인들은 마음이 복잡합니다. 이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때는 양국 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도 농담으로 재미로 넘어가기도 했고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캐나다)가 불태우려고 해도 지금은 잘 지키고 있으니 어려울 것 같네요.' 이런 뉘앙스로 말이죠. 하지만 트럼프가 이런 이야기를 해 대니 그냥 장난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겠죠. 좋은 동맹국으로 수십년을 같은 대륙에서 평화롭게 지내왔는데 기껏 돈 때문에 '국가 안보의 위협' 취급 당하니까 말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어떤 전문가는 이번 사태를 보고 'Family Quarrel' - 가족끼리의 말다툼이라고 하지만, 글쎄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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