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QC):플뢰브 생로헝 해협 횡단-3일차(HLFX+351) - 캐나다(Canada), NB/QB/ON


* 7월3일 여행 8일차, 오타와(Ottawa) 역사박물관 근처의 맥도널드에서 푸틴 하나, 사이다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시작 했습니다. 이 때 Bnb 숙소는 인터넷도 안되는 주제에 에어컨까지 고장나서 집에서는 뭘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던 맥도널드도 사정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 결국 이 포스팅은 임시저장 상태로 3일을 노트북에 갇힌 상태로 보내다 7월6일, 여행 11일차 토론토(Toronto)에 와서야 다시 빛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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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스텔, Auberge de Jeunesse du Manoir des Sapins 

새벽인데 바깥에서 쿵쾅쿵쾅 발소리가 들립니다. 불이라도 났나 싶어 코를 킁킁거려보지만 어디에서도 타는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니 게릴라 같은 복장을 한 한 패의 젊은 친구들이 다 낡아빠진 픽업트럭에 요란스럽게 캠핑장비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어제 체크인 할 때 부엌을 차지하고 어지러히 저녁을 먹던 무리들로 보이더군요. 헬로 하면서 가볍게 목례를 했것만 들은 척 만 척해서 저도 그 다음부터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랬습니다. 지금, 새벽에 하는 행동을 하니 말 안섞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행을 떠나기 전, 저의 튜터이자 친구인 Alan이 말했습니다. '캐나다에는 정말 그뤠이트한 사람들이 많지만, 이번 여행에서 너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섭섭해 하지는 마.' 라고요. 

퀘벡(Quebec)으로 접어든 어제부터 '아 정말 그렇구나'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속은 기본이고 추월하기 위해 제 차 뒤에서 안절부절하는 차들, - 교통경찰들이 세상에 과속하는 모든 차들에게 딱지를 내리기를 간곡히 빕니다. - 인사를 하면 눈을 깔면서 무시하는 사람들, 영어로 물어보면 못 들은 척 계속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는 점원들 - 너희들 프랑스어도 공용어라고! - 등등.

하지만 그런 불순분자들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의 친절이 돋보이지 않겠습니까? 비록 하루지만 제가 머물렀던 퀘벡의 이 숙소도 그런 곳 중 하나였습니다.

소음의 근원들이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난 뒤, 해안의 이 아름다운 작은 집에는 정적과 평화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등산화 소리와 기침소리, 현관 문을 닫는 쾅소리에 세상의 온갖 신은 다 소환해서 저주를 하기 직전이었던 아내는 다시 잠이 들었고, 저는 새벽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조금 이른 아침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파도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갈매기 소리. 아아 하나님 감사하옵니다.

마음의 평정을 찾은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샤워를 하고 제 짐을 챙긴 뒤 숙소 1층에 딸린 카페로 내려갔습니다. 커피 한잔을 시키고 블로그에 올릴 글을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있으니 아내가 내려왔습니다. 그녀도 커피를 주문하고 조금 생각하다 여기서 아침을 먹기로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친절한 점원이 계란을 익히는 방법이라든지, 사이드로 곁들일 메뉴에 대해서 꼼꼼히 확인을 하면서 주문을 받은지 십여분 후, 아침이 나왔습니다.

저는 프랑스식 메밀 크레페를 주문했었습니다. 얇은 햄과 시금치, 노른자를 반만 익힌 계란과 치즈가 환상적인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제대로 만든 한 접시 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 앞의 '라 셀틱'에서나 맛볼 수 있었는데 그 가게는 아직도 잘있을라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오늘 갈 코스를 확인하고, 자동차에 채워야 할 물품들 - 물, 커피, 간편 식품 등등 - 을 논의 했습니다. 그 뒤 저는 자동차로 짐을 옮기기 시작했고 아내는 체크아웃 수속을 밝기로 했습니다.

비록 머문 시간은 하루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멋진 식사와 환대로 퍽 좋은 숙소로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다만, 또 올 가능성은 낮을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을 굳이 찾을 이유가 있다면 딱 한가지, 해협을 횡단하는 페리인데 그게 자주 탈만한 교통수단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체크아웃 수속을 끝낸 우리는 해협횡단 페리를 타기 전 쉬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딴느(Matane)의 다운타운으로 향했습니다. 



2.

마딴느(Matane)

시(City)라고 하기에는 좀 조촐한 이 곳은 플뢰브 생로헝 해협을 지나는 페리와 주변의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기반으로 관광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하지만 관광이 발달했다고 해도 그건 다른 산업 - 수산업과 낙농업 - 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이 곳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하루에 한 번 떠나는 페리를 타기위해 온 사람들이 잠깐 쉬어가는 한적한 어촌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그리하여 저와 아내도 뚜렷한 목적없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시가지는 깔끔했고 이곳 저곳 무언가를 해 보려는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도로의 한쪽 차선을 막고 인근의 사업자들에게 파티오를 설치할 수 있게 해 준다거나, 중심가에 대규모의 공원을 조성해서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벤트나 전시회를 연다거나 하는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 중 괜찮다고 생각했던 결과물은 공원 가운데에 설치한커다란 호수 였습니다. 호수에서는 작은 배를 탈 수 도 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수영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수영장 탈의실 옆에 설치된 물놀이 시설로 버튼을 누르거나 센서 위로 아이들이 지나가면 나무 모양으로 생긴 플라스틱 잎이나 꽃들이 움직이면서 물이 뿜어져나오곤 했습니다. 그냥 보기에는 2%정도 부족한 면이 있으나 그 의도나 노력을 생각하면 시의 공무원들에게 잘 하고 계신다고 격려해 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하고 있었으니까요.

성장에 대한 가능성과 관광업에 대한 이 곳 모두의 염원(?)이 반영되어서 인지 주민들도 친절한 듯 했습니다. 주변 상황에 밝지 못해 주차를 해서는 안되는 곳에 차를 잠시 세워두웠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다가와 웃으면서 서툰 영어로 설명을 해 주더군요. 여기는 차를 세워서 안되는 곳인데 저기로 가면 무료 주차장이 있다고. 퀘벡지역에 와서 무언가를 파는 사람을 제외하고 이렇게 상냥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들린 관광객들을 잡아 끌만한 매력적인 곳이 이곳에는 없었습니다. 시의 규모를 고려하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럴듯한 박물관이나 갤러리도, 높은 평가를 받는 맛집도, 지역의 특징을 드러내는 특산물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기를 쓰고 찾는다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저같은 관광객이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좀 더 발품을 팔아볼까라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흐린 하늘이 한방울 두방울 비를 뿌리기 시작했기에 저와 아내는 좀 일찍 페리를 타러가기로 했습니다.



3.

해협횡단 페리, Matane - Baie Comeau Godbout

여행을 다니면서 저는 배를 타 볼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나 자동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걸리는 것이 배를 선택하기 어려운 원인이 아닐까요. 하지만 배로 하는 여행에 대한 로망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었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적당한 코스가 있다면 저는 언젠가 꼭 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굳이 육지로 가도 되는 퀘벡을 해협을 건너가는 코스로 지금 가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같이 영어 수업을 듣는 프랑스 출신의 할아버지가 저에게 그 코스를 매우 강력히 추천하기도 했었거든요. 


배로 가는 시간이 2시간이 걸리기에 오늘 가야하는 시간이 5시간 10분이 되어버렸습니다만! 저는 꼭 이 페리를 타고 싶었단 말이지요.

미리 도착한 페리 선착장의 첫인상은 뭐랄까 관광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선착장 앞에는 경찰차들이 가뜩 깔려 있어서 그 모양을 처음본 저는 차를 돌려 옆으로 잠깐 도망갈 정도였습니다. 혹시 페리로 특급 범죄자라도 이송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폭탄 테러 예고라도 했나? 차를 세우고 열심히 구글을 돌려보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내리는 차량들이 사고 나지 않고 상륙할 수 있도록 에스코트하는 광경이라고 하더군요.  

경찰차 무리를 지나고 조금 들어가면 검표소가 나옵니다. 하루에 한번 배편이 있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야합니다만, 우리가 배를 탔던 6월은 아직 성수기가 아닌지 검표하는 사람도 지나는 사람도 여유가 있어보이더군요. 배삯은 사람은 20$ 정도인데 차도 같이 실어야 하니 48$를 더 내야 했습니다. 아내는 배 하나 때문에 대략 80$을 썼다고 뭐라 그러지만 저는 꼭 배를 타고 싶었단 말입니다.(반복)

표를 받고 검표소를 지난 뒤의 광경입니다. 표 값은 배 안에서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냥 검표를 하고 돈을 받으면 될 것 같은데 중간에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나 봅니다. 이 곳에서 배에 탈 수 있는 시간이 될 때까지 차를 세우고 줄을 지어 마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 차 안에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유리창을 닦거나 괜시리 나가서 스트레칭을 하다가 내리는 비에 다시 들어오기도 해 보았지만, 지겹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선착장 앞에는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열심히 무언가를 파내고 깔고 정리를 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더군요. 그 날리는 먼지와 소음은 도저히 관광 페리를 타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괜히 배를 타자고 했나는 생각도 커져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드디어 승선허가가 났습니다. 늘어져 있던 차들의 엔진이 일제히 시동이 걸리고 - 경기장의 출발선 앞에 선것 같았습니다. - 공사중이던 중기들이 화들짝 놀라 길 옆으로 어기적거리며 물러나더군요. 그리고 한대 한대, 유도원들의 지시에 따라 차들은 속속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배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페리는 6층 구조로, 그 중 차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은 2층부터 4층까지였습니다. 오늘은 이용객이 적은 이유로 그 중 한 층하고도 반 정도만 차가 올라오는 것 같더군요.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차를 보고 기분이 좋아져 히죽거리고 있는 저의 팔을 아내가 잡아끌고 윗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와우. 한번도 이런 페리를 타본적이 없는 부산 출신 촌놈은 아주 조금 놀랐습니다. 

커다란 철통 같았던 아래와 달리 5~6층에는 깔끔하게 잘 꾸며진 식당과 기념품점, 영와 관람석 등 편의 시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어린이용 놀이터와 인터넷을 쓸 수 있는 비지니스 부스도 있었고요. 이런 배를 타 본적이 없던 불쌍한 저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닌다고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아내는 그런 저를 어이없다는 듯이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리로 돌아가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실컷 돌아다닌 저는 식당에서 사온 커피와 그 핑계로 공짜로 가득 가져온 마요네즈. 가염버터, 머스터드 소스를 테이블 위에 늘어 놓고 주머니에 챙겨둔 육포를 꺼내먹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영문판. 집에서 3번쯤 읽은 책이 아니었으면 감히 영문판을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마요네즈 샘플 3개와 머스타드 하나, 육포 한 봉지와 커피 한 컵을 거의 다 먹고 4페이지 정도 책을 읽었을 쯔음(...) 반대쪽 육지가 보이는 듯 해서 저와 아내는 배의 최상층 덱으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덱에는 먼저 나온 사람들 몇몇이 난간에 기대어 육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한번 그렇게 해볼까싶었는데 발밑으로 시퍼렇게 흐르는 물과 파도, 머리위로 휘몰아치는 바람에 다리가 후들후들 이내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먹으면서 이전에는 이렇게 겁을 먹는 것 자체가 참 싫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겁나는데 어떻하겠습니까. 안할 수 있으면 가급적 안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암요. 반면 저의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사진을 잘도 찍습니다.

어느덧 배의 속도가 줄고, 하선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이제는 내려야 할 때. 그리고 또 꽤나 긴 길을 달려야 할 시간이네요. 저는 마냥 이배를 타고 퀘벡까지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습니다. 어차피 퀘벡도 항구도시니까 갈 수 있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해서 말이죠. 하지만 왠지 아내가 무섭게 노려보고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PS.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를 잘못 찾아서 5층과 2층을 몇 번 왕복하다가 결국 아내에게 한 소리 들었습니다. 쩝.



4.

고래 관측 갬핑장 - Mer et Monde écotours, 가는 길과 그날 밤

페리에서 내려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퀘벡으로 가는 주요 수송로인 138번 도로에는 뭐가 그리 바쁜 사람들이 많은지 과속과 추월을 반복하는 모기같은 차들이 너무 많았고 뭘 그리 많이 싣고 가는지 집채만한 트럭들이 우르릉 거리면서 제 작은 차를 따라오곤 했습니다. 게다가 이 도로는 1차선 도로였기에, 규정 속도로 달리는 제 뒤로는 언제나 차량들이 주욱 늘어섰습니다. 그러다가 추월라인이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쎄앵하고 앞서나가는데 그걸 보고 있는 제 가슴이 다 조마조마 할 정도로 위험해 보였습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빨리 달리는건지. 해안 바로 옆을 지나는 도로라서 좋은 광경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도로 옆에 들어선 주택과 상업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방풍림으로 넓은 바다 풍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협을 건너기 전과 건넌 뒤의 모습이 너무도 상이했기에 저는 캠핑장 상태도 이모양 이꼴일까 은근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더군요.

아내가 미리 예약해둔 이 캠핑장은 짜증과 긴장이 가득찬 도로에서 방풍림을 뚫고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캠핑 사이트는 그 캠핑장의 센터에서도 또 좀 들어간 해안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즉, 지금껏 저를 괴롭혔던 움직이는 강철상자들의 냄새와 소음에서 완전히 해방 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좀 아쉬운 점은 기후가 충분히 습하지 않아 캠프파이어를 할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샤워실과 화장실, 설겆이를 할 수 있는 급수 센터또한 제법 먼 거리를 걸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이렇게 좋은 광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말이지요.

서너 시간을 달려오느라 힘들었던 저와 아내는 일단 텐트를 치고 밥을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경사와 큰 돌로 울퉁불퉁한 캠핑 사이트에는 텐트를 칠 수 있도록 큰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퍽을 박을 수는 없지만 나무데크 옆면에는 끈으로 텐트를 고정시킬 수 있는 금속 걸쇠가 꼼꼼 박혀있어 텐트를 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텐트를 치고 침낭을 깔고 누워서 쉬다가 밥을 해먹고 가져온 커피를 마시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고 체력이 회복되는 가운데 해는 점점 저물고 있었습니다.

이 캠핑장 앞의 얕은 바다에는 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옆 텐트의 분들은 저와 아내가 밥을 먹고 텐트를 치고 온갖 부산을 떠는 와중에도 꿋꿋이 바위에 앉아 고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뒤 저도 그렇게 해 볼까 싶었는데, 모기와 추위와 아직 가시지 않은 피로로 인해 꾸벅꾸벅 졸다가 모기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오한에 벌벌벌 떠는 우스운 꼴을 연출하다 그냥 텐트에 들어가 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시간이 있으니 그때 고래가 아침을 먹으러 오지 않을까하고 제멋대로 기대를 하다가 저는 기절하다시피 잠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저는 별도 고래도 멋진 로맨스도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코를 골면서 잤습니다만 그 댓가로 얻은 잠은 정말로 꿀맛이었습니다. 자는 도중 깊은 바다에서 우는 고래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꿈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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