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QC):고래는 바다속에 있었을 겁니다-4일차(HLFX+352) - 캐나다(Canada), NB/QB/ON


* 7월9일 여행 11일차, 온타리오(Ontario)의 킹스턴(Kingston)에서 오전을 보내고 지금은 몬트리올(Montréal)에서 이 글을 씁니다. 여행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으로 접어드는 지금, 시간은 촉박하고 볼 건 많아서 포스팅을 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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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래는 어디에

이른 새벽, 알람도 없이 눈을 뜹니다. 코끝으로 약간은 싸늘한, 하지만 신선한 공기가 느껴집니다. 새소리,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가끔씩 주변의 다른텐트에서 달그락거리는 그릇소리도 납니다. 저는 눈, 코, 입을 얼굴에서 지워버리기라도 할 듯 두 손으로 얼굴을 힘차게 문지르고 일어나 텐트 바깥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크게 기지개를 폈습니다.

몇몇 부지런한 친구들이 벌써 일어나 고래를 보기위해 해안가에 설치된 관측소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자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봉쥬르' 하고 인사를 합니다. 저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 옆에 서서 한참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혹은 나타났지만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한번도 고래를 본적이 없는 저는 고래를 보고 나무토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바다 위를 떠 도는 통나무를 보고 고래를 보았다고 기뻐하다가 실망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래를 보지 않았으나 이미 고래를 본 것과 똑같은 기쁨과 행복을 느꼈음을 깨닫고 득도합니다.
득도를 한 텐트자리에 견경사(見鯨寺)를 새우고 캐나다에서 가나대(加拿大)종을 열고 중생을 깨우치기 시작합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보냈음에도 고래는 나타나지 않자 저는 흥미를 잃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한참을 가야하니 시간이 있을 때 푹 쉬고 먹어줘야 하는 것이죠.



2.

가져온 오이김치에 토마토 소스와 야채, 베이컨을 볶아낸 국물에 끓인 너구리 라면. 기괴하게 들리지만 맛은 일품입니다. 냄비가 적어 하나 밖에 끓이지 못하지만, 가져온 햄버거 빵을 라면국물에 찍어먹으면(...)충분히 배도 채울 수 있습니다. 어느새 일어난 아내가 아침부터 괴식을 즐기는 제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하더군요.

그녀가 우아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는 동안, 저는 캠핑장의 공용건물에서 샤워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수건과 세면도구를 들고 슬리퍼를 끌며 해안에서 캠핑로로 통하는 작은 숲길을 지나고 나무와 덤불이 양옆으로 우거진 캠핑로를 걸어걸어 나갔습니다. 차로 올때는 금방이었던 길이 걸어보니 거리가 좀 되어, 중앙동에 도착할 때 쯔음에는 약간 숨이 가쁘더군요. 

그렇게 헉헉거리고 올라가고 있자니 막 소년에서 벗어난 듯한 젊은 청년이 맹렬한 속도로 저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흡사 검은 쿠거를 연상시켰던 흑인 소년은 그 와중에 저에게 '봉쥬르?' 였던가? 아무튼 프랑스로 한마디 인사를 던지고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때, 제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친구의 탄력적인 질주와 비교되는 저의 천천한 걸음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꼈냐고요? 아니요. 저는 그를 부러워하지 않는 저의 태도에서 저의 늙어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아저씨 미소를 지으며 뿌듯해 했었습니다. 검은 피부에 대조되는 원색의 화려한 티셔츠를 입고 푸른 숲길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생명력이 넘치고 있었고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면서 계속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에게는 그의 시간대가 있고, 저는 저의 시간대가 있으니까요.




3.

캠프 중앙동에는 화장실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일이 잘 안풀리는 표정으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저도 그 행렬에 동참할까 했으나 쉽사리 해결이 안될것 같더군요. 다음 기회를 생각하며 샤워실로 들어갔는데...샤워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3분에 1달러. 그것도 25센트 동전만 먹는 최악의 조합이었습니다. 세상에 누가 25센트 동전을 샤워를 위해 아침부터 들고 다니겠습니까? 화장실에 비해 어쩐지 샤워실이 여유가 있더라니...주머니와 동전 지갑을 털어보니 동전 10개가 나왔습니다. 시간 정해놓고 샤워를 한 건 군에 있을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허허...저는 제법 비싼 캠핑비를 받고도 공짜 샤워시설도 제공하지 않는 캠핑장을 욕하면서 신속하게 오전샤워를 끝냈습니다.

텐트로 돌아오니 아내는 관측소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고래를 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잠시 나란히 서서 수평선을 바라본 우리 둘은 조용히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래는 저 바다속에 있겠지요. 양이 나무상자 안에 든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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