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동부(5일차),퀘벡(QC):올드타운의 거리, 그리고 '도깨비 성' - 캐나다(Canada), NB/QB/ON




1.

갤러리 밖은 아직 더웠지만 그 기세는 크게 꺾여 있었습니다. 흐린 날씨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더위를 가려준다면 누군들 마다하겠습니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때를 놓칠세라 종종 걸음으로 시내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올드타운을 둘러싸고 있는 옛 성벽의 모습입니다. 캐나다의 작은 프랑스라고 불리우는 퀘벡이건만 정작 이 성벽을 쌓은 것은 그 프랑스를 물리친 영국입니다. 기껏 키워(?)졌더니 자기들을 몰아내고 나라세운 미국이 북부 식민지까지 침략할까 두려워했던 영국은 1765년 부터 성벽을 쌓기 시작, 도시 자체를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전체길이 4.6km에 달하는 이 성벽은 퀘벡을 북미에서 유일한 성곽도시로 무장시켰으나 지금은 군사적인 목적보다는 관광자원으로 더욱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지요.

올드 타운의 곳곳으로 뻗은 거리에는 건물 본연의 양식미와 소유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상점 및 주택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할리팩스의 거리에서는 소박함과 꾸밈없음이 미덕이었다고 한다면 올드타운의 거리에는 세련됨과 뽐냄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건물들이 저의 눈길을 끌었지만 성벽에 너무 가까운 곳들은 지나치게 상업화된 감도 있었습니다. 관광객과 상점이 넘치는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지거나 때로는 성벽 밖에 있는 건물들이 개발과 보존의 적정선상에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2.

'Epicerie Boucherie' - 프랑스어를 읽지 못해도 가게 위 베란다에서 푸른 야채? 꽃들을 싣고 늘어서 있는 카트를 보면 여기가 식료품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딸기철인지 가게 밖에 신선한 딸기가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관광객과 주민들이 반반 섞인 손님들의 무리는 여기저기서 식료와 와인을 사고 있더군요.

슈퍼에서 술을 살 수 있다는 것. 노바스코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한 사회가 문명화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은 슈퍼에서 자유롭게 술을 구매할 수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라고 저의 튜터 알랜이 농담반으로 이야기 했었습니다. 그때 직접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서울의 밤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던 풍경들, 소리치고 노래하고 길거리에 주저 앉은 술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말은 약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한 사회가 충분히 문명화 되어야 슈퍼에서 자유롭게 술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라고 말이지요. 과연 퀘벡의 밤거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심히 궁금했지만 그걸 보기 위해 한 밤중에 유흥가를 헤매이기에는 저의 체력과 돈과 용기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3.

아트갤러리에서 봤던 작품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건물입니다. 1층의 의류점. 입구 옆 가로등의 교통 사인들. 2층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층계 양 옆으로 솟아오른 코린트 양식을 흉내낸 기둥. 벽돌로 올린 벽체. 쭉 하늘로 뻗은 중앙 건물과 그 위에 앙증맞게 덮여진 코발트색 지붕. 평소라면 보기 싫을 왼쪽의 비개들도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벽화로 인해 거기에 있어야하는 존재가치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고전미와 팝아트적인 즐거움 - 50% 세일 간판 마저도 - 이 한 자리에 어울리는 것을 현실세계에서 마주하는 것은 실로 만나기 어려운 경험이지요.

개인적으로 레고로 만들어주면 사서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

거리를 걷고 또 걸어 바닷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가다보니 눈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건물과 그 보다 더욱 압도적인 인파들이 복작거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벽돌로 지어진 벽체, 창문을 둘러싼 흰색 테두리, 녹청색의 구리 지붕, 그리고 갑자기 툭 커진 추파춥스 같은 건물이 인상적인 프렌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 샤토 프롱드낙(Château Frontenac)입니다. 한국사람들에게는 '도깨비 성'으로 알려진 곳이지요.

고전미가 넘치는 양식에 프랑스 식민시대에 지어진 총독관저라도 되는가 싶었더니 17세기 후반에 짓기 시작해서 1893년에 개업한, 애초부터 호텔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주말 영어수업에서 만난, 퀘벡 출신 프랑스 할아버지 도미닉이 여행가면 여기에서 브런치를 먹어보라고 추천해 주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한 그 가격에 깜짝 놀란 저는 감히 저 건물에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습니다. 각오를 하면 못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 돈이면 다른 맛난 것을 먹겟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걸 보면 저는 아직도 부산 촌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호텔 앞,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펼쳐진 뒤프랭 테라스 입니다. 벤치도 많고 바람도 시원하고 풍경도 좋고 물론 사람도 많습니다. 그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저와 아내는 더 높은 곳,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5.

계단과 경사를 오른 그 끝에 있는 것은 야트막히 펼쳐진 평원과 작은 공원이었습니다. 세인트 로렌스 강을 바라보는 퀘벡시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참으로 묘한 장소이지요.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이곳은 260년 전만 해도 총이 울고 칼이 부딪히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었습니다. 1759년 역사적으로 '아브라함 평원의 전투(Battle of the Plains of Abraham)'라고 알려진 이 전투에서 군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두 가지 실수가 발생, 프랑스군은 영국군에게 패배하고 퀘벡을 비롯한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는 고스란히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수많은 영국과 프랑스와 캐나다와 원주민들이 죽고 그들의 피가 이 평원을 적셨지요.

물론, 지금이야 전장을 돌진하는 기병 대신에 탱크탑에 조깅하는 여성분들이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고, 어머님을 부르며 누워있는 부상병은 간데 없고 날씨가 좋으면 햇볕을 쬐러 누워있는 상반신 나체의 젊은이가 있을 뿐입니다. 넓은 평원은 콘서트를 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공간을 제공하기에 틈만나면 큰 공연이 바로 이곳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도깨비 팬들에게 있어 이 곳은 김신의 묘비가 있던 곳이지요.


이 곳에서 이런저런 도시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퀘벡은 참 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가로히 요트가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강은 흡사 남 프랑스의 휴양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맞은 편 강변에는 거대한 컨테이너 선이 항구에 화물을 토해내고 그 옆으로 도시를 절반으로 나눌 듯한 거대한 공장이 불빛을 번쩍이며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친 산업시설의 전진을 우아하게 뻗은 성벽과 산책길, 아름다운 작은 건물들이 다독여 멈추고 유럽 어느 마을의 낭만스런 분위기가 스물스물 언덕을 덮어 올라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불꽃이 터지듯, 거대한 도깨비 성이 화려함과 웅장함을 뽑내며 한껏 손을 하늘로 뻗어 올립니다. 피날레! 그리고 쏟아지는 박수.

도시의 역사가 이렇게 뚜렷하게, 그리고 한 눈에 들어오는 도시 구획들의 연장선상에서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성장의 수레바퀴에서는 우회보다는 짓밟고 나아가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공업도시면 공업도시이고 관광도시면 관광도시가 되는 것이고 휴양도시면 휴양도시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퀘벡은 오밀조밀 그 특징들을 참 잘 보존하면서 커지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신기하고, 쉽사리 찾기 힘든, 네, 정말 '도깨비' 같은 다재다능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머물고 싶지만 언제나 부족한 것은 시간. 저의 이 감정이 착각인지 아닌지를 알아 볼 시간도 하루 밖에 남지 않았네요. 내일은 또 어떤 퀘벡의 풍경을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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