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동부(6일차),퀘벡(QC):몽모랑시 폭포와 문명박물관 - Canada Road Trip,NB/QB/ON




1.

퀘벡에서 맞이하는 두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약간 졸린 눈으로 부엌으로 내려가 Bnb 주인장 다니엘의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향긋한 크레페 냄새, 꿀과 초콜릿과 과일향이 고요한 공기사이를 부유하고 있을 때 다니엘이 물었습니다.

"오늘 어디 갈 예정이야?"

"음...숙소 근처에 폭포가 있다고 들어서 우선 거기에 가 볼까?"

"아~ 아직 몽모랑시 폭포(Chutes Montmorency)를 보지 않았구나! 우리 숙소에 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곳이 그곳이거든. 꼭 가보는 것이 좋을거야.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넓지는 않지만 더 높다구!"

...퀘벡 사람들의 자기고향 사랑 - 하기는 자기 고향 좋아하고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서도 - 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어제 아침 먹을때 이야기 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찌 그걸 또 기억하고 있더군요. 사려깊고 기억력 좋고 향토애가 넘치는 다니엘입니다.

아무튼,

저와 아내는 아침을 먹으면서 몽모랑시 폭포의 입구 및 주차장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이지요. 날씨는 조금 흐리지만 좋은 풍경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식사를 마친 저희 부부는 몽모랑시 폭포로 차를 몰아 갔습니다.



2.

몽모랑시 폭포를 방문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폭포 위쪽 지역에서 접근하는 법과 폭포 아래쪽으로 접근하는 법. 대형 주차장이 있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폭포의 아래쪽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천길만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엄청난 물줄기의 높이와 폭포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위해 걸어야 하는 계단의 숫자에 질려버립니다. 반면, 폭포 위쪽으로 오면 입이 떡 벌어지는 폭포의 위용을 보기위해서는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지만 공원처럼 조성된 산책로와 다리, 폭포 주변의 벤치를 쉽게 걸어서 즐길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저와 아내는 폭포 위쪽 루트를 택했습니다. 언제나 공짜로 주차장을 제공하는 맥도널드도 근처에 있었기에, 커피 한잔을 사고 가장 구석진 곳에 차를 주차시켜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산책을 나온 인근 주민들의 무리에 섞여 폭포로 나아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폭포로 다가갈 수록 콰아아 하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커져옵니다. 공원에 조성된 나무 너머로 바람도 불어오는 것 같고, 그 바람에는 물방울도 섞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설치된 나무 계단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와락하고 폭포의 풍경이 눈을 가득 채웁니다.

정말 크고 아름답더군요.

솔찍히 대도시 근처에 폭포가 있어봤자 얼마나 크겠냐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제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폭포의 '폭'은 그렇게 넓지 않았습니다만 그 높이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폭포의 양 옆으로는 그 아래쪽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마치 하늘로 기어오르는 이무기처럼 길게 뻗어 있었고 그 이무기의 등을 타고 관광객들이 폭포 위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봐도 보일 정도로 헥헥 거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폭포 양쪽으로 오르는 두 줄기의 계단을 집라인이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설마 이 폭포를 저 가느다란 철선 하나로 가로지르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있더군요. 가격은 약간 비싼 편이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저와 아내는 돈 내고 스스로를 고통에 밀어넣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에 타고오는 사람을 보며 엄지척을 날려주는 것으로 집라인에는 신경을 껏습니다.

여름이라 물이 많은지 큰 폭포 줄기 주변으로 작인 물 줄기들도 여기저기 터져나오고 있었습니다. 도시 주변의 큰 물은 강이나 수원지 정도만 보던 촌놈에게 이렇게 도시 옆 큰 폭포라니 나름 큰 충격이었습니다. 선선한 온도에 적절한 수분에, 마냥 벤치에 앉아 폭포를 보면서 책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또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폭포를 떠났습니다.

이번 폭포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침실에 폭포를 설치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겠네요.



3.

다음 목적지는 문명 박물관(Musée de la civilisation)이었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간혹 오타와(Ottawa)의 역사박물관(Canadian Museum of History)을 문명박물관이라고 설명하는 글을 볼 수가 있는데 이쪽이 문명박물관 입니다. '문명5'로 입덕해서 아직도 가끔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저는 이 박물관의 이름이 꽤나 오만하게 들리더군요.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물건이 들어 있기에 박물관 이름에 '문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말이지요.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와 올드 퀘벡과 해안 도로가 만나는 어디쯤에 위치한 이 박물관 근처에는 매우 편리하게도 제법 크고 가격도 괜찮은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박물관까지 거리는 걸어서 약 3분 정도? 저와 아내를 짜증나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박물관의 첫 인상은 매우 좋았습니다.


박물관의 외관입니다. 프랑스 문화가 강세인 이곳 퀘벡의 박물관에 왜 빅벤이 떡하니 그려져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 기획전의 주제가 '영국문화' 더군요. 특별 전시회장 입구의 영국 택시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을 확 잡아 끌었습니다.

그 외 다양한 영국의 문물들이 런던의 익숙한 동네이름들과 함깨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비틀즈와 존 레논, 섹스 피스톨즈, 패션 등등. 꽤나 잘 꾸며진 컬렉션에 살짝 놀랬습니다.

일반 전시회장에서는 서구 문물의 발전사 전체를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었던 물건들로 조관해 보겠다는 야심찬 발상의 결과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시대별로 문물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용도와 특징에 따라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물품을 한번에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은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밀레니엄 팔콘의 장난감이 고대 연극에 사용되었던 돌판 마스크와 함깨 있었던 것이겠지요.



4.

그 다음 전시관에는 퀘벡의 문명, 산업, 역사와 관련된 전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잘 만들어진 알아브라함 평원 전투(Battle of the Plains of Abraham)의 디오라마가 담당하고 있더군요.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는 북미 식민지역의 주도권을 영국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 이 전투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할말이 많아서요. 하지만 게을러터진 제가 언제 포스팅을 할지는 저로써도 의문입니다.

퀘벡과 관련된 다양한 물품들이 디오라마 뒤로 연이어 등장했습니다. 한 때 성당의 일부를 장식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물방앗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부품, 근대 쯤으로 추정되는 기차역의 모형, 프랑스 말로 쓰여진 간판과 우편함, 그리고 소방도구 등등.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였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훅훅 지나갔습니다.


퀘벡을 최초로 발견하고 '캐나다'라는 이름을 최초로 붙인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탔을 것으로 예상하는 배의 모형입니다. 1534년 프랑수와 1세는 그에게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두 척의 배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했던 그는 중국 대신 캐나다를 '발견' 했습니다.

퀘벡지역에 정착한 프랑스 인들은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 - 지금까지 우리가 인디언이라 불러왔던 북미 원주민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윗 사진의 벽에 붙어 있는 퍼스트 네이션의 세공방식으로 만들어진 당시 프랑스의 깃발이 그 둘간의 동맹을 상징하는 중요한 물품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층에서는 퀘벡시의 산업과 상업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었습니다. 세인트 로렌스강을 통해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으며 오랜 세월 그 지역에 조성되었던 삼림으로 인해 조선업과 목재는 퀘벡에게 있어 가장 발전한 산업 중 하나였습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뒤, 곧 발생한 보어전쟁 및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캐나다는 자국산 무기에 대한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었습니다. 그리하여 퀘벡 일대에는 당시 캐나다 군대에 공급했던 탄약과 무기를 생산했던 공장이 꽤나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이런 이야기는 다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캐나다에서 자체 생산된 소총의 성능에 문제가 있어 결국 다시 영국제 소총을 들여오게 되었다는 슬픈 사실도 있습니다.

그외 금융, 보험 및 다양한 상업 또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퀘벡의 입지에 힘입어 크게 발달했었습니다. 윗 사진은 그 당시에 사용되던 이런 저런 가게의 간판들입니다. 프랑스말로 쓰여 있어서 뭐가 뭔지 알기가 어려웠지만 치과의 간판은 무언지 바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무릇 간판은 알기 쉬워야 한다는 점에서 참 잘 만들어진 간판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박물관에서 지적 욕구를 채우고 있자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와 아내는 머리를 채우는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위장을 채우기 위해 거리로 다시 나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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