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중부(11일차),AGO(Art Gallery of Ontario)1편_오덕후(?)의 위대함 - Canada Road Trip,NB/QB/ON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림보는 것을 좋아하는 제가 캐나다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AGO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요. 오타와(Ottawa)의 National Gallery of Art는 이미 들렀고, AGO를 이날 보고, 돌아가는 길에 몬트리얼에 들려 Musee des Beaux-Arts까지 보면 이번 여행의 서브 퀘스트도 클리어! 생각만 해도 뿌듯합니다.

 하지만 이날도 언제나 저지르는 실수를 하고 말았으니 바로 관람시간. 미술관 감상에 할여해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자고 퀘벡에서도 오타와에서도 그렇게 다짐했건만 결국 이곳에서도 급히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4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방대함, 그 다양함, 그 아름다움은 두고두고 시간을 들여 봐야하는 것인데 결국 아쉬운 마음에 잔뜩 찍은 사진만 남아 있습니다. - 플래쉬를 쓰지 않고, 몇몇 특정 작품을 제외하면 작품 사진을 찍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찍어두고 정리하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 그래서 앞으로 3회 정도 AGO의 작품을 섹션 및 개인적인 기준으로 분류해서 정리하려 합니다.

표를 사고 미술관에 입장한 저와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이 다른 방향으로 총총 흩어집니다. 아내는 아마 가장 윗층으로 향했을 겁니다. 2층의 고대부터 한번 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문득 눈에 들어오는 패널이 있습니다.

켄 톰슨(Ken Thomson)의 수집품 전시관...개인 수집품이 왜 미술관에 있을까 라는 생각에 흥미가 생겨 저는 루트를 변경. 일단 지하로 향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포스팅을 하기위해 찾아본 그의 이력은 실로...재미있더군요.

- 1923년에 나시고 2006년 12월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이 분은 사망시점 당시 캐나다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부자였습니다. 순 보유자산이 US 달러로 196억불 정도 였다고 하네요.

- 영국의 작위도 있었습니다. The Lord Thomson of Fleet. 하지만 캐나다에서 그는 한번도 귀족 행세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Thomson 그룹의 주요 사업영역은 미디어 부분이었습니다. 루퍼트머독에게 'The Times'를 매각한 것이 바로 이분.

- 살아있는 동안 그는 북미에서 손꼽히는 미술품 수집가이자 AGO의 가장 큰 후원자였습니다. 그는 캐나다 화가 출신의 그림을 수집하기 위해 누구보다 가장 많은 금액을 주고 작품을 구매했으며 사후에는 2000여점에 달하는 그의 수집품을 AGO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기증한 작품의 가치는 대략 US 달러로 3억불(!) 정도.

이런 사람인데 저 패널에 붙어있는 사진은 참 소박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지하에 들어선 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헉하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배, 배, 배, 수많은 배의 모형이 유리장으로 방 가득. 대항해시대와 밀리터리, 문명의 확장과 항해, 그리고 식민지 시대에 관심은 높지만 지식은 얄팍한 저에게 있어 이 방은 그야말로 성지(聖地)였습니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항공모함. British Escort Aircraft Carrier, “HMS Activity”, 1942. 소드피쉬가 너무 귀엽고 앙증맞아서 하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었습니다.

가마처럼 보이는 독특한 모양이 인상적인 이배는...Scale model of a 100-gun ship of the line with Nelson's catafalque. 네, 트라팔가해전에서 전사한 넬슨 제독의 장례식에 사용된 100문 전열함의 모형입니다.  집에 가져다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발칙한 것일까요.

이 배는 British Armoured Steam Cruiser, “H.M.S. Hogue", 1900, 1차 셰계대전에서 독일의 U-보트의 공격으로 침몰한 배라고 합니다. 반짝이는 선수의 함포가 너무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Troop Landing Craft, around 1755-1760. 양 옆의 노젓는 해병들을 가운데 모여앉은 보병들의 모습까지 꼼꼼히 묘사한 멋진 작품입니다. 이 밖에도 읽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보배같은 모형들이 가득했으나 다른 것도 보고싶은 생각에 1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쉬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면서...

1층 전시관 입구에 전시되어있던 수집품의 요약(?)전시장. 이런 것들을 이 사람이 모았구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왜 이 사람은 이것들을 모았을까요? 저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면 답은 명확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모으고 싶었으니까' 자신의 취향에 매료된 사람이 일정 수준의 지식과 열정을 보유한다면 이런 류의 수집품을 모으는 것은 거의 본능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재력의 차이에 따라 그 대상이 병뚜껑이 되기도 하고 우표가 되기도 하고 예술품이 되기도 하고 피규어가 되기도 할 뿐인 것이죠. 네,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과거의 덕후들은 인류에 큰 기여를 해 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1층에서 만난 그의 콜렉션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너무 많아서 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고 몇 개만 좀 추려보면...

그는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진 중세의 세공품을 모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상아와 황금, 그리고 보석들. 윗 사진의 수집품은 예수의 탄생에 경배를 드리는 동방 3박사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성모와 예수, 각 박사의 복식과 동작이 세심하게 상아에 새겨져 있으며 그 광경 전체를 황금 장식함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전면부에는 뚜껑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전시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예수의 일생을 묘사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일부. 셰레자 요한에게 셰례를 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의 고난과 사망까지를 새긴 상아 장식함입니다. 가장 왼쪽에서부터 기둥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는 모습, 그 아래 은화를 받는 유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 오른쪽 상단에 십자가에 매달려 창에 찔리는 모습, 가족에 의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모습, 그리고 그 아래 석관에 안치되는 예수의 모습과 다시 부활하여 관에서 시신이 없어진 모습까지. 그 극적인 부활까지의 모습을 참 작은 상아에 잘도 새겨놓았습니다. 글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기위해 생생하게 만들어진 이런 상아 장식함이야말로 당시의 동영상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신부가 지참한 것으로 보이는 상아로 만든 빗. 시집가는 모습이 빗 중간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사용된 기독교 물품. 토속 문화와 융합된 이채로운 모습이 참 특이했습니다.

용을 사냥하는 성 조지(Saint George and the Dragon)와 성모, 성자의 패널화 입니다. 검은 머리와 둥근 눈. 유럽의 화풍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 실로 놀랍습니다.

당시 상아 세공사들이 쓰는 도구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프라모델 제작자(...)라고 하면 안되겠죠?

헤라클라스의 모험을 아로새긴 나무 액자. 그 가운데 여자분의 그림이나 사진이 있으면 느낌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상아로 만든 해골 장식. 그 해골을 열었을 때 보이는 선악과 아래의 아담과 이브.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 

'인간은 유한하다.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고 너의 원죄를 생각하며 심판이 올 것을 대비하라.'

인간에게 삶의 무상함을 설파함과 동시에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라는 경고가 느껴집니다. 중세였으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상아장식들 반은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나머지 반은 구더기가 슬어있는 해골. 반은 건강한 남자의 얼굴이지만 나머지 반은 썩어 들어가는 해골. Dust to dust.


뭐, 모든 상아장식품이 다 무거운 주제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위의 그림과 실물 처럼 술잔 전체를 상아장식으로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이 경우 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술과 향락의 신인 바쿠스.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둬 동물을 잡아 고기를 먹고 그 가죽으로 북을 만들고 곡식으로 술을 만들어 지화자 한판 놀아보세. 이 케이스는 그런 술잔을 넣어둔 케이스 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소라껍질을 그대로 술잔으로 바꾼 경우도 있었습니다. 화려한 황금 장식을 덧 붙여서 말이죠. 실제로 여기에 뭔가를 부어 마셨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금속 공예로 포도를 묘사한 술잔? 술병?도 보이네요. 와인이 담겨있으면 구분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다영한 재질과 형태, 시대를 망라한 아시아의 도자기들과...

엄청난 양의 작은 인물상들도 콜렉션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피규어(!?) 라고 이야기 해도 되겠지요.

꼼꼼히 살펴보면 익숙한 인물들도 보입니다. 아그리파, 윈스턴 처칠, 아폴로...미술학원에서 정말 잠깐 다녔던 시절 그렸던 그 친구들의 작인 모습들. 그런데 정말 어떻게 봐도 똑 같은 상아 조각들이 여러개가 있어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나 싶었는데...

놀랍게도 조각 복사기가 있었습니다! 복사되는 조각의 크기도 조절할 수 있더군요. 이야...역시 필요는 발명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3-D pantograph...저 전시품에 놓여진 조각은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제임스와트 - 증기기관을 효율적으로 개량한 그 사람. 발명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 를 2015년의 3-D printer로 만든것이라고 합니다.

자, 3-D printer로 만든 조각과 3-D pantograph로 만든 조각 한번 비교해 보시죠. 그 시절에 저정도 퀄리티로 다른 사물을 입체 복사해 낼 수 있었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 미술관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들을 잔뜩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1층과 지하에서 하루 왠종일 있을 수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봐야할 것이 너무 많았기에 저는 다른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돈 많은 '콜렉터'에게 경배를!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