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중부(13일차),몬트리올 미술관(Musee des Beaux-Arts)1편_피카소와 야곱 - Canada Road Trip,NB/QB/ON


몬트리올의 2일차,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이 좋은 날씨에 미술관에 틀혀박혀 있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곧 해가 뜨고 더워지겠지요. 그럴 때는 시원한 건물안이 최고입니다.

이날은 캐나다 3대 미술관 관람 도전의 마지막 장소, 몬트리올 미술관에 갔습니다.

몬트리올 미술관은 3~4채의 서로 다른 건물들이 하나의 미술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전체 미술관을 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건물 밖으로 나가야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부지를 확보하기 쉽지않은 도심에서 미술관을 운영하기 위한 고충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좀 번거롭긴 하네요. 아내와 저는 1관 부터 관람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날 1관의 특별 전시는 다름아닌 거장 피카소와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젋은날의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예술,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그의 성향은 그의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됩니다.

위 사진의 왼쪽은 아프리카 단(Dan)족의 마스크. 그리고 오른쪽이 피카소의 작품. 나란히 놓고 보니 눈,코, 입 및 주름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 비슷하지요. 마스크 - 초상화의 연관성은 같이 사람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비교가 쉽습니다.

윗 사진의 마스크는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 아니라 멕시코에서 온 것이더군요. 아즈텍 문명의 영향을 받은 나화(Nahua)의 후에후에(Huehue)마스크 입니다. 웃고 있는 모양과 몰린 눈이 인상적인 이 마스크가 직접적으로 피카소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인지 무언지 모를 것을 표현한 사진 오른쪽의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이 중남미에서 온 마스크의 실루엣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꽤나 마음에 들었던 작품. 흔한 플라스틱 통들이 아래에 다리를 붙이고 제일 윗 부분을 옆으로 눕혀놓은 것 만으로 떡 벌어진 어깨의 사람으로 변신해 버렸습니다. 주변의 사물에서 찾을 수 있는 인간의 다양한 얼굴은 언제나 저를 즐겁게 합니다. 전기 계량계에서, 싱크대에서, 자동차의 뒷 모습에서 저를 보고 웃고, 화내고, 당황해하는 그 모습들은 사물에 깃든 영혼에 대한 토테미즘부터 현대 미술의 한 끝자락까지,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감이겠지요.

그런 영감에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제가 좀 아쉽긴합니다. 

깨진 항아리에 투박하게 그려놓은 동그라미가 눈이되고 손잡이는 코가 됩니다. 사람의 손길에 부서진 물건에 다시 생명이 깃듭니다. 뭐 다소 용도가 변경되긴 했지만 말이죠.

특별 전시관을 나서서 언제나 그렇듯이 아내와 잠깐 이별을 합니다. 저는 시간을 거슬러 피카소에서 달리, 마티스, 로댕,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거쳐서 이름없는 성물 제작사를 만나러 갑니다.

이 박물관에서 집에 가져가고 싶었던 물품 1호. 달리가 만든 체스판입니다. 상대편의 말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군요. 말을 움직일 때 마다 사람 손가락을 만지는 느낌이드는 것은 좀 그로테스크 하긴 합니다만.

몬트리올의 작품전시에는 오타와나 토론토와는 다른...뭐랄까 장난기나 몽환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온갖 번뇌와 유혹을 뿌리치고 신앙에 매진하는 성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 정작 화가가 공을 들이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은 성자가 아닌 유혹들. 십자가보다 유혹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쉽게 흔들리는 존재라는 것이겠지요.

천정의 빔 프로젝트가 벽에 드리운 달과 나뭇잎이 흔들거리고, 전반적으로 어두운 전시관의 조명이 어딘가에서 벌레소리라도 들릴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 벽 커다랗게 걸린 하늘을 나는 범선.

그림 가운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보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전장에서 돌아온 그들의 병사들에게 모자를 들어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왼쪽의 병사들의 환호와 오른쪽의 포로와 시체들의 슬픔과 침묵에서 나타난 감정의 격차가 흠이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나폴레옹의 그림을 AGO나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본적이 없는 것 같네요.

그림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장화와 모자에 대한 스케치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영향이 강한 몬트리올이라 그런 것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몬트리올의 미술관에는 톡톡 튀는 듯한 개성이 있군요.

호안 미로의 작품. 실물은 여기서 처음 봤습니다.

백악관에 침입한 인민 해방군 병사와 누런색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앤디워홀 틱한 황소. 재미있습니다. 

이 작품을 봤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한참을 애먹었던 그 미국 화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름을 알아냈고 제가 맞았다는 사실에 행복했습니다. 탐 웨슬만(Tom Wesselmann). 이른바 '그레이트 어메리카 팝 포르노 그래피'의 거장. 홍콩 바젤에 이어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참 반갑더군요.

현대미술을 볼때면 가끔, 관람객도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더 시간을 거슬러가 르네상스와 클래식 장르로 회귀. 몬트리올 미술관 '고리타분'하게 보이기 쉬운 그 시대의 작품들도 재미있게 전시하려는 이런저런 시도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예를 들어 통채로 썰어 놓은 대성당의 구조물이 그렇습니다. 저 얇고 무거운 벽돌벽이 어떻게 높은 고딕의 첨탑을 지탱하고 있는지, 그 높은 천장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유익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연히 같이 그자리에 있던 똘똘해 보이는 두명의 금발 꼬마가  이리 들여다보고 저리 들여다보고 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제가 흐믓해졌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님의 모습인데 자비롭고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로마의 군병 - 복식은 프랑크 시대의 중세 병사의 무장입니다만 - 을 짓밟고 관에서 걸어나오는 모습이 아주 무섭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돌린 다른 병사들의 모습도 재미있네요.

감히 예수님과 똑같은 모양으로 못박힐 수 없다고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성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 같아서...

'너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가 불러주는 대로만 쓰라고 알았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드려라(마가 12: 17)' 

하늘로 뻗은 손가락은 하늘을. 동전을 가르키는 손가락은 땅으로. 언뜻 아테네 학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희대의 트릭스터 -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 예수님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유명한 씬이지요.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는 야곱(Jacob). 히브리어로 야켑(Aqeb)은 '뒤꿈치'라는 뜻으로 이는 어머니 리브가가 쌍둥히 형인 '에서'를 낳을 때 야곱이 그의 발 뒤꿈치를 잡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에서부터 타인의 발 뒤꿈치를 잡고 
딴지를 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야곱과 형 에서의 관계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사냥에 능한 에서가 잡아온 고기에 맛을 들인 이삭은 큰 아들을 사랑하였으나 어머니 리브가는 천막에 남아 자신을 돕는 야곱을 사랑하였습니다. 어느날 죽 한 그릇으로 형에게 장자권을 양도받은 이삭은 자신의 권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 합니다. 큰아들을 사랑하는 이삭이 차남인 야곱을 축복할리가 만무했으나, 눈이 나쁜 남편을 짐승털의 토시로 속인 리브가의 꾀로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대신 받아냅니다. 과연, 형의 뒤꿈치를 잡는자 답다고 할 수 있군요. 위 그림이 바로 그 드라마틱한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흥미있는 것은 비열한 짓으로 축복을 받는 야곱의 옆에 날개달린 천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의 행위가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요?

 후에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개명되고 그의 12명의 자식이 바로 유대인 12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느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실제로 하나님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져주고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식이라는 뜻이지요. 

 다른 의미로, 전투에 능하고 초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영웅(에서 - 수렵)의 시대에서 결함을  지니면서도 세속적인 가치를 가진 인간(야곱-농경)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지요. 수많은 영웅들이 가졌던 초인적 가치와 능력은 모두 유일신에게 넘겨주고, 인간답게 살아도 되는 시대 말입니다. 이는 '약자에 대한 허용'의 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야곱'의 승리. '오딧세우스의 귀환'을 그린 작품입니다.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가 신을 추구하는 영웅이라면 - 그리하여 그는 고귀하게 죽었습니다. - '오디세이아'의 오딧세우스는 온갖 신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교활한 인간의 지혜로 결국 살아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그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치근덕 거리던 구혼자를 학살하는데 위의 그림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인간의 귀환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또 다른 죄악. 이것이 인간이 지닌 정의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뭐, 이런저런 죄 때문에 오딧세우스도 자기 아들에게 창을 맞아 죽는 것일 수도 있지요.

또 만나니 반가운 피터르 브뤼헐의 속담 그림. 아버지였는지 아들이었는지 헷갈리네요.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AGO에서 본, '존재하지 않는 풍경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림들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그림이 있었지만 너무 그림만 올리고 있으니 이미 여행기가 아니라 갤러리 유람기가 된 것 같아서...조금 줄이겠습니다.

첫번째 건물을 둘러보고 나오니 배가 고파졌습니다. 흩어졌던 아내와 건물 밖으로 나가서, 다음 건물로 가기전에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그림 구경도 식후경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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