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중부(13일차),몬트리올 고고학&역사박물관(Montreal Museum of Archaeology and History) - Canada Road Trip,NB/QB/ON


 정오를 넘은 여름의 더위는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습니다. 얕게 깔린 구름도 반가웠고요. 거리로 나온 저는 슬슬 걸어서 몬트리올 고고학 역사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 커다란 건물에 그려진 중절모를 쓴 인자한 신사 한 분을 보았습니다. 첫 눈에 누군지 몰라도 꽤나 잘 그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인데 기억이 안나서 짜증이 나더군요. 그렇게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제 머리 속의 인명사전을 뒤적이는 도중, 발을 헛딛을 뻔한 순간 그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캐나다, 퀘벡 출신의 싱어송 라이터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미에서는 전설급의 가수입니다. 사실 한국도 그 분의 얼굴을 모를 뿐, 노래를 들으면 '아 이 노래~' 할만한 곡들이 많지요. 대표적인 것이 '할렐루~야~할렐루~야'하는 노래일 것입니다. '할~렐루야'하는 노래 말고 말이지요. 저렇게 큰 그림을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그리진 않았을테니 돌아가셨는가보다 했는데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2016년 11월에 돌아가셨더군요. 

 몬트리얼 시의 정책 때문인지, 부동산 개발에 난점이 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내 곳곳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아직도 예전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윗 사진의 건물은 한 때 모피상점이라도 있었는지 'Fur'이라는 글자가 아직도 선명한 흰색 페인트로 붉은색 벽돌벽 위에 써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가로이 거닐며 거리구경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덧 목적지로 삼았던 고고학 역사 박물관 근처에 도달했습니다. 구글 맵상으로는 윗 건물도 고고학 박물관의 '일부'라고 표시되는데 도무지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해 한참 뺑뺑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길을 따라 좀 더 내려가 보았더니...

위와 같은 새로 지은 듯한 세련된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건물 앞에 '반쯤 엎어진 항아리'가 고고학...박물관이라는 것을 알려주더군요. 

건물에 들어서니 잘 디자인된 매표소에 친절해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제가 아시아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영어로 간단하게 박물관 구조와 관람 순서를 알려주셨습니다. 요지는...

- 표를 사면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왼편에 있는 영상관으로 들어가 영상물을 보고 갈 것. 선택사항이지만 보고 갈 것을 추천함.
- 지도를 보면 관람 순서를 표시한 번호가 붙어 있는데, 그 번호 순대로 보는 것을 추천함. 길을 따라 보게 된다면 번호 순서가 꼬이게 될 것이니 잘 보고 올바른 장소를 찾아가시길.

...그러면 동선에 맞춰 소장품을 전시하면 되지 왜 굳이 동선을 어지롭게 만든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뭐 곧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만.

여하튼, 일단 시키는 대로 왼편에 있는 영상관으로 들어갔는데, 구조가 좀 이상했습니다. 관람석에 해당하는 길게 배치된 의자는 예상했던대로 였지만 스크린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어둠 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이가 있는 캄캄한 어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흩어진 돌 기둥이나 벽돌 바닥 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스크린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영상물을 보라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별것도 아닌 것에 낚였나...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하나 둘씩 다른 관람객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얼마 지나지않아 헤드셋을 착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저는 시키는대로 얌전히 헤드셋을 착용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 관람석을 비추던 작은 불빛들도 꺼지고 영상관은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희미한 파란색 조명이 관람석 앞의 움푹 들어간 곳을 비추자 어렴풋이 보이던 벽돌 바닥과 기둥, 반쯤 무너진 벽들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식민시대 때의 건물의 기초...로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왜 이걸 비추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벽들이 꿈툴거리기 시작하고 바닥의 벽돌들이 갈라졌다 붙었다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연도를 표시하는 숫자가 어느 작은 벽돌 벽 위에 표시되었고 그 연도에 맞춰 몬트리얼이 어떻게 세워지고,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환상, - 네 그것은 영상이라기 보다는 마술같은 환상이었습니다. - 들이 그 돌 바닥위에 펼쳐졌습니다. 그 환상은 끊임없이 기초를 쌓아올리고 허물고 흙에서 나무로 그리고 벽돌로 그리고 석재로 그리고 유리로 시시각각 바뀌어 갔습니다. 영화 'Now you see me.'에서 본 것 같은, 빛과 어둠을 이용한 착시영상이구나 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 수 있었지만 너무도 선명하고 화려한 그 변화에 저는 넋을 잃고 그 영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꽤나 긴 몬트리올의 역사를 시간을 거슬러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기분으로 요점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 환상특급이 끝나고 관람석에 불이 켜졌을 때 저는 이 영상물 만으로도 여기 표 값은 뽑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라보, 브라보.

영상관을 나서서 한층 내려가니 실제 박물관 자리에 존재했던 건물의 기초를 파내어 전시관으로 꾸며놓았습니다. 지금 박물관이 서 있는 이 장소는, 보아하니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여러 시대를 망라하는 건물이 세워졌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약간 다른 높이로 다른 시대의 생활도구나 시설들이 같은 자리에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그 건물 기초의 가장 낮은 곳에서는 원주민의 불자리나 뼈로 만든 도구가 발견되었지만 그 유적의 약간 오른쪽 위에는 식민시대의 벽난로 자리가 있다던가...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그 각각의 고고학적 유적에는 위 사진과 같은 설명 - 시대적 상황과 당시 몬트리올의 모습 등 - 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발견된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유적에는 꽤나 사이즈가 큰 것도 있었습니다. 윗 사진처럼, 18세기에 만들어진 하두도 시설 같은 것도 통째로 박물관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하수시설은 제가 처음에 올 때 입구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식민지 시대의 세관 건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즉, 유적 자체를 박물관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유적의 활용목적을 고려하면 왜 동선에 따라 관람물을 배치할 수 없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이 박물관의 주요 관람물들은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큰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브라보, 브라보.

하수도가 이끈(?) 그 건물에는 깔끔하게 디자인된 오랜 몬트리올의 물건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빛나고 있었습니다.

최초로 정착민이 몬트리올에 왔을 때 주변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을 부족명과 그들의 생활상을 설명한 지도부터...

당시 원주민들이 어떤 동물의 뼈로 어떤 물건들을 생산해 내었는지를 보여주는 스마트한 전시물도 있었고... 저는 돼지 머리뼈로 저렇게 많은 것들을 만들 수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온 모피 상인들이 모피 한장을 얻기 위해 어떤 것들을 원주민들에게 팔았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물도 있었습니다. 모피 한장을 얻기 위해 유럽의 상인들은,

- 질 좋은 강철로 만든 도끼 2 자루를 주거나 : 도끼 처럼 나무 채집과 사냥에 유용한 도구가 없지요.
- 혹은 질 좋은 강철로 만든 나이프 10자루를 주거나,
- 납으로 만든 탄환 4 무더기를 주었어야 했습니다. 당시 화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원주민이 납탄환을 받은 이유는 그 탄환을 돌로 짓눌러 작은 단추나 장신구 등을 만들어 썼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꼬인 동선을 누비다 보면 식민지 개척자들이 사용했던 이런 저런 물건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리 세공품이나 도자기 중에서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름답게 보이는 물품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계단 두개 정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또 다른 건물로 가면, 식민시대 당시 뱃사람들의 삶을 요약한 특별전시관도 있었습니다. 윗사진은 16~17세기의 갈레온의 모형입니다.

당시 뱃사람들에게 허용되었던 개인 소지품도 전시해 두었구요.

배에서 요리 및 식사를 할 때 사용했던 도구들도 전시해 두었습니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었던 요리와 먹을 수 있었던 식량의 양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장거리 항해라는 것은 고난과 절제로 점철된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당시 선원들의 식사량과 식량을 전시한 부스입니다. 아무리 모형이지만 진짜 맛없게도 만들어 놨다는 생각을 했지요.

- 아침 : 물 한모금과 'Sea biscuit'...사전을 찾아보면 '소금기가 없는 아~주 딱딱한 비스킷'이라고 합니다. 
- 점심 : 물 한모금과 염장 돼지고기, 그리고 또 Sea biscuit.
- 저녁 : 물 한모금과 말린 베이컨, 그리고 또 또 Sea biscuit.

이런 것들을 맨정신으로 먹고 버티기 힘드니 와인이나 맥주, 럼주를 퍼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밖에도 무엇을 대포에 넣고 쏘았는지, 선장실은 어땠는지, 선원들이 자는 해먹 - 그 퀴퀴한 냄새까지 표현해 두었습니다! - 등등 재미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조금 오래되고 싼티가 나는 디자인이었지만 개인적인 만족도는 높았던 특별관이었습니다.

그 특별관을 지나서 도착할 수 있는 마지막 관은, 디자인으로보나 뭐로 보나 최근에 지은 것이 분명한 새 건물에 위치한 특별 이벤트 전시관이었습니다. 이 때는 이집트 특별전을 하고 있더군요.

캐나다에 오기전, 서울 국립박물관에서 했던 이집트 미이라 특별전시를 이미 한번 봐서 그랬는지, 이곳의 전시는 별다른 감흥없이 슥슥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 재미있던것이라면, 관에 넣기 전의 시신에서 내장을 빼고 그 내장을 용기에 집어 넣고 시신에 붕대를 감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 박물관에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생생(?)하진 않았지만 게임의 연출이나 배경 표현 등에서는 꽤나 공을 들였고 뭔가를 해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보여서 가산점을 주고 싶은 컨텐츠였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특별전은 결국 상형문자와 미이라와 미이라를 넣은 관의 행렬이라, 너무 자주 보면 좀 식상하기 마련이지요. 다 좋았는데 마지막 특별전이 조금 아쉬었던 고고학 & 역사 박물관 관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나오니 하늘이 조금씩 주홍빛으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저녁시간! 밥을 먹어야지요. 저는 아내가 오라고 알려준 레스토랑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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