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0일차:Halifax - Toronto - Havana - 쿠바(Cuba)


  여행지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여행에 대한 고민이나 준비 혹은 단순히 이동으로 소요되는 하루에는 어떤 일차를 매겨야 할까. 

 그 하루는 분명히 나의 휴가일정에서 하루를 차감한다. 하지만 그 날 실제 여행지에서 쓰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그리고 경험하는 것도 대체로 다른 여행의 시작과 비슷할 것이다. 공항도착, 입국심사, 환전,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숙소에 도착, 짧은 인사과 체크인, 그리고 시차나 피곤에 눌려 자리에 눕지만 다음날의 비(非)일상을 기대하며 잠을 설치면서 마무리...

이렇듯, 일상적인 오늘에서 내일의 비일상적인 하루를 어떤 시작일로 수렴하는 그 날을, 나는 여행 0일차라고 부르기로 했다. '서곡(Prelude)'이라고 이름 짓기에는 고상하지도 즐겁지도 않고, 오히려 피곤하고, 짜증나며 자신의 우매함을 탓하게 되는 The day. 2018년 12월 13일, 쿠바 여행의 0일차도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 

Still in Halifax

비행기는 오후 비행기였다.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모두 집어넣어 아침과 점심으로 먹을 찌개를 만들고 그러고도 남은 소고기는 밥도둑 고추장 볶음을 만들어버렸다. 텅텅 빈 냉장고를 보고 괜히 기분이 좋았던 그 때, 지금 생각하면 나는 배낭과 준비물을 다시 확인했어야 했다.

학교가 끝날 즈음 아내를 태우고 mall로 가서 여행 전 마지막 쇼핑을 했다. 편두통약, 현금 추가인출, 손 세정제 등등.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후다닥 점심을 먹고 찌개냄비와 그릇까지 싸악 설겆이를 했었지. 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12시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뭔가 싸했다. 불도 껐고 가스도 잠궜고 창도 다 닫았는데? 아뿔사, 핸드폰 충전기. 나는 아내를 정류장에 두고 홀로 집에 돌아와 충전기를 찾아왔다. 그런데, 버스를 타서야 또 깨달았다. 충전기를 잘못 들고 왔다는 것을. 망할 XXX 놈들. 왜 충전기 규격은 다 다르게 만드는 거야?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춥고, 고무 타는 냄새가 나는 '달리는 중국배달통'같은 버스였다. 좋은 점이 있다면 저렴한 가격 - 5불도 안되었지 아마도 - 과 쿠바에서 만날 태양과 온기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올려주었다는 것 정도? 그래도 그 버스는 덜컹덜컹 눈 쌓인 좁은 길을 뚫고 얼어붙은 도로를 달려 스탠필드 국제공항까지는 무사히 달려 주었다.

국제공항이지만 쿠바행 비행기따위는 없다. 우리는 그 비행기를 타러 토론토로 가야 했었다. 2시간 반정도? 하지만 국내선이라도 짐 검사는 해야하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발권을 하고 엑스레이 탐지기에 배낭을 집어넣었을 때, 공항 검색대 직원이 묘한얼굴을 하고 모니터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직원 : 너 뾰족한 물건이나 무기, 혹은 반입 금지품 가지고 있는 것 없지?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나 : 물론 없지!

직원 : 흠...그럴리가 없는데...검색기계에 따르면...(배낭 옆 주머니 쪽을 한참 더듬더니)...여기!


하고 그녀는 무슨 마법처럼 작은 도끼(?!)를 내 배낭의 옆의 비밀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얼굴은 당혹감과 창피함으로 새빨게졌다.

...그 도끼는 캠핑장에서 작은 장작을 팰 용도로 구매한 것으로, 손잡이에 감긴 줄을 풀어 빨래줄이나 나무를 걸어 당길 수도 있고 도끼 날에 있는 여러 구멍으로 병 뚜껑을 따거나 나사를 풀거나 할 수 있는 다용도 도구에 가까웠다. 할리팩스에 와서 캠핑용구를 마련하면서 30불을 주고 구매한 신품이었지만 캠핑장에서 생각보다 쓸일이 없었던 연유로 배낭 한구석에 넣어두고 내 기억에서 까맣게 사라졌던 비운의 도구였었다.

그게 이렇게, 공항 검색대에서 등장할 줄이야. 검색대 직원은 작은 도끼를 배낭 비밀 주머니에 숨기고 비행기에 오르려는 이 영어가 서툰 아시아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나는 테러리스트로 몰리는 건가?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빨게지는 나를 보고 그 직원이 씨익 웃으면서 물어본다.


직원 : 너 전송하러 온 가족이나 친구 있어?

나 : 아니...가족은 아내 뿐인데 나와 같이 여행을 가지.

직원 : 그렇구나. 그럼 이 도끼는 어떻게 하면 좋지? 넌 이 도끼를 가지고 비행기에 탈 수는 없어.

나 : ...너희들이 적당히 처리해 주면 될 것 같아. 미안해.


그렇게 나는 거의 사용하지 못했던 30불짜리 도끼를 이곳 스탠필드 공항에 남겨두고 토론토로 떠나야 했다. 그리고 충전기를 잘못 가져온 탓에 또 35불 - 뭐가 이렇게 비싸냐고 - 을 주고 핸드폰 충전기를 샀어야만 했지. 아우 정말...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실수로 쓸데 없이 돈을 쓴 나에게 아내는 아낌없이 비웃음과 핀잔을 나누어 주었지.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에서 Dead Pool 2를 보면서도 그 도끼가 생각날 때면, 나는 내 옆의 아내가 알지 못하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었지. 어찌나 나는 멍청한 건지.


2.

At the Toronto Pearson Airport

캐나다에 들어오면서도 이곳을 거쳐야 했고 이 때 여행을 가면서도 들러야만 했고 앞으로 어디로 떠나면 아마도 높은 확율로 여기에 와야 할 것이다. 토론토 피어슨 에어포트. 캐나다 동부에 살면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이 진절머리나는 곳과 망할 Air Canada와 뗄레야 뗄수 없는 - 확 떼어버리고 - 싶은 인연을 이어가야한다는 소리다.

그 만큼 이 공항은, 친절하고 살기 괜찮은 캐나다에서 놀랄 정도로 지루하고 불친절하고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장소다. 햄버거, 피자, 김밥, 파스타 등 이곳에서 파는 거의 대부분의 음식 - 커피를 제외하고 - 은 일반적인 다른 국제 공항에 비해 현격하게 비싸고 그러면서도 맛이 없다. 덤으로 직원들은 좀비와 같이 무표정하거나 켈베로스 마냥 불친절하다.

또한,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캐나다는 무엇이든 기다려야 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 공항은 그 양과 질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입국수속, 짐 검사가 오래걸리는 것은 기본이고 항공편은 툭하면 날씨와 날씨, 그리고 또 날씨와 정비 등의 이유로 30분에서 6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타도 됩니다' 사인이 떠도 비행기로 들어가기에는 천년만년이 더 걸리는 'Zone 별 탑승'. 가끔은 비행기에 앉아서도 알수 없는 이유로 또, 또 기다려야 한다. UFO라도 활주로에 앉았나 보지.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았다. 이날 우리의 비행편의 이륙시간은 겨우 30분만 연기되었으니. Holy Sweet Jesus.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 모든 여행의 0일차에서 나는 이 공항을 섹션별로 씹을 것 같다. 

공항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기대와 기쁨, 혹은 슬픔을 지닌 채 도착하고 떠난다. 이 장소에 머무는 시간이 햄버거 하나와 커피 한잔을 급하게 먹을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하더라고, 그 짧은 순간을 기분좋게 지냈으면 하는 것은 이 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아닐까. 제발 조금씩이라도 이 곳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기를 바라지 마지 않는다.

잠깐, 설마 사람들이 공항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 그래서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 그 모든 'Waiting'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겠지?


3.

Finally in Havana

비행기에 올라 졸다가 자세를 바꾸다 하다보니 어느 순간 비자를 받고 입국 신고서를 썼었다. - 쿠바는 여행 비자를 사야하는데, Air Canada를 이용할 경우 비자를 기내에서 받을 수 있다. 자꾸 남쪽으로 내려가면 좀 따뜻해질까 싶었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온도 변화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2시간30분을 내려가니 어느덧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하고 나와 아내는 호세 마르티 공항(José Martí International Airport)에 내릴 수 있었다.

개발 도상국이자 공산주의 국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항에는, 공항 직원답지 않은 요사스러운 검은 스타킹을 신은 여직원들이 기계적으로 사람들과 짐을 검사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검은 스타킹을 신는 것은 일종의 룰인듯 한데 그 형태와 모양 - 망사 스타킹이든 장미와 전갈이 그려져 있던 - 에 대해서는 세부 사항이 없는 듯 했다. 늦은 밤의 피곤함과 공무원 특유의 무채색은 쿠바라도 다를 바가 없는지 입국장에 있던 미모의 여직원은 웃음기 하나 없이 심드렁하게 여권을 검사하고 나를 공항 밖으로 내쫓아 주었다.

공항 로비에는 하바나의 숙소에 예약해 두었던 택시 운전사가 나와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외로 영어를 할 줄 알았던 그는 환전을 할 거냐고 물어봤고 그렇다고하자 나와 아내를 공항 한켠의 환전소에 데려다 주었다. 밤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나는 여기에서 가지고 있던 돈의 일부만 바꿨다. 너무 큰돈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보안상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였는데, 이 결정은 두고두고 나를 후회하고 만들었다. 

아무튼,

환전을 하고 돌아오자 운전사는 공항 청사 앞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어둠 속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어둠. 일국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짙은 먹으로 문지른 듯한 어둠은, 몇 년전 캄보디아의 씨엠립에서 만났던 그 어둠이었다. 문명이 밤을 밀어내지 못한 곳의 검은 색. 나는 그런 어둠이 좋다. 이런 곳이야 말로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만날 수 있지. 암암.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저 멀리 파란색 구형 쉐비를 몰고 운전사가 다시 등장했다. 쿠바에 도착해서 처음 만나는 올드카. 나는 너무나도 기뻤으나 좀 더 가까이서 그 차를 다시 보고 적이 실망했다. 녹이 슨 곳은 비슷한 색깔로 페인트를 입혀 두었고, 타이어는 원래 규격에서 벗어난, 다른 자동차의 바퀴를 가져다 쓰고 있었다. 내부 좌석에는 구멍이 뚫려 안감이 보일 정도였고,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아 덜걱거렸었다. 확실히 다른 의미에서 올드카였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 거지. 자체 생산설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제대로 보존되는 70년대 크롬들이 있을 턱이 없잖아.

그래도 숙소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차가 있는 것이 어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와 아내는 뒷 트렁크에 짐을 싣고 택시에 올랐다. 적당히 덜덜거리며 우리의 올드카는 자동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 도로를 달려 시내로 들어갔다. 좁은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찢으며 나아가는 도중 운전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금 지나는 이곳이 하바나의 대학이고, 여기가 원래 차이나 타운이 있던 곳이고, 이 자동차는 나의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것을 수리해서 지금까지 쓰는 것이라고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더랬지. 아마도 또 택시를 쓰려면 자기를 불러 달라고 어필을 하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꿈과 인생을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나빴던 것은 매연. 분명 달리는 차는 우리 뿐인데 심한 기름타는 냄새가 난다는 것은 그 냄새가 이 차에서 난다는 것이겠지. 낭만으로 그 냄새를 밀어내기에는 이 차는 너무 낡았구나. 에휴.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너무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나는 그런 인간이어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컴컴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른 골목을 지나 도달한 숙소 앞. 운전사가 초인종을 누르자 2층의 베란다가 열리고, 숙소 지배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끈에 달린 열쇠를 아래로 던져 주었다. 허허. 그 열쇠로 문을 열자 아저씨는 끈을 올려 다시 열쇠를 가져가고 우리에게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다시 창 안으로 사라졌다. 나와 운전사는 가볍게 악수를 하고 그는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갔고, 나는 짐을 들고 그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아마도 집으로 가겠지. 그리고 나는 낯선 침대에 몸을 누이겠지.

* 이 사진은 낮에 찍은 사진이지만, 숙소의 첫인상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함.

2층에 올라 언제나 그렇듯 비슷한 체크인 과정을 반복했다. 여권을 보여주고, 아침먹을 시간을 확인하고, 샤워와 침대, 금고와 TV, 인터넷과 냉장고의 음료에 대한 사용정보와 가격을 듣고 충분히 예의를 갖춰 미소와 인사를 하고 내 방 열쇠 - 때로는 카드를 받고 또 각자의 공간으로 헤어지는 거지. 투숙객은 자신의 방으로, 지배인은 자신의 데스크로.

도착한 당일 만큼은 방이 얼마나 이쁜지, 오는 동안 마주한 광경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곰씹을 여유가 없다. 필요한 것은 그 짧은 여독(旅毒)을 풀어낼 잠. 나와 아내는 비행기에서 찌든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고 - 온수 샤워 만세 - 중요한 물건을 금고에 몽땅 밀어넣은 다음에 바깥 거리의 어둠만큼 짙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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