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1일차:Havana,첫날 아침 - 쿠바(Cuba)


  여행지의 아침, 눈을 떴을 때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은, 바깥 소리와 냄새를 듣고 맡았을 때이다. 잠에 취해 멍해진 시각이 게으르게 낯선 방의 어둠을 더듬거리는 동안 감각의 척후병인 귀와 코는 민활하게 잠재적 위협요소와 쾌락요소를 정탐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다. 방콕의 아리아솜빌라(Ariyasomvilla)의 아침에서 은은한 그린 커리 냄새를 맡았을 때 입안에는 군침이 돌았으며(?) 배는 꼬르륵거렸고 다리는 즉각 시동을 걸고 조식을 먹으러 홀로 직행했었다. 홍콩의 아침을 돌아보면 언제나 쎄한 에어콘 소리와 차갑고 건조한 방안의 공기가 먼저 생각난다.그렇다면 이곳 쿠바의 아침은 어떤가.

 낡은 라디오에서 들리는 듯이 멀리, 하지만 경쾌한 톤의 이국적인 인사가 사람들 사이로 오가는 와중에 내 귀에도 들렸다 간다. 자동차 엔진음과 간간히 섞여 있는 경적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그 중 신기한 것은 아침부터 들려오는 댄스음악 소리. 쿠바라고 티내는 건가? 신기함 반과 짜증 반쯤 섞어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는 테라스 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숙소 주인장이 아기자기 꾸며놓은 테라스는 식물의 녹색과 갖은 타일이 어우러져 이쁘기만 하다. 낡았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파티오 의자도 마음에 든다. 의자 사이에 놓인 앉은뱅이 테이블 위에 놓인 도기로 만든 재털이. 내가 담배를 핀다면 이 곳에 앉아서 한참을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인 것은 바로 태양. 오 솔레미오. 밑도 끝도 없이 파란 카리브의 하늘에서 황금이 쏟아진다. 열대지역임에도 바싹 마른 바삭바삭한 햇볕. 이것이 바로 그 수많은 캐나다 인들을 이곳 쿠바로 불러모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의 태양 찬가가 끝나기도 전에 이상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매연. 석유타는 냄새. 먼지없은 공기 가득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매캐한 기름향이 같이 딸려온다. 캐나다에 살아서 코가 정화되서 그런가. 

그 냄새에 콩깎지가 벗겨진 눈이 주변 건물의 세부요소를 살펴보고 경악하기 시작한다. 밤에는 몰랐었지. 어둠이 칠한 이 건물들이 이다지도 낡았다는 사실을. 좋게 말하면 자연과 더불어 살고 나쁘게 말하면 이끼와 잡풀과 덩굴이 타고 쪼게어 올라가는 벽들은 무너질까 무서울 정도였다. 페인트가 잘 칠해진 곳은 드문드문. 오래전에 만들어 지금껏 물려쓰고 있는 듯한 베란다의 난간들은 녹이 잔뜩 쓸어 있었다. 아, 나 어릴적 -1970년 - 우리 부산 동네도 저런 적이 있었...나? 그것보다 더 상태가 심각한 것 같은데...저 안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걱정없이 살아갈까.

좀더 살펴보다보니...더욱 뜨악할 상황을 발견하고 나는 기겁했다. 사고의 흐름은 이러했다.

- 인도가 있는데 사람들이 차도 가운데로 다닌다. 왜? 인도가 더러워서 그런가? 뭔가 다른 피할 것이 있나?

- 그렇게 인도 위를 살펴보니 대략 3미터 정도 높이에 파이프들이 옆 건물에서 삐져나와 있다. 왜?

- 집집마다 간헐적으로 삐져나온 파이프를 살피다 보니 그 중 하나 두개에서 하수가 콸콸 쏟아져나와 도로로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다...파이프의 길이는 인도폭 정도. 그러니까 그 하수는 딱 인도와 도로 가운데쯤 떨어지고 있는 것인데...당연히 그 물이 얌전히 바닥에 착륙할리가 없지.

- 그러니 사방으로 튀는 그 물을 피해 사람들이 차도 가운데로 다니는 것이다. Holly hail Mary...

이 시점에서 하바나의 점수는 대폭 하락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저 건물들의 양식과 역사적 상식을 볼 때 저 건물들은 오래되면 1920년, 아무리 빨라도 1960년대 건물일 것이다. 그러니 하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 질리가 없었고 이후에도 그 시스템을 갖추기에는 예산이 부족했겠지. 더러운 물 몇 방울 튄다고 해도 사람이 죽지 않는다...않겠지? 하지만 나는 싫다. 싫단 말이다.

그렇게 기쁨과 짜증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와중에 아내가 일어났다. 나는 아침동안 관찰한 상황을 아내에게 이야기했고 그녀가 경악하는 모습에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외출을 나가가 전,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으러 갔다.

8명이 앉을 만한 큰 테이블에 온갖 피처와 보온병이 가득 올라가 있었다. 주방에서는 바싹 마른 흑인 아저씨가 부지런히 계란을 굽거나 튀기거나 섞고 있었고, 우리가 들어가자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계란을 어떻게 해 줄까? 스크램블, 선라이징...이건 뭐 똑 같구만. 그렇게 식탁에 앉아 계란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다른 여행객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식료의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음식이 상한 것이 아니다. 다만 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통조림 스팸을 썰어 둔 것이었고, 커피는 방금 끓인 것이 아니라 보온병에 담겨있던 것이었던 것이지. 대추나 무슨 과일로 만든 쨈으로 보이는 것도 설탕이 가득 든 장기 보존식 같은 느낌?  퍼석퍼석한 식빵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로지 신선했던 것은 과일들. 파인애플과 파인애플을 짠 시원한 주스, 그리고 이름 모를 열대의 과일들. 물론 계란요리도 신선했다. 하지만 그 외에 샐러드는? 없었던 것 같다. 아, 공산주의 국가라서 - 혹은 자급자족 경제를 기반으로 하니 - '일반적인 식단'은 이런 수준일 수 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나의 이런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것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적당히 돈을 쓰는 경우에는 내 생각이 맞았다. 기대치보다 현격히 낮은, '우리경제는 우리 힘으로' 식의 음식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꽤나 많은 돈을 쓰는 경우 뉴욕의 괜찮은 레스토랑 급의 음식을 맛 볼 수도 있었다.

캐나다인들의 스팸에 대한 박해(?) - 그들은 스팸 = 쓰레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 로 한동안 스팸을 먹지 못했던 나는 아주 만족스럽게 이 아침을 즐겼었다. 빵과 스팸. 계란과 스팸. 과일과 스팸. 모든 것을 스팸과 함깨 먹으면 나는 행복했으니. 하지만 내 앞에 있던 독일 커플은 그러지 않았는지 갓 구워낸 계란과 신선한 주스만 먹고 이내 주방 밖으로 사라졌다. 특히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마시던 그들의 표정은 큰 죄를 짓는 듯 어둡기까지 했다. 

나는 맛있기만 했는데. 아무튼,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려 외출 준비를 한 나와 아내는 드디어 숙소 바깥으로 나왔다.

 숙소 바깥에서 바라본 우리의 숙소. 호스텔 페레그리노(Hostal Peregrino). 돌이켜 생각하면 하바나에서 이곳에 머물기로 한 것은 참 잘한 것 같다. 지저분한 바깥 거리에 비해 내부는 깔끔하고 영화와 문화를 사랑하는 주인장의 취향이 잘 반영된 내부 인테리어도 볼 만한 것이 많았지. 트리니나드와 비냘레스 등으로 이동하는 교통편도 예약이 가능하고, 전체적으로 모든 업무 프로세스가 깔끔하게 진행되는 것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올드 하바나를 위시한 주요 관광지와 전반적으로 가까운 것도 좋았지. 

 다음번에 쿠바에 또 간다면 다시 이곳에 머물 것 같은데 그게 쉬울지는 모르겠다. 엊그제 쿠바로 여행 간 캐나다 친구에게 이 곳을 추천했었는데 이미 모든 방이 다 예약되었다고 하더라. 잘 되는 곳은 굳이 알리지 않아도 잘 된다는 것이지.

아무튼, 숙소를 나선 우리는 지저분한 골목을 지나 차들이 오가는 큰 길로 나갔다. 그렇게 마주한 큰길은....구조가 조금 이상했다.

큰 길 가운데로 인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넓은 돌로 만든 길이 북쪽에서 남쪽까지 좌악 펼쳐져 있었다. 군데군데 벤치도 보이고 말이지. 도대체 무슨 용도로 이런 길을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더라. 무슨 행사라도 하려나? 일단 걸으면서 주변을 보기에는 좋았으니 나는 매우 만족.

이 길의 북쪽에는 하바나하면 언제나 언급되는 '앞바다 = 말레콘(Malecon)'가 나온다. 사실 말레콘은 하바나 말고도 여기저기에 존재 합니다만, 쿠바의 말레콘이 좀 더 유명하긴 하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향한 곳은 북쪽이 아니라 남쪽.

남쪽으로 가 보니 저~멀리 엘까피톨리오(El Capitolio)가 보인다. 불현듯 도로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에 길가에 내려가서 사진기를 들었는데, 차도 없고 도로 위를 오가는 사람도 많아 요모조모 살펴보고 이런저런 각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어느 여행지든 여유가 있어야 즐거운 법이지. 

이전, 그러니까 1959년 전에는 국회로 사용되다 쿠바혁명으로 의회가 해산된 다음에는 일종의 기념관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3년에 들어서 쿠바 국가 협의회(Cuba's National Assembly) 건물로 재 탄생.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건물보다 1미터 더 높고, 1미터 더 길고, 1미터 더 넓게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의 목표는 이 건물이 아니니 나와 아내는 이 건물이 보이는 즈음에서 U턴, 바다 냄새가 매연과 함께 풍겨오는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올라갔다.

덧글

  • 도파 2019/02/18 06:58 # 답글

    색다른 쿠바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재밌습니다 :)
  • Oldchef 2019/02/18 07:10 #

    부족한 글 재미있게 보고 있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 이 게으른 인간이 얼마나 부지런히 달릴지 모르겠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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