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1일차:Havana,쿠바국립미술관,그들은 미술을 편애 하는가? - 쿠바(Cuba)


 쿠바 국립 미술관은 혁명 박물관의 뒷마당 - 야외 전시관 - 의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다. 미술관,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동선. 케케묵은 군복과 시대착오적인 혁명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없던 아내는 박물관에서 탈출하자마자 바로 이 곳으로 향했다.
 혁명 박물관의 관리상태에 적히 실망했던 나는 이곳 미술관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의 편견은 건물 입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존 옛 건물의 외관 중 남길 것은 남기면서도 다듬고 보강해야 할 부분은 제대로 손을 봐 두었다. 좌측에는 벽돌로 만든 드라이버 끝 모양 - 왜 하필 드라이버 끝 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 의 조형물이, 우측에는 사람의 형태로 솟아 오르는 듯한 엑토플라즘을 닮은 조각도 있었다. 방금 본 혁명 박물관의 앞에서 보았던 카스트로 동지가 탄 낡아빠진 소련제 자주포와 대통령궁의 담벽 일부와는 뭐랄까 격이 다른 대우라고 할까. 이 차이는 아마도 이 건물이 하바나 디자인 대학교에서 직접 관리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리라.

혹은 이제 여기 사람들은 혁명보다 예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건물 내부는 깔끔했고 조용했으며 서늘했다. 매표소의 직원부터 전시관 관리원까지 그 태도와 교양 수준은 혁명 박물관과 사뭇 달랐다. 아니, 사실 혁명 박물관에는 층별 관리원도 없었으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소장하고 있던 작품의 수준도 기대 이상이었다. 작품 하나하나 다 짚어보는 것보다 인상 깊었던 작품만 스윽 한번 살펴보면...

스페인 정복자와 그들이 타고 온 배를 형상화한 작품. 선창 가득 채워 넣은 흑인들의 모습이 처량하고 안타깝다. 쿠바는 히스파뇰라 섬에 이어 콜럼부스가 두번째로 상륙했던 곳으로 덕분에 원주민들이 이런저런 피해를 많이 입은 곳 중 하나이다. 그래서 많은 현대 화가들이 그들을 비판하는 그림을 꽤나 그리고 있는 것 같다.

동글동글 부드러운 곡선이 마음에 들었던 작품. 

다른 무엇보다 왜 왼쪽의 여자는 코피를 흘리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던 작품. 전체적인 색감과 구도가 '카우보이 비밥' 오프닝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전차인지 사람인지. 녹슨 강철. 쿠바인의 피부. 혁명의 붉은 색. 거친 질감과 팝 아트틱한 말풍선까지. 쿠바 화가들도 제법인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작품. 개인적으로 이 미술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하바나 혁명의 날.


쿠바의 유명한 인물들을 다른 색감과 구도로 그려 놓은 작품. 왼쪽 상단 구석의 호세 마르티부터 체게바라, 시엔푸에고스, 카스트로 등등...이런 색감과 느낌으로 그려 놓으니 뭐랄까...레게틱한 느낌이 들어 괜찮았다. 열대의 느낌이 충만한 그림이라고 할까. 고리타분할 수 있는 소재를 이렇게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가장 아래층 구석 어디에 붙어 있던 거대한 크기의 바퀴벌레(...) 조형물이었다. 꽤나 사실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 바퀴벌레를 멀리서 봤을 때 나는 기겁을 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그 세밀함을 보고 더 경악을 했다. 원한다면 만질 수도 있었지만 정말 병균이 옮을 것 같아서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에 남기기도 싫어 사진도 찍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걸 미술 작품이라고 만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기도 하기에 결국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뭐...그 오랜 생활 이 작은 섬에서 용케도 버텨낸 쿠바인들의 끈질긴 생존력을 표현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아무튼, 이 건물까지 보고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잠깐 쉬기로 했다. 쿠바 국립 미술관은 크게 두 개의 건물로 나누어 지지만 표는 어느 건물에서나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표를 가지고 있으면 굳이 같은 날이 아니라도 각각의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 이 점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소중히 표를 챙겨두고 숙소로 종종걸음으로 돌아가 해가 떨어질 때까지 낮잠을 실컷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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