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tmouth_Fresh21의 인도 코스 요리 美食


 애틀란틱 캐나다는 참 살기 좋은 곳입니다. 횟집 간판 하나 보이지 않는 조용한 바다가 집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고, 공기는 맑고 하늘은 코발트 색으로 반짝입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물가와 집값도 아직은 상식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벤쿠버, 토론토, 퀘벡 등 캐나다 유수의 도시에는 아마도 좋은 레스토랑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Halifax & DArtmouth에서 적정 가격으로 좋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맛집'을 만나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니면 이곳에서 아직 2년도 채우지 못한 우리가 모르는 곳이 많을지도 모르지요.

여하튼, 그렇게 맛집을 그리워 하던 저와 아내에게 최근 잇달아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 둘 맛있는 레스토랑, 카페 등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중에서 조금은 특별한 곳이 있으니 지금 말씀드릴 'Fresh21'이 바로 그곳 입니다.

'Fresh21'은 NSCC(Nova Scotia Community College)의 교내에서 운영되는 훈련용(?) 레스토랑입니다. Culinary Art, Bakery를 위시한 다양한 조리 관련 학과 및 관광 서비스 학과를 보유하고 있는 NSCC는 학생들의 실습을 위해 이 레스트랑을 오래전부터 운영해 왔습니다. 학생들의 요리는 매일 점심 뷔페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며, 레스토랑의 명성과 좀 더 엄격한 수행 평가를 위해 요리 관련 학과의 교수들이 중심이 된 스페셜 코스 요리가 지정된 날의 저녁 시간에 선보이기도 합니다. 저와 아내가 이곳을 찾아간 이날은 인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교수님이 저녁 코스요리를 선보이는 날이었습니다.

레스토랑 오픈 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한 학교는 학생들이 없어 약간 썰렁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레스토랑이 위치한 건물의 복도에는 이날 식사를 맛보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더군요. 대부분의 손님들이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들. 아시아계의 젊은 손님들은 우리 일행 뿐이었습니다. 뭐, 이제는 그런 사실에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되자 문이 열리고, 하나 둘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오른쪽에서는 한눈에 실습 중인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쭈뼛쭈뼛 코트를 받아 옷걸이에 걸고 있었습니다. 저도 코트를 부탁할까 하다가, 쏟아지는 코트의 파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그 친구가 딱해서 저는 직접 옷을 걸고 예약된 자리로 향했습니다. 통칭 '교수들의 저녁'은 몇 주전에 미리 예약을 해 두어야 합니다.


메뉴를 보니 생경한 단어가 많이 들어 옵니다. '파니르'는 알지만 'panner'라고 써 두니 뭔지 알 수 없었던 것이지요. 코스 요리는 뭘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서 편하긴 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음식이 나올지는 오로지 텍스트에 의존해야 해서 좀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기대감과 호기심, 약간의 두려움은 다른 그림자를 가진 같은 형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요리가 나왔습니다...이런 문장을 써야 할 타이밍인데 요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꽤나 기다려야 하는 캐나다의 다이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느린 나라에서 느린 코스 요리를 즐기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하나 싶었지만 이 느림은 정말 참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식사가 끝나고 시간을 확인하니, 우리가 이 코스를 모두 즐기는데 거의 3시간 30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음식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식전빵. 꽤나 오래 기다렸기에 허겁지겁 먹었는데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소금맛이 강한 - 짜다고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빵과 이곳에서 꽤나 찾기 어려운 찰기가 넘치는 빵 두 종류. 그리고 NSCC에서 직접 만든 치즈. 3명이서 한판 다 먹고 또 한판을 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전채. '인도식 향신료와 요구르트로 마리네이드 된 파니르 티카.' 보통 티카는 고기를 향신료에 절여서 구은 꼬치 요리인데...여기서는 파니를 구워서 전채로 썼군요. 모양은 영양바(...)처럼 생겼는데 맛있습니다! 그냥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향신료와 치즈 향이 은은하게 찾아오는...두부 같기도 했구요. 작은 콩 같아 보이는 동그란 식재는 향신료에 절인 사과였습니다. 사과의 상큼하고 약간 신 맛이 담백한 치즈와 너무 잘 어울리더군요. 시작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생강과 마늘, 토마토와 렌틸콩으로 만든 달(Dhal)과 요구르트 빵. 얇게 바삭 구운 토마토의 식감과 격양된 신맛과 단맛. 요즘은 야채구이가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은근 매운맛이 감도는 달이 살짝 신맛을 띈 빵과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하얀 바닥이 보일 때까지 달을 먹었습니다.

학생들의 실습용 레스토랑이라서 그런지, 요리 사이의 간격이 꽤나 길었습니다. 그런데 이 긴 간격이 허겁지겁 음식에 달려드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기나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겠지요. 은퇴한 노부부나, 아직은 백수나 다름없는 우리 부부 같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돈은 없어도 마음은 부자같이~

살짝 그슬리게 구운 양고기와 마살라 그리고 바스마티(Basmati)라이스. 어린 양을 썼는지 노린내는 적고 고기는 부드럽고 양은 적었습니다(...) 좀 더 먹고 싶었지만 더 달라고 할 수 없는 그 심정. 너무 아쉬워서 고기를 다 뜯어먹고 뼈까지 쪽쪽 빨아 먹었습니다. 체면도 중요하지만 언제 또 먹을지 모르니 이 맛을 뇌 곳곳에 넣어두고 싶었습니다.

아보카도로 만든 라히타(Raita) 소스를 곁들인 새우 구이.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새우에 가벼운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저는 제 몫을 일행 두 분에게 양보했습니다. 맛있었다고 하더군요. 쩝...

코코넛 밀크와 서양미나리, 그린커리 잎과 어린 토마토와 같이 끓여낸 피쉬스튜. 개인적으로는 좀 더 진한 맛의 피쉬 커리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접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기는 고기고 스튜는 스튜인 그런 맛이 찌개나 조림에 익숙한 이 촌놈의 입맛에는 너무 고급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치킨 마카니(Makhani)와 양파 바지(Bhajji)...바지가 도대체 뭔가 했는데 인도식 스낵이라고 합니다. 모르고 먹었으면 과연 인도요리인가 했을 정도로 전형적인 맛의 닭고기 요리였습니다. 맛이 없었다는 것은 아닌데, 앞에 등장했던 요리들의 임팩트에는 조금 약한...인도 요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커리향이 강했던 감자와 콩 정도? 약간은 아쉬웠던 요리이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를 주문했습니다. 디저트가 나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고 그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부른 배 때문인지 머리에 둥둥 떠 다녔습니다.지금 몇 시인지, 어떻게 돌아갈지, 과연 이 모든 코스 요리는 얼마였는지 등의 현실적인 고민과 말 그대로 오랜 시간을 의자에 앉아있어야 했던 피곤함, 그리고 스펙타클하게 펼쳐졌던 맛의 향연들. 그 생각들에 취해 저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디저트는 무조건 아이스크림을 시켰어야 했는데 파이를 시키고 말았던 것이죠. 그리고 그 결과...

사진 위쪽에 있는 것이 제가 주문한 애플파이. 양도 많고, 반죽도 두껍고...이건 디저트가 아니라 그냥 한 끼였습니다. 내가 왜 이걸 주문했을까...반면 코코넛 머랭과 파파야, 망고 등의 신선한 과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꺼번에 등장한 아내의 디저트는...한 스푼만 먹어보았지만 그야말로 감동. 아이스크림을 먹을걸...인도식이라 다른 애플파이를 기대했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약간의 후회를 남기고 3시간 30분의 기나긴 식사가 끝났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고, 버벅 거리는 소믈리에와 종업원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물론 그런 즐거움은 음식이 일찍 나오지 않는다고 호통치거나 자신의 접시가 다른 테이블을 돌고 돌아 마지막에 도착하는 광경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만끽할 수 있겠지요. 그런 여유가 있거나, 이곳 대서양 변경의 도시에 살면서 색다른 레스토랑을 가보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Fresh21이야 말로 적절한 장소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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