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3일차:Havana,'Hodie mihi Cras tibi' - 쿠바(Cuba)


 나는 그럴듯해 보이는 여행기, 있어 보이는 여행기를 쓰는 것이 힘들다. 

여행의 매 순간이 환상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상하지 못한 악천후부터 잡지 못하는 택시, 바가지를 씌우려고 환장한 상인들, 나도 가진 것 없는데 돈 달라고 달라 붙는 아이들, 비싸지만 더럽게 맛이 없는 음식, 그리고 최악의 경우 소매치기나 강도까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여행 곳곳에 숨어있다. 그리고 여행자 모두는 그 불운을 각자의 대가를 치르면서 마주하기 마련이다. 그 대가는 마지못해 지갑에서 꺼낸 작은 동전들로 끝날 수도 있지만, 어쩔 때는 소중한 사진이 가득 담긴 노트북이나 고성능 카메라가 될 수도 있지. 

하지만 여행기를 쓰기에 가장 애매한 순간은 상술한 최악의 순간이 아니라, 여정이 이도 저도 아닌 밍숭맹숭한 시간으로 점철될 때이다. 일상과 혹은 예상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새롭지만 경이와 감탄이 결여된 순간들의 연속. 사실 이건 순전히 작가의 감수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나이에 접어든 내 상태가 바로 '감수성이 메말라 되어 만사 똑같이 보이는 상태'인 듯 하다.

그러기에 난 이 블로그 이름을 '변경'으로 지은 것이다. 내가 필요한 것이 바로 하루키가 이야기 한, 평범 속에서 변경을 찾아 낼 수 있는 능력, 바로 그것이기에.

 그 능력의 그림자라도 붙들기 위해, 나는 여행의 매 '프로세스'를 꼼꼼히 기록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없을 때가 있다. 쓰는 나도 재미없고 보는 사람도 재미 없는 글. 그건 마치 자갈과 바위가 가득 든 땅을 호미를 들고 옥토가 될 때까지 가는 기분과 비슷하다. 언제 씨를 뿌릴지도 모르겠고, 얼마나 자라고 수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다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라는 실낱 같은 기대와 '이 밭을 건너뛰고 다른 비옥한 밭이나 갈자'라는, 많은 여행작가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내키지 않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이 거친 기억을 뒤집고 앉아있다.

그러니 쓰는 것도 오래 걸리고, 읽는 것도 힘들지. 하지만 놓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좀 지치기도 하고, 벌써 반년 가까이 지난 시간을 두들겨 깨우다 보니 색이 바래지는 느낌이 드는 지라 오늘은 좀 듬성듬성 밭을 고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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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이 마땅하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가이드북을 의지한다. 가보기 전에는 모든 장소와 시간이 새롭다. 그러니 굳이 가이드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론니플래닛에 따르면 이 지역의 묘지가 제법 볼만하다고 하니 그리고 가 보기로 했다. 작가 김영하가 그랬지. 그는 여행을 할 때 묘지를 즐겨 찾는다고. 그곳에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많아서 조용하다고. 과연 하바나의 묘지는 어떨까. 내가 묘지에 간다면. 나는 그곳에서 어떤 감정이나 상념에 젖을 수 있을까? 

막상 장소를 정하고 나니 짐짓 기대가 되는 걸? 하지만 묘지까지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좀 있어 나와 아내는 큰길로 택시를 찾아 나왔다. 그런데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 가면 잡힐까? 저기까지 가면 택시가 있을 수도? 그렇게 걷다 보니 우리는 예상치도 못하게 하바나 대학 앞에 와 있었다.


피델 동지도 여기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일했다고 하지. 쿠바 제일의 대학인 만큼 건물도 크고 아름다웠는데 학생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방학인가? 심지어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끈으로 입구를 막아두기도 했으니 뭐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라도 있는가 싶었다. 오지 말라는 곳 굳이 가지 않는 것이 내 신조. 나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도 택시를 잡지 못해 나와 아내는 큰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파나마 모자를 쓴 중년 관광객들을 가득 태운 삐까번쩍한 크롬카들이 마치 우리를 비웃는 듯 스쳐 지나갔지만, 그 돈을 주고 저걸 타느니 차라리 걸어서 묘지까지 가겠다는 생각에 동의한 나와 아내는 결국 택시도 아닌 꼬꼬택시(Co co Taxi)를 찾을 수 있었다. 택시 운전사의 후려치기를 이 가격이 아니면 타지 않겠다는 '벼랑 끝 협상'으로 받아친 나는 결국 원하는 가격으로 묘지까지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택시,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찍어두는 건데 폭풍처럼 우리를 내려놓고 사라지는 기사 덕에 좋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쉽군.

 그렇게 우리는 묘지, 그러니까 '네크로폴리스 크리스토발 콜론(Necrópolis Cristóbal Colón)'에 도착했다. 왜 묘지에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이름을 붙였을까. 

묘지 입구에는 멋진 조각이 들어간 웅장한 문이 있었다. 무슨 묘지 문을 이렇게 크게 만들었나 싶었는데, 그 안에 누워있는 묘지 수만 800,000개가 넘으니 문이 클 법도 했다. 그 문 위에 앉아 있는 두 천사 사이에 현판이 붙어 있고 그 사이에 'H'로 시작되는, 뜻을 알 수 없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뭐라고 새겨졌는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옆에서 아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내 : 아마 'Hodie mihi Cras tibi' 라고 새겨져 있었을 거야. 지금은 닳아서 안 보이는 걸 수도.
나 : 오 그래? 스페인어인가? 무슨 뜻인데?
아내 : 라틴어로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라는 뜻일 걸.
나 : 헐...


묘지에 어울리는 말이긴 한데, 나는 아직 아니다. 만약 죽음이 나를 찾아온다면, 난 이렇게 이야기 해 주겠어. 'Not today.'...아우 오글거려라.

하바나에 오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웹 페이지나 가이드 북에서 칭찬 일색인 곳인 만큼 정말 크기는 한데, 일단 들어갈 때 현지인은 무료인데 관광객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묘지인데 무슨 입장료를 받나? 다음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우중충한 날씨. 새하얀 대리석 조각이 햇살 아래에서 빛나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듬성듬성 비도 내리곤 했다. 이런 날씨는 저 묘지를 뚫고 죽은 자들이 좀비로 일어나기에 적합한 날씨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이 묘지는 너무 크고 넓어서 작은 공원 같은 이국적인 색채가 가득한 묘지를 기대했던 우리의 상상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큰 감동이 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왔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긴 했다.


터벅터벅 흐린 하늘 아래 스쳐 지나가는 묘소와 무덤에서 그 사람이 무슨 종교를 믿었고, 어떻게 살았고, 얼마나 유명했고, 얼마나 돈이 있었는지(...)가 정확하지는 않아도 대략적으로는 짐작할 수 있었다. 공산주의라고 해도 죽을 때는 차별했나 보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잘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쿠바 출신의 유명한 야구 선수도, 카톨릭 주교도, 장군도 정치가도 이곳에 묻혔다고 하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나는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거대한 신전 같은 묘를 보고 이 아래 잠든 사람도 그런 사람 중 하나 인가보다 하고 생각만 할 뿐이지.

공식적으로는 카톨릭 교회인데, 묘소의 종류나 건축 양식은 죽은 자의 취향이나 종교에 따랐는가 보다, 예를 들어 이렇게 돔 형으로 생긴 묘소도 있는가 하면...

죽은 뒤에도 저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었는지 작은 피라미드에 묻힌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사람은 살아 생전에 무척이나 영주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 다양한 묘소들의 중앙에는 카톨릭 예배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한참 장례가 진행 중이었다. 뭘 믿던 어떻게 살았던 일단 장례식은 카톨릭 식인가? 쿠바에 이슬람 교도나 불교 신자가 있다가 죽으면 여기 묻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쓴 웃음이 나왔다.

제법 큰 묘지를 부지런히 걸어 다녔더니 다리가 아팠다. 그리고 회색 구름이 게속 짓눌러서 그런지 머리도 아팠다. 나는 쿠바까지 와서 흐리고 탁한 이 하늘이 미웠다. 열대의 하늘과 햇살을 보고 싶었다고. 이런 회색은 저 멀리 북쪽 캐나다에서 실컷 봤단 말이지. 여기를 떠나야겠어. 아직 택시를 예약해둔 시간까지는 좀 남았지만 나는 그녀와 함께 좀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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