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3일차:Havana,운 좋게 만난 혁명광장 그리고 트리니다드로 - 쿠바(Cuba)


 일찍 가기로 생각하고 묘지 밖으로 나왔으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막상 찾으니 또 택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묘지 자체가 좀 외진 곳에 있기도 하고, 날씨가 흐리다 보니 택시를 잡는 사람이 많기도 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택시가 뜸해질 수 밖에 없지. 그렇다고 비싼 값에 고급 택시를 타기는 싫고. 그리하여 나와 아내는 좀 더 번화한 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저기 저 코너에는 사람이 많으니 저리로 가보자. 여긴 버스 정류장이었으니 저 큰길 따라 한 두 블럭 걸어나가 보자. 어허, 길가에 서서 택시 잡는 사람이 좀 많네. 우리는 택시잡기 힘들 것 같으니 저기 차들이 많이 나오는 4차선을 따라 언덕 하나만 넘어가 보자. 날씨가 더웠으면 진작에 체력이 바닥이 났을 거리를 나와 아내는 꽤나 걸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 구경도 하면서 걷기를 한 30분? 갑자기 도로가 엄청나게 넓어지면서 저 멀리 큰 기념탑 같은 것이 보였다. 그 크기나 위용으로 볼 때 꽤나 유명한 곳임에 분명했다. 그 말은 즉 택시를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나와 아내는 그리로 종종 걸음을 쳤다.

그리하여 나와 아내는 택시를 잡으려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혁명광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혁명광장이 뭐가 그렇게 대수냐고 한다면 나는 아래의 사진으로 모든 말을 대신 하겠다. 

 쿠바와 체 게바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이미지. 그 이미지의 원본이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혁명 광장이 되겠다.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체의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 놓은 거대한 예술작품, 내무성 건물에 붙어 있는 저 쿠바의 아이콘을 보기 위해서 - 혹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가 광장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저 멀리 보이는 택시, 또 택시들. 예상치 못한 보물을 찾은 듯한 기분에 나는 광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비슷한 제작기법으로, 하지만 최근에 만든 것이 분명한 이 작품은 또 다른 혁명 영웅 카밀로 시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 Gorriarán)를 그려내고 있었다. 몬카나 병영 습격부터 카스트로와 함께한 시엔푸에고스는 체와 더불어 카스트로의 최측근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혁명 성공 후, 하바나에 입성한 피델이 하바나 시민 앞에서 열정적으로 연설을 한 뒤, 자신의 연설이 어땠는지를 시엔푸에고스에게 물었다. 그 때 그가 답했다.

'Vas bien, Fidel(잘 하고 있네, 피델)'

그리고 그가 남긴 이 말은 지금 저 작품 오른쪽에 붙어 지나가는 하바나의 시민들을 격려하는 듯 했다. 

'너희들 지금 다 잘하고 있다.'

나도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일까. 머나먼 이국으로 떠난지 오래, 취직도 못한 상황에서 가져온 저금을 쪼개서 지금 이곳에 놀러온 나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생각하지 말자.

저 먼곳에서 택시를 찾아 헤매이던 나를 이 곳까지 유도해준 고마운 호세마르티 기념탑, 아디오스, 아디오스.

그 뒤 광장의 고급 택시들을 뒤로하고 - 은근 슬쩍 던져대는 가격이 말도 안되는 수준이라 나는 손사례를 치면서 그들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 공원 하나를 뚫고 수영장 하나를 지나서야 우리는 저렴한 택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이름을 외어두면 정말 편리한 그 곳, '까피똘리오'로 편하고 싸게 돌아왔다.


마지막 날에 다시 하바나를 오더라도 언제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모르니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근처의 인터넷 광장에 들려 나는 음료를 마시면서 사진을 정리했고 아내는 열심히 본국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저기 쓸만한 정보를 검색했다. 아마 저녁을 먹을 장소를 물색하는 듯? 그리고 어느덧 장거리 택시를 예약해 둔 시간이 되서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맡겨둔 짐을 찾고 잠깐 로비에 앉아 기다렸다. 그리고 얼머 지나지 않아, 우리를 태울 택시에 예상치 못한 다른 인원을 태우고 도착했다. 아, 우리 둘만 타고 가는 택시가 아니었구나. 하긴, 4명 자리를 다 채우고 가야 저분들도 먹고 살 수 있겠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여행 중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법. 이것도 인연이니 성격이나 잘 맞는 사람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을 곱게 써서 그런지 실루엣만 보이던 택시 일행은 스페인에서 놀러온 활발한 성격의 아름다운 모녀였다. 

처음에는 눈인사만 하고 서먹서먹하게 앉아 있었던 우리는, 이윽고 차가 트리니나드로 출발하고 카 스테레오에서 쿠바 특유의 신나는 삼바 음악이 흘러나오자 긴장이 풀리면서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더듬더듬 영어로 물어보면 그 스페인 아가씨는 자기 나름의 대답을 하거나, 아니면 굉장히 빠른 스페인어로 운전기사나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물어본 뒤에 대답을 하곤 했다. 춤추러 왔다는 사실도 그 대화 중에 알게 되었지. 정말로 음악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자기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었는지, 종종 스테레오에서 리듬이 적합한 음악이 나오면 그 아가씨는 대화중에서도 움찔움찔 춤을 추곤 했다. 이야, 라틴 민족은 참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지.

그렇게 외길로 뚫린 고속도로를 한참을 달리던 기사는 여정의 절반쯤 되는 주유소에 멈추었다.  

기름이라도 넣고 가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 우리는 트리니나드에서 온 또 다른 택시기사에게 인수인계(?)되었고 그는 온길을 되돌아 하바나로 돌아갔다. 이제 우리를 태우고 갈 사람은 트리니나드의 택시기사겠지.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언듯 들린 대화에 따르면 하바나의 택시기사와 트리니나드의 택시기사는 사촌이거나 친구사이 인듯 했다.

가는 길이 멀어 기름을 넣긴 했는데, 번듯한 주유소의 기름을 넣진 않았다. 어딘가 으슥한 시골길을 달리는 도중, 기사가 우리에게 이야기 했다. 이제 기름을 넣으러 갈건데 절대,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기름을 넣는데 무슨 사진을 찍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 기사, 갑자기 시골길의 좁은 길을 따라 수상쩍어 보이는 농가의 마당으로 차를 몰아갔다. 그 농가의 지붕에는 낡은 기름캔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마당 한켠에 차를 세운 기사는 닭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뭐라고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구석 헛간에 들어가더니 큰 기름통과 호수를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하. 이 사람들 제조 기름을 차에다 넣는구나. 그러니 차에서 나오는 매연이 그 지경이지. 

하지만 쿠바산 원유의 가격이나 질을 생각하면, 이 사람들이 비합법적인 기름을 사용하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한참 모두가 부를 쫓아 달리는 나라에서는 종종 환경이나 법률이 무시되곤 하지. 1970년의 한국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가 이들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고 있자니 한명 두명, 일행들이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해가 저물더니 주변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조급했는지 기사는 속도를 올렸다. 도로는 산길로 좁아지고, 다시 산길이 해안도로로 바뀔 때 쯤 이윽고 우리는 목적지 트리니나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해가 넘어간지 오래, 거리는 어두웠고 나와 아내는 피곤했다. 

숙소 앞에 우리를 세워준 택시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마중나온 민박집 사장님의 환영인사를 듣고 체크인을 한 우리는 얼른 자고 싶었으나 배가 고팠다. 그리고 아내는 내일을 위해 인터넷을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우리는 방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다시 트리니나드의 밤 거리로 나왔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광장으로 가야하고 숙소에서 광장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곳에는 호객꾼이 좀 있었다. 기본적으로 호객꾼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중 한 명은 샘플까지 제공하면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그 열정(?)이 맘에 들었고, 맛을 본 샘플이 나쁘지 않았기에 우리는 거기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바로 라 라다시온(La Redaccion)이었다.

내부는 넓었지만 인테리어는 나쁘지 않았다. 바와 레스토랑이 구분되어 있었고, 성수기에는 한참 이런저런 공연과 이벤트가 열였을 마당에는 이 날, 조용한 밤 공기만 가득했다. 손님이 없는 것은 이 레스토랑에게는 불행이겠지만 자동차의 소음와 매연에 시달린 나는 이런 고요함이 좋았다. 게다가 테이블의 양초. 호젓하지 않은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축하자기 위해 식전주로 간단하게 칵테일을 시켰다. 모히토에 다이키리. 정말, 이 가격에 이 정도 맛의 칵테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쿠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렇게 술을 홀짝이고 있자니 식전빵이 나왔다. 신선한 과일과 과카몰리와 흡사한 딥소스. 맛은 단순했으나 나쁘지 않았다. 음식 솜씨의 정교함은 아직 멀었으나, 이런 분명함은 앞으로 쿠바 요리의 큰 장점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메인으로 주문했던 인도식 커리 앤 라이스와 파스타. 역시나, 파스타는 별로였다. 커리는 보통 수준. 쿠바에서 맛있는 요리는 갖은 재료를 켜켜히 쌓아서 맛을 내는 요리가 아니라 단순함과 강렬함으로 승부하는 랍스터나 바베큐 같은 요리를 먹어야 한다. 아직까지는. 나는 그렇게 기대 수준이 높지 않았기에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어 좋았으나, 먹는 것에 목숨을 거는 아내는 꽤나 많이 실망한 듯 했다.

보기에는 그럴 듯 했지만 결국 아이스크림이었던 디저트. 아쉬워, 아쉽단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내는 인터넷을 하기 위해 광장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제법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하기 위해 그 앞에 모여 있었다. 

광장의 계단은 마땅히 인터넷 세게를 헤매이는 순례자들에게 공짜로 제공되어야 하건만, 대부분의 계단을 정체모를 술집에서 점유하고 울타리를 세워 놓았더라. 심히 마음에 들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 다만 절대 저기에서 뭘 먹지 않겠다고, 나는 소심하게 속으로 다짐했다.

아내가 인터넷을 하는 동안, 나는 노곤한 와중에서 차가운 공기와 개들의 싸움과 옆 커플의 다툼과, 담배로 장난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하늘에는 하바나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또 이렇게 다른 곳으로 왔구나. 내일은 어떤 일이 펼쳐질까? 

덧글

  • 타마 2019/06/13 09:00 # 답글

    인터넷을 찾아 모이는 여행자라니... 세속적이면서도 운치가 있네요. ㅎ
  • Oldchef 2019/06/14 19:44 #

    쿠바만의 독특한 풍경...이죠?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 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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