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4일차:Trinidad,뭘 해야 할지 애매한 이 동네에서 찾은 희망 - 쿠바(Cuba)


 여행지의 아침, 눈을 뜨면 응당 그날 할 일에 설래이고 기분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럴 수 없을 때가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면 말이지. 예를 들어 쿠바의 환전소에서 환전을 해야 하는 것 같은 것 말이다.

이날, 아침 일찍 밥을 먹고 환전을 하러가야 했던 나는 거의 동이 트자마자 일어났다. 사실 그렇게 까지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었으나 긴장을 해서 그런지, 눈이 일찍 뜨이더라.




1. Las Margaritas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니 복도와 연결된 테라스의 테이블에 준비되어야 할 아침이 보이지 않아다. 당연하지. 내가 일찍 일어났으니. 아내는 아직 자고 있고, 식사를 기다릴 겸 테라스에 있는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나갔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동네의 풍경은 한적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사람들과 말마차들. 허허. 이 곳 공기가 하바나와 달리 매~우 깨끗한 이유 중 하나는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동차가 아닌 말을 쓴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물론, 트리니다드란 도시 자체가 시골에 위치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겠지.

높은 건물은 찾아보기 힘든 동네. 날씨가 맑았으면 경치가 더 좋았을 건데, 아쉽게도 흐렸다. 하지만 이런 날씨가 걷기는 좋지. 내일, 양꼰 해변을 가는 내일 날씨만 좋으면 된다. 오늘은 많이 바라지 않겠어.  

옥상에서 바라본 우리 숙소, 라 마가리타스(La Margaritas)의 모습이다. 방들로 둘러 쌓인 가운데 정원이 인상 깊었던 이 곳. 오랫동안 숙박업으로 부를 축적(?)한 주인장은 최근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 호텔을 꿈꾸던 그의 호기롭던 모습이 지금도 인상깊다. - 칠도 다시 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정돈하고 방과 동선도 새로 그려냈다. 쾌적했던 시설과 친절했던 주인장 내외로 쿠바를 가는 캐나다 친구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추천했던 그 곳.

언젠가 트리니다드에 다시 간다면 여기 또 한번 머물러 보고 싶다. 그 때는 어떤 물건들이 새로 들어와 있을까. 

테라스 한 구석에 놓여있던 시가 박스와 시가, 성냥과 시가 커팅 나이프. 상자에 붙어 있던 습도계가 인상깊었다. 내가 담배를 피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인생 처음으로 하게 한 순간. 식사가 나오기 전 테라스에 기대어, 공짜로 제공되었던 이 시가 한 대를 뽑아 성냥으로 불을 붙여 깊숙히 단맛과 어우러진 담배향을 들이마시고 속으로 생각하는 거지. C'est la vie (이게 인생이지).

하지만 현실의 내가 그랬다면 볼썽사납게 콜록이며 아까운 시가만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냥 넘어가자.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침 테이블이 준비된 듯 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아내를 깨우고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있는 주인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하나 둘, 접시가 테이블에 오르기 시작했다.

약간 딱딱하게 구워낸 빵, 신선한 수박과 파인애플, 오렌지 비슷했던 과일, 역시나 보온병에서 등장한, 하지만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던 커피, 이 집에서 손수 만든 쨈 등. 맛이 괜찮았다. 차라리 이렇게 단순한 요리가 낫다니까.

 영화 '아메리칸 쉐프(American Chef)'를 본 이후로, 나는 제대로 된 쿠바노스 샌드위치를 먹어보기를 언제나 꿈꿔왔었다. 그래서 쿠바에 온 뒤 기회가 될 때마다 쿠바노스 샌드위치를 시켜보는 데 단 한번도, 정말로 단 한번도 '쿠반포크'- roasted pulled pork - 가 나온 적이 없었다. 이날 아침도 내가 주문한 것은 쿠바노스 샌드위치였는데 역시나 나온 것은 그릴드 치즈 & 햄 샌드위치. 그럼 쿠바노스라고 하지를 말던가! 뭐, 빵은 바삭했고 빵 사이에 들었던 햄도 생각보다 괜찮았기에 먹을 만 하긴 했지만...

아내가 주문했던 팬 케이크와 달걀 오믈렛...저 호떡처럼 보이는 자태와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운 달걀 오믈렛을 보시라...모든 것이 90점을 상회했던 이 숙소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이 부분. 바로 음식이었다.

이때 우리는, 좀 미안하더라도 내일 저녁의 식사를 숙소에서 하겠다는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하지만, 주인장의 원대한 꿈에 조금이나마 금전적으로 보탬이 되고 싶었던 우리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에게 참 인상 깊은(?) 추억을 남겨 주었다.

아무튼,

식사를 끝낸 나는 환전과 인터넷 카드를 사러가기 위해 상업지역이 몰려있는 또 다른 마을 광장으로 향했다.




2.

인터넷 카드를 사는 것은 쉬웠다. 광장으로 가면, 언제나 인터넷 카드를 파는 암거래상이 찾아온다. 가격이 두배 이긴 하지만, 1 CUC과 2 CUC의 차이라서 바가지를 쓰는 것 같지않...게 느껴진다. 폭리이긴 하지만 공식 거래상을 찾는게 너무도 귀찮고, 줄도 서야 한다. 

아침의 광장은 부산했다. 상점으로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 양꼰 해변이나 기타 트레일로 가는 관광객을 찾는 택시와 삼륜차 기사들, 학교를 가는 학생들, 광장에서 시간을 때우는 노인 등등. 서서 구경만 해도 재미있겠지만 일단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환전소에 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당연하지. 나는 문 열기 30분 전에 왔단 말이다. 나는 문 앞에 서서 가져간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문고본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놈은 여기 서서 무엇하는 걸까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눈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바나의 환전소에서는 1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이제 그런 일은 없다.

기다리다 찍은 거리의 풍경. 저 오토바이들은 짐을 싣는 걸까 사람을 싣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환전소 직원들이 슬슬 출근하기 시작한다. 언제 들어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환전소 경비가 안에서 문을 열어주면 그 직원들은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무슨 강도라도 있었나? 왜 이렇게 경계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문 열기 10분 전이 되니, 하나 둘씩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길게 줄을 지었다. 물론 나는 그 가장 앞에 서 있었지. 뿌듯했다. 그래, 이 기분이지. 남들 먼저 집에 갈 때 나는 혼자 교실이나 도서관에 남아 숙제를 하다가 늦게 집에 가곤 했다. 그때 느꼈던 참으로 알량했던 승리감. 그 고등학교 시절의 기분을 여기서 느낄 줄이야. 우습지만 그 작은 성취감이 나를 공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날은 문열자마자 5분 만에 환전을 끝내게 해 주었다. 아 신나라.

나는 룰루랄라 바꾼 돈 뭉치를 고이 간직한 채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오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섰다. 




3.

트리니나드의 첫 날은 여러모로 하바나의 첫 날을 압도했다. 날씨도 좋았다. 집은 소박했지만 깔끔했고 눈에 선명한 페인트로 깔끔하게 칠해져 있었다. 망할 차들 대신에 사랑스러운 말들이 다니는 거리는 안전했고 공기도 맑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바로 하수 처리 방식. 

 일단 건물이 낮으니 위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던 하수 폭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갈이 깔린 주요 도로는 완만한 'V'모양으로 만들어져 집에서 쏟아낸 하수가 돌 사이를 흘러 가운데로 모이게 되어 있다. 즉, 인도를 걷는 사람들이 하수를 밟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도로 가운데에는 큰 돌이 놓여있어 모인 하수가 그 아래에 파인 홈을 따라 동네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갈과 흙을 따라 흘러간 하수는 어느정도 오염물질이 제거되기도 한다. 이 얼마나 깔끔하고 보기 좋고 합리적인 처리 방식인가?

내가 그렇게 하수 처리 방식에 감탄하면서 광장에 오르는 동안 아내는 갈 곳이 없나 찾아 분주했다. 하수 처리 방식에서 고득점을 획득한 트리니다드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해변과 트레일을 제외한 다른 할 만한 것은 조~금 애매하다는 것일 수 있겠다. 

마요르 광장에서 서성이던 우리는 가이드에서 추천한 트리니다드 역사 박물관(Museo de Historia Municipal)을 가 보기로 했다.

* 지금 생각하면 가이드북이 추천했던 곳은 '혁명 역사 박물관' 이었던 것 같다. 거기 갔어야 하는 건가. 뭐, 그건 다음 번에 이 곳을 찾을 때의 재미로 남겨두기로 하자. 


척 봐도 있어 보이는 집의 저택으로 보였던 이 집은 아니나 다를까, 이 지역에서 잘나가던 사탕수수 농장주가 1812년에 지은 집이었다.  

건물은 전형적인 열대지역 식민지 시대 저택으로 역시나 가운데에, 내가 집을 산다면 꼭 만들어 넣고 싶은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그 가운데, 홀딱 벗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수대가 있었는데, 물이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박물관 건물에 비해 전시되었던 물건들은 전반적으로...애매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 설명이 없었단 말이다. 이건 통 알아들을 수 없으니 흥미를 가질 수가 없지 않겠는가? 많은 사진들, 자료들이 있었건만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들은 가재도구, 특히 부엌 설비들.


술통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항아리라든가...


널찍하고 커서 부러웠던 화로들과 그 위에 놓여있던 육중했던 주물 단지들. 여기에서 어떤 음식들이 만들어졌을까 상상하는 것 만으로 흥미로웠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식수 저장고. 위에 있는 돌에 물을 부으면 아주 천천히 정수된 물이 아래의 항아리에 보관되는 구조였다. 이 식수 저장고를 보관하는 캐비넷은 언제나 열쇠로 잠겨져 있었으며 이 열쇠는 집 주인과 아내만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이런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궁금해 하던 차에 옆을 지나는 가이드의 영어 설명을 귀동냥한 결과였다. 더욱이 흥미로웠던 사실은 그런 조심성에도 불구하고 이 집의 여주인'들'은 끊임없이 열대지역의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고 한다. 자그만치 3명이나. 무서운 사실은 그렇게 아내가 죽어나가는 동안 집주인은 아무런 문제 없이 3번이나 결혼을 했다는 것이지. 과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가기 전, 올라가 본 탑에서 찍은 정원. 이 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말도 되지 않는 물건을 전혀 저렴하지 않는 가격으로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를 지나, 좁고 낡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공짜니까, 그리고 올라가서 본 광경이 괜찮았기에 후회하지는 않지만 내 뒤를 따라 올라오던 덩치 큰 아주머니는 끊임없이 투덜거리더라. 그 심정 이해 하옵니다.

입장료 2 CUC이 애매했던 박물관. 심심하면 갈만하지만 굳이 찾아갈 것 까지는 없을 듯 했다. 뭐, 우리의 목적은 시간을 좀 때우고 싶었으니 일단 목표는 달성했다.

목도 마르고 조금 피곤했던 우리는 커피를 한잔하러 가기로 했다.




4. Cafe Don Pepe


트리니다드애서 커피를 마신다면 여기가 괜찮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가이드도 추천하기도 했고. 그간 보온병의 커피에 질렸던 아내는 꼭 이곳을 가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큰 저항 없이 그녀의 주장에 따라 이곳으로 향했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문을 넘어 들어가면 나무 그늘과 우물, 작은 타일 들과 사진들과 소품이 잘 꾸며진 정원이 나온다. 시원하고, 색다르고,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일단 마음에 들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타일 분수.


광장에 가깝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과 매체에서 추천하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운이 좋았기에 그렇게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으나 우리가 들어오고 곧 대기 줄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커피 맛은 어떨까.



지금 생각하면 무슨 커피를 시켰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그 맛은 보온병 커피보다 맛있었다. 괜찮은 커피였다. 서비스로 나오는 과자도 마음에 들었고.

하지만 한국 사람의 커피 사랑을 채우기에는 부족한 맛이었다. 나는 아내가 실망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짐짓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식음료에 대해서는 언제나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그녀답지 않은 반응에 나는 물었다. 


나 : 마실만 해? 깐깐한 당신이 별 말이 없으니 신기 하구만.
아내 : 아니...사실 한국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을 여기서 기대하면 안되지...우리나라의 바리스타들은 세계적 수준 이라구. 게다가 쿠바에서 생산되는 좋은 원두의 대부분은 수출되고 있어서, 내수용 원두는 질이 좋지 않은 것들 뿐이라고 하더라고. 그 원두로 이 정도의 맛을 뽑아 낼 수 있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 것 같은데.
나 : 오호.

...지금 캐나다의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내 앞에 놓여있는 콜드브루 커피도 한국에 비교하면 딱 떨어지는 깔끔함이 조금 아쉽긴 하지. 막무가내 나라 자랑은 좋아하지 않지만, 커피와 인터넷 환경 만큼은 한국은 세계 수준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수도도 아닌 열대 공산국가의 시골(?)에 위치한 카페에서 한국 고객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적어도 아직은 어렵지 않을까.

그러니, 여기를 찾는 한국 사람들은 '적당히' 기대를 하고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너무 높은 기대에는 실망 만이 따를 뿐. 하지만 다른 여타 쿠바 커피와 비교하면, 이곳 커피는 참으로 맛있었다. 한번은 들를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나온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걸어 돌기로 했다. 건물과 골목들이 아름답다고 하기도 하고, 피곤하기 전까지는 조금 걷는 것도 좋다고 생각되었기에.


커피를 마시고 나온 우리가 바로 목격한 것은, 카페 앞 작은 공원에서 파나마 모자를 쓴 흰 셔츠의 아저씨들이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너무 많은 관심은 그들에게 우리가 팁을 줄 것이라는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나와 아내는 조용히 그들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벤치에 앉아 그 음악을 조용히 감상했다. 

여기서 그들의 연주가 환상적이었다면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지만 아쉽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의 연주는 그냥저냥인 수준이었다. 당연한 것이지. 이건 영화가 아니니까. 한 두곡을 들은 우리는 앉을 때처럼 조용히 일어나 다시 산책길에 나섰다.



 결론적으로 산책길은 나쁘지 않았다. 도로에 널려있던 말똥들만 빼고. 날씨는 화창했고 건물은 이쁘장했고, 혹은 이쁘장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었다. 칠하다 만듯 남겨놓은 흰색과 다른 색들의 조화도 좋았다. 가는 도중 마주했던 마을 사람들과 긴 장화를 신은 쿠바 카우보이도 괜찮았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샌들을 신고 있던 내가 행여 말똥이라도 밟아 발가락 사이로 그 분비물이 들어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걷는 내내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걱정을 계속 할 만큼, 큼직한 똥들이 나뒹구는 도로는, 뭐랄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또한 그 냄새도 그랬다. 더욱이, 가끔씩 도로를 헤매던 이 동네의 발정난 수캐들이 몇 안되는 암캐를 둘러싸고 어떻게든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날 뛰는 광경은, 호젓한 산책길에 적합한 이벤트는 아니었다. 

* 내가 갔던 이때만 그랬는지, 아니면 트리니다드에서는 일상적인 광경인지 알 수가 없지만, 다수의 수캐들이 한두마리의 암캐를 상대로 껄덕거리는 장면은 우리가 이 곳에 체류했던 짧은 기간 동안 여기저기서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걸 보고 시시덕거리면서 비디오를 찍는 관광객들도, 혹은 그 개들을 빗자루로 때리거나 발로 차서 쫓아내던 주민들도, 나는 그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햇볕 때문인지 걸어서 인지 아니면 지뢰(?)를 피한다고 피곤 했던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산책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 그냥 잤다. 에어콘은 시원했고, 침대는 푹신했다. '프란시스 하'에서 여 주인공은 파리까지 가서 그냥 자고 왔지. 나도 쿠바까지 와서 푹 잠만 자고 간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5. Restaurante San José

눈을 뜨니 저녁. 해는 저물었고,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저녁을 먹는 것. 어디에 갈까는 아내가 후다닥 정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레스토랑 산 호세' 

우리가 찾아간 시간은 조금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많고, 종업원은...호객은 커녕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바깥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것은! 좋은 신호다. 그러고 보니 종업원의 얼굴에는 사람을 많이 받았을 때 생기는 특유의 기름이 번들거리고 그 사이로 짜증도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는 거리낌 없이 이 곳을 저녁식사 장소로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말 괜찮았다. 

실패에 지친 아내가 시킨 슈림프 칵테일. 그렇지, 재료색이 분명한 요리는 실패할 확율이 낮다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먹을만 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설마하고 내가 시켰던 메뉴는 슈니첼(Schnitzel). 독일식 돈까스를 무슨 쿠바레스토랑에서? 과연 맛이 어떨까 하는 의심 반 기대 반에 시킨 메뉴인데 의외로 괜찮았다. 역시,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니까요.

예상 외로 큰 볼륨에 깜짝 놀랐던 피자. 크고, 푸짐했다. 그러기에 맛있었다. 맥주가 무척이나 생각나던 피자. 너무 양이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싸서 가져온 이 피자는 다음날 양꼰 해변에서 훌륭한 간식이 되어 주었다.

예상보다 괜찮은 맛도 그렇지만 이 식당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 아닌 저렴한 가격! 퉁명스러운 종업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니까. 우리도 가격 대비 맛이 괜찮았던 이 곳의 식사에서 매우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이 날 이 저녁식사가 지금까지 약간 신통치 않았던 우리의 쿠바 여행에서 전환점이 된 듯했다. 우리는 행복했고, 만족스러웠다. 실로 4일만에 맛보는 여유라고 할까.

그렇게 우리는 포만감과 만족감에 취한 채로, 편한 잠자리에서 이 날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