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5일차:Trinidad,Maybe this is all I ask to you, Cuba. - 쿠바(Cuba)


 이날, 우리는 느지막이 일어났다. 딱히 잡아둔 계획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할여한 곳은 단 한 곳, 바로 안곤 비치(Playa Ancon)이었다. 




1. 

파란 카리브의 하늘 아래 따끈따끈한 모래사장에 누워있다 더워지면 시원한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몸이 식으면 다시 밖으로 나와 백사장에 누워 다이키리를 마시고 독서를 하거나, 한가로히 이런저런 몽상에 빠진다. 그렇게 신선놀음을 하다보면 이날 하루는 후딱 지나가겠지. 여기까지가 나의 '계획' 혹은 이번 오늘이란 시간 속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여행 일정 중 하루를 오롯이, '검증되지 않은' 해안에 몽땅 투입하는 것은 리스크가 큰 선택이긴 했다.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이 시점까지 쿠바의 많은 것들은 내 기대와 달랐다. 칵테일은 맛있었지만 음식은 what the hell에 가까웠다. 거리는 예뻤지만 더러웠다. - 나는 지금까지 이쁜것과 더러운 것을 동일한 사물에 사용한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내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대해서 스스로 꽤나 놀라고 있다. - 혁명의 기치는 아직도 드높았으나 조만간 이 곳은 카리브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자본주의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경이와 실망, 이 두 단어가 지금까지 쿠바여행의 키워드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읽고 있는 김영하 아저씨의 책에서 그러더라. 여행의 목적? 혹은 헤택? 중 하나는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통해서 또 다른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쿠바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일 만사 지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다'라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최소한 내가 원했던 것 하나는 이루고 싶었다. 나는 따뜻한 열대의 태양을 찾아 눈 내리고 얼음이 덮인, 폐병 걸린 태양이 토해내는 듯한 허약한 햇볕이 지겨워 여기까지 왔단 말이다. 홍콩에서 나는 네온사인을 잃어 버렸고, 방콕에서는 아름다운 운하와 카오산 로드를 보내야만 했었다. 오사카의 도톤보리도 못 본만 못했으니 최근 나의 여행은 말 그대로 상실의 행진이었다. 나는 착실하게 여행에서 배워온 샘이다.

하지만 단 하나, 이번 하나 만큼은 제발 좀 얻어내고 싶었다.




2.

 안곤 비치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택시를 이용한다. 값이 무턱대고 비싸거나, 대안이 존재한다면 기를 쓰고 그 대안을 찾으려 하겠으나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요모조모 따지고, 이것저것 물어봐도 택시만큼 편하고 저렴한 교통편이 없기 때문이었다. 변수가 있다면 얼마나 착하고 친절한 택시기사를 찾는가 일 것이다. 그건 발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

다음 여행지인 시엔푸에고스행 비아술 대기열에 이름을 걸어둔 우리는 버스 터미널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적당한 택시기사를 물색했다. 가이드에 제시된 평균 가격보다 높게 부르면 우리는 미련없이 등을 돌리고 다른 곳을 향했다. 그렇게 서너명을 보내고 혹시 가이드의 가격이 잘못되었나 싶을 때 쯔음, 우리는 삼촌과 조카가 사이좋게 운전도 하고 호객도 하는 적합한 가격의 택시를 찾을 수 있었다. 

우스운 것은 그렇게 저렴한 가격을 찾아 해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면 기억에 남았어야 할 것인데. 거참.

해안까지 달려온 우리는 기사에게 5시간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꽤나 긴 시간이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럼 그때 보자고 유유히 차를 몰아 돌아갔다.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있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한 10여 미터를 해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드디어. 마침내.

에메랄드빛으로 눈부신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을 얼싸안고 있었다. 그 위에 펼쳐진 파란 하늘은 감동할 정도로 높았다.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날씨마저도, 지나치게 뜨거워지기 쉬운 해안에 적당한 그늘을 던져주고 있는 듯 했다. 공기 가득 퍼진 그 따뜻함. 그 온화함. 이 모든 것은 내가 꿈꿔왔던, 그리고 그 예전 신혼여행으로 잠시 마주했던 칸쿤과 툴룸의 그 바다가 맞았다. 나는 지금 카리브에 있는 것이다.


 해안 군데군데 야자수가 자라는가 싶었던 것들은 야자수 잎으로 만든 그늘이었다. 불현듯 자리 값을 받을려나 싶어 불안하기도 했지만 까짓 것 돈 달라면 주자는 생각에 적당히 빈 파라솔에 가서 자리를 폈다. 이 자리에 대한 자본주의적인 나의 예상은 반은 틀렸고 반은 맞았다. 이 자리는 공짜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으니 적당한 간격으로 어디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는  바텐더가 와서 야자수나 칵테일을 권했다. 요는 고객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미끼상품인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조차도 용서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칵테일과 야자수를 사 먹을 테니까 말이다.  

 탈의실은 없다. 그래서 해변 뒤에 무너진 파라솔 지붕에 숨어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그냥 모래사장 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 그 뒤는? 천국이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냥 좋았다는 것. 마냥 행복했다는 것. 지난 4일 간의 상실과 실망이 이 한 순간을 위한 시련(?)이었기에 그마저도 정당화 될 정도로 좋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파도는 잠잠했다. 햇볕은 열대의 그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덧붙여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목이 마르면 뒤로 지나가는 바텐더를 불러 음료를 시켰다. 쿠바리브레, 다이키리, 야자수 등등. 음식은 아니지만 칵테일은 정말 잘 드는 이 친구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게다가 가격도 저렴했다. 

헤롱헤롱 술김이 오른 와중에 읽은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같지만 다른 이야기. 이 해변에서 나는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었다. 뿌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그 노인의 최후(?)가 너무도 좋아 나는 마지막 장면만 또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놀랍게도, 하루가 그냥 지나갔다. 나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가 썩을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체감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이 슬프거나 아쉽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까.




3.

돌아가는 길, 올 때는 알지 못했던 우리 택시의 이모저모가 눈에 들어왔다. 기운차게 도로를 달리는 이 택시는 꽤나 낡아있었고,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좌석의 쿠션에는 구멍이 나 있었고 문의 손잡이는 뜯겨나가고(?!) 없었다. 다행인 것은 잘 잠기기에 주행 도중 사람이 튕겨져 나가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 불행인 것은 안에서는 열 방법이 없다는 것. 그래서 택시 기사는 본의 아니게 매너남이 되어야 했다. 손님이 내릴 때에는 그는 운전석에서 나와 차 문을 열어줘야 했었기 때문에. 손님들은 그 매너에 즐거워했을까 그 이유에 기가 막혔을 까. 

어찌되었든 우리는 즐거웠다. 이상할 정도로.

 시내로 들어온 우리는 삼촌 - 조카 택시 콤비와 열렬하게 인사를 나누고 다음 목적지의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여행사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나 B&B에서 머물러왔던 우리는, 그래도 한 군데 정도는 괜찮은 호텔에서 머물고 싶었다.
 

 공산주의 특유의 '우리네' 관료주의로 오래 걸리고 답답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여행사에서의 호텔 예약 과정은 이외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아니 오히려, 예상했던 가격보다 더 싸게, 없던 조식과 저녁식사까지도 포함되는 옵션으로 예약을 해 주겠다고 선뜻 직원이 나서는 바람에 나는 짐짓 의심이 들 정도였다. 'Too good to be true' 라고 했던가. 그래도 큰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그 직원이 알려주는 옵션으로 호텔 예약까지도 마칠 수 있었다. 이 직원의 친절과 예상보다 훨씬 저렴했던 옵션은 하루가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무튼,

 여행사 예약까지 미무리하고 트리니나드의 공식 일정(?)은 다 마무리가 되었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나면 짐을 싸고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 그 아름답던 해프을 떠나야 한다니, 생각하면 아쉽지만 기억이 아름다울 때 돌아서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그렇게 마음을 다 잡고 나와 아내는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낮잠을 잤다. 물놀이 뒤의 낮잠,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이다.




4.

바깥 복도에서 달그락달그락, 접시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시간이 저녁시간이 되었다. 아침은 꽤나 괜찮았으니 이 숙소의 저녁은 어떨까. 쿠바 밖에서 이케아 가구까지 공수해서 숙소를 꾸밀 정도로 수완가인 집주인이니, 식사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식전 샐러드와 수프...). 샐러드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이었다...게다가 소스는, 소스는 어디 있다는 말인가. 수프는...지금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그 맛이 기억나지 않는 맛이었다. 맛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맛이 있지도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불모(不毛)의 맛이라고 할까. 나와 아내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장과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다.


그 다음 메인메뉴. 아내가 주문한 '피쉬 앤 칩스'인데...접시 가득 쌓아주는 캐나다의 감자튀김과 비교할 때 그 양이 너무도 적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를 튀겼다는 것 정도? 문제는 사이드가 아니라 메인. 생선전에서 튀김옷이 떨어져나간 생선살만 모아 놓은 듯한 이 접시는...어떤 의미에서 고향을 생각나게 만들었었다. 명절이 끝나는 시점, 피곤하셨던 어머니가 제사상에 올리고 남은 음식들을 몽땅 쓸어 모아 대충 차린 한 상에는. 품질 부적격으로 상에 오르지 못한 생선전들이 홀딱 껍질을 벗은 채로 등장하곤 했다. 그게 바로 저 모양이었다. 아내의 표정은 굳어졌고, 나는 내가 그 요리를 주문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등장한 내 요리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주문한 건 '치킨앤 프라이' 였는데... 했다. 치킨 한 마리가 닭 다리 딱 두 개로 구성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게다가 그 닭다리도 너무 바싹 마른 것 같지 않나? 언뜻 보면 카리브해의 해적 깃발 같아서 웃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역시나 쿠바의 요리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주인장이 애써서 해준 요리이니 나는 접시를 깔끔히 비우긴 했다. 하지만 정말, 그 주인장에게는 혹시 해외에 가면 맛집 탐방을 해서 음식에 대한 기준을 높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나는 애싸 집어 삼켰다. 왜냐하면, 트리니나드는 인생에서 언젠가는 다시 올 것 같았고 다시 온다면 이 숙소에 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굳이 저녁을 여기에서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결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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