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6일차:Cienfuegos,복서와 뱃지, 그리고 시가 - 쿠바(Cuba)


 이번 여행지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내일 아침에는 정신없이 공항으로 가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야겠지. 무언가를 볼 시간도, 살 시간도 없을 것이다. 물론, 투덜거리고 짜증 낼 시간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마지막 시간 만큼은 즐거운 감정으로 색칠하고 싶었다. 가기 전에 조금이나마 많은 것을 알고 싶고, 얻고 싶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새벽같이 일어나 바깥으로 나섰다.




1. Good morning, Cienfuegos 

 일단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호텔 부터 돌아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식당, 수영장, 호텔바, 기념품 가게 등등 많은 곳이 문이 닫혀 있었다. 혹은 원래부터 문이 닫힌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불이 켜져 있던 곳은 단 한 곳, 카운터 뿐. 덕분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호텔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호텔의 루프바는 나름 명물이라고 어제 호텔 직원에게 들었던 것 같았다. 아침부터 술을 마실 생각은 없지만 경치가 궁금해서 올라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호세 마르띠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마도 이 도시의 주요 명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팟이 여기가 아닌가 싶었다. 밤에는 어땠을까.

광장을 본 김에 나는 그곳까지 산책을 가보기로 했다. 

 광장은 조용했고 몇몇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비둘기 모이를 주고 있었다...라는 말로 시작해야 할 시간과 날씨인데, 내가 목격한 풍경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침 고요 대신 췻췻 하는 기합 소리. 저 멀리서도 땀 냄새가 풍길 것 같은 격렬한 움직임. 새빨간 트레이닝 복을 입은 복서 한 분이 광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아주 열심히 쉐도잉을 하고 있었다. 그는 원투 라이트 레프트 어퍼컷. 원투 라이트 레프트 어퍼컷, 이 다섯 동작을 췻췻췻췻췻 다섯 번의 기합에 맞춰 하면서, 광장의 한 편에서 다른 한 편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쿠바의 무명 복서라. 그러고 보니 멕시코를 위시한 중남미 국가에서는 좋은 복서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성당 앞의 사자는 그런 복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격려하는 듯 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이 사자는 꽤나 잘 만든 조각이었다. 공산주의 혁명 이후에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조각이었다. 어찌하여 이 조각이 여기 서 있을까.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이런 걸 보면서 '이건 어느어느 시대의 누가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고 이야기 하고 싶기에 나는 공부 - 혹은 덕질 -을 한다. 이 사자도 내 호기심의 대상이긴 했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고 있다. 게으름이여, 게으름이여.

이런저런 생각을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하고 있으니 어느덧 아침 시간이 되었다. 나는 호텔로 돌아가 아내를 깨운 뒤 밥을 먹으러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호텔 조식은 언제나 랄랄라 하는 기분으로 식당을 향하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약간 걱정이 되었다고 할까.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앞에 등장한 과일 샐러드의 저 아름다운 위용을 보라. 차라리 과일을 쌓아 놓고 뷔페식으로 퍼 먹는 것이 양적인 만족감에서는 더 좋았을 것이다. 이후 등장했던 달걀 요리와 빵 등의 사진은...도저히 올리기가 그래서 생략하기로 하겠다. 김영하 아저씨가 그랬지. 맛없고 좋지 못한, 하지만 인상적인 식사는 좋은 글 감이 될 수 있다고. 과연, 이 호텔의 식사는 여행기를 쓰기에는 참으로 좋은 소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감사해야겠지.




2. 

 비아술도 택시도 예약하지 않은 우리는, 서둘러 이곳을 떠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여행지마다 뱃지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나는 적당한 배지와 기념품을 여기에서 사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와 같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가이드에서 말하기를 '보물같은 옛 서적과 기념품을 사려면 이곳으로 가라'기에 찾아가 본 서점 및 골동품점'. 작고 아담했다. 문을 넘어 들어가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더라. 물건(?)을 좀 보러 왔다고 했더니 높은 톤의 목소리로 안쪽의 남편을 불렀다. 그랬더니 신나는 표정으로 주인장이 나와 우리에게 이런저런 물건의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떠벌떠벌, 조금은 안타까운 영어로 우리에게 영업을 하고 있는 그를 그의 아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더니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여기서 직감했다. 아, 저 아주머니는 남편이 골동품 가게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장식장에는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옛 물건들이 가득했다. 오랜 시가 박스, 회중시계, 혁명 용사들이 사용했던 물건들, 공산주의 프로파간다 뱃지(!) 등등. 전반적인 가격은 제법 높은 편이었지만 뱃지 같은 작은 물건의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나는 그중 적당한 것 하나를 골랐다. 그랬더니 주인장이 안쪽의 아내에게 뭐라고 말을 했고 그녀는 다시 나와 나의 뱃지를 누런 종이에 싸기 시작했다. 물건이 팔렸으니 좀 누그러진 표정이긴 했으나 그 여자는 여전히 무언가가 불만인 듯 했고, 이제는 물건이 아니라 가게 자랑을 하기 시작한 주인장에게 결국 한 마디 크게 소리질렀다. '아 그러니까 이 비싼 돈 주고 가게를 빌렸으면 카페 같은 것 하지 무슨 골동품 점이냐고!'

어딜가도 괴짜는 바가지를 긁히기 마련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주인은 멋쩍은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했고, 나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들을 그에게 명복을 빌어주었다. 개인적으로 나도 카페 보다는 골동품점을 했을 것 같다.

이런 가게는 사업의 수단이 아니라 '꿈'의 영역이라고.  

지나는 김에 눈에 들어온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 코펠리아의 간판. 그 위의 프로파간다 문구가 있는 줄 몰랐는데 뭐라고  써 있는 건가?




3. 

 산책을 끝내고 돌아온 뒤 우리는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비교적 빨리 짐을 싼 나는 뱃지 외의 다른 기념품을 구하고 싶어 다시 바깥으로 나섰다.

씨엔푸에고스에는 꽤나 큰 쇼핑가가 있었고, 관광객 뿐만 아니라 다른 쿠바 사람들도 각자의 물건을 사기 위해 분주했다. 그 중 눈에 띄는 풍경은 배급되는 우유를 받기 위해 가게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행렬. 여기는 아직 우유를 배급하는가 싶었다. 그 모습이, 맞은 편에 사람은 커녕 개미 한마리도 보이지 않은 고급 의상점의 풍경과 너무도 달랐다.  

과연 이 분들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어느 쪽이든, 행복하세요.

기념품 가게는 많았지만 나는 무엇을 살지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그러다가 결국, 적당한 가격으로 시가 박스를 샀다. 시가 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도 담아둔다는 핑계를 마음속으로 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시가 박스에 시가가 없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평생 피우지도 않을 담배를 사러 시가 판매점을 방문했다. 

다행인지, 시엔푸에고스에는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가 가게가 있었다.  

어두운 색의 목제와 유리로 만들어진 장식장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시가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 통에 100 CUC 정도 하는 저렴한 친구 부터 한 대(!?)에 300 CUC 정도 하는 하이엔드 시가도 있었다. 깨내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사지도 않을 물건 보여달라고 하기에는 간이 너무도 작은 나는 여기저기 혼자서 뒤적이다가 찾아낸 한 대 단위로 파는 시가를 각각 다른 종류로 3대 정도 샀다.

그런데 그렇게 담배를 고르고 있는 나를 보고 한 중국계 미국인? 캐나다인?이 다가와 시가에 대해서 잘 아냐고 물어 보더라. 아니 나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했더니 정말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보더니, 이내 납득한 듯 자신도 담배는 안 피우지만 친구 중에 시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도무지 뭘 사야 할 줄 모르니 자기를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하지만 나도 뭘 모르기는 마찬가지라 곤란했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던 - 혹은 아는 채를 하고 싶었던 나는 내가 샀던 시가를 보여주면서 한 대 단위로 판매되는 시가의 장점과 돌아다니면서 알아낸 가격의 격차를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가 산 시가의 구성에 만족한 듯 그것과 똑같은 시가를 6대 정도 사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더라.

그 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가도 공부를 좀 해야 겠다고.




4. 

원하는 시가를 얻고 득의 양양하게 숙소로 돌아간 나는 아내와 함께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비아술 예약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터미널로 향하는 짐을 든 관광객을 보면 당연히 택시 기사들이 영업을 해 올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고 그 예상은 딱 맞아 떨어졌다. 우리는 비아술 가격보다 저렴하게 택시를 구할 수 있었고 신속하고 편하게 하바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는 도중, 날씨는 흐려졌고 깔끔했던 공기는 다시 자동차의 매연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질 법도 한데 오늘 밤이 쿠바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이 검고 뿌연 하늘의 얼룩들이 반갑기도 했다. 과연 나는 하바나와 화해를 하고 쿠바를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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