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6일차:Havana,You dirty little lover - 쿠바(Cuba)


 택시로 스페인 대사관 앞에 내린 우리는 곧 숙소로 향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지만, 이 짐을 들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이 나라에 남아있을 시간도 이제는 반나절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전에, 나는 이 도시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 근처 광장까지 하수와 오줌을 뚫고 걸어야 하는 그런 도시' 로 내 기억에 남기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나와 아내에게는 각각 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내는 'Havana 1791'의 향수를 한 병 더 사고 싶었고, 나는 쿠바에 와서 6일이 지나도록 듣지 못했던 '제대로 된' 쿠바 밴드의 연주를 칵테일을 마시면서 '적당한' 가격으로 듣고 싶었다. 이날이 지나면 나는 그 음악을 유튜브에서나 찾아야겠지. 이 날, 이 밤이 마지막 기회다. 함부로 보낼 수는 없지. 

그렇게 우리는 약간은 비장한(?) 각오로 길을 나섰다.




1.

 헤어질 때가 되면 그렇게 싫던 사람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누가 그랬었나. 혹은 막 도착했을 때와 다른 루트, 다른 시간에 이 거리를 걸어서 그런가, 이날 저녁 우리가 걸었던 하바나의 거리에는 신기한 것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수두룩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니면 트리니다드나 시엔푸에고스 같은 시골, 혹은 작은 도시에서 보낸 3일이 나의 관점을 바꿔 놓았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날 마주 했던 하바나의 사람과 사물들, 스페인 식민지 양식의 요새 안에 자리 잡은 경찰서, 젊은 화가들이 꾸려나가던 영세한 아트 갤러리, 옥수수를 그대로 물통에 빠뜨려 삶아 팔던 거리의 마약 옥수수 장수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로웠고 각자의 매력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왜, 도대체 왜?
 그 빛나는 거리의 실루엣들 사이로, 저물어 가는 해와 반대로 에너지가 넘치는 군중들이 여기저기로 뻗어나가고 있었다.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로 자갈이 깔린 올드하바나를  또각 거리며 나아가든 관광객도, 군용 반팔티에 짧은 팬츠를 입고 타이어로 만든 듯한 샌달을 신고 춤 추듯 알 수 없는 장소로 뛰어가던 청년도, 그리고 그 모습을 광장 벤치에 앉아 흐뭇한 웃음과 함께 지켜보던, 힘껏 지팡이를 움켜쥔 노인도, 그 모든 것이 에너지가 넘쳤고 매력적이었다. 이날 저녁, 그 흐린 하늘 아래의 거리에 무엇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인가.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조된 분위기에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향수 가게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방황했다. 즐겁게, 약간은 멍한 기분으로. 그 때, 저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림. 그 찢어짐. 나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건 심상치 않은데, 나는 생각했다. 노느라 정신 없는 사람들은 그 큰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지만 나는 곧 큰 비가 올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적당한 곳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비를 피하자고 했고 그런 그녀는, 조금은 비싸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을 추천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El del Frento가 되시겠다.




2. El del Frento

 전반적으로 쿠바에서는 식사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딱 네 끼 정도가 괜찮았다. Rumrum의 칵테일과 돼지 통구이, Papa Ernest의 샌드위치와 레몬파이, El biky의 아침, San Jose의 저녁. 하지만 이건 어디 까지나 '밥'이란 관점에서  내린 평가였다. Fine dining에 가까운,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을 식사는 지난 6일 동안 먹어보지 못했다. 당연하지. 나는 식사에 대한 예산을 박하게 잡았으며,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 나라의 Fine dining에 대해서는 상당히 박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 누가 맛없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음식에 많은 돈을 쓰겠는가?

하지만 이 날 저녁, 나는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곧 소나기가 내릴 것이었고, 여행의 마지막 날, 대충 끼니를 때웠던 지난 날들로 인해 식사에 배정했던 돈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날의 그 거리에 가득했던 마법 같은 고양감은 왠지 뭘 찍어도 잘 걸릴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물론 객관적인 근거도 있었다. 이 레스토랑에 대한 평은 다 좋았다.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소위 '댓글 작업'을 업주가 했다고 하자. 그래도 모든 댓글을 다 조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번역기가 개발새발 써 놓은 한글이 아닌, 올바른 문법과 훌륭한 문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한국인의 평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 댓글의 이런저런 내용은 다 생략하고 딱 한 문장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가게의 '소스'는 하바나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수준. 소스만 드셔도 돈이 아깝지 않을 거에요...'


 ...이런 말을 들으면 다른 건 몰라도 소스는 먹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러니 갈 수 밖에. 가서 먹어볼 수 밖에.

 그렇게 찾아간 엘 델 프렌토 - 라고 읽는게 맞나? - 의 첫인상은 괜찮았다. 레스토랑은 2층과 룹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룹탑 - 이라 읽고 옥상이라 불러야 겠지 - 에 있었기에 2층에는 빈자리가 있었다. 비를 피하러 온 내가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옥상으로 가지는 않겠지? 나는 2층의 아주 적당한 구석자리를 차지한 뒤 칵테일을 주문하고 천천히 내부 인테리어를 살펴보았다. 정성과 돈을 들여 꾸민 흔적이 역력했다. 스테이크는 무려 '뉴욕'식으로 굽는다고 벽에 써 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과 자부심이 적정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제법 괜찮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우리가 자리를 잡고 가게 구경을 하는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을 찢는 소리가 울리고 곧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흡사 양동이로 쏟아 붓는 듯한 그 폭우에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음악은 꺼지고 여기저기 뛰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몇 무리의 관광객들이 뒤 늦게 레스토랑으로 올라왔다가 자리가 없어 거절 당했다. 룹탑에 앉아 있다 쫄딱 젖은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왔으나 역시 자리가 없어 강제 퇴장. 나는, 좀비의 습격을 미리 예상하고 안전한 은신처로 잘 대피한 것과 흡사한 만족감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비에 쓸려(?)나간 거리에는 정적이 찾아오고 오직 비내리는 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레스토랑안에서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 자기 식기와 금속 찬구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이 조용한 세상. 맘에 들었다.

그렇게 한 껏 행복감에 빠져 들고 있자니 주문한 칵테일과 음식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무에비엔, 무에비엔. 



다이키리. 가지 째로 꽂아넣은 애플민트가 스펙타클했다. 큼직하게 썰어 꽂은 라임과 병을 휘감고 있던 라임껍질 장식도 멋있었다. 게다가 양도 많고, 술도 듬뿍 쏟아넣은 볼륨감이 넘치는 한 잔 이었다. 이 가격에! 다른 건 몰라도 쿠바의 칵테일은 세계최고 수준으로 인정하겠다.
 
 그러다가 문득, 테이블 한 켠의 소스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나는 이 소스가 궁금해서 여기 온 것이 아니었는가?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건만 나는 칵테일의 안주로 소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스푼에 부어 찍어 먹어본 소스는 세상에, 정말 맛있었다. 달콤하고 새콤하면서도 매콤하고 그 모든 맛에는 자연스러움이 넘쳤다. 과일과 향신료가 아주 적절히 조화를 이룬 놀라운 밸런스. 나는 불현듯 소스병을 가방에 쑤셔넣고 싶었다. 따로 판다면 사 들고 가서 성분 분석을 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팔지는 않더라고.

나는 아쉽지만 어떻게든 그 기적적인 맛을 머릿속에, 혹은 혀 위에 남기기 위해 소스를 먹고 또 먹었다. 하지만, 지금 캐나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맛은 되살릴 수 없었다. - 최근 들어 느낀 건데, 소스에 대한 기준이 올라가면서 나의 소스 만드는 솜씨는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다. 애석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소스를 퍼먹고 있자니 전채가 등장. 팔라펠이다. 쿠바의 팔라펠은 어떨까. 한입 물었을 때 겉은 아사삭 속은 고소. 게다가 이런 튀김은 지금껏 퍼먹은 소스와 환상의 궁합이지. 나와 아내는 접시에 소스를 잔뜩 뿌린 뒤 팔라펠을 이리굴리고 저리굴리고, 소스를 잔뜩 몯혀서 먹었다. 그러다가 그냥도 먹어보고. 다시 굴려서 먹어보고. 그러다 보니 접시가 텅 비었다. 

다행히 접시가 텅 비기 전에 다음 요리가 등장했기에 우리는 쉼없이 행복감을 고조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건 세비체로 기억한다. 쿠바에서는 세비체를 어떻게 해석할까? 역시나, 통째로 썰어 올린 바질이 화끈하다. 나는 해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 맛을 보진 않았으나, 아내의 평에 따르면 꽤나 괜찮다고 했다.  

 아내의 세비체에 견주어 내가 주문한 슈니첼. 잘 두들긴 고기. 얇고 바삭하게 잘 튀겨낸 튀김옷. 허허, 이런 솜씨가 있나. 게다가 덤으로 준 스파게티도 맛있었다. 고명(?)으로 살짝 구워낸 버섯도 그 구운 솜씨가 꽤나 괜찮았다. 아, 역시 쿠바라도 돈을 투자하면 이런 요리사를 구할 수 있구나. 나는 이 레스토랑에서 하바나, 아니 쿠바 요식업계의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이 식당의 하이라이트는 다름이 아니라 이른바 '뉴욕식 돼지 스테이크' - 솔직히 나는 뉴욕식 스테이크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햄버그로 다져서 고기가 나오는 판에, 이 레스토랑의 요리사는 어려운 재료 수급에도 스테이크의 본질에 가까운 요리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고민한 흔적이 충만한 한 접시를 내 주었다. 통 돼지살을 적정한 두깨로 수평으로 펴 내어 구워낸, 그 목살 스테이크는 그 요리에 기대하는 육즙과 육질을 잘 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디핑 소스. 그리고 딱 적정한 수준으로 구워낸 양파와 토마토와 감자와 아스파라거스. 이게 바로 제대로 된 요리사가 낸 스테이크라고, 쿠바에도 스테이크가 뭔지 아는 요리사가 있다고 외치는 듯 했다. 물론, 비쌌다. 약간 아플정도로. 하지만 그 값을 하는 한 접시였다. 나는 아주 만족했다. 

 내친김에 디저트까지 주문할까 했는데, 아내가 극구 만류했다. 기념품을 사야하는 우리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한 것이겠지. 그래서 우리는, 비가 잦아들 때까지 남은 사이드와 소스를 쩝쩝 맛을 보다가 적당한 시점에 밖으로 나섰다. 마냥 여기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그렇게 나가는 우리에게 아리따운 웨이트리스가 꽃 한 송이를 건네더라. 좋은 여행되세요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이름없는 열대의 꽃 한 송이지만, 나가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쿠바에도 이런 레스토랑이 있었구나.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돈을 들여야 이 기분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의 하바나가 어떤 곳이었는지 나는 모르니, 나의 이런 기분이 공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3.

 꽃 한송이를 들고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많이 잦아 들었지만, 아직도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퍼 부은 그 비로 인해 도시는 깔끔해 보였다. 거리에는 물 웅덩이만 좀 있을 뿐, 쓰레기도 냄새도 없었다. 그리고 짙게 내린 어둠은 이 거리의 낡고 방치되었던 상처를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다. 어두운 클럽에서 얼큰하게 취기에 오른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면 전부 미인으로 보인다고 누가 그랬던가. 지금 하바나의 시내가 그랬다.

이런 나의 심적 변화의 또 큰 이유는 내가 비에 쫄딱 젖어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이 올줄은 몰랐던 나는 작은 우산과 비옷 한 벌만 가지고 나왔었고 그 우장은 전부 오롯이 아내에게 제공되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우산을 좋아하지 않기에 뭐 곧 그치겠지 하고 줄곧 비를 맞으며 기념품 가게를 찾았었는데, 시간이 꽤 지나자 말 그대로 바지까지 흠뻑젖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나니, 그냥 모든게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구정물이 좀 튀면 어떤가. 어쨋든 홀딱 젖었는데. 기념품 가게를 못 찾은들 어떤가? 어차피 시간도 다 흘러가 버렸는데. 불교 용어로 이야기 하자면 레스토랑에서 나오고 거리를 헤매이면서 나는 그냥 다 내려놓아버렸다.

그러니 행복했다.

나와 아내는 이날 결국 기념품을 사지 못했다. 어두운 골목은 낮에 기억했던 구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가 다가왔고 이리 돌고 저리 지나치고 하다가 우리가 그 향수 가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하지만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내도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우리는 어께를 한번 으쓱하고, 이날 저녁의 또 다른 목적인 '음악'을 듣기 위해 다시 거리로 다섰을 따름이었다. 

비가 오니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니 술집에도 손님이 없고 손님이 없으니 음악도 없는 것이겠지. 낮에는 서로 경쟁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던 가게들이 이날은 조용하게 - 혹은 우울하게 - 영업을 하고 있더라. 다소 슬픈 표정의 종업원들과 주인장들은 구석에 서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오직 서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만이 이런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따름이었다. 우리는 그 가게들을 지나고 지나고 지나서, 어딘가에 들리는 음악을 따라 이 골목 저 골독을 돌아다녔다. 그것은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비와 어둠에 빠진 하바나는 매우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였다...그리고 나는 이쪽에 속한 '그녀'가 더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마침내, 우리는 그 빗속에서도 꿋꿋하게 밴드를 불러 조용히(?) 놀고 있는 술집을 찾을 수 있었다. 더 돌아다녔음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싶을 타이밍이었기에 나는 더욱 만족스러웠다.  


 밴드 앞에는 단체로 놀러온 여닐곱명의 관광객들이 큰 테이블을 통으로 차지하고 자기들이 상상해 왔던 쿠바의 바에서 해야할 것들을 하나하나 하고 있었다. 남녀 노소 모두 커다란 시가를 한 대씩 물고 불을 붙이고 빨아들였다 내뱉고, 그리고 누군가는 미소를 짓고 누군가는 기침을 토해내고, 그 모든 과정은 한 손에 들린 최신형 모바일폰에 녹화되거나 시진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럼과 쿠바의 칵테일이 우루루 테이블로 몰려나오고 그들은 과장된 웃음과 환호성으로 그 잔을 환영한 뒤 과장된 몸짓으로 술을 마시고 잔을 뒤집곤 했다. 전형적인 행동양식을 보이는 전형적인 개체들을 관찰하는 것도 이외로 재미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즐거웠던 건, 밴드의 신입 보컬을 보는 것이었지.

연령대와 헤어스타일 - 아프로 머리! - 에서 확연히 다른 멤버와 차별화된 분위기를 풍기던 그 기타리스트겸 보컬은 다른 멤버의 코치와 충고를 받아가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관타나메라'로 시작하는 오소독스한 쿠바의 노래에서 약간은 현대적인 팝송까지. 관록 넘치는 트럼펫과 베이스, 드럼이 적절하게 서포트를 해 준 덕에 그 아프로의 보컬은 자유롭게,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상외하는 분위기를 무대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좋은 연주였다. 그리고 맘에 들었다. 그 신구의 조화가, 이 모습은 흡사 지금 변화하는 시대에 조금씩 문을 열어가고 있는 쿠바가 바라지 마지 않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이상향을 그려낸 듯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 위로 시가 연기가 흐르고 술의 향기가 공기를 채우고 사람들의 즐거움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래, 즐거움 밤이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라니 너무도 아쉽지만 만족스러운 엔딩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이제 집에 가야할 때라고 직감했다. 갑자기 피곤해지기고 했고, 몸이 으쓸으쓸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돌아가자고 이야기 했다.

 돌아가는 길 나와 아내는 많이 웃고 많이 이야기 했다. 어둠은 더 짙어졌지만 비가 그쳐서 그러지 사람들이 드문드문 거리로 나오고 있는 듯 했다. 그래, 밤은 짧으니 우리는 걸어야 겠지. 하지만 나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밤에 만난 하바나라는 아가씨는 너무 아름다웠고 환상적이었기에, 곧 해가 뜨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그녀의 모습에 실망하기 전에 돌아서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자. 이제 가야겠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고, 샤워를 하고 짐을 싸고 곧 침대에 들었다.

침대에서 잠으로 떨어지기 전, 머리 속에 '좀 더 일찍 이렇게 해 주지 그랬어.' 라는 문장이 떠 돌았다. 누가 누군가에게 한 원망일까. 내가 하바나에게? 하바나가 나에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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