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빨간머리앤의 생가와 잊을 수 없는 피쉬앤칩스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1.

 이른 아침,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적잖이 돈이 들어간 숙소에서 편하게 잠을 잤기 때문일까 나와 와이프의 컨디션도 매우 좋았다. 기운차게 일어나 숙소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우리는 신속하게 짐을 꾸리고 다음 목적지인 케번디시Cavendish)의 Green Gables Heritage Place로 향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에게는 <빨간머리 앤>으로 익숙한 캐나다의 소설, <Anne of Green Gables>는 바로 이곳, PEI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리라. 그나저나 일본에서는 왜 이 소설의 원제를 바꿔 '빨간머리  앤(赤毛のアン)'으로 했을까...라는 생각을 차 안에서 해 봤는데... 아마도 'gable'에 해당하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지붕'으로 퉁 치기에는 의미하는 바가 너무 다르고, 박공(牔栱)이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누가 알겠는가? 나 같은 괴짜나 알아 듣겠지.

 아무튼,

 어릴적 한창 보았던 세계명작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 아직도 나는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머리 앤'이라는 그 추억의 주제가를 제법 많이 기억하고 있다. - 나는 언제나 PEI에 오면 그 배경이 되는 캐번디시에 꼭 한번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 PEI를 찾는 일본 관광객의 상당수도 나와 같은 목적으로 여기에 온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던 그 장소를 찾아가는 오늘, 나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적잖이 걱정하기도 했다. 괜히 그곳에 가서 실망하지는 않을지. 추억은 추억대로, 그냥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 상상 속의 모습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가보고 해보고 실망하는 쪽을 선택했다.




2.

 햇살과 하늘이 아름답고 선명한 시골길을 달리는 건 언제나 즐겁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마냥, 어디까지고 달리고 싶은 기분. 이 곳 캐나다의 도로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그런 충동을 느꼈던가. 음악과 낡은 차,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는 이 쭉쭉 뻗은 여행길. 그래서 캐나다인들은 여유럽고 너그럽고 친절한가 보다. 돈이 많지 않아도 그들은 아주 쉽게 행복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 남짓을 달리다 보니, 목적지에 도달한 듯 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공사를 하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도로의 아스팔트를 다시 깔고, 길 가의 배수로를 정비하고, 주차장을 넓히고 있는 모습들. 여기저기 놓여있는 공사장 표시판과 접근 통제 테이프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덧 구글맵이 도착했다고 알리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보니 꽤나 넓은 주차장 가운데 우리의 작은 차가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꽤나 새것으로 보이는 큰 입구가 보였다. 설마 문닫지는 않았겠지? 불안한 마음으로 나와 아내는 그곳으로 가 보았는데...알고 보니 최근들어 'Green Gables Heritage Place' 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서 좋은 점은,

- 깔끔한 화장실, 기념품점, 식수대, 휴식 공간을 갖추고 있다는 점! 사실, 이전에 누군가가 올린 블로그에서 여기 화장실 시설이 그렇게 깔끔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봤기에 나는 적히 걱정을 했다. 우리 마나님은 화장실이 더러운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

하지만 나쁜 점이 있으니,

- 표값이 비싸졌다.
- 곧 해결 되겠지만, 공사중이라 여기저기 걸려있는 접근금지 테이프나 '공사중' 사인이 '빨간머리앤'의 풍경에 푸욱 빠져들고 싶은 내 시야에 심히 거슬렸다. 덕분에 집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고, 여기 사람들도 할 건 해야겠지.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 잡으면서 정리 중인 길을 지나 빨간머리앤의 집으로 다가갔다. 




3.

 집의 뒷 마당에는 앤과 매슈가 타고 다녔을 것이라 '상상'되는 마차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소설에 등장하는 앤이 사랑했던 많은 산책로들로 가는 길들이 뻗어 있었다. 그 이름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드디어 앤의 집에 왔구나 하는 것이 실감 나서 정말 감격스러웠다. 이 순간을 사진에 잘 남기고 싶어 나는 집 앞쪽으로 갔는데...

 저 공사장 테이프. 저 공사장 테이프가 심히 거슬렸다. 몸을 마당에 붙여도 보고 뒤로 떨어져도 보고 각도를 달리해 봐도 보인다고, 보인단 말이다! 그렇다고 저 앙증맞은 초록색 삼각형 'Gable'을 빼고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 주변 사람들만 없다면 다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정도로 타락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혀 차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는 죄 없는 공사책임자에게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으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의 불만은 집안의 광경에 쑤욱 사그라 들었다. 

그전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가자.

- 빨간 머리앤의 '생가'라고 라고 제목을 짓긴 했지만 소설 속의 캐릭터가 어찌 태어난 곳이 있겠는가. 굳이 태어난 곳을 쓰자면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집필한 곳을 써야겠지. 하지만 이곳은 그녀의 집이 아니라, 그녀가 소설을 쓸 때 앤의 집으로 '참고'한 곳이다.

- 우리가 '빨간머리앤'이라고 알려진 주근깨 소녀의 이야기는 총 7여편으로 이루어진 앤의 일대기 중 한 편일 뿐이다. 작가는 앤의 일생을 6세 부터 75세까지 다양한 관점과 배경으로 집필했는데, 이 집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 중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 이 집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사촌인 맥네일 가족의 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문에 따르면 맥네일의 친척들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해 대었기에 그녀는 상당히 괴로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안의 집을 배경으로 쓴 걸 보면 나로써는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튼,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한껏 낮추는 외부와 달리 집안은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다. 집의 현관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거실과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좌,우로 나 있었다. 하지만 내 맘대로 돌아볼 수는 없고, 지정된 동선을 따라 우리는 1층 거실 -> 2층의 방들 -> 다시 1층의 부엌과 작업실 등의 순으로 돌아봐야 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보게 된 거실의 풍경은, 가구의 가짓수는 적었지만, 제법 화려했다. 화려한 양탄자와 소파, 안락의자와 레이스가 들어간 의자 커버 등등. 내가 기억하는 앤은 좀 더 가난한 집에서 살았던 것 같았지만 내가 앤 전문가도 아니고 소설의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까, 이렇게 꾸며 놓은 것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하지만, 거실에서는 아직 '스파크'가 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 방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저 검은 모자와 같은 색의 조끼와 바지. 소박한 실내 장식. 세면대 옆에 놓인 면도기에서 나는 이 방이 그의 방임을 알 수가 있었다. 앤의 영원한 아군. 매튜 아저씨(Matthew Cuthbert)의 방이었다. 부끄럼을 많이 타지만 자상하고, 소심하지만 앤을 위해서는 이런저런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던 그 양반. 별로 볼게 없던 이 방의 그 검소함과 단순함이 오히려 그를 잘 나타내었기에 나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이 정도 센스가 있는 사람이 있으니 다음 방도 볼만하겠네 하고...말이지. 

그리고 역시 다음 방도 잭 팟. 마음에 들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화려한 장식의 벽지, 집 중앙 2층에 있어 언제나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따뜻한 방. 그리고 침대와 방문 가득 걸려 있는 사춘기 소녀의 드레스들. 옷장 문 뒤에 빼꼼 숨어 있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밀짚모자. 의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던가 드라마였던가에서 봤었던 그 가방. 그렇습니다. 여기가 드디어 주근깨 빼빼 마른 그녀, 앤 셜리(Anne Shirley)의 방인 것입니다.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바빴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눈에 들어오자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 나이가 나이 인지라, 어릴 적에 봤던 애니메이션에서 생각나는 장면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앤이 수업용 석판으로 그녀를 '홍당무'라고 놀린 길버트 블라이스(Gilbert Blythe)의 머리를 내려치는 그 장면을. 그리고 이 방 한 구석에 그 석판이 있었다. 아, 난 이런 디테일이 너무 좋다.

비록 석판으로 맞았지만 길버트는 이후 앤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그는 너무 멀고도 험한(?)과정을 지나야 했다. 일일이 다 쓰자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그 이야기는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앤의 방 옆에는 옷을 만드는 도구들이 있었다. 실을 짓는 물레와 발로 움직이는 재봉틀. 물레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로 잣는 재봉틀은 어릴 적 우리 할머니의 집에도 있었지.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어떤 옛 물건들은 비록 불편하고 볼품이 없을지라도 나에게 있어 참 따뜻하게 다가온다. 저런 타입의 재봉틀이 바로 그런 물건들 중 하나이며, 아마도 내가 영원히 눈을 감고 불꽃 위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그 느낌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2층 마지막 방의 주인은 바로 이 집의 안주인이자 지배자(?) 마릴라 커스버트(Marilla Cuthbert)였다. 왜일까 어릴적의 나는 그녀와 매튜를 부부로 생각했었는데, 그 둘의 관계는 자매. 그러니까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는 두 분 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 혹은 그 성격으로 인해 못했다는 - 것이지.

 검소한 옷. 전형적인 패턴의 벽지. 잘 정돈된 화장대. 깐깐하고 고지식한 그녀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그 성격으로 인해 그녀와 앤은 작품 초기에 서로 많이도 부딪혔었고, 이른바 '자수정 브로치' 사건 때에는 그 갈등이 절정에 치달았었다. 하지만 결국 만사 돌아돌아 어울림으로 마무리되는 그 시절의 소설 답게 그녀와 앤은 서로 성장해 가면서 진짜 모녀와 같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아도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나는 너무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삶을 모두 다 살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내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 방 화장대 구석에서 빛나고 있는 그 브로치를 보면서 약간은 슬픈 생각에 한 숨을 내 쉬었다. C'est la vie, C'est la vie.

주요 등장인물들의 방을 모두 둘러본 우리는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은 단연 부엌. 당시 캐나다 사람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식기와 조리 도구들이 한 방에 가득했다. 수도가 없는 시절이었기에 모든 물은 길어서 써야 했다. 때문에 싱크대가 아니라 큰 물통이 있던 모습이 깔끔해 보이기도 했지만 물 때문에 정말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방과 조리, 오븐을 한 번에 할 수 있었던 다용도 난로. 거실의 벽난로가 집 전체의 난방을 책임졌다면 이 작은 난로는 이 집의 요리를 책임졌으리라. 나는 작지만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너무 좋다. 언젠가 내가 작은 집이라도 한 채 가지게 된다면, 꼭,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이 난로를 넣고 싶다.

그렇게 집을 다 둘러본 우리는, 집 주변에 펼쳐진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4.

 집 주변의 산책길은 작고 아담했으며,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지금껏 가본 다른 국립 공원의 하이킹코스와 달리 스펙타클한 광경이 펼쳐지진 않았지만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멋이 있었다.

 작은 나무들이 들어선 숲 사이로 뻗은 산책길에는 햇볕이 많이 머물러 있었다. 그 사이로는 맑고 깨끗한 시내가 졸졸 흐르고 있었으며 풍부한 수분으로 인해 시냇가의 바위나 흙에는 이끼가 뭉성뭉성 오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밀짚모자를 쓴 앤이 검은 머리의 다이애나와 함께 걷고 있을 것 같은 그런 풍경. 우리는 이런저런 소설의 장면을 떠올리며 산책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풍경을 하나 발견했다.

 언뜻 보면 별것 없는 위 풍경에 남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냇물에 들어있던 우유를 담은 유리병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언뜻 읽은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등교한 아이들은 곧장 학교 뒤의 시내로 가서 점심때 먹을 우유병을 시냇물에 넣어 시원하게 만들어 두었다.'하는 그런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그 장면을 이렇게 진짜로 보게 되니 대단한 보물을 찾은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장소 옆에는 이렇게 그 우유병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있었다. 뭔가 대단한 퀘스트를 완료한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무엇인가 있을까 나와 아내는 주변으로 부산하게 펼쳐진 산책로를 죄다 꼼꼼히 돌아보았다. 

 도중에 우리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묻힌 묘지도 갈 수 있었고, 그녀와 관련된 장소로 추정되는 기념품 가게와 우체국인지 박물관인지 헷갈리는 곳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앤의 집과 일부 산책로를 제외한 나머지 인근 시설들은 전반적으로 뭔가 부족했다. 설명도 부족했고, 보수와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이곳이 무언가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지만 그걸 설명하는 안내문이나 사람은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새로 정비하는 도로와 산책 코스는 어설프게 꼬여있었으며, 어떨 때는 사람들이 골프를 치고 있는 골프 코스를 지나야만 했다. 국립 공원의 주변 곳곳에는 주차장과 모텔과 주유소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건 돈을 벌기 위한 장소일 뿐, 그 어떤 것도 작품과 연관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디자인이나 시설의 이름 정도는 맞춰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용두사미'까지 떨어지지 않았지만 '화룡점정'을 하지는 못한 이 곳. 언젠가 다시 올 때에는 좀 더 잘 정리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나와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올 때와 같은 길이기에 나는 굳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사고 없이 잘 가면 되지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아내가 굳이 좀 돌아가더라도 꼭 찾아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하기에 나는 그곳을 향해 떠났다. 




5. Richard's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우리가 간 곳은 작은 항구 옆에 위치한 더 작은 식당이었다. 이름도 간단하다. '리차드네 집'(Richard's)이라고 할까.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가끔 놀러 오는 해변 두 개가 있는 것 빼고는 딱히 특별한 것이 없어서 이런 곳에서도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알고 봤더니 이 식당이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오픈 시간에 맞춰가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 얼른 가자고 아내가 재촉을 하지만 뭐 진짜로 그럴까 싶어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이 작은 가게의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메뉴판에 올라있는 음식들은 애틀란틱 캐나다의 여느 바닷가 항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피쉬앤칩스, 피쉬버거, 랍스터롤, 관자 베이컨 말이 등등. 메뉴가 독특한 것이 아니면, 흔한 요리를 잘 한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아내는 랍스터롤을,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피쉬앤칩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한 20 여분 정도를 기다리자 요리가 나왔다.

 이 친구가 내가 주문한 피쉬앤칩스인데, 일단 외양부터 지금껏 먹었던 피쉬앤칩스와 달랐다. 통튀김옷에 휩싸인 채로 등장했던 다른 피쉬앤칩스와 달리 이 집의 생선 튀김옷은 잘게 부서진 튀김조각들이 촘촘히 생선에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튀김으로 이루어진 체인메일을 생선이 입었다고 해야하나? 어떻게 보면 잘 구워진 일본식 돈까스 튀김옷과 같은 느낌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튀김옷 하나하나가 굉장히 고소했고 바삭했다. 그리고 그 안의 생선살은 입에서 녹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건 완전히 접근방식이 다른 피쉬앤칩스였다. 

더하여 감자튀김에서는 송로버섯향이 가득했다. 송로버섯 기름을 감자튀김에 가미하면 정말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기법이지만 이쪽 동부 캐나다에서 그 기법을 사용하는 집을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이와 경탄 그 자체였던 메뉴. 나는 거의 넋을 잃고 이 음식을 흡입했다. 아, 차만 없었더라면 맥주 한잔 했어야 하는 것인데.

 요 친구가 아내가 주문했던 랍스터롤.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얼마나 맛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곳의 랍스터롤이 이제 그녀가 캐나다에서 먹은 랍스터 롤 중 가장 맛있었던 것으로 등록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후다닥, 이 불쌍한 친구는 삽시간에 그녀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사진이 이쁘게 나오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정신없이 먹다 보니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허.

 이 환상적이었던 한 끼를 마지막으로, 짧았지만 보람찼던 이틀 간의 PEI 여행도 끝났다. 돌아오는 길은, 모든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길이 그렇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몸은 피곤했고, 돌아가면 해야 할 것들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은 무겁기도 했다. 차는 우리가 달린 거리만큼 낡아가고 있기에 조만간 이런저런 검사를 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엔진 오일을 갈아줘야 하는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그런 고민들, 걱정들은 모두 우리가 어딘가로 갔기에 얻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딘가로 갔었기에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고, 비판하고, 그리고 추억으로 저장할 수 있었다. 요는, 인생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떠나는 길보다 아쉽고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래서 나의 여행기에서 마무리는 언제나 짧고, 어설프다. 다 쓰고 보니 이 글도 예외가 아니구만.

하지만 마무리를 잘 쓰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두번,세번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다시 떠나는 길을 생각한다. 다시 PEI로 떠날 그 길을.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그 길을. 그때 새로 마주한 PEI는 어떤 모습일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