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디 국립공원(Fundy National Park), Laverty fall,뜻 밖의 고향 계곡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1.

 어느덧 여름이 다 지나고 있었다. 1년 전 우리는 Atlantic Canada의 이런저런 도시를 지나고 있었는데 지금 나와 아내는 집안일과 회사 업무와 벗어나지 못하는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Labor day가 낀 long weekend는 또 집을 떠날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근처 몇 군데의 캠핑장을 홀로 다녀보았던 나는 주립 공원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좀 멀리 가더라도 뉴브런즈윅에 있는 펀디 국립공원(Fundy National Park)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왕 놀러가는 것 최소 2박3일은 머물고 싶었고, 노바스코샤의 케짐쿠직 국립공원의 캠핑장은 지금 보수공사 중이었기에 사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더하여, 이전에 1박 2일로 머물렀던 펀디 국립공원은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입장료와 캠핑장 사용료는 합리적이었고, 샤워 부스와 싱크대가 딸린 화장실은 깨끗했다. - 하루에 최소 두 번은 청소를 하는 것 같았다. - 경치도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공원 안에서 차가 퍼졌을 때, 지나가던 낯선 이가 jump를 해 주었던 좋은 기억이 있었다. 아내도 나의 장소 선정을 맘에 들어 했기에 우리는 일찌감치 2박 3일의 여행 준비를 착착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출발 3일 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으니 그것은 바로 날씨였다.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도 모를 열대성 태풍 하나가 갑자기 북상, 우리가 출발하는 당일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들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는 고민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목요일이 아닌 금요일에 출발, 일정을 1박 2일로 줄일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목요일에 출발, 폭풍을 뚫고 캠핑장에서 비와 함께 하루를 보낼 것인가. 꼬박 이틀을 라디오에 귀 기울여가면서 심사숙고했던 우리는, 금요일 새벽부터 날씨가 개일 것이라는 예보를 믿고 예정대로 목요일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출발하는 목요일이 되었다. 아내는 미리 짐을 챙겨두고 회사에 출근을 했고, 나는 나와 그녀의 짐에 텐트와 침낭. 3일 분의 식량과 기타 캠핑 도구를 꼼꼼히 살펴가면서 차로 옮겼다. 그리고 4시가 약간 넘은 시간, 회사 앞으로 가 아내를 태우고 우리는 북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비는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했었고 해가 넘어가면서 점점 더 거세게 내렸다. 노바스코샤와 뉴브런즈윅의 경계를 넘을 때에는 안개와 강풍도 우리를 환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깔리는 어둠에 나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갔다. 약간 긴장된 분위기의 차 안에서 여행의 분위기를 느낄 만한 것은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ABBA와 Bruno Mars의 노래 뿐, 나와 아내는 차분하게 폭우가 몰아치는 도로를 차로 나아갔다.

 굳이 이런 날 여행을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나와 아내는 약간은 들떠 있었다. 떠나지 않았었다면 더 우울했을 것이기에, 어찌 되었든 출발했으니 좋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오후 9시가 다 되어서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비가 그치지 않아 텐트를 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좁은 차 안에 에어매트를 깔고 쪽잠을 자야 했을 때도 우리는 마냥 재미있었다. 물론, 답답하고 습한 차 안의 공기 때문에 자다가 몇 번이고 일어나 시동을 걸고 에어콘을 틀었다 껐다를 반복했어야 했고, 차창을 때리는 빗 소리와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 덕에 잠을 깨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여행이지 않은가. 아직 우리는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 할 수 있을 만큼 젊었고, 그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이번 여행의 시작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 불편하기는 했었기에 비가 그친 새벽 서너시 경, 아내는 나를 걷어차 밖으로 쫓아내어 텐트를 치라고 명령했고 나는 군소리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후다닥 텐트를 쳤다. 그 안에 침낭과 매트를 몽땅 집어 넣은 나와 아내는 피곤한 나머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영화처럼 짹짹 거리는 새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2.

  하늘은 맑았다. 공기는 상쾌했고 시원했다. 시원한 비를 마신 숲은 그동안 미루어 놓은 광합성에 한창인지 엄청난 양의 산소를 내 뿜고 있었다. 그 향기, 그 신선함. 나는 단숨에 기운이 좋아졌다. 그리고 서둘러 아내를 깨워 하이킹에 나설 준비를 했다.

 가져온 밥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샤워와 설겆이를 끝낸 뒤 우리는 차를 몰고 공원 도로를 달렸다. 어제 밤 지불하지 못한 입장료를 내러 공원 입구로 향하는 도중, 바다와 절벽이 맞닿는 도로의 오른쪽으로 멋진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차를 새우고 아내와 함께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토끼가 절벽에서 껑충 뛰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처럼 보였다. 한창 숲과 산을 뛰어 다니며 비와 바람을 몰고 온 열대 태풍이 날이 맑자 자신이 왔던 바다로 토끼의 모양을 하고 돌아가는 모습이라고 할까.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에 나와 아내는 근처의 '캐나다 국립 공원 공식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그 모습을 감상했다. 이 장면은 이제 흐린 날은 끝나고 맑은 날만 계속 될 것이라는 하늘의 계시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었다.

아무튼,

 돌아가는 짓궂은 손님 배웅 잘한 우리는 차를 몰고 목표로 했던 곳으로 나아갔다. 차로 15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곳. 여기 공원은 어떻게 이렇게 큰지. 부럽다, 이렇게 해도 사람들을 먹고 살리는데 아무런 문제 없는 그 넉넉함이.




3. Moosehorn trail

  포장 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도로의 가파른 언덕 길을 5분 가량 더 달린 뒤에야 우리는 Laverty fall로 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일찌감치 왔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간 사람들의 차가 두어 대 주차 되어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Laverty fall로 바로 가는 짧은 코스. 전에 혼자 왔을 때 갔었지. 하지만 오늘 우리는 오른쪽의 Moosehorn trail로 향한다. Moose horn trail은 총 4시간 가량이 걸리는 긴 코스로 폭포로 향하는 도중 멋진 계곡와 작은 폭포 두 개를 더 볼 수 있다고 들었다. 왜 그렇게 폭포를 좋아하는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나는 폭포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trail 코스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폭포를 아래에서 봐야 하니 일단 내려가야겠지. 내려가는 코스는...처음은 좋다. 힘들지 않아서. 나중이 힘들다. 내려온 만큼 올라가야 하니. 그래도 일단 편하니 좋았다. 그리고 길이 좋았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폭풍을 뚫고 온 보람이 있었다.

풍부한 수분이 가득 찬 숲 사이로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그 시내 위의 돌에는 이끼가, 양 옆의 나무 아래에서는 버섯이 잔뜩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숲 속은 습했지만, 아직은 해가 다 오르지 않아 덥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모기가 하나도 없었다. 맑고 마른 날이면 캐나다의 숲 길에는 으레 잔 벌레나 모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날 만큼은 전~혀 벌레가 없었다. 신 나게 와하하 웃고 다녀도 입안으로 들어와 죽는 녀석들이 없다는 거지! 나와 아내는 이 쾌적한 환경의 내리막길을 경쾌하게 내려갔다. 

  가는 도중 마주친, 막 태어난 듯한 폭포. 물이 충분하지 않았을 때는 눈에 뜨이지도 않았을 작은 시내가 지금은 콸콸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그 모습에, 나는 불현듯 손을 뻗어 그 물을 받아 얼굴에, 목에, 팔을 적셨다. 그 청량감. 그 깨끗함. 막 딴 사이다 한 잔을 마신 듯한 느낌을 피부에서 느낄 수 있다니. 

내리막을 다 내려올 때 즈음 해서 태양이 치솟고 점점 숲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대지에 충만한 수분은 시원한 느낌을 넘어 이제는 '한증막'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아. 좋은 시절 다 지나갔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계곡이 펼쳐지고, 그 위로 시원한 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그 바람을 마주 보며, 계곡 옆을 따라 난 트레일을 걸어 조금씩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으며 둘러본 계곡은...왠지 낯설지 않았다. 계곡 양 옆으로 펼쳐진 산과 숲. 물결에 깎여 동글동글 반질반질 한 큰 바위들. 그 틈새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 줄기와 그 소리와 그 향기. 이 광경은 어릴 절, 아버지의 고향에서 보냈던 그 여름날의 거창, 그 산 '골짝'에서 많이 봤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어릴 적 그 골짜기에 들어설 때에는 여기에 올 때처럼 비 포장 도로를 달려야 했지. 여름만 되면 뭐 그리 서로 좋다고 아버지와 삼촌들은 큰 아버지 댁에 모여 왁자지껄 먹고 마시고 놀면서 휴가를 보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집 까운 곳에 있던 이런 계곡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튜브를 띄우고 더위를 식혔다. 그립고,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비포장 도로가 포장 도로로 바뀔 즈음, 계곡 옆에 사람 손 탄 건물이라면 조선 시대의 정자 밖에 없던 그곳에 '무슨 가든', '무슨 농원', '무슨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계곡 손 바닥 만한 평지만 보이면 대충 만든 평상이 깔리고, 어느 여름부터 수영을 하고 있자면 생전 본 적도 없는 '그 땅 주인'이 나타나 여기 텐트 치려면 자리값을 내야 한다고 대죽 거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을 대면서 여기 사는 사람 가족이라고 하면 머리를 긁으며 사라지던 그 치들이 나는 싫었다. 포장 도로 옆으로 들어서는 양식 없고 보기 힘든 간판들도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여름 휴가를 계곡으로 가는 것도 뜸해 졌었다. 돈이 있으니 평소 가보고 싶던 해외에 가보고 싶던 마음도 컸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이제 변해 버린 시골 계곡에 가는 것이 싫어졌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나는 그 때, 그 계곡은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골짝'을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이야.

그렇게 다시 마주한 골짜기는 약간은 반가웠다. 하지만 내 가슴에 차 올랐던 감정의 상당 부분은 아쉬움와 억울함 이었다. 왜 나는 이 광경을 내가 태어난 곳에서 더 보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나마 여기에서 이 광경을 다시 보게 되어서 나는 만족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생각이 불어 오른 계곡 물 마냥 내 가슴에 차오를 때, 문득 내 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를 따라오는 아내의 흐트러진 모습이 들어왔다. 그 웃음에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냥 그 생각 모두 버리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여기'에 왔지. 

나는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냐고 퉁퉁 거리기 시작한 아내를 달래면서, 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좀 더 걷다 보면 그 언젠가 내가 놀았던 것 같은 작은 자갈과 모래가 깔린 평지가 나올 것이다. 캐나다든 한국이든 자연은 다 '그러할 테니.' 거기에서 가져온 물과 밥을 먹으면서 좀 쉬자, 그러면 아내도 힘이 좀 나겠지. 그러니 가자, 가자.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목표로 했던 Laverty fall에 도달했다.




4. Laverty fall

 숲속의 물을 다 받은 듯, 폭포는 그 어느 때 보다 화려하게 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 막대한 수량으로 인해 생성된 바람이, 폭포에서 계곡 언저리까지 마치 에어콘을 틀어 놓은 듯 대낮의 열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물이 얼마나 불었는지 비교하기 위해 이전에 혼자 왔을 때의 사진을 올려 보면...


보이는가 저 몇 물기의 작은 폭포가. 저렇게 보여도 가까이에서 보며 상당히 '아름답고 우아한' 폭포였지. 하지만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이날의 폭포에는 좀 부족하긴 하다.

Fundy 국립공원의 명소 답게, 이 폭포에는 많은 하이커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발도 씻고,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하라고, 옆의 폭포 설명 문에도 써 있었기에 나도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물에 들어가 보았다. 

처음에는 입이 자동으로 덜덜 거리면서 떨릴 듯 차가운 물이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안에 앉아 있을 만 했다. 걸어오면서 땀과 열에 시달렸던 몸을 식히고 물에 뜬 채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쏴 하게 쏟아지는 물 소리와 코 끝을 스치는 바람. 좋다. 좋구나. 마냥 이대로 있고 싶었다. 내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파란 눈, 금발의 아이들이 하나둘 용기를 내어 물에 들어오더니 폭포로 갔다가 멀어졌다를 반복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륵 웃더라. 흐믓한 광경이었다.

좀 있다가 여기를 나가면 옷을 다시 갈아입어야 하고 무거운 배낭도 다시 정리해야 하고, 주차장에 세워 둔 차까지 펼쳐진 긴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아마도 다시 땀이 나겠지. 아마도 다시 힘들어지고 다리는 풀리겠지. 하지만 그건 그때 고민하자. 지금은 너무 좋다. 아 너무 좋다. 언제 느낄 지 모르는 현재의 이 행복감에 좀 더 빠져 있어보자. 

 그렇게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갔고 나는 그걸 멍하니 즐겼다.

덧글

  • 좀좀이 2019/09/23 11:22 # 삭제 답글

    구름이 진짜 토끼가 껑충 뛰는 모습 같아요 ㅎㅎ 계곡 진짜 예뻐 보여요. 푸르른 이끼가 돌을 잘 덮고 있네요. 하늘도 새파랗고 폭포수도 예쁘게 떨어지는 게 진짜 비경이에요!
  • Oldchef 2019/10/21 21:14 #

    네 좋아해 주시니 저도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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