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디 국립공원(Fundy National Park),Dark Sky Preserve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1.

 3개의 폭포를 찾는 하이킹은, 풍부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멋진 폭포의 풍경과 뼈가 시릴 정도로 시원한 수영으로 멋지게 마무리 되었다. 차를 세워둔 주차장까지 돌아가는 오르막길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걷느라 달아올랐던 몸이 이미 식어 있었기에 수월하게 트레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왕복 6시간 정도? 많이 지친 우리는 일단 텐트로 돌아가 좀 쉬기로 했다.  

돌아가는 도중에 마주한 공원 곳곳의 모습은 여러가지 이유로 아름다웠다. 맨 먼저로 비 온 다음날의 그 청량한 공기와 맑은 하늘. 짱짱한 햇살은 온 세상의 색깔을 선명하게 덧칠하고 있었고 그걸 바라보는 내 눈은 너무나 즐거웠다. 다음으로 사람이 없었다. 어제 우리가 뚫고 달렸던 갑작스러운 열대 폭풍의 영향으로 공원에서 머물던 많은 텐트 야영자들은 집으로 돌아 간 듯 했고, 공원으로 오려고 했던 사람들도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 한 듯 했다. 때문에, 공원을 달리는 내내 사람과 차량을 만나기가 드물었다. 이 아름다운 장소가 오롯이 내 것이 된 것 같은 그 기분! 마지막으로, '집'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세상 번뇌와 집안 일들이 이곳에는 없다. 임시(?)로 세운 텐트지만 이제 집에 돌아가면 나는 그냥 잠을 자면 된다. 설겆이와 샤워 정도는 해야 하겠지만 그 외 아무것도 고민할 것이 없다. 아파트 현관 바로 앞에서 누군가 피우는 마리화나 냄새가 창으로 넘어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음식 쓰레기에 개미가 꼬일까 몇 번이고 쓰레기통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11월에 갱신해야 하는 자동차 번호판과 보험에 대한 고민도 바이바이. 나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비일상에 존재하고 있다. 아, 세상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2. Octopus's Garden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다 일어나 보니 어느 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먹고, 걷고, 자고, 또 먹고. 얼마나 완벽한(?) 생활 패턴인가. 이 날 저녁 한 끼는 나가서 먹어보기로 했던 나와 아내는 차를 몰아 국립공원 바로 앞에 위치한 해안 마을, 알마(Alma)로 향했다.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사람 덕분에 활성화된 마을 알마는 관광에 특화된 여러가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크고 작은 모텔과  Bnb에서 살아있는 랍스터를 골라서 사거나 바로 삶아서 먹을 수 있는 작은 수산시장 - 이 점은 한국의 여느 관광 항구 마을과 흡사한 듯 했다 - 기념품 가게,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과 이곳 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지만 외부에도 그 명성(?)이 높은 마을 빵집, 그리고 식수와 장작, 다양한 캠핑 용구부터 개솔린까지 야영에 필요한 물품을 24시간 판매하고 있는 제법 큰 편의점까지, 이 마을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마을 크기에 비해 꽤나 다양한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던 덕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어 로고가 인상적이었던 '수제' 파스타 집에 가 보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잘 그려진 로고에 비해서 이 곳의 이름은 참 직관적이었다. Octopus's Garden이라...한국에서 '문어 가든'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파스타를 먹지는 않을 것 같지만 뭐, 여긴 캐나다니까 괜찮지 않을까?

 내부 구조는 약간 독특했다. 카운터 겸 간단한 베이커리를 보관하는 유리 보관함이 들어서는 입구 정면에 서 있었고 그 뒤에는 서버 겸 캐셔를 겸하는 아가씨가 방긋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시골 카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값싼 작은 테이블이 십여개 정도 두 방에 나뉘어 흩어져 있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데 확연히 달랐던 것은 높고 높은 천장이었다. 이전에 교회였나 싶을 정도. 그리고 그 드 넓은 시야 위의 공간을 활용하여 꽤나 큰 지역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가격인 좀 있는 편인데 솜씨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 맘에 드는 그림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가들과 카페 주인장들의 이런 협업을 나는 언제나 환영한다.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좋은 그림을 찾을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내 집이 있다면 나도 밥 먹다가 갑자기 그림을 사는 그런 경험을 한 번은 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우리가 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왔다. 나오는 속도는 좀 느린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주문했던 치킨 크림 파스타. 왜, 갑자기 느끼한 것이 먹고 싶을 때가 있지. 나는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이 파스타는 나쁘지 않았다. 일단 면, 두툼한 칼 국수가 생각나는 이 페투치니? 는 100% 수제였다. 조금 투박한 감이 있지만 식감과 정성이 가득한 면이었다. 치킨과 크림은 그냥 일반적. 크림 파스파를 떠올리면 바로 생각나는 그 느끼함과 뻑뻑함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런 소스였다. 그러니 나쁘지 않았지. 가장 큰 단점은 가격에 비해 양이 적었다는 것. 수제 파스타니까, 관광지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양이 적으면 나는 텐트로 돌아가서 뭔가를 더 먹어야 한다는 거지. 

 이 빨간 친구가 아내가 주문한 해물 토마토 스프? 리조토? 였다. 스프라고 하기에는 그 안에 너무도 많은 쌀이 들어 있었고 리조토라고 하기에는 국물이 너무 많았던, 하지만 우리에게는 참 친근했던 요리였다. 사실, 맛과 비주얼에서는 이 요리는 '짬뽕밥'과 너무도 흡사했다. 게살과 랍스터가 들어있어 조금 고급스러웠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던 정도? 맛도 괜찮았다. 그 친근함 때문엔지, 맛 때문인지. 아내는 생전 찾지 않던 소주가 갑자기 마시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아쉬었던 점은 가격. 양도 질도 괜찮은데 해물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이 요리는 가격이 좀 높았다. 맛있게 먹고 떠나는 도중 아내는, 다음에 와서 여기 또 갈지는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 돈이면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지. 질 좋고 양 많고 값도 싼 요리를 원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는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 곳을 찾아보는 것 자체는 좋은 여행의 목표가 될 것 가기는 하다.




3.

 식사를 하고 텐트로 돌아가니 어느덧 해가 다 저물었다. 캠핑장의 하루는 일찍 시작되고 일찍 끝난다. 충전된 랜턴으로 안을 밝히고 한정된 가스로 음식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전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 이기에 해가 저문 뒤에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책을 읽고, 간단하게 읽기를 쓰고, 어둠 속에서 두러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드는 것 정도. 그런 소박하고 단순한 시간은 수많은 자극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던 나의 신경과 영혼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이날 밤은 그렇게 일찍 끝나지 않았다. Fundy National Park에서 준비한 특별한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Dark Sky Preserve' 라고 하던가?

 이 날은 그믐, 그러니까 달이 없는 날이었다. 하늘에 오롯이 빛나는 것은 별 밖에 없다는 뜻이지. 또한 바다에 면한 이 야영장의 해안 절벽에는 가로등도 건물도 등대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땅과 바다에서 반짝이는 것도 몇 안되는 어선의 불빛 정도라는 의미이다. 이 때 얼마나 많은 별자리들이, 문명의 이기에 가려져 존재함에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그 신화 속의 영웅과 괴물들이 그 모습을 아름답게 빛낼 것인가? 나는 그 광경을 꼭 보고 싶었다. 

 혹시 모를 밤 추위에 중무장을 하고, 오랫동안 앉아서 별을 볼 수 있도록 간이 의자도 챙기고, 몸이 차가워 졌을 때를 대비해 커피도 한 통 끓여둔 우리는, 시간에 맞춰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그믐밤의 국립공원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의 전조등이 밝히는 눈 앞의 작은 황금색 공간을 제외하고는, 짙은 어둠과 좀 덜 짙은 밤 하늘 뿐. 다른 것은 모두 그 어둠 속에 침잠해 있었다.

 하지만 행사 장소로 다가가면서 나와 같은 장소로 달려가는 다른 일행들의 빨간 브레이크 등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약간 안심했다. 그렇게 생소한 빨간 브레이크 등을 바라보면서 한 15분 쯤을 달려서 도착한 곳에는, 이미 꽤나 많은 차들이 도착해 있었고, 느긋해 보이는 안내원이 어둠을 가르고 도착한 차를 여기저기로 요령있게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그의 도움으로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그가 알려준 바닥의 표식을 따라 별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야트막한 덤불 사이로 난 길을 50여미터 정도 걸어 들어가니 눈 앞에는 바다가, 둘레로는 낮은 산이, 하지만 하늘로는 뻥 뚫린 분지같은 평지가 있었다. 그 안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누워서, 혹은 초청된 천문학자(?!)들의 주변에 서서 그 사람들이 알려주는 별자리와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즐기고 있었다. 원활한 별자리 관찰을 위해 모든 조명은 통제되고 있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가져온 광학 망원경에서 세어 나오는 빨간 빛, 파란 빛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은 나에게 스톤헨지의 주변을 거닐 던 드루이드들을 연상시켰다. 신비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색다름을 압도하는 풍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나는, 내 생전 그렇게 많은 별들이 그렇게 가깝게 떠 있는 장면을 본적이 없었다. 노래 가사 그대로, 별 빛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본 나와 아내는 입을 벌린 그 상태로 얼어붙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아를 찾고 싶었으나 그 북적이는 별들 사이에서 나는 그 익숙한 국자모양을 찾아낼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풍경이. 그러고 있자니 목이 아파왔다. 아, 다음번에 오면 의자가 아니라 침낭을 가져와야 겠구나. 저 빛과 어둠의 향연을 마음껏 즐기려면 나는 이 잔디밭 위에 누워야겠구나.

* 나의 일반 사진기로는 그 밤하늘을 담을 수 없어 홈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사진 한 장으로 그 광경을 대신해본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별을 즐겼다. 커피도 마시고, 두런두런 들려오는 천문학자의 재미있는 설명에도 귀를 기울여 가면서 - 은하수를 페퍼로니 피자에 비유하면서 설명했던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 때로는 두 손을 잡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밀어내면서, 캠핑장의 심야를 즐겼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오면 복잡할 것 같아서 조금 일찍 텐트로 돌아왔다. 여느 때면 바로 잠이 들어야 할 시간이지만 밤과 별에 취한 여흥이 가라앉지 않은 우리는 한껏 불을 지피고 또 그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쌓아 놓은 장작이 다 타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때 까지, 그렇게 우리는 함께 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즐거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순간, 확실하게 행복했으니까. 행복만을 추구하는 인생은 쉽게 비루해질 수 있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인생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는 행복 - 소소하지만 확실한 - 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것을 쫓는 것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국립공원 기념품점에서 산 내 전용 플라스틱 잔에 예거마이스터를 가득 부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나의 인생과 아름다운 밤 하늘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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