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e Breton Island Day1~3, Highlands National Park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나는 지금 나의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를 차로 달려야 올 수 있는 이름 모를 숲 가운데의 오두막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그 집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글을 쓰기가 힘들다. 만두를 만들 수도 있고 장부를 정리할 수 도 있지만 '글'을 쓸 수는 없다. 왜 그런지 짐작 가는 이유는 있지만 글자로 옮기기 싫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도 해도 굳이 들추어 내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1.

 주변의 캐나다 사람들이 각자의 long weekend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면 나와 그녀도 어디로 갈 곳을 물색한다. 나에게 이곳 - Halifax는 아직 낯선 공간이지만 점점 일상으로 변해가는 시간과 공간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나는 일상을 감내하는 - 혹은 즐기는 - 삶에 다가간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언제나 어느 곳에 있는 무엇을 찾아 떠나려 한다. But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서울을 떠나 이 곳에 왔던 것처럼 그녀는 이제는 이 곳을 떠나 그 어느 곳을 언제나 갈구한다. 대단하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그 몹쓸 병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를, 심지어는 이 지역마저도 떠날 수 없다. 다행히 Atlantic bubble이라는 하는 제도 덕분 Novascotia에 살고 있는 우리는 New Brunswick과 PEI까지는 14일의 가택 연금을 각오하지 않아도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그럼 무엇 하는가. 대서양에 면한 그 세 지역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어설픈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애매하게 비슷하다. 등대와 또 등대, 랍스터와 또 랍스터. 빨간머리 앤을 한 번 더 만나러 가는 것도 좋긴 하지만 이번에는 익숙한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다 소중한 연휴를 어설프게 써버리는 것도 사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5일간의 연휴의 반은 익숙한 곳에, 나머지 반은 새로운 곳에 할여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여름 연휴의 첫 목적지는 아니나 다를까 Cape Breton Island의 Highlands National Park였다. 



2.

 내 주변의 많은 캐나다 사람 중에는 단 한번도 이 곳에 못 가본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여기 벌써 너댓 번은 온 듯 하다. 하지만 이 섬에는, 더 좁혀서 이 국립 공원에는 아직도 내가 한 발도 딛지 못한 길과 숲과 호수와 시내가 수두룩하다. 그 광활함, 그 넉넉함, 그 때문에 자생하는 곳곳에 숨겨진 미지의 볼거리가 바로 북미의 자연이 가진 매력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이 곳에서 우리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간을 찾아서 떠났다.

 그리하여 3시간 반 가량을 달려 도착한 국립 공원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경험'은 바로 공사로 인한 정체였다.


 삼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도 Cabot trail의 어딘가 에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국립 공원 도로 보수공사를 한창 성수기인 여름 한나절에 급한 기색도 없이 여유롭게 하는 캐나다 사람들을 보며, 나는 화가 나기 보다는 '아 여기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라고 오히려 기뻐했었다. 그때는 그만큼 지쳐있었다. 그래서 그 유유자적한 공사 현장을 보며 내가 마치 그들 중 한 명이었던 것처럼 행복했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삼년 동안 수많은 waiting에 치이다 보니 한국과 캐나다를 반반 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지난 기간 힘들고 흔들리는 시간을 살아온 우리는 이제 그때 마냥 행복하게 이 공사 현장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정지 표지판을 들고 있는 공사장 인부는 나의 작은 차를 비롯한 다른 여덟 대의 차를 장장 25분 동안이나 붙잡아 두면서도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나 업무에 충실한 태도 따위는 손톱 만큼도 없었다. 끊임없이 하품을 했고 줄담배를 피웠다. 혹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도 했다. 어떻게 담배를 피우다 말고 하품을 하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내 옆 창문으로 펼쳐진 해안 도로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 시간을 아름다운 순간으로 바꾸어 주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창문을 때리는 궂은 날씨는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흰색을 더욱 선명하게 대비 시켜 주었다. 저 먼 바다를 달려온 바람에 업힌 바다는 호쿠사이의 그림처럼  무시무시한 박력을 뽐 내었고, 나는 운전대 위에 머리를 놓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창문 밖 그 광경을 바라봤다. 파도 또 파도, 하얗게 무너지는 거품과 또 거품, 바람과 구름 그리고 그 틈새로 가끔 쏟아지는 황금 빛의 햇살. High Land의 다이나믹한 기후는 야영을 하는 사람들에게 앞날을 짐작할 수 없게 하는 저주 임과 동시에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크나큰 축복이기도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드디어 stop 사인이 slow로 바뀌었다. 천천히,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와 그녀는 첫날 우리가 머무를 캠핑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아 정말 다시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공원에서 나가게 되는 2일 뒤에도 이 공사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여기에서 또 와서 저 망할 sign이 바뀌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우. 



3.

 캠핑장에 도착하고 텐트를 치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하루를 자동차 속과 공사장 광경으로 마무리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와 그녀는 캠핑장 근처에 있는 짧은 트레일을 오르기로 했다. 산도 낮아 보였고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 꼭대기에서 마주한 광경은 나의 상상을 크게 넘어섰다.


 때 마침 맑게 갠 날씨로 푸른 색이 선명한 하늘 아래 짙은 숲과 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숲 중간 중간에 흩어진 호수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고, 사람 손을 탄 것이라고는 딱 두 가지, 숲 사이로 뻗은 도로와 전신주 뿐이었다. 그 도로마저도, 차들이 지나지 않을 때에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부끄럽고 가늘게 숲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아, 사람 손을 탄 게 하나 더 있었네. 바로 내가 '캐나다 국립 공원 의자'라고 부르는 그 의자가 이 산 꼭대기에도 놓여 있었다.


 무릇 트레일을 걷다가 저 의자가 보이면 꼭 가서 앉아봐야 한다. 크게 잘못되지 않은 이상, 그 의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언제나 볼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나는 저 의자에 앉아, 그녀는 저 의자 앞에 놓인 작은 벤치에 앉아 말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연애시절에는 서로 이야기 한다고 바빴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따로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듯 하다. 부부란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해가 저물고, 우리는 별 다른 말도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조용히 캠핑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4.

 다음날 아침, 날씨가 갠 듯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트레일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아침 산책 삼아서 캠핑장 근처의 해변 길을 걸었다.

 이 길의 독특한 점은, 호수와 바다가 아주 가는 해안을 사이에 두고 병존한다는 것이었다. 홍수가 나면 호수가 넘쳐 바다로 흘러 들어갈 정도였고, 파도가 심하면 바닷물이 호수로 밀려 들어갈 것 같았다. 처음에는 둘 다 바닷물이 아닌가 싶어 손가락으로 육지에 가까운 쪽 물을 찍어 먹어보기도 했다. 아니다. 짠 맛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민물.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침 산책을 끝내고 간단하게 식사를 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미답지를 찾아 떠났다. 두번째 날 우리가 가보고자 했던 곳은 Meat Cove. 케이프브레튼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북 단에 위치한 곳이다. 내가 가입한 페이스북의 Novascotia Camping Life 그룹에서도 종종 그 이름을 듣곤 했었기에 이번 기회에 가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북으로 북으로 차를 몰아 갈 수록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섬에서도 비교적 지대가 높은 북쪽은 오가던 구름이 산에 걸려 비를 뿌리곤 한다 던데 아마도 그 때문인 듯 했다. 그래도 왔으니 끝까지 가봐야 하잖겠는가.

 그렇게 도달한 Meatcove는 그 험한 산 사이로 꼬불꼬불 펼쳐진 좁은 비 포장 도로를 상당히 달려야 도달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섬이 끝나는 곳에 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뭐 랄까 어부들이 떠나버린 빈 해안 마을의 '잔해'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해안으로 뻗어있는 작은 길 사이사이로 숙박업을 목적으로 지은 듯한 작은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지만 하나같이 불이 꺼져 있었고 인적은 드물었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이는 집들, 예를 들어 드라이브 웨이에 차가 서 있고 뜰에 아이들의 장난감이 떨어져 있는 집들이 간혹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버려진 곳일까, 개척 중인 곳일까. 그 도로의 끝에는 사설 캠핑장 하나가 크게 서 있었고 캠핑장 입구 맞은 편에 큰 매점이 하나 서 있었다. 캠핑장 안에는 이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야영을 감행하고 있는 남녀 한 쌍이 텐트 옆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본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도 불행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묵묵히, 비를 맞으며 냉정하고 효율적으로 그 작업을 '해 치우고 있었다.' 뭔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잠깐 내리기로 마음먹었고, 그녀는 비를 피해 차에 남아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귓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거쎈 바람소리와 그 사이로 거인들이 소리 지르는 듯 한 파도 소리. 바람이 불 때마다 강해졌다 약해 졌다를 반복하며 내 방수 자켓과 차를 때리는 빗물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의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듯 한 윙윙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렸다. 캠핑장 옆에서 한창 땅을 고르고 있던 포크레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이 곳에서는, 자연이 인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잘 다듬어 놓은 듯한 국립 공원의 산과 절벽과 달리 여기는 아직 신의 거친 붓 질이 곳곳에 보였다. 그 틈새로 기어들어서 길을 내고 텐트를 치고 작은 둥지 같은 집들을 올린 인간들의 아둥바둥 한 결과물은, 마치 흡사 개미가 모래 위에 낸 흔적 처럼 보였다. 나는 금방 이라도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바다에 쳐 넣을 것 같은 그 맹렬함에 두려움을 느꼈으나 그와 동시에 압도적인 힘에 스스로를 낮출 때 느낄 수 있는 이상한 안도감과 편안함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바람에 덜덜 떨면서 그 이상한 감정의 탁류 속에 하염 없이 흘러가고 있을 때, 내 뒤로 한 남자가 마운틴 바이크를 타고 매점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그 단말마의  엔진 소리에 나는 문득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이제 돌아가자. 

 떠나기 전, 그래도 뭐라도 사 주는 것이 이 마을에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매점을 둘러보려 했지만, 날씨 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은 듯 했다. 커피와 따뜻한 핫도그 정도만 있어도 이 날씨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차를 몰고 오는 도중에도 흐린 날씨는 좋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나와 그녀는 이 세상의 끝에 갔다 온 것 만으로도 벌써 지쳐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우리는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5.

 유명 관광지에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은 이외로 힘들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생선 떼를 노리는 상어 마냥 장사치들이 모여든다. 그렇다. 나는 요리사가 아니라 장사치라고 했다. 무림 고수들이 첩첩산중에 숨어 무공을 수련 하듯,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은 이외로 유명하지 않는 곳, 인적이 드문 곳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PEI의 Richard's 처럼. 반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밥 먹을 곳을 찾다 지친 사람들이 대충 밥을 먹고 갈 때 뿌리는 돈을 줍기 위해 겨우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입이 벌어질 만한 가격으로 파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곳들은, 실제로 한번 들려서 먹어보기 전까지는 다른 맛집들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그런 유명 관광지에서 찾은 꽤 나 괜찮은 솜씨의 밥 집'은 소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장소를 사랑해야 하고, 아껴야 한다. 어떻게? 찾아가서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겨우 세 번 정도의 시도 끝에 이 곳 Cape breton에서 단골로 할 만한 장소를 찾았었다. 여기,Rusty Anchor가 바로 그러한 곳이다. 

메뉴 자체에서 독특한 면이 있다면? 그런 거 없다. 파는 것은 이 지방 Atlantic Canada에서 흔한 메뉴들 뿐. 해산물을 주재료 한 시푸드 차우더, 피쉬앤 칩스, 랍스터 롤, 샌드위치, 햄버거 등등. 이 지방의 문화적 특색 - 완고함, 우직함, 성실함,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피와 익숙한 메뉴에 대한 집착 - 을 고려한다면, 같이 음식을 파는 사람으로써 나는 그 메뉴의 구색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구색을 따질 수 없다면, 적어도 각 메뉴의 질에 대한 고려는 필수 적이지. 마치, 중식집의 솜씨 판단 기준이 흔하디 흔한 짜장면과 탕수육을 어떻게 뽑아 내는가에 있는 것처럼, 익숙한 것에 매달린다면 그에 상응하는 질적인 잣대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Rusty Anchor는 그 점에서 우리의 평균적인 기준을 멋지게 상회 하는 음식을 선보인다.

차우더의 재료는 신선하고, 오래 우린 국물에서 찾을 수 있는 깊은 맛이 들어있다. 잉글리쉬 스타일과 케이프브레튼 스타일에서 선택할 수 있는 피쉬 앤 칩스는 기호에 따라 바싹 튀긴 옷과 크로켓처럼 부드러운 옷, 쫀득하게 익은 속과 촉촉하게 익은 속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날 처음 시도해 본 화이트 와인 홍합찜도 실로 맛있었다. 차를 몰고 오지 않았다면 술 한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도 충분하고, 값은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 물가를 고려한다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할 만했다. 섬의 북쪽 고지에서 비를 뚫고 내려와 따뜻한 실내에 앉아 친절한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적정 가격에서 먹을 수 있는데, 내가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저 즐거울 뿐이지.  

 그렇다고 캠핑장에서 직접 해 먹는 요리의 재미 또한 놓칠 수는 없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저녁 즈음 캠핑장에 돌아온 우리는 준비해온 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가스 버너에 끓이는 컵라면도 맛있지만, 캐나다 캠핑 사이트에서는 fire pit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 작은 철 상자에서 뽑아 올릴 수 있는 장작 불은, 여름이라도 추운 밤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커피도 끓일 수 있고, 팬 프라이 볶음 밥을 할 수도 있고, 꼬챙이만 있으면 직화구이 부터 머시멜로우 구이까지 다양한 요리를 한번에 선보일 수 있는 만능 부엌이라 할 수 있겠다. 미리 썰어둔 야채 한 봉투, 스팸이나 햄, 혹은 갈아 놓은 돼지고기, 식용유 약간과 소금 후추 설탕 조금, 간장 약간만 있으면 불 맛이 펑펑 올라오는 훌륭한 요리도 뚝딱 만들어진다. 평소에는 요리 못한다는 타박에 시달리는 나도, 강한 화력과 그녀의 배고픔과 피곤함에 힘입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 캠핑에서도 대부분의 요리를 그녀가 하고 나는 말 그대로 숟가락만 얹었지만 말이다. 맥주도 한잔 곁들여 가며 나와 그녀는, 갑자기 몰려온 비로 모닥불이 꺼질 때 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불 옆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비가 숲을 적시기 시작하자 우리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추워지는 텐트에서 더 추워지기 전에 잠을 재촉했던 나는 문득 알았다. 아, 오늘이 그녀와 같이 텐트에서 자는 금년도 마지막 캠핑이 되겠구나 하고. 이 땅은 앞으로 더 추워질 것이고, 나의 얇은 일반 텐트로는 겨울 장군이 서성이는 얼어붙은 땅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이 여행을 즐기자, 즐기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눈을 붙였다.



6.

 3일차 아침, 날이 개었다. 끝까지 오락가락하는 하늘에 대고 나는 주먹을 휘둘렀다. 맘 잡고 여기까지 올라와 캠핑장에서 3일이나 있었는데 계속 흐린 날씨에 가랑비까지 퍼붓더니 이제 떠날 때가 되니 맑은 날씨를 내리는 겁니까.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겁니까? 라고.  하지만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떠나야겠지. 아마 이 시점에서 여기서 좀 더 머물러야 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순간 저 망할 하늘은 또 비를 내릴지도 몰라.

그래도 떠나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정말 짧은 산책로나 한 번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멀리 펼쳐진 바다에서 황금빛 아침 햇살이 육지로 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악마를 몰아내는 천사의 광검처럼 검은 구름을 가르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 아래, 정말 작은 섬이 나와 그녀 사이에 봉긋 솟은 채로, 우리와 같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이 바다에 잠긴 것 같은 이 장소는 뭐랄까, 동화에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 짧은 산책로가 금년도 마지막 캠핑의 마지막 장소라니. 귀엽긴 했지만 약간 맥이 빠졌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도 또 이곳에 와야겠지. 그때는 맑은 날씨 아래서 녹색이 우거진 숲을 신나게 걸어갈 수 있겠지. 그 올지 않 올지 모를 날을 기대하면서, 마치 이번에는 좋은 패가 걸리기를 기대하는 도박꾼의 심정으로 또 차를 몰고 이곳에 와야겠지. 제발 그때까지는 그 망할 공사가 끝났으면 좋겠는데.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그레이엄 벨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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