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e Breton Island Day4,Louisbourg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2021년 하고도 6월 11일 아침, 지난 여름에 갔었던 '이 여행'은 이제 까마득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흘러간 지난 일 년은 힘들었고 피곤했고 불확실했다. 망할 코로나 덕분에 아직도 세상은 많은 면에서 불확실하나, 이제는 나아지는 중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하다. 느리더라도 명확하게 어디인지 모르지만 어디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 끝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에는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은 것이 모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 지 갈팡질팡하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 와중이기에, 아직 마무리 짓지 않은 일들을 마무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은 망각의 늪에 빠뜨리기 싫은 것들을 어딘가 잘 챙겨 두는 것도 중요하다. 누가 그랬던가, '아무리 선명한 기억도 시간의 힘은 좀처럼 당해내지 못한다.'고. 그러니 여기에 써 두어야 한다.  
 


1.

 그레이엄 벨 박물관을 떠나서 나와 아내는 섬의 동쪽으로 향했다. Novascotia 여행 포스터에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바이올린, 'The Big Fiddle'을 보기 위해 잠깐 Sydney에 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곳에서는 두 시간도 머물지 않았기에 이제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아니, 내가 그 날을 기억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Sydney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이 곳에 처음 와보는 나는 어느 회전 교차로에서 실수를 했고,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는 짜증을 잔뜩 섞어 싫은 소리를 했다.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에서 피곤하기도 했던 나는 그 상황에 여유롭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뒤의 시간은 기분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때 내가 뭐라고 그녀에게 이야기 했는지, 그녀가 어떻게 이야기 했는지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 속 밑 바닥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것은 그날 우리는 싸웠고, 그래서 그 뒤의 여정이 즐겁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짤막한 부고 기사처럼 간결하고 감정 없는 문체로 쓰여진 기억의 증명. 하지만 그 부고의 뒤 어느 곳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명 씨가 죽어 있는 것처럼, 그 날 하루는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사그라져 버렸다. 사냥 당한 뒤 나무에 매달려 발목에 칼 집이 난 사슴 마냥, 조용히 피를 흘리며 그렇게, 그 하루는 바래져 갔다. 그리고 서글프게도 박제조차 남기지 못했다.

 Sydney에서 차를 몰고 나온 우리는 곧 도착할 목적지에 대해 짧막 하게 해야 하는  '상의'를 하고, NSLC에 들려 맥주와 위스키를 사고, 잡화점에서 먹거리를 구매 한 뒤, 그날 머물 숙소 - Point of View Suites 였던가- 에 제 시간 맞춰 체크인 했다. 이미 감정이 상한 우리는 서로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잘 다려진 바삭바삭한 시트에 몸을 둘둘 말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그날 밤, 달빛이 창을 뚫고 방을 온통 밝힐 정도로 탐스럽고 아름다웠지만,  나는 억지로 그 빛에 등을 돌리고 얼굴을 베개에 박고 잠을 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멋적더라도 그녀에게 같이 달이나 보면서 맥주나 마시자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조용히 잠이나 자자는 말이 돌아올 지라도, 그 때는 그랬어야 했다.



2.

 다음 날 아침, 이상하게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동쪽으로 난 창 밖으로 해가 오르고 있는지 바다와 하늘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몇 몇 어선들이 일찌감치 바다로 나가는 것이 보였고 저 멀리 등대는 그 뒤에서 아직까지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산책이 하고 싶어졌었다. 그래서 조용히 작은 가방에 물과 카메라를 넣고 바깥으로 나섰다.

 이 마을, 루이스 버그(Louis Bourg)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으로 성수기에는 온 거리가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라고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에는 나 뿐이다. 아무리 이른 아침이라 해도, 이 한적함은 정상이 아니다. 나는 마치 영화 '나는 전설이다.' 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 했다.

 
 거리에 문을 연 상점은 거의 없었고, 곳곳에 임대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한 중국 레스토랑은 문에 나무 판자로 못 질이 되어 있었고, 주차장의 깨진 아스팔트 사이로 잡초들이 비죽비죽 올라오고 있었다. 야외 미니 카트 경기장에는 펜스로 사용했던 듯한 타이어가 나 뒹굴고 있었고, 그 흔한 카페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한 때 관광객들이 줄을 섰을 듯한 푸드트럭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트럭 앞쪽에 커다랗게 놓인 간판에는 'Closed'라는 차가운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고 앞 쪽의 창문에는 Covid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및 기타 권장 사항이 인쇄된 쌀쌀맞은 공문이 마치 차압 딱지마냥 붙어 있었다.  

 동부 캐나다 각지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았던 이 마을도 이번 코로나 사태의 여파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할리팩스를 통해 들어오던 장거리 관광객과 크루즈 유람객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부터 정부의 거리 두기 시책까지, '루이스버그' 요새의 많은 장소와 이벤트 들은 하나 둘 숙소 시행 혹은 취소 되었다. 그 결과, 관광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던 마을 사람들은 졸지에 굶어 죽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체크인할 때 숙소에서 만난 직원이 전하기를, 레스토랑 한 곳과 카페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요식업 사업장이 문을 잠정적 혹은 영구적으로 닫았다고 했다. 기념품 가게, 소극장, 야외 유원지는 전부 문을 닫았으며 그 와중에 푸드트럭 한 곳도 사업을 접었다. 걷기도 좋고, 정리도 잘 되어 있고, 소박한 동부 캐나다 양식의 건물도 군데 군데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인 이곳이, 지금은 어느 산간의 폐광촌처럼 변하고 있었다.
 
 그런 이 곳 사람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멀리 마을 저편으로 펼쳐진 바다는 해가 오름에 따라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참 좋은 날씨인데. 정말 지랄 맞도록 좋은 날씨라서 좀 심술이 나더라. 아내와 투닥거리고 말 한마디 못 붙이고 나온 내 심정도 모르고, 대출에 학비에 임대 보증금까지 까먹다가 결국은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된 마을 주민들의 심정도 모르고 야속하게 황금과 에메랄드 빛을 뿜어 올리는 그 아름다운 바다가 야속하더라.

 아무리 돌아다녀도 눈 인사 나눌 사람도, 따뜻한 커피도 마주하지 못한 나는 결국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면서 나는, 이 미친 시간이 전부 지나면 다시 이 곳을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삭막했던 이 장소에 사람의 생기가 돌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그때는 나 혼자가 아닌 아내와 같이 거리를 걸어봐야겠다. 적어도 그러면 이 거리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나 더 있는 샘이니 좀 덜 삭막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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