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e Breton Island Day4,Fortress of Louisbourg - 동부캐나다(AtlanticCanada)


* Kejimkujic의 물방울 모양 숙소에 앉아, 이른 아침의 새 소리와 햇살 속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얼마만의 여유인가 싶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나는 만두 만 만든 것 같다. 내 맘대로 여행하고 돌아다니고 싶어 이 나라까지 왔는데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자식도 없는데 아들 딸 둘 씩 '모시고' 와서 잘 살기 위해 고생하는 다른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1.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니 아내가 일어나 있었다. 우리는 씻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루이스 버그 요새(Fortress of Louisbourg)를 향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그 요새에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까지는 차로 10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갈대가 우거진 해안도로를 달려 요새 벽으로 다가가니, 영국식 요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첨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첨탑이 있으면 대포 맞기 딱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매표소를 지나 요새 성벽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통째로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이전에는 논이나 밭이 있었을 듯한 넓은 부지에 관광객 주차장이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 차를 세우고 요새의 중앙부로 향했다.

  요새 중앙부에는 아까 본 첨탑을 머리에 얹은 긴 사각형 형태의 건물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안에 대성당이 있었기에, 그런 탑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건물에 다가가자 주변에 있던 안내 가이드가 다가와 먼저 프랑스어로 인사를 했다. 우리가 영어로 인사를 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이 건물과 요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전 근대식의 영국식 요새와 달리 프랑스 식민지 주민이 만든 이 루이스버그 요새는 그때까지도 중세 '성'의 개념에 따라 지어져 있었다. 중앙의 군사 및 행정 시설 - 아까 본 대성당 건물에는 일반 병사 및 장교 막사, 그리고 행정관의 개인 저택까지 들어 있었다고 한다. - 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었고, 마을과 작은 항구, 두 곳의 전초  방어시설까지 에워싼 상당히 긴 돌 벽이 요새 주변을 원형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인근 농부는 물론, 요새에서 운용하는 군함의 선원들과 제빵사, 대장장이, 직공, 상인들도 같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나와 아내는 조금 시간이 지나서 '그 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중앙 막사의 연병장에는 당시 프랑스 군인의 복장을 한 병사 한 명이 머스킷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멋진 풍경이지만, 못내 아쉬었던 점은 망할 코비드 덕에 그가 현대식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고증이 맞지 않으니 도무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지. 더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이전에는 소대 규모로 늘어서 있던 경비 병력이 단 한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당연히, 같이 사진도 못 찍었다.

 연변장 반대편에는 요새의 가축을 관리하던 작은 목초지가 있었다. 유제품과 고기를 제공하는 소, 돼지, 닭에서부터 장교들이 탑승했던 군마에 이르기까지 요새의 모든 가축을 이 공간에서 관리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망할 코비드 때문에 텅텅 비어 있었다.

  중앙 건물의 실내는 예상 외로 잘 꾸며져 있었다. 병사들의 막사에는 마치 방금까지도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생활감이 뚜렷한 물품들이 잘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요새가 처음부터 이렇게 관리 된 것은 아니었다. 막사 내에 정리되어 있던 자료에 따르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이 요새는 그냥 '방치'되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세상의 수 많은 다른 불쌍한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이유로 - 예를 땅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근대화 과정에서, 두 차례의 대전을 겪을 때 마다 - 여기저기 뜯겨나갔다. 성벽의 일부는 인근 주민의 주택이 되고, 바뀐 주인의 저택이 되고, 다른 벙커의 주춧돌이 되었고, 특히 이 곳은 인근에서 발전했던 석탄 광산의 건축 자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금만 더 상했으면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부서져 버릴 뻔한 이 요새가 되살아난 된 이유는 이 곳의 주요 산업인 탄광산업이 쇠락 하면서 부터였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주민들을 위해 캐나다 정부는 대규모의 공공사업을 시작했고, 도로, 통신, 상하수도 사업과 많은 예산이 루이스버그 요새의 재건화 사업에 투입되었다. 광산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은 학자들의 지휘 하에서  모래와 진흙에 묻혔던 요새를 다듬어 내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머무를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고, 요새를 복원할 자재를 수송하고 인력을 제공하면서 요새와 함께 살아나기 시작했다. 즉, 루이스 버그의 주민들은 이 요새를 되 살림으로써, 힘들었던 경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요새와 주민들의 관계는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보였다. 요새에 관광객이 넘치면, 마을에 생기가 돌고, 요새에 관광객이 없어지면 주민들은 힘들어지는 것이지. 그러니 이 텅빈 포대를 보면서 허탈한 웃음만 날리는 관광 가이드들의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간다. 그나마 나라도 와서 오늘은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공허한 대포 끝이 향한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배치된 병사도 없고 구경하는 사람도 없는 성벽의 대포는 너무 쓸쓸해 보였다. 가끔 눈에 띄는 포병 - 아마도 마을 주민이 연기하고 있는 것이겠지. - 은 어렵게 이곳을 찾아온 사람에게 뭔가 볼 거리는 제공해야겠지만 거리는 두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운지 우리가 다가갈 때 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자세를 잡고 친근하게 눈으로 웃어 주었다. 그 미소를 가린 마스크 만큼 이 사람의 마음도 답답해 보이지만 그 눈에서 나는 환대가 뭔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행정, 군사 지구를 떠나 마을에 들어서자 더 많은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일반 가정주부로 분장하고 있는 남자 분도 있었고, 
- 그런데 왜 아줌마 역할을 남자가 하고 있는 것일까. 성 정체성이 비교적 자유로운 이곳이니 일부러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저분이 자발적으로 그 역할을 맡은 것일까. 나로써는 알 수가 없지만, 그의 수다는 일반적인 아줌마의 그것과 비등한 수준이었다.

당시 유명했던 이 곳의 석재를 프랑스 및 유럽으로 판매하는 상인도 있었다. 영국에 대한 반감이 높은 당시 상인의 입장에 과몰입 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핏속에 흐르는 '아카디언 - 프랑스 식민지 주민'의 의기가 분출한 것인지 우리가 할리팩스에서 왔다고 하니 '내가 사는 시대에는 그런 동네는 존재하지도 않았지 암암' 하는 대사를 하면서 이 곳이 동부 식민지의 원조라는 투로 자랑을 했다. 

 다른 방에는 아무리 봐도 자기 아버지 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상인의 귀여운 두 딸이 거실에서 피아노의 조상 하프시코드(Harpsichord)를 치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악기의 소리는 참, 신기했다. 음악이 울리는 순간 순식간에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내 주변이 바로크 시대로 변한 듯 했다.  

 온 마을이, 마치 흑사병이라도 돈 것처럼, 원래 주민이 있어야 하는 곳에는 빈자리가 보였고 그들은 모두 약간 슬픈 얼굴로 마스크를 쓰고 우리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관광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그들은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고, 각각의 개인기를 보여주었고, 역사적인 아픔과 비꼼이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즐거웠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의 아픔과 다른 사람들의 빈자리가 좀 더 잘 다가왔었다. 

 언젠가 용인 민속촌을 방문했었을 때, 내가 찾아갔던 그 시절에는 그 유명했던 거지와 포졸과 주민들과 온갖 캐릭터들이 '재현'되지 않았었다. 그냥 건물이 있었고 관광객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좀 더 진지하고, 학구적(?)으로 민속촌을 대할 수 있었지만 요즘 민속촌의 그 생동감 넘치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실제 그 안에 사는 것 같은 경험은 할 수가 없었다. 

 이 날, 루이스 버그 요새에서 본 것이 바로 그 '이전' 민속촌의 모습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것보다 더 쇠락해 버린 민속촌이겠지. 여기저기 보이는, 원래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던 곳이 비어 있었으니 빈 자리가 말이다.

 루이스버그 거리를 걸으면서 이미 그꼈던 것이지만, 이 요새 또한 다음에 꼭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텅빈 곳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병사들이 연병장을 누비고, 주민들이 왁자지껄 장을 열고 축제를 벌이고 물건과 음식을 파는 그 모습 또한 매우 보고 싶기 때문이다.

PS. 이미 1년이나 지난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아직 그 요새와 마을은 비어버린 상태라고 들었다. 언제 쯤이면 다시 그곳을 찾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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